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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천 암수바위, 논을 없애고 작은 공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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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영 |
| 남해 사람들은 남해를 보물섬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해엔 어떤 보물이 있을까. 금산, 보리암, 상주 해수욕장, 용문사, 설흘산 등 남해엔 보물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남해를 처음 찾은 것은 까마득한 그 옛날 중학교 시절이다. 그때 남해로 수학여행을 갔다. 금산을 처음 보고 무척 신기해하던 기억이 새롭다.
몇 해 전 <한겨레21>에서 각 지방의 군수들에게 자기 군의 명승지를 하나씩 추천해 달라고 해서 책을 낸 적이 있다. 그때 남해 군수는 가천 암수바위를 추천해 주었다. 그때만 해도 가천 암수바위는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가천 암수바위는 남해가 갖고 있는 보물 가운데서도 첫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이름난 볼거리가 되었다. 옛날 조선시대 영조 임금 때 미륵이 남해의 고을 원 조광진의 꿈에 나타나 땅속에 묻혀있고 우마와 같은 짐승들이 밟고 지나가니 갑갑해서 견디기 힘들다며 자기를 파내어 준다면 마을에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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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천 암수바위로 가는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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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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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법 그럴듯한 민박집이다. 가천 마을엔 마을 모두 민박을 하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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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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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 명승 15호 다랑이논, 이제 논이 많이 줄어들고 있어 명승지를 취소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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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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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랑이 마을 안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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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영 |
| 이제 가천은 암수바위의 덕으로 온 마을이 넉넉한 살림살이를 하게 된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몇 집 안 되는 마을은 민박으로 큰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몇 차례 가천 암수 바위를 찾았는데 그때마다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차츰 갖추어 가고 있었다.
지금은 넓은 주차장에다가 수많은 식당, 그리고 민박집이 생겨났다. 논 가운데 버려져 있던 바위가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남근 모습의 수바위에 임신한 여자가 들어누워있는 모습의 암바위 둘레의 논은 성역으로 정화되어 있었다. 물론 암수바위를 찾아가는 길도 도랑가로 넓게 만들어져 있었고.
남근을 닮은 바위라고 하지만 내 눈엔 남근이라기보다는 처녀들이 쑥을 캐는 창칼 모습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미륵바위라고도 했다지만 암수로 본능을 자극하여 더욱 높은 명성을 얻게 된 것인가 보다.
가천 암수 바위는 1990년 1월 16일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3호로 지정이 되었다. 숫바위의 높이는 5.8m, 둘레 2.5m고 암바위는 높이 3.9m, 둘레 2.3m이다. 남근 모습의 미륵바위는 가천 다랑이 논 한 복판에 비스듬히 서서 길손을 부르고 있다. 또한 가천 마을 다랑이 논은 지난해(2005.1.3.) 경상남도 명승 15로 지정이 되었다. 가천 마을은 바다를 향한 급격한 경사로 100여층의 계단식 논으로 이루어져 있다.
손바닥만한 논에다가 급격한 경사로 농사짓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하지만 명승지로 이름이 나기 시작하자 논은 묵어가기 시작한다. 모를 심지 않고 버려진 다랑이 논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명승지로 지정이 되고 나서 명승지로서의 성격을 잃어가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일기예보로는 태풍이 온다지만 태풍은 오지 않고 구름 낀 날씨로 여행하기에 적격이다. 가천을 나와서 남해 금산으로 향하였다. 전설엔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위해서 천하의 명산에 기도를 했는데 지리산은 왕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금산은 이성계의 기도를 들어었다고 한다.
당시 금산은 보광산이었는데 이성계는 자기를 왕으로 만들어준 금산에 비단을 둘러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을 비단금자 금산으로 지어 주는 것으로 지켰다고 한다. 경상도에 있던 지리산은 전라도로 귀양을 보냈다는 데 지리산을 전라도로 귀양을 보냈다면 전라도엔 덕이 되지 않았나.
남해 금산을 몇 차례 갔지만 이번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갔다. 보리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산장이 있었다. 그 산장 바로 앞에 좌선대가 있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그리고 윤필 거사가 이 좌선대에서 좌선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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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에서 내려다 본 상주 해수욕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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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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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금산을 찾은 부산 사하문학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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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 산장, 좌선대에서 바라보는 짝짓기 하는 돼지 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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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선대 안쪽, 낭떠러지 바윗돌 위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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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영 |
| 산장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은 빗방울을 뿌리고 있었다. 좌선대에 올라가려니 비바람이 쳐서 두렵기도 했다. 바위를 움켜잡고 좌선대로 올라갔다. 바윗돌이 자연으로 쌓여있고 그 바위 사이에 한 사람이 앉기에도 불편한 작은 바위가 놓여 있다. 그 바위위에서 가부좌를 틀기도 힘들 것 같다. 낭떠러지 위다.
겁이 난다. 비바람이 몰아치니 더욱 그렇다. 바윗돌을 부여잡고 겨우 내려왔다. 가부좌를 틀고 사진이라도 한 번 찍어 보려고 했지만 무서웠다. 함부로 올라가다가 변을 당할 것 같기도 했다.
난간을 만들거나 사다리를 만들어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언젠가 누군가 사고를 당할 것만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백천간두 진일보라고 했지만 원효와 의상, 그리고 윤필은 목숨을 걸고 깨달음에 도전했나 보다.
산장에서 암수 돼지바위가 바라보인다. 암수 돼지가 짝짓기 하는 모습이다. 좌선대에서 돼지의 짝짓기하는 모습을 보고 허무한 인생사를 자각했을까. 원불교의 대종경에는 이청춘이란 기녀가 돼지가 짝짓기 하는 모습을 보고 인생사의 덧없음을 자각하고 출가를 한 이야기가 나온다. 돼지바위와 좌선대, 열반의 길고 세속의 길을 대비시켜 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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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선대가 있는 바위. 연꽃 대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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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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