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흔드는 소설을 읽었던 게 언제였나.
소설의 장면 장면이 아름다운 수채화처럼 눈앞에 그려집니다. 시각적으로 뛰어난 작품.
제 짧은 식견으로는 이 아름다운 작품을 어찌 설명할 수가 없어서
옮긴이의 말을 적어봅니다.
--------------------------------------------------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 Foster』는 2010년 2월 《뉴요커》에 축약된 형태로 처음 발표되었고, 같은 해 10월에 단편 소설로서는 이례적으로 단독 출판되었다. 분량은 중편 소설에 가깝지만 작가 본인은 중편 소설의 호흡이 아니기 때문에 "긴 단편 소설"이라고 말한다. 우물, 양동이, 물에 비친 소녀의 모습이라는 이미지에서 시작된 이 소설은 같은 아일랜드 작가인 윌리엄 트레버나 셰이머스 히니와 비견되는 작품답게 1981년 아일랜드 시골 지역을 배경으로 어머니의 출산을 앞두고 여름 몇 달 동안 친척 집에 맡겨지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심하고 거친 아버지, 다섯째 아이를 임신한 채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과 밭일까지 신경 쓰느라 지친 어머니, 넉넉하지 않은 경제적 형편 때문에 제대로 된 보살핌과 관심을 받지 못하던 주인공 소녀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만 아이가 없는 먼 친척 집에 맡겨지면서 처음으로 애정 어린 보살핌을 받는다. 아주 살갑게 대하지는 않지만 아이가 첫 날 밤 침대에 오줌을 싸도 모르는 척 습한 방에 재운 자기 잘못이라고 말하는 아주머니나 바깥일을 하고 들어와 자연스럽게 식사 준비를 같이 하고 아이에게 매일 우편함까지 달리기를 시키며 시간을 재주는 아저씨는 떨어진 루바브 줄기 하나 주울 줄 모르는 아버지와 무척 다르다. 아이는 킨셀러 부부의 살뜰한 보살핌 속에서 제대로 대답하는 법을 배우고 책 읽는 법도 배우며 따뜻한 계절을 보낸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단식 투쟁 소식을 통해 얼핏 알 수 있듯이 1981년의 아일랜드는 무척 혼란한 상황이었지만 킨셀라 부부의 집에서 보내는 여름은 찬란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그러나 킨셀라 부부의 집에 있던 남자애 옷만 입다가 처음으로 시내에 나가서 제대로 된 옷을 산 날, 아이는 동네 초상집에 갔다가 킨셀라 부부의 비밀스러운 아픔을 알게 된다. 곧이어 건강한 남동생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찬란한 여름은 끝난다.
초상집에 다녀와서 아저씨와 해변으로 긴 산책을 갔던 아름다운 밤에 킨셀라 아저씨는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킨셀라 씨가 이웃에서 주인공 소녀에 대해서 "해야 하는 말은 하지만 그 이상은 안 하"는 아이라고 칭찬하거나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주머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전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생각 등, 이 책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자체에 대한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함축적이고 여백이 많은 글로 분위기가 감정을 오히려 정확하게 전달하는 클레어 키건은 "애쓴 흔적을 들어내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며 "애써 설명하는 것보다 독자의 지력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명확하게 설명하기보다 암시에서 그치는 이 소설의 아름다움은 맨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 집으로 데려다 주고 떠나는 아저씨에게 있는 힘껏 달려가 안긴 채 자신을 데리러 오는 아빠를 보며 "아빠, 아빠"라고 부르는 아이의 말은 뒤가 보이지 않는 아저씨에게 자기 아빠가 오고 있다고 경고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자신을 사랑으로 돌봐준 킨셀라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구체적인 해석은 독자에게 맡기면서 정확한 단어 선택으로 분위기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클레어 키건의 글은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색채가 선명한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 허진 -
첫댓글 영화도 나왔다는데 보고 싶네요^^ 어떻게 표현했을지...
책 읽어봐야겠어요
잘 쓴 글의 유혹
넘어가야죠^^
저는 참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