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감동시킨 사랑의 기적, 사막을 푸른 초원으로!
-인위쩐(殷玉眞), 바이완상(百萬祥) 부부
인 간은 왜 이 땅에 태어났을까? 그래, 정자와 난자가 만나 어떤 식으로든 태어났지, 그렇다면 그들은 무슨 이유로, 어떤 힘으로 버티며 살아낼까? 도대체 어떤 것이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일까? 주착이지만, 난 사람들을 만날 때, 마음 깊이 이걸 물어보고 싶다. 특히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싶다. 왜 그렇게 살고 있냐고.
그 러다 이네 부부를 만났다. 사실 이네들을 면전에서 만날 때는 이 질문을 놓치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 부부가 엄청난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엄청난 일을 하고도 지극히 소박하고, 진실하고, 고요한 침묵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인위쩐, 바이완상 부부.
그 렇다. 이네들은 중국인이다. 드넓은 중국, 내몽골에 있는 사막에 거주하는 평범한 부부이다. 그러나 이네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0년 동안 살인적인 황사바람과 맞서 싸워왔다. 어떻게 싸웠냐고? 111만평 가까운 사막에 나무를 심어 푸른 오아시스를 만들어냈다. 정부에서 지원을 해 줬냐고? 누가 시켰냐고? 절대 아니다. 이네들은 외로워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중 국의 오래된 관습에 따라 남편 얼굴도 못 보고 결혼(거의 내던져지다시피 유배된)한 그녀, 인위쩐은 새벽 3시에 일어나 묘목을 사러 어두움을 헤쳐 나갔다. 눈도 들 수 없고, 폐렴마저 걸리게 하는 지독한 황사바람에 맞서 19Km나 떨어진 곳에 가서 묘목을 사왔다. 그녀는 사람이 그리웠단다. 시집 온지 두 달여 만에 지나가는 사람이 남긴 발자국을 보고, 그 인기척이 너무나 반가워, 발자국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고 바가지를 덮어 씌웠다. 그러나 매몰찬 바람은 그깟 것을 한숨에 날려 버렸다.
그 녀는 남편을 두고 떠나려 했단다. 몸서리치는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단다. 그러나, 떠나려는 그녀 옆에, 아무 말도 못하고, 그녀를 붙잡지도 못하고 있는, 마냥 꺼이꺼이 울고 있는 남편이 있었다. 이 지극하고 순박한 사랑이 그녀 발목을 잡았다. 그녀는 결심한다.
‘나 는 사막을 살리다 죽더라도 황사에 굴복하지 않겠어.’라고. 남편 바이완상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좋아하는 일이라서, 옆에서, 묵묵히, 거들어 준다. 사랑하기에 나무를 심었고, 사랑하기에 황사바람을 버텨냈다. 사랑하기에 기적이 이루어졌고, 사랑했기에 푸른 나무가 뿌리내릴 수 있었다.
이 네 부부는 죽산국제예술제에 강사로 참여하면서도 아주 말이 짧았다. 특히 남편 바이완상은 더더욱 말이 없었다. 사랑했기에 나무를 심게 됐다는 간단한 소리뿐이었다. (웬만한 지식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현학적인 말로 청중의 기를 팍, 죽이고 핑, 떠나버리는데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거기 모인 사람들과 KBS 수요기획 <숲으로 가는 길>(4월 5일 방영)을 보았다. 그리고 박봉남씨(담당 연출자)가 어떻게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연출자는 인위쩐과 나이가 같다는 사실을 밝혔다. 마흔 하나.
*왼쪽부터-담당 연출자, 인위쩐, 바이완상, 통역*
자 기 자신은 스무 살에 대학 들어가 사회 속에 편입되어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스무 살의 인위쩐 인생은 자신과 달랐다고 말한다. 그녀는 하고 싶은 일에 몰두했고, 기적을 이루어 냈다는 것이다. 나무를 심어, 척박한 사막을 초원으로 변화시켰고, 샘물이 졸졸 흐르 고 수박을 거둬들일 수 있는 기름진 땅을 만들어 냈다. 백양나무, 미루나무, 버드나무가 바람결에 사브작사브작 춤을 추는 살맛나는 동네를 이루어냈다.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그녀를 따라 나무 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외로움을 이겨내려는 그녀의 행동이, 사랑을 지켜내려는 그의 행동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고, 하늘을 감동시켰고, 땅을 변화시켰다.
똑같이 20년의 세월을 보냈는데도, 이뤄놓은 결과가 이렇게 다르더란다. 하고 싶은 일에 지극한 정성으로 임했을 때, 그 결과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말을 그 연출자는 하고 있었다.
*인위쩐의 모습은 친근한 우리네 시골 아줌마 그 자체였다*
“한국에 황사 바람이 분다는 사실 알고 있어요. 참,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앞으로도 나무를 열심히 심어서, 황사바람이 한국에 불지 않게 하겠어요.”
우 리나라에 부는 황사바람을 걱정해 주는 그녀. 그 황사바람을 자신이 막아보겠다는 그녀. 이 엄청난 의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녀. 사실 인위쩐은 모진 황사바람과 맞서 싸우느라, 첫아들을 조산하였다. 게다가 둘째마저 유산했고, 남편과 셋째 아들은 폐렴에 걸렸었다고 한다. 만삭이 되서도 바람과 싸웠다고 한다. 어디서 그런 집념이 나왔을까? 그 슬픔 어디다 묻어두고, 모진 바람과 맞서 싸웠을까? 그녀는 아들을 집 기둥에 묵어 놓고 사막에 풀씨를 심으러 나갔다. 사막은 (우리에게 흔한 잡초처럼 보이는) 풀씨마저도 사람 손으로 직접 심어야 하는 곳이었다. 나무에 물을 주면서도 물 한 방울 흩어질까 애타며 고이고이, 사랑을 뿌리에 들이 부었다.
우 리들은 이런 질문이나 던지고 만다. “그 땅 임자는 누구인가요?” “왜 떠나지 않았나요?” “다른 데 가서 살면 되잖아요.” “뭐 먹고 살았나요?” 나는 옆에서 어떤 질문도 던질 수 없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말한다. “사막에 나무 심기가 힘들지 않았나요?” 이 물음은 어떻게 버티고, 살아왔냐는 질문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은 아주 시적이었다.
“ 정성만 들이면 돌 위에도 꽃이 핀답니다.”
돌 위에 피는 꽃이라.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엄청난 기적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게다. 이제 그녀가 사는 곳을 중심으로 나무 심는 가족이 80가구에 이른다고 한다. 3억 2천만 평에 달하는 곳에 160만 묘를 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이제는 어느 사막에는 어떤 나무를 심어야 할지, 척 보면 알 수 있을정도란다) 그녀는 대지 위에서 노래를 불러 주었다. 이 땅이 들으라고, 나무가 들으라고, 이 사막이 들으라고. 어머니 대지를 치유하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온몸으로 보여주는 삶의 가치에 ‘왜 사느냐’는 속절없는 질문이 무릎을 꿇었다. 그녀 존재 자체가 이미, 살아있는 가치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직접 잡아보고 싶었다. 쉬는 시간에 그녀를 찾아가, 거칠고 묵직한 손에 두 손을 담그어 보았다. 참, 깊고 따뜻했다.
첫댓글 지금은 중한테서 법문 안나옵니다
일반 범부들한테서 법문이 나오지
삶이 곧 법이여 ...
https://www.youtube.com/watch?v=DiIxPIGEq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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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v-oSNW3XP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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