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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1
<내 기억으로는, 1977년 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영국인의 수필이다.
그런대로 재미있어 기억에 남아 있는 수필이라고 생각되어진다.>
모자철학.
알프레드 가드너는 1865년 영국의 챔스포드에서 가구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며 소년 시절부터 신문사 심부름이나 배달 등 허드렛일을 했다.
1887년 '노던 데일리 텔레그라프'에 입사해 언론인이 됐다.
특히 1915년부터 '더 스타'에 'A of P(Alpha of the Plough:북두칠성 자리의 첫째 별)'이라는
필명으로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가드너는 생활 속의 작은 소재를 짧은 글에 녹여 삶에 대한 성찰로 연결하는 재주가 뛰어났다.
예술과 문화 현상에 밝은 그는 간결하고 쉬운 문장에 재치와 유머를 담아냈다.
베이비붐 세대라면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가드너의 글을 읽었으리라.
'모자철학(On the Philosophy of Hats)'이라는 수필에 가드너의 특징이 오롯이 고였다.
내용은 이렇다.
가드너는 모자를 다리려고 모자점에 간다.
모자점 주인은 모자와 머리의 관계를 말한다.
변호사들의 머리는 놀랄 만큼 크다면서, 머리의 크기가 직업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가드너는 자신의 머리가 6과 8분의 7인치니까 모자점 주인이 보기에는 대단치 않은 인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모자점 주인에게 빈약한 인상을 주었으리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나의 보통의 머리를 떠받들고 모자점을 나왔다.'
하지만 그는 다시 생각한다.
'위인 중에 머리가 큰 사람이 더러 있기는 했다'고 인정하면서 비스마르크의 머리 크기(7과 4분의 1인치)를 예로 든다. 하지만 괴테가 '셰익스피어 이래 유럽에서 나온 가장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라고 칭찬한 바이런은 머리가 작았고,
뇌가 대단히 작았다'고 반격한다.
중요한 것은 뇌의 크기가 아니고 그 회전의 빠름이라는 것이다.
머리, 곧 뇌의 크기는 지능과 얼마나 관계가 있을까?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뇌 용적은 최근 20만 년 동안 1350㎤정도였다.
하지만 현생인류보다 열등했다는 네안데르탈인의 뇌 용적은 1600㎤나 된다.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에서 발견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뇌 용적이 380㎤에 불과했다.
체격이 현생 인류와 비슷한 영장류의 뇌 용적(약 400㎤)보다 작다.
그러나 놀랍게도 불과 각종 도구를 잘 다뤘다고 한다.
학자들은 인류의 진화를 설명할 때 뇌용적의 지속적인 확대를 근거로 제시한다.
그렇다면 현생 인류보다 훨씬 뇌 용적이 컸던 네안데르탈인은 왜 절멸했는가.
호모 에렉투스는 1,000㎤짜리 뇌로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수준에 도달했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현생 인류의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뇌 용적으로도
네안데르탈인에 필적하는 생활수준을 이룩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가드너의 수필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는 각자의 취미나 직업이나 편견으로 물든 안경을 쓰고 인생의 길을 간다.
이웃 사람들을 자신의 자로 재고 자기류(自己流)의 산술(算術)로 계산한다.
우리는 주관적으로 볼뿐 객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즉 볼 수 있는 것을 보지 실제로 있는 그대로를 보지 않는다.
우리가 사실(事實)이라고 하는 그 다채로운 것을 알아보려 할 때 거듭 실패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출처>
2018년, 아시아경제, 허진석.
다음은
수필 '모자철학'의 전문(全文)이다.
적절한 분량의 수필이라고 생각되는데,
거의 100년 전에 쓴 글이지만, 지금도 한 두번 정도는 곰곰 생각하게 해 주는 수필이다.
| 모자 철학(帽子哲學) / 알프레드 가드너 일전(日前)에, 나는 모자에 다리미질을 하려고 어느 모자점에 들어간 일이 있다. 그 모자는 비바람에 시달려서 털이 부하게 일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새 것처럼 반들거리게 보이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다. 광을 내는 것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자니, 모자점 주인은 자기가 정말로 흥미를 가진 문제 - 모자와 머리의 문제 - 에 대하여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습니다." 그는 내가 한 어떤 말에 이렇게 대답을 하더니, "머리의 모양이나 크기에는 놀랄 만한 차이가 있습니다. 선생의 머리는 보통이라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나의 보통의 얼굴에 언뜻 그만 실망의 빛이 어리는 것을 보았는지 이렇게 덧붙였다. "제 말씀은 다름이 아니라, 선생의 머리는 비정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머리에 따라서는 ―자, 저기 있는 저 모자를 보십시오. 저것은 머리가 매우 우습게 생긴 분의 것입니다. 길고, 좁고, 혹투성이의 ――아주 비정상적인 머리도 있습니다. 그리고, 크기로 말하면 참 놀랄 만큼 차이가 심합니다. 저희는 변호사들과의 거래가 많습니다만, 그분들의 머리는 참 놀랄 만큼 큽니다. 아마 선생께서도 놀라실 것입니다. 그분들의 머리가 그렇게 커진 것은 아마 생각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기 저 모자는 ○○씨(유명한 변호사의 이름을 대면서)의 것인데, 엄청나게 큰 머리입니다. 7인치 반, 이것이 그분의 머리 크기입니다. 그리고, 그분들 중에는 7인치 이상 되는 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말을 계속했다. "제가 보기에는요, 머리의 크기는 직업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전에 어느 항구 도시에 있었는데요, 그 때 많은 선장님들의 일을 해 드렸지요. 그분들의 머리는 보통이 아니었어요. 아마 그것은 그분들이 많이 걱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조수며 바람이며 빙산이며, 기타 여러가지를 걱정하자니......" 나는 필경, 그 모자점 주인에게 빈약한 인상을 주었으리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나의 보통의 머리를 떠받들고 모자점을 나왔다. 그 모자점 주인에게는, 내가 겨우 6⅞인치 크기의 인간밖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따라서 대단치 않은 인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속에다 보석을 지닌 머리는 반드시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해 주고 싶었다. 물론, 위인 중에는 머리가 큰 사람이 왕왕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비스마르크의 크기는 7¼인치, 글래드스턴도 그러했으며, 캠벌배너먼도 그러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바이런은 머리가 작았고, 뇌가 대단히 작았다. 그런데 괴테는 말하기를, 바이런은 셰익스피어 이래 유럽에서 나온 가장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보통의 경우라면 동의할 수 없지만, 작은 머리를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괴테의 말을 주저 없이 받아들인다. 홈스의 말과 같이, 중요한 것은 뇌의 크기가 아니고 그 회전의 빠름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홈스는 머리가 작았던 모양이다.). 하여간, 나는 그 모자점 주인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내 머리는 비록 작을 망정 내 뇌의 회전 속도는 최상급이라고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나는 물론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다만, 내가 지금 그 일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그 일을 통하여,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특유의 창구멍으로 인생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든 것은 모자의 크기를 통해서 세상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경우였다. 그는, 조운스가 7인치 반을 쓴다 해서 그를 존경하고, 스미드가 6¾인치밖에 안 된다고 해서 무시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모두 이러한 직업적시야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재단사는 제군의 의복을 훑어보고서 그 재봉 솜씨와 광택의 정도에 따라 제군을 측정한다. 그에게 있어서 제군은 다만 옷걸이에 불과하고, 제군의 가치는 제군이 입고 있는 의복에 정비례 한다. 제화공은 제군의 신을 보고서 그 신의 질과 손질을 한 상태에 따라 제군의 지식이나 사회적, 경제적정도를 잰다. 만일, 제군이 굽이 닳은 신을 신고 있으면, 제군의 모자가 아무리 번들거려도 제군에 대한 그의 평가는 변하지 않는다. 모자는 그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평가 기준의 일부도 되지 않는 것이다. 치과 의사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이로써 판단한다. 제군의 입 속을 잠깐 들여다보기만 하고서도, 제군의 성격이나 습관이나 건강 상태, 지위, 성질등에 대하여 확고 부동한 자신을 가진다. 그가 신경을 건드리면 제군은 몸을 움츠린다. 그러면, 그는 '아하, 이 친구, 술과 담배가 차나 커피를 지나치게 하는군.'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가 치열고르지 못한 것을 보면, "가엾게도 이 사람은 아무렇게나 자랐구나." 하고 혼자 말한다. 또, 치아가 등한시된 것을 보면, "칠칠치 못한 친구로군, 쓸데없는 데에 돈을 다 써 버리고 식구는 돌보지 않은 것이 확실해."한다. 그리고 제군에 대한 진찰이 끝날 무렵에는 제군의, 이에 나타난 것만으로 해서도 제군의 전기를 쓸 수 있을 것같이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 그것은 대부분의 전기와 마찬가지로 올바른 것이 될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그릇된 것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실업가는 회계의 열쇠 구멍으로 인생을 내다본다. 그에게 있어서는 세계가 하나의 상품 시장이고, 그는 이웃 사람들을 그들의 가게 문 유리의 크기로써 평가한다. 그리고, 금융업자도 마찬가지다. 로드차일드 집안의 한 사람이, 그의 친구 하나가 죽었을 때, 백만의 돈밖에 남기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저런 저런! 그 친구, 꽤 잘 사는 줄 알았더니……."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일단 유사시를 위해서 겨우 백만밖에 저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일생은 실패라는 것이다. 대커리는 그의 한 작품에서, 이런 생각을 아주 잘 나타냈다. 오즈번 영감은 조지에게 "수완이 있고, 부지런히 일하고, 판단이 현명하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알겠지? 나와 나의 예금 통장을 보아라. 돌아가신 불쌍한 세들리 할아버지와 그분의 실패를 보아라. 그렇지만, 20년 전에는 그분이 나보다 나았단다. 아마 2만 파운드는 우했겠지." 하고 말했던 것이다. 생각건대, 나도 또한 사물을 직업적인 눈으로 보는 모양이어서,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그들의 행동을 가지고 하지 않고, 언어를 사용하는 기교를 보고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화가가 우리집에 오면 벽에 걸린 그림으로 나의 인물을 평가하고, 마찬가지로, 가구상이 오면 의자의 모양이나 양탄자의 질로써 그 위치를 결정지으며, 미식가가 오면 요리나 술로써 판정을 내린다. 만일 그에게 샴페인을 내면 우리를 존경하고, 만일 호프를 내면 평범(平凡)한 사람 속에 넣고 만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요컨대, 우리들 모두가 인생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각자의 취미나 직업이나 편견으로 물든 안경을 쓰고 가는 것이고, 이웃 사람들을 우리 자신의 자로 재고, 자기류의 산술로 그들을 계산한다 하겠다. 우리는 주관적으로 보지, 객관적으로 보지는 않는 것이다. 곧, 볼 수 있는 것을 보는 것이지, 실제로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하는 그 다채로운 것을 알아 보려고 할 때, 수없이 실패를 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끝) * 알프레드 조지 가디너(Alfred George Gardiner) 영국 수필가·저널리스트·전기작가. 필명은 < A of P(Alpha of the Plough)>(<북두칠성의 으뜸별>이란 뜻)였다. '노던 데일리 텔레그래프' 신문사 간부와 '런던 데일리 뉴스'의 편집인, 언론인협회장을 역임하였다. 그의 수필은 경묘(輕妙)하면서도 치밀하고 위트에 넘치는 것이 특징으로 평가되고 있다. 작품에 '우산의 도덕(道德)에 관하여', '동승자(同乘者)' 등의 수필이 있다. <출처> 재미수필가협회, 성인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