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개입주의에서 비개입주의로의 후퇴
허만 명예교수/전 한국유럽학회장
평화의 질서는 합리적인 강대국이 자신의 국익을 최소한 희생하더라도 복잡한 국제정치의 장에서 질서를 바로 잡을 때 유지된다. 이 원칙은 과거 200년간의 국제정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입증되었다.
강대국이 국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개입주의를 선택할 때 평화의 질서가 수립되었던 반면, 이기적이며 비도덕적인 개입주의를 선택할 때는 반드시 평화의 질서는 파괴되었다. 비개입주의로 전환할 때는 많은 약소국들이국제질서의 최악의 상태에 직면 하 곤 했었다.
나폴래옹이 자신의 위세를 세우는 동시에 프랑스의 영토를 확장시키는 제국주의적 팽창을 시작함으로서 유럽에서 평화의 질서를 파괴시켰다. 그러나 나폴래옹 체제가 붕괴되고 구 군주체제가 부할 되면서 평화의 질서가 확립되었다. 이것은 본래의 주권 세력을 부활시켜 안정적 정치 질서를 세움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정치적 타협을 통해 4대국동맹(오스트리아, 영국, 프러시아, 러시아)을 이루어 세력균형과 구체제(자주 복고주위 회귀로 표현됨)를 복귀시킨 덕분이다.
20세기에 이르러 세력균현과 안정의 기둥 역할을 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독립하면서 비개입주의를 외교정책의의 원칙으로 삼아 서방세력과의 갈등을 회피하였다. 특히 전 미국 몬로 대통령에 의해 미국은 오랫동안 비개입주의를 유지했었다. 외교사에서는 이 노선을 중립주의로 표현한다.
그러나 미국이 서방 세력과 동아시아 세력과 무역 갈등을 겪으면서 소극적으로 개입주의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아시아 국가들과 통상 조약을 맺어 무역에서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유럽국가들에게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했었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유럽의 열강들이 동아시아에서, 특히 중국에서 영토를 분할해 그들의 영향권(sphere of influence)를 수립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국제법을 위반하는 행위로 규정하기도 했다.
미국이 20세기 초 러일전쟁(1904-1905)에 개입했다. 전 미국 T. 루즈벨트 대통령은 일본과 러시아가 동북아에서 지나친 영토적 팽창은 평화의 조건을 해칠 것을 우려해, 포스마스 조약( Treaty of Portsmouth)을 체결하여 조기에 종결했다. 그 이후 중국의 주권과 영토를 침범하는 행위를 저지하는 것이 주요 목적 이였다. 미국은 일본이 침략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거부하고, 중국에서 안정적인 세력으로서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초 닉슨 행정부가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해 구 소련을 억제하고 반복적인 군축(SALT/START/NEW START)을 단행한 것 역시 평화의 조건을 수립하는 전략적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국제정치에서 이를 세력균형을 위한 것으로 설명한다. 1914년 유럽은 3국동맹과 3국협상 2진영으로 분열되어 평화의 조건을 위협하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독일은 슈리팬계획(Schlieffen Plan)에 의해 먼저 벨기에 중립을 침범하고, 프랑스군을 괴멸시키고, 한편 러시아군의 전진을 저지하고자 했다. 이러한 계획이 대전의 문을 열었다. 미국 전 윌슨 대통령은 대전을 진압하기 위해 개입을 선택했다. 미국은 유럽에서 주축국의 침략적인 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전쟁에 개입했다. 결국 그것은 비개입주의를 유지하고 있었던 D.루즈벨트 대통이 제 2차세계대전 참여하게 만들었다. 태편양 전쟁도 그러한 배경에서 일어났다. 이로써 추축국 세력을 패배시키고 민주주의 국가들을 부활시킴으로써 평화적 질서를 수립하고, 서방에서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려는 세력을 잠재울 수 있었다. 즉, 약소국들의 주권을 존중하게 되었고, 강대국에 의한 강압적인 외교 행사를 비판했고, 군사력을 이기적으로 사용하는 자세를 규탄함으로서 국제법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미국은 기여했다. 일련의 미국의 개입 행위를 소극적 개입주의로만 평가할 수 없다.
비개입주의로 들어가자 잠시 후 국제질서는 다시 갈등으로 휩싸이기 시작했다. 갈등이 증가하자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강대국들은 집단안보 개념을 구상케 유도했다. 집단안보 개념은 구 추축국들에 데한 견제와 남미에서의 공산세력의 증대를 억제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러한 국면은 결국 국제적 차원에서 국제연맹규약을을 만들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 규약이 파괴된 후 국제연합헌장을 만드는 계기를 조성했다. 국제연합은 국제사회의 국가들의 사활적인 이익을 보호하는 집단안보체제 조항을 삽입했다. 그러나 국제연합이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할 위협, 즉 세계평화에 대한 위협에 대한 구체적인 조항을 만들지는 못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합 헌장을 창조하는데 주동적인 역할을 했지만 평화의 질서를 확립하는데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아시아에서 중국, 러시아 그러고 한반도서 북한 등 여러 나라가 공산화로 전환했고, 그 후 한반도에서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그 연정선상에서 동남아에서 평화의 질서를 파괴한 비애트남 장기전이 전개되었다.
전후 미국은 소련의 세력이 동유럽에서 영향력 행사를 실효적으로 저지하지 못했다. 동유럽의 소비트엗화 한 것이다. 아시아에서 역시 공산화의 팽창을 저지하지 못했다. 그 결과 세계는 자유진영 대 공산진영으로 분리되어 오랜 이념적 대립을 경험한 냉전 시대를 살아야 했다.
국제질서의 이 같은 변화 모습을 고찰할 때 미국의 개입주의에 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치하의 그는 “미국 제일주의”를 선언함으로써 다시 스스로 비개입주의로 전환했다. 그는 그의 선언과 함께 나토에서 철수하려는 의도를 내비쳤다. 아프간니스탄에서 미군을 일방적으로 철수해 중동 지역의 평화의 질서를 흔들어 놓았다. 이러한 위험한 변화를 하면서 그는 공산독제자 김정은과 비핵협상에 열중했으나 제로섬 개임으로 끝났다. 필요 없는 개입주의란 오명만 남겼을 뿐이다. 협상의 달인으로 자처한 트럼프는 하노이 노딜를 통해 김정은에 의해 일격을 받았다. 여전히 한반도의 평화의 질서는 요원한 과제로 남아 있다. 그는 단지 미일안보조약만을 유지하면 동아시아에서 평화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도고 있고, 이에 따라 북러간의 무기 협력이 시작됨에 따러 한반도 평화의 질서를 실감할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장기적 평화를 기대하기 불가능한 것으로 보일 뿐이다. 트럼프의 성급한 비개입주가 낳은 결과다. 다시 말하자면 집단안보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면 미국이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고, 국제사회에서 지도자의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생각했었던 같다. 특히 나토 회원국에 군사비 증액을 강요하기만 하면 유럽 안보 환경이 개선되고, 러시아의 접근에 거부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같다. 전 독일 매르켈 수상과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정면으로 대응했다. 마크롱은 트럼프 면전에서 유럽상비군을 창설하겠다고 맞받아 쳤다. 그러한 트럼프의 생각은 일종의 낭만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투자 없이 안보가 있을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기를 바란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미국이 돌아 왔다.”라는 선언을 하면서 국제사회의 안정적 질서를 바로 잡아 평화의 질서를 확립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에 따라서 그 당시에는 푸틴의 불법침략전쟁을 적국 대응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푸틴의 전쟁은 분명히 우크라이나의 국경 침범인 동시에 영토주권의 침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이든은 나토회원국의 지지와 함께 푸틴 전쟁을 패배로 이끌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초기 대응 의지와는 달리 전쟁 개입 강도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 물론 미국 상원의 전쟁비용 부담에 대해 비토를 했기 때문에 전쟁 지원이 지연될 수밖에 없지만 바이든의 의지가 스스로 약화되는 것이 더 문제다. 다시 말하자면 전쟁 수렁에 더 빠지지 않으려는 비개입주의로 선회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려된다. 금년 11월 대선을 고려한 방향전환을 하ㅣ려고 한다면 회원국들과 동맹국들에게 미국의 외교정의 신뢰성과 도덕성의 문제가 자연적으로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바이든의 이 같은 행위로 인해 미국이 유엔의 5대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약소국의 영토주권의 침범을 척결하지 못하면 지구상 어디에도 평화의 조건과 국제법에 기반한 질서를 확립하지 못할 것이다.
하마스 정파의 군의 무차별적 미사일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이 자기 국방안보(생존전략)를 위해 전쟁에 돌입했다. 바이든이 이 전쟁의 반격 강도가 너무 강하니 축소하라는 조언을 했는데 전쟁의 본질를 왜곡한 벌언이다. 예맨의 후티 반군이 흑해에서 운송하는 상선들을 무차별로 공격하는 행위는 공해 선상에서의 항해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다. 해적 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이를 좌시만 했었다. 좌시하는 틈을 타 이란은 미국 영사관과 미 공군기지에 탄도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비개입주의 절정에 도달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비개입주의는 자유민주주의 대 전체주의의 대결의 장을 만드는 결과가 될 것이다. 최근 북한-러시아 간 무기거래 및 상호교환은 이러한 대결의 장을 확대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나아가 최근 김정은은 대한민국을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 점령-평정해야 할 적대국가로 선언했다. 이러한 국제질서에서 어느 누구도 세계평화(world peace)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태는 모두 비개입주의 또는 소극적 개입주의의 결과다.
근현대 국제관계의 전개 과전을 볼 때 도덕성과 정의를 존중한 외교정책을 오랫동안 행사해 온 미국의 외교정책은 개입주의와 비개입주의를 교체하면서 국제정치에서 평화의 질서와 법에 기반한 질서를 수립하는데 공헌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평가하려고 한다면 반의 성공, 반의 실패를 거듭한 과정이라고 하겠다. 예컨대 한·미·일의 새로운 연합전선의 형성, 중국의 대만 포위 위협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거부반응,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의 항해의 자유 확보 노력, 오커스(미-영-호주 3국 안보 파트너십)의 활동 또는 중동에서 오랫동안 평화의 질서 유지를 위한 노력 등은 완전한 성공은 안이지만 반의 성공 사례다. 즉, 작은 악의 추구라고 하겠다. 요컨대 절대적 선을 추구하려고 한다면 절대적 악을 범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절대적 악을 범하지 않으려고 개입주의에서 비개입주의로 후퇴한다면 더 큰 절대적 악을 범할 것이다. 더 큰 절대적 악은 핵을 수반한 아마게돈을 상정한다. 그래서 개입주의와 비개입주의를 항상 적정한 강도로 유연하게 수행하는 것이 이상적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