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와 새우를 먹다가 문득
바다를 통째로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꽃게 살을 발라 삼킬 때마다
새우 껍질을 까 입속에 넣을 때마다
점점 배 속이 영종도나 무의도가 된다
가끔은 파도에 쓸려 간 발자국까지 밀려 나온다
곧 인어나 용궁의 소식까지 도착하고
어부가 빠트린 실패한 사랑이
수면 위로 떠올라 출렁거리기도 한다
시월엔 꽃게나 새우쯤은 먹어 줘야 한다며
한 아름 바다를 들이미는 사람
꽃게의 붉은 등딱지를 떼어 낼 때마다
새우의 붉은 껍질을 깔 때마다
그들은 왜 모두 붉은가 잠깐 골몰해 본다
파도를 헤치고 왔으므로
깊은 수심을 품었으므로
뒤척이며 쓴 편지들은 모두 붉은 거라고
혼자 끄덕거린다
부딪치고 견딜 때마다 붉어지는 나처럼
사랑한다고 몸서리칠 때마다 붉어지는 나처럼
통증은 아물 때 붉어진다
사랑은 머물 때 붉어진다
혹여 꽃게나 새우를 먹을 때
바다가 보낸 편지라는 걸 눈치챈다면
천천히 읽으며 답장을 써야 할 것
붉게 더 붉게
ㅡ시집 『눈 내리는 오후엔 너를 읽는다』 천년의시작 2024
카페 게시글
시 감상
붉게 더 붉게 / 고경옥
정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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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4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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