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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출 3: 1-5, 12
<本文>
"1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序言>
어제 국민일보에서 안양 성도교회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목사님은 서병호(58세) 사모님은 권기자(49세)입니다. 17년째 목회를 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목사님은 대구에서 30대 중반에 신학을 하고 사명감으로 개척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경기도 평촌 비닐하우스 교회에 이어 의왕 지하교회를 거쳐 현재 안양 상가에서 지하교회를 하고 있습니다. 장년 성도는 8명인데 그 중 5명은 경제 활동이 전무한 65세 이상 노인들입니다. 최근 불어 닥친 경기 한파로 인해 교회 월세(35만원)도 5개월 치나 못 냈습니다. 상황이 어떻든 대형교회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목회는 특별한 사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모님은 10년 전부터 성도들 몰래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분식집 주방 보조와 파출부, 산모 도우미, 군고구마 장수 등을 전전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했습니다. 하지만 3년 전부터 건강이 나빠지는 바람에 그마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카드빚과 여기 저기서 빌린 빚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올 초 빚이 4,000만원으로 불어났습니다. 사모님은 목사님에게 "여보 목회를 2~3년만 내려 놓으면 안될까요 같이 청소 일이라도 찾아서 빚부터 갚아 나갑시다 그러고 난 뒤 다시 시작하면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겠어요?" 목사님은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히 주신 일인데 목회만큼은 그만 둘 수 없을 것 같아요 미안해요 여보" 그래서 사모님이 국민일보에 '제발 살려 주세요' 하고 전화를 한 것이 기사화된 것입니다.
요즘 경제 환난으로 인해 교회들이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에 우리 교회에서 평택기도연합회 목회자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절친한 목사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지금 자기 교회에 헌금이 절반이 줄었다고 했습니다. 그 목사님 뿐 아니라 대부분의 교회 목사님들이 헌금이 현저하게 줄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줄어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것은 교우들의 수입이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교우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극복하기를 바랍니다. 한번 실패를 경험했다고 해서 아주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本論>
1. 모세는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모세는 히브리인(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애굽(이집트)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애굽에는 히브리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애굽왕 바로는 히브리인들 가운데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강에 빠뜨리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모세도 태어나자 마자 나일강에 버려졌습니다. 그런데 마침 나일강에 목욕을 하러 나온 바로의 딸 공주가 모세를 발견하고 궁으로 데려가 길렀습니다. 모세는 바로왕의 왕궁에서 애굽의 모든 학술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모세는 성장하자 애굽에서 학대 받으며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동족 히브리인들에 대한 구원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거리에서 히브리인과 애굽인이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의분을 느껴 애굽인을 쳐 죽고 모래에 감추었습니다. 그 다음날 다시 나갔다가 히브리인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동포끼리 치면 안 된다'며 그들을 말렸습니다. 그들은 '누가 너를 우리의 재판장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인을 죽인 것처럼 우리를 죽이려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모세가 애굽인을 죽인 사실이 탄로났고 바로왕에게 까지 전해졌습니다. 바로왕은 모세를 죽이기 위해 찾았습니다. 모세는 바로왕을 두려워 하여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였습니다 (2:1-15).
모세는 장성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자기 실력과 자기 능력으로 하려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구하기는 커녕 자신의 목숨도 지지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것입니다.
2. 모세는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땅에서 그 지방 제사장인 이드로(르우엘)의 집에서 양치는 일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모세는 미디안에서 이드로의 딸과 결혼하고 아들을 낳고 양을 치며 무려 40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2:16-25). 40년쯤 되어 어느 날 양을 치다가 호렙산에 이르게 됩니다. 그 곳에서 희한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떨기나무'는 광야에 있는 가시나무의 덤불입니다 (a bush). 가시덤불에 불이 붙었는데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라지지 않았다는 말은 없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태워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not consumed -KJV,NASB, not burn up- NIV). 모세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타지 않는 광경을 보고 가까이 갔습니다. 그 불 가운데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고 '가까이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1-5).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구원 계획을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하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학대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광대한 땅 곧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 섬기는 백성이 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3:6-10).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했습니다 (3:11). 자신은 그들을 책임질 의무가 없을 뿐 아니라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4:1). 또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목하고 주께서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이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고 했습니다 (4:10).
모세는 아직도 전에 받은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바로왕에 대한 두려움과 동족에 대한 배신감이 남아 있습니다. 자신을 배반한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생명 내놓고 구해준 자신을 고발하고 그로 인하여 도망할 수 밖에 없게 하고 40년 동안이나 돌아가지 못하게 한 원인자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을 구해주려 한 자를 자신들에게 조금 손해가 된다고 해서 가차없이 공격하여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는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입니다. 고통과 학대만 없으면 애굽에서 나올 의지가 전혀 없는 무지 몽매한 그들을 설득할 의지도 없는 것입니다. 설사 그들에게 가서 설득한다 해도 그들이 듣지 않으리라 단정한 것입니다. 모세는 전혀 애굽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고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거나 설득하거나 구원할 생각이 없습니다. 전에 실패한 경험 때문에 상처가 남아 있어서 자신감을 갖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모세는 과거의 실패와 그 실패로 인한 상처 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일상생활에 안주하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잃고 무의미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행하시려는 구원계획을 생각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커다란 코 때문에 몹시 상심한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어떤 가족과 같이 저녁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말하기를 그 분의 코를 본다든지 그에 관한 일절의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명한 후 약속을 받았습니다. 저녁이 되어 코에 대해 모든 것을 피하기에 집착한 이 부인이 마지막 차를 마실 때 크림과 설탕을 돌리며 개발코 신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설탕과 크림을 당신의 코로 좀 잡수시겠어요?" 이것이 주의(主意)의 법칙입니다. 무엇에든지 집착하면 그것에 넘어지게 됩니다.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3. 하나님은 모세를 회복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자신감을 상실한 모세에게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 "네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3:1-5).
'떨기나무'는 무엇을 제조할 수 없는, 아무 데도 쓸 데 없는, 화목으로나 쓸 수 밖에 없는 나무입니다. 떨기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를 암시하기도 하지만 모세의 형편과 처지와 상태를 암시합니다. 모세는 육체적으로 말에도 능하지 못한 사람이고 혈기가 심한 사람입니다. 그 혈기 때문에 사람을 죽인 사람입니다. 자기 성격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려다가 실패한 사람입니다. 한번 실패한 상처 때문에 40년이 지나도록 자신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자연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상태와 같은 떨기나무에 살라지지 않는 영광스런 불로 임한 모습을 보이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면 영광스럽고 능력있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이 거룩한 땅임을 주지시켰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난 곳이기에 거룩한 땅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모세가 거룩한 존재이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부여한 이스라엘 구원 사역이 거룩한 사역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서 신(sandals)을 벗으라고 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종은 신발을 신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눅15:22). 이제 하나님이 종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고집과 완력과 분노로 일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순종하는 종으로 씌임 받을 것이니 그에 합당한 반응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고 하였습니다 (3:12). 그리고 말할 줄 몰라서 안 된다고 하는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고 했습니다 (4:11-12).
모세는 결국 하나님을 순종하므로 모든 불가능한 형편과 처지와 상태를 극복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히11:24-27). 그런 의미에서 그에 대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고 했습니다 (민수기12:3).
미국의 한 청년이 1831년에 그만 사업에 실패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주의원에 출마했으나 그것도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습니다. 다시 여력을 모아 1834년에 사업을 재개했지만 다시 한번 비참하게 실패했습니다. 1841년 그는 신경쇠약에 걸렸습니다. 1843년 그는 공화당의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공천에서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다시 46세 되던 1855년 상원의원에 입후보 했으나 선거에서 또 고배를 마시고 말았습니다. 1858년에도 다시 상원의원에 낙선했습니다. 이러한 실패에도 끝내 좌절하지 않던 그 사람은 드디어 1860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 참담했던 실패를 극복했던 사람이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어떤 사람이 링컨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링컨은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사람입니다. 전쟁 중에도 기도 시간에는 누구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일어난 사람입니다.
<結言>
본질적으로 가진 자질과 능력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현재 처한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현재의 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입니다. 우리에게도 주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마28:20). 과거에 실패한 것 때문에, 과거에 받은 상처 때문에, 현재에 형편과 처지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행하실 일들을 잊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가지시는 선한 목적을 잊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릴 선택했고 우리에 대한 선한 목적을 가졌고 우리를 들어 쓰시려는 의지를 가졌고 우리에게 함께 하시려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을 가지고 일어나길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것이 없을 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고 했습니다 (민11:23). 이스라엘이 진퇴양란에 빠졌을 때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했습니다 (출14:13-14).
<讚頌> 호렙산 떨기 나무에 Am, C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출 3: 1-12
루마니아 출신의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인 디누 리파티는 불과 5년여의 연주 활동을 통해 바흐, 쇼팽, 슈베르트의 작품에서 개성적이면서도 균형 잡힌 느낌을 잘 살린 피아니스트입니다. 그런데 그만 백혈병에 걸리게 됩니다. 마지막 연주회를 계획하였는데 병이 악화되어 연주를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주치의를 포함해 가족들이 반대했지만 "나는 약속했습니다. 나는 연주해야 됩니다." 하며 주사를 맞고 겨우 연주장에 나가 마지막 힘을 모아 쇼팽과 바흐에 대한 연주를 하고, 그로부터 2개월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콘서트는 생명보다 중요한 약속"이라면서 마지막 힘을 모아 불꽃처럼 살다간 한 젊은 예술가의 열정이었습니다. 열정을 모아 불꽃처럼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 무리를 이끄는 목자가 되어 40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렙산 기슭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는데 가시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꺼지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결정적인 순간이 됩니다. 또한 이 사건은 모세의 생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임하게 됩니다. 그는 가시떨기 나무에 불이 붙은 사건을 통해서 자기 존재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모세는 꺼지지 않는 불을 보면서 생각을 합니다. '어찌하여 꺼지지 않는가' 꺼지지 않는 불꽃을 보면서 모세는 자기 속에 불이 다 꺼져버렸음을 깨닫게 됩니다. 과거를 회상해보니 그렇게 타올랐던 정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박력도 있었는데 40년 동안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내면서 그 불꽃이 다 꺼져버렸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제 자신이 늙고 초췌하고 애굽의 모든 학문이 사라진 그 시간, 꺼지지 않고 있는 불꽃을 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가슴속에도 타오르는 불이 꺼진 것은 아닙니까? 가물가물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오순절 날 예수님은 초대교회 사도와 성도들에게 꺼지지 않는, 사라지지 않는 불을 내려주셨습니다. 이 불은 감옥에 가도 꺼지지 않았으며 핍박과 환난이 와도 사라지지 않았으며 가난해도 그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시들지 않았습니다. 누가 자기들을 괴롭혀도 이 불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불은 인간의 것이 아니요 하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이 불이 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불꽃이 타올라야 합니다.
첫째로 사명의 불꽃이 타올라야 합니다
충청남도 부여에 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이 장로님은 성경도 많이 읽고 믿음이 좋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신앙이 좋은 장로님이셨습니다. 땅을 팔아서 예배당을 짓고, 회갑 기념 잔치처럼 큰 잔치를 벌려서 동네 사람들을 다 초대해 식사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여름, 장마철에 비가 쫙쫙 쏟아지자 이 장로님은 교회에 이상이 없나 살펴보기 위해서 부지런히 가다가 면장을 만났습니다. "장로님, 어디 가십니까?" "교회 갑니다." "장로님, 그렇게 교회 가고 열심히 일하면 월급도 줍니까? 월급 얼마 받습니까?" "받다마다요. 그것도 하나님께서 직접 월급을 주십니다." "무슨 월급인데요?" "하나님이 나에게 건강 월급을 주십니다. 기쁨의 월급을 주십니다. 형통과 성공의 월급을 주시고, 천국의 월급을 주시고, 자손이 번창하는 월급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월급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월급보다 더 큰 월급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사명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상하여 주십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사명의 불꽃이 식어지지 아니하도록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상하시고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십니다. 모세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명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40년 동안 기다리고 그려 왔던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그곳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선언을 듣고도, 생의 마지막을 불태우듯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으로 권면 하고 그들을 위해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또한 후계자를 세우고 그에게 모든 권한을 넘겨주며 그를 안수하여 세웁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위해 마지막 생애를 불태우듯 끝까지 달려왔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았으며, 그분이 지시하신 곳을 언제나 바라보았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사느냐, 잘 살았느냐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이 시간 사명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기도의 불꽃이 타올라야 합니다
영국에 에드워드 모트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집안이 가난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리하여 어린 나이였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교 갔다 와서는 저녁에 가구 공장에 가서 부지런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그 날은 가구 공장이 문을 닫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저녁 가구 공장에서만 일하던 소년이 공장 문을 닫으니까 갈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런던 거리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데 한 건물에서 찬송 소리가 났습니다. 열린 문으로 예배드리는 모습이 보여서 구경하러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예배 중에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지, 그래. 나는 지금까지 의지할 데가 없었어. 부모님도 날 도와주지 못했지. 이제껏 가난과 고통, 절망 속에 힘들게 살았는데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신다면 나는 이제 예수 믿고 살겠습니다. 하나님 만 의지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소망이십니다.” 그때부터 모트는 예수님으로 자기의 소망을 삼고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일하는 것보다도 공부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교회에 나갔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늘 기도하면서, 어려움도 극복하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후에 그는 가구 공장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 지역의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나간 과거의 모습을 회상했습니다. 그때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는 '감사'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종이를 꺼내서 자기 인생의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찬송가 539장입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인생의 소망을 예수님께 두고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기도의 불꽃이 타오르시기 바랍니다.
어느 학자가 실험을 하였습니다. 칠흑같은 어두운 상자 속에 쥐를 넣어두니 3분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실날같은 빛줄기를 비춰줄 때 쥐는 36시간을 견뎠습니다. 우리의 영혼에도 소망의 빛이 비치면 아무리 절대절망의 상황가운데에서도 끝까지 믿음으로 견디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소망의 빛은 기도할 때에 우리의 영혼과 삶에 비춰집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불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고 하나님을 만나서 그의 생애가 극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나서 자기의 힘으로 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모세의 생애는 간절한 기도의 삶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40일 금식기도를 두 차례나 합니다. 모세가 얼마나 깊은 영적인 세계를 거닐었는지, 성경은 그가 친히 하나님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출33:11)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문제를 기도로 풀었던 철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구체화시키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도의 불꽃이 꺼지지 아니하고 타오르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 속에도 뜨거운 기도의 불길이 다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영혼 사랑의 불꽃이 타올라야 합니다
멜빌 콕스는 아프리카 라이베리아로 간 첫 번째 감리교 선교사였습니다. 1833년 당시 그가 '백인의 무덤'으로 알려진 서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기로 했을 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그를 만류했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며, 백인은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웨슬리안 대학에서 설교를 마친 그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관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콕스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죽는다면 나의 묘비에 글을 써넣어 주십시오." "뭐라고 쓸까요?" "천명이 쓰러져도 좋으리. 아프리카가 돌아온다면". 멜빌 콕스는 라이베리아에 도착한 지 5개월이 채 못 되어 순교했습니다. 주님처럼 그도 서른 세 살에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증언은 아직도 들려 옵니다. "천 명이 쓰러져도 좋으리. 아프리카가 돌아온다면. 내게 죽음은 두렵지 않아. 이 선교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 수천 명이 쓰러질지라도 아프리카는 구원받아야 하리." 이렇게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후 라이베리아는 하나님께 돌아왔고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죽기로 간구 하였으며, 생명을 걸고 바로에게 나아갔던 사람입니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도 철저한 믿음의 사람으로 섭니다. 그는 말씀을 가르쳤고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각 지파를 축복합니다. 그는 마지막 정열까지 쏟아 하나님의 백성들과 공동체를 위해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 감리교 선교사로 들어온 아펜젤러는 26세의 약관의 나이에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선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을 심기 위해 평생을 바치기로 결단하였던 그는 44세가 되었을 때 목포로 복음을 전하러 가다가 선박 충돌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고가 나자 그는 익사 직전에 있던 이화학당 학생 두 명을 구하고서 자기는 그만 익사당하고 말았습니다. 앞이 창창한 44세의 나이로 그는 한국교회의 제물이 되어 순교하게 된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고 난 후에 미국의 많은 사람들은 회고하기를 "그의 당당한 풍모와 지식과 영성이 미국교회에 꼭 필요했는데 너무 애석하다"고 하며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아 그의 피 값이 오늘의 한국교회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 어떤 위기가 닥쳐도 영혼을 사랑하는 구령의 불이 타올라 어디서나 주님의 증인으로 나서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는 전도를 위해 영혼을 사랑하는 불꽃이 타올라야 합니다. 에밀 부루너는 "불이 타는 곳에 불이 있듯이 전도하는 곳에 교회가 있다" 전도의 불꽃이 타올라야 교회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 교회는 나쁜 교회입니다.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나쁜 교회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전도의 불꽃이 타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있는 곳에 오늘도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가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타오르시기 바랍니다. 소명의 불이 타오르기 바랍니다. 기도의 불이 타오르기 바랍니다. 전도의 불이 사라지지 아니하고 타오르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르시는 하나님
출 3: 1-12
15년 간 매일 자전거를 타고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우편물을 배달하던 존이란 배달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우편배달부 생활에 싫증과 회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고민하다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던 중 존은 자신이 하는 일에도 사명이 있음을 깨닫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우편행랑 안에 꽃씨를 넣고 다니며, 우편물을 배달하며 지나가는 집 마당이나 길가에 꽃씨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가 지나갔던 길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꽃마을이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많은 꽃들로 만들어진 '로스 알토힐' 이란 마을이 바로 그 곳입니다. 사람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일하느냐에 따라,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이 판이하게 달라진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종류나 일하는 장소나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명의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떨기나무의 불꽃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사명을 맡기십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지금 부르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특별한 사람들만이 부르심을 받는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며, 우리를 축복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부르심은 이제껏 살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된 삶으로의 초대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은 축복의 전주곡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분을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첫째로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하십니다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열네 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에게는 지오바니라는 스승이 있었습니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미켈란젤로를 보고 스승은 물었습니다. "위대한 조각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 "제가 가진 재능과 기술을 더 갈고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 스승인 지오바니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네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 먼저 네 기술을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지 분명히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지오바니는 미켈란젤로를 데리고 술집으로 데려가 술집 입구에 놓여있는 조각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거대한 성당으로 가서 성당 입구에 세워진 아름다운 조각상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천사의 조각상이 마음이 드느냐? 저 술집 입구에 있는 조각상이 마음에 드느냐? 똑같은 조각품이지만,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였고, 다른 하나는 술 마시는 사람들의 쾌락을 위해 쓰였다. 너는 너의 기술과 재능을 어디에 쓰기를 원하느냐?" 스승의 물음에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쓰겠습니다."
본문 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보았고,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탈출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 모세를 부르십니다. 9절과 10절을 보면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여기에서 '이제' 라는 말은 '때가 되었다' 는 말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려는 계획을 이루시려는 때가 되어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내어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계획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시는 줄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재능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지금 어떠한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처한 그 자리에서, 여러분들의 지위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데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라 로슈푸코' 가 쓴 글에 보면 한 소년이 나옵니다. 이 소년은 유난히 넘어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소년이 다니는 길에 널린 많은 돌부리가 그 소년을 넘어지게 하여 그의 무릎에는 수많은 상처들이 생겼습니다. 그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어서 빨리 어른이 돼야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소년이 넘어지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거의 넘어지는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아, 나도 이제 어른이 되었구나." 하지만 소년이 그 진짜 이유를 알게 된 것은 한참이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소년이 다니는 길에 널린 돌부리를 매일 같이 치워주시는 아버지가 계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저는 혼자 힘으로 자란 줄 알았는데 제 뒤에는 항상 저를 바라보시는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버지 같으신 분입니다.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11절). 이 말씀의 의미는 "나는 그런 엄청난 일을 감당할 인물이 못됩니다. 하나님, 저에게는 이 많은 백성들을 애굽에서 끌어내어 가나안 땅으로 이끌고 갈 리더십이 없습니다. 제가 부족한 것을 하나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저는 못합니다." 모세는 주저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사양하고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2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께서는 못하겠다고 주저하는 모세에게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겠다" 고 말씀하십니다. 동행하여 주시겠노라고 약속하십니다. 능력을 주시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강해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어떠한 어려움이 처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결국에는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함께 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르심의 사명을 감당케 하시려고 보혜사 성령으로 동행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곁에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골 골짝 빈들에서도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실 물 없고 취할 것 없는 광야의 삶 속에서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곳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게 하시고 주신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만드십니다
미국의 포천 잡지가 100대 부자를 선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중 상당수가 풍요병(affluenza)에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 풍요병의 특징은 허탈감과 절망감입니다. 모든 희망과 소망이 사라지는 일종의 무력증입니다. 이 병은 어떤 약으로도, 어떤 치료법으로도 치유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풍요병을 고칠 수 있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주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이 풍요병은 오로지 남을 위해 나누어줄 때만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연약한 형제를 돕는 것은 남을 돕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은 자신을 돕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통로가 되어 다른 사람을 살리면 나 자신에게도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지만, 그렇다고 우리를 쓰시기 위해서만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부르심에는 축복이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또 계속해서 17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된 땅을 주시기 위해 모세를 축복의 통로로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한 사람을 통해서 수백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이 흘러가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는 분명한 계획과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이유는 우리를 통해 하실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이곳에 세우신 것도 우리 교회를 통해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계속해서 복음을 흘려 내보내고, 사랑도 흘려 내보내고, 물질도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축복을 흘려 내보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문제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통로는 막히면 안 됩니다. 오물이 흘러가는 하수구든, 피가 흐르는 혈관이든, 물이 흐르는 수도 파이프든 오랫동안 막혀있으면 썩든지, 터지든지, 동맥경화에 걸리든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축복을 흘려보내는 통로로 삼으시려고 또한 부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시간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동행하심으로 힘을 얻고 축복의 통로가 되어 언제나 쓰임 받는 여러분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해
출 3: 1-12
본문 내용은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모습입니다.
당시에 모세의 상태는 노년기이었습니다. 새로운 생활이나 아니면 삶의 변화를 생각할 수 없는 나이입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자신감이 다 소진되고 없을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도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젊었을 때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바로의 궁궐에서 성장했고 공주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갖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민족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애굽사람을 때려서 죽게도 했습니다. 그것이 자신이 자신의 백성을 사랑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정의를 위해서 강력하게 피력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꿈도 사라졌고 정의감도 사라졌습니다. 불타는 정열도 사라졌습니다. 남은 생애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장인 이드로의 양을 먹이면서 그 아내 십보라와 함께 거기서 낳은 두 아들과 안정된 가정을 꾸리면서 살고 싶은 때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인생의 락이 다 없어지고 새로운 꿈도 소망도 욕망도 사라진 그때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 부르심을 받고 그때부터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심지어 악한 자는 악한 날에 악한 곳에 사용하시기 위해서 태어나기도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려고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 의를 이루시려고 인생의 여정가운데서 필연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그 부르심을 통해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고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가 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금년에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도구로 부르심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부르시는 모습을 본문에 나타난 것 중에서 몇 가지만 보겠습니다.
1. 시기나 여건을 가리지 않고 부르십니다.
사람은 더 큰일을 맡기거나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당사자의 최고의 정신력과 힘이 있을 때 부르게 됩니다. 국가의 공무원시험이나 회사의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만 보아도 알게 됩니다. 특히 요즈음은 명퇴니 조퇴니 하는 용어가 귀에 익었습니다. 기억력이 퇴보되어가고 혈기가 떨어진 사람은 물러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싱싱한 사람을 뽑아갑니다. 그리고 남의 회사에서 잘하고 있는 사람을 살살 꼬드겨서 데리고 가는 것을 좋은 말로는 “스카우트” 이라고 합니다. 힘 있고 능력 있으면 그렇게 스카우트되어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런 인간적인 외형에 있지 않습니다. 만약 출애굽의 지도자를 인간적인 기준에 의해서 스카우트 모세는 이력서도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심에는 외형적인 여건을 보지 않으십니다. 믿고 순종할 사람을 부르십니다.
어느 때는 젊고 용맹한때 부르시기도 합니다. 다윗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칼을 허리에 차고는 걷지도 못할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보다 더 어릴 때 부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생기기도 전에 부름 받은 나실인 삼손이나 사무엘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80세에, 아브라함은 75세에, 사도 바울은 청년 때, 각기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부르시는 시기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그 여건도 다양합니다. 베드로는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해서 절망스러울 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가하면 바울은 자기가 주님을 핍박하는 일로 대제사장의 신임을 받고 승승장구 하다고 생각되던 때 부름을 받았습니다. 본문의 모세는 인생의 황혼기에 처가에서 장인의 양을 먹이면서 그날그날 살아가는 소망을 버리던 그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환경과 어떤 시기가 되든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의를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 여러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사명을 부여하시고 부르십니다.
본문10절에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사명은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위험도 감수하고 고통도 감수해야 하였습니다. 40년 동안 의지하고 살던 장인 이드로 와도 이별을 해야 하고 지금까지 기르던 모든 짐승들도 버려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믿음의 조상이라는 사명을 부여 하셨습니다. 노아에게는 방주를 만들라는 사명을 부여 하셨습니다. 바울에게는 이방에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부여 하셨습니다. 다윗은 왕의 사명을 부여 하셨고 사무엘 에게는 선지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백성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이 사명을 부여하신 것은 하나님의 만드신 이 땅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명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합니다.
사명자는 자기의 계획이나 성공을 위한 도약이 아닙니다. 오직 불러주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야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명예나 지휘권 회복과는 전혀 관계없이 애굽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 도착해서도 자신의 안정이나 욕망과는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계획을 그대로 이루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동일한 이치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주인과 종의 관계를 들어서 설명을 하시기도 합니다. 종은 철저하게 주인의 계획을 이루어야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무시되고 주인의 계획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야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임 받아야 합니다.
21세기에도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작게는 2007년에도 이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여러분들이 쓰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 능력을 부여하시고 부르십니다.
모세는 자신의 힘과 영향력을 생각할 때 자신은 그 하나님의 계획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함을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입이 둔하다고 했습니다. 언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 모세에게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능력이 그 모세를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잡고 홍해를 가리킬 때 홍해가 갈라져 길이 열렸고 그 지팡이로 하수를 치면 애굽의 모든 물이 피가 되었습니다. 또 백성들 앞에서 지팡이로 반석을 치면 반석에서 물이 나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지팡이의 능력이 아닙니다. 모세의 능력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모세에게 부여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능력을 부여 하셨고 엘리야에게도 부여 하셨습니다. 다윗에게도 부여하셔서 골리앗도 이기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에게도 부여 하셨고 삼손에게도 부여 하셨습니다.
모세가 80세의 고령으로도 그 사명을 감당하면서 백성들을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능력을 부여하셨기에 그 능력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으시고 그 부르심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요나를 부르실 때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셨습니다. 물고기를 예비 하셨고 그가 탄 배가 파선의 위기에 처하게 하시고 제비가 요나에게 돌아가게 하시고 요나를 물 속에 던진 후에 풍랑이 잠잠해지는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가 니느웨에서 외칠 때 사람들의 마음이 감동되어 회개 운동이 일어나 멸망 받을 성이 멸망 받지 않는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백성에게도 능력을 부여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만 들어도 이방백성이 간담이 녹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능력을 부여 하셨습니다. 사명에 맞는 능력을 부여 하십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려고 할 때 그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도는 잠잠하고 있을 때는 힘이 없고 절망의 모습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시면 그 능력 앞에서 만백성은 고요하고 잠잠해야 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 속에서 거닐던 그때 그를 시기하고 시험에 빠뜨리려고 올무를 놓았던 그 사람들은 두려워 떨며 목숨을 구걸하는 처참함이 있었습니다.
부름 받은 사람은 그 하나님의 능력도 부여받은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의 부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의를 이루는 도구가 되었으니 능력도 부여받았다는 확신 있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모세를 부르시던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각자에게 사명을 부여하시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의의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복음의 전도자로 부르셨습니다.
나이에 구애되지 않고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모습이나 환경에 구애되지 않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능력을 부여하시고 부르셨습니다. 부르심에 순종하시고 내게 주신 사명을 다 하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나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것이 아니고 나의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직 불러주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야 하겠다는 새로운 각오와 결단으로 출발하시면 그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능력을 부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능력이 힘이 없고 연약한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하십니다.
금년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가 되어 주님과 동거하며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