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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동방박사들을 통해서 들리는 주의 음성/ 마태복음 2:1-12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전쟁 중입니다. 비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성탄절은 특정 종교의 교주가 태어난 날이므로 교주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것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입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대신에 'happy holiday'로 부르자고 합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 때는 크리스마스라고 부르지 못하고 해피 홀리데이라고 불렀습니다.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다시 크리스마스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모르겠는데, 오바마 때는 백화점이나 많은 마켓들, 심지어 인터넷 마켓까지도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홀리데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성탄절에 그리스도를 지우기 위한 마귀의 고도의 전략에 사람들이 넘어간 것입니다.
한 심리학자가 40명의 학생들에게 크리스마스하면 생각나는 것을 적어보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크리스마스트리’, ‘산타’, ‘선물’, ‘공휴일’ 등을 적었지만 예수님 태어나신 날이라고 적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답니다. 요즘 성탄절은 예수님이 없습니다. 산타에 가려지고, 세상 향락에 가려져서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경배 받으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그때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이상한 별을 보고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초림하시는 아기 예수님에게 경배하기 위하여 멀리 페르시아에서 찾아온 박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인도하던 별이 사라지니 그들은 당연히 유대인의 왕은 예루살렘에서 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듣고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습니다.
헤롯은 유대교의 지도자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었습니다. 그들은 구약성경 미가서의 말씀을 가지고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했습니다.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물었습니다. 그리고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헤롯은 아기 예수님을 죽일 생각이었습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때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들을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들어가 아기 예수님과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였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습니다.
오늘 설교는 초림의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서 경배했던 동방박사들을 통해서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1.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라.
동방박사들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예수님에게 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 가지 방법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첫째, 특별한 별의 인도였습니다. 하나님은 별을 사용하셔서 그들을 예수님에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박사인데, 여기서 박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μάγος’(마고스)입니다. 이 말은 종족의 이름이기도 하고 직책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고대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는 그들은 페르시아에서 제사장직을 맡은 족속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로 보면 레위지파와 같은 족속인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지혜의 사람들이며 특히 과학 분야에 전문가들이었습니다. 당시 과학의 꽃은 천문학이었습니다. 그들은 천문학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밤하늘의 별을 연구하며 그 안에서 세상 이치를 깨닫고 일기 변화라든지 세상의 변화를 예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특별한 징조를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특별한 별 하나가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다른 별들처럼 일정한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문 9절을 보면 또 특정한 곳에 멈추어 서기도 했습니다. 박사들은 이 분야에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특별한 징조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어떤 곳으로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별의 인도를 따라 그 먼 거리를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임정석목사님은 어린 시절에는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경배했다는 본문을 의심 없이 믿었답니다. 그런데 대학 시절에는 공학(工學)을 공부하면서 이 부분이 의심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답니다. 그러던 중 이 분이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제1권에 보면 동방박사들이 봤다는 그 별을 가리키는 대목이 나옵니다. 박혁거세 제54년에 하늘에 혜성 즉 큰 별이 나타났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박혁거세 제 54년은 바로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해, 즉 B.C. 4년입니다. 임목사님은 그 자료를 보고서부터 이 특별한 별에 대한 믿음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도 메시지를 주십니다. 시 19:1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자연은 말이 없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손으로 하신 위대한 일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에는 별의 수가 최대 4천억 개랍니다. 4천억 개가 얼마나 많은 수인지 감이 잘 안 올 것입니다. 별 하나를 세는데 1초 걸린다면 4천억을 세는데 12,600년 이상이 걸립니다. 그런데 우주에는 약 2조개의 은하가 있다고 합니다. 별이 아니라 은하입니다. 제가 전에 알던 숫자보다 훨씬 많아졌네요. 아마도 과학의 발달로 이전에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새롭게 발견한 것 같습니다. 이 광대한 우주를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하늘은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롬1:20입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우리는 자연을 보면서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섬세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끝을 발견할 수 없는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2천배 이상 확대 현미경으로나 관찰할 수 있는 세포 하나하나를 만드셨으며 세포 하나의 생명까지도 주장하시는 분입니다. 나뭇가지 속의 수분까지도 주장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름에는 적당하게 수분을 공급하셔서 말라죽지 않게 하시고 겨울에는 적당하게 수분을 제거하셔서 얼어 죽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성경의 인도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하자 성 전체가 소동을 했습니다. 헤롯이 대제사장과 서기관을 모아서 예수님이 탄생하실 곳을 물었습니다. 그들은 미 5:2에 의해서 베들레헴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이렇게 성경의 인도를 통해서 예수님에게 나아갔던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하나님의 진리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성경입니다. 성경을 떠난 모든 계시의 해석은 100m 선수가 라인을 벗어나서 달리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실격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요 5:39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꿈을 통한 인도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돌아갔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은 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지만 아기께 경배한 박사들이 헤롯에게로 가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는 부분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들로 인도하시는데 그 중에 하나가 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을 인도하십니다. 롬 8:14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늘 성령충만해야 하고 성령으로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먼저 우리를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십니다. 요 16:13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성령님은 우리를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해주십니다.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에 주의하면 가야 할 길을 잘 인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주의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2. 주님께 경배하라.
본문 1절을 보면 박사들은 동방으로부터 왔습니다. 여기서 동방은 여러 견해가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견해는 페르시아입니다. 페르시아는 지금의 이란 땅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하기까지의 거리는 대략 1,200km 정도로 추정합니다. 그들은 걸었든지 말이나 낙타를 탔을 것입니다. 그 길은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그들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수많은 산을 넘어야 했습니다. 사막을 횡단해야 했습니다. 별을 따라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낮에는 방향을 알 수 없어서 밤에만 길을 가야 했을 것입니다. 저들의 여정이 정말 고난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힘들게 먼 길을 여행하여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에게 경배하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에게만 경배했습니다. 마리아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에게 경배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에서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이고 거룩한 분이므로 경배와 기도의 대상이 되도록 법제화 하였습니다.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방문한 목적은 오직 경배였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에게 경배하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원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 정도 수준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 외에는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군더더기가 많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소동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예수님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잠시 소동하고 잊었습니다. 헤롯 왕은 예수님을 찾아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이 나실 곳을 알면서도 무관심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이었던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에게 경배하고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데 내용이 약간 차이가 납니다. 마태복음에는 먼저 아기 예수님의 탄생 과정이 나오고, 이어서 동방박사들이 찾아와서 경배한 과정이 나옵니다. 이어서 헤롯의 박해를 피해 애굽으로 피난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누가복음에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 과정이 나오고, 이어서 목자들이 찾아와 경배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이어서 성전에서 할례를 받으시고 고향 갈릴리로 돌아가는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물론 이 차이는 마태와 누가가 그 많은 내용 중에 필요한 것만을 자신의 관점에 따라 기록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기록에 공통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뒤에 경배를 받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동방박사들에게 경배를 받으셨고, 누가복음에는 목자들에게 경배를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경배하다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 보면 προσκυνέω(프로스퀴네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다가가서 입맞춤으로 존경심을 표하다’입니다. 당시에 이 경배하다는 말은 두 가지 경우에 쓰였습니다. 하나는 부름을 받은 신하나 백성들이 왕 앞에 나와서 문우를 여쭐 때 사용한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 앞에 나와서 예배드릴 때 경배한다는 말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다는 것은 예수님은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탄생하신 이 아기 예수가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뜻이고, 메시야로서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 아기 예수님이 경배를 받기에 합당한 분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알리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경배해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그분의 발에 입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경배할 수 있을까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경배의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사람의 본능이며, 사명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 안정된 삶을 살게 됩니다.
정신위생에 대하여 세계적인 석학이요 전문가인 데이비드 핑크 박사는 [안정을 위한 4박자 균형]이라고 하는 논문에서 정신적인 안정을 위하여 4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일입니다(work). 그 다음엔 놀이(play)입니다. 셋째는 사랑(love)입니다. 넷째가 예배(worship)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과 놀이와 사랑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예배는 불가능합니다. 신자는 이 네 가지가 모두 가능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배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랜드 스톤은 영국의 황금시대를 연 수상으로 지금까지 존경을 받는 정치인입니다. 그는 수상을 네 번이나 했고 그가 영국을 다스릴 때 영국이 얼마나 편안했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지도자가 나와야 합니다. 그랜드 스톤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예배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영제국의 수상석보다 내 아버지 하나님의 교회 예배자리가 더 귀하고 빛난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우선순위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를 복되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예배에 우선순위를 둘 때 하나님께로부터 큰 복을 받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간 청교도들은 자기들의 집을 짓기 전에 먼저 예배당을 짓고 예배부터 드렸습니다. 그 미국이 지금 세계의 부를 쥐고 있습니다. 노아는 일 년이 넘는 방주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집도 지어야 하고, 짐승들을 위한 우리도 준비해야 하고, 밭과 초장도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을 뒤로 하고 먼저 하나님께 단을 쌓았습니다. 노아도 우선순위가 예배였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 교회 성들을 보면서 마음이 슬플 때가 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예배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예배의 성벽을 먼저 쌓아야 합니다.
느 3:1입니다.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그때 그들의 우선순위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삶이 무너질 때 무엇을 가장 먼저 수축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사업이 무너졌을 때, 가정이 무너졌을 때,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교회가 침체의 늪에 빠질 때, 정치가 불신을 당할 때, 나라가 무너져 내릴 때, 세계가 절망에 휩싸일 때, 우리는 무엇을 먼저 수축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하는가? 예배입니다.
그들은 성벽 중에서 가장 먼저 양문을 수축했습니다. 양문은 양을 잡는 문입니다. 그러니까 제사를 위하여 준비하는 문입니다. 예배를 위한 문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가정 등 무너진 곳이 많지만 가장 시급한 것이 예배의 회복입니다. 기도의 회복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나와의 무너진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예배부터 재건해라. 거기서부터 치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오만 가지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에배가 회복 되기를 축복합니다.
3. 주님께 귀한 것을 드리라.
11절에 보면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에게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들이 드린 선물 세 가지가 다 고가였습니다. 사실 그들이 드린 선물은 예수님의 가족들에게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습니다. 13절 이하에 보면 동방박사들이 떠난 후에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바로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마리아를 데리고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헤롯이 죽기까지 있었습니다. 그때 동방박사들이 준 선물을 팔아서 생활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동방박사들의 선물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식구들이 애굽에서 생활할 수 있는 재정을 공급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동방박사들의 선물은 하나님의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방박사들의 세 가지 선물로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헌금입니다. 하나님께는 헌금의 양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헌금에 대하여 하나님이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➀최선의 것입니다. 한 번은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한 가난한 과부가 드린 돈은 두 랩돈을 드리는 것을 보셨습니다. 두 랩돈은 약 천원입니다. 아주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큰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돈은 그녀의 생활비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비록 적은 돈이었지만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그녀를 칭찬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녀가 그날 헌금을 드린 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많이 드렸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최선을 다해서 드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헌금을 할 때 최선을 다해서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최선을 다해서 섬겨야 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 큰 영향력을 끼친 언더우드 선교사가 어릴 때 있었던 일입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헌금을 하는데 언더우드는 가난해서 헌금할 돈이 없어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언더우드, 왜 우니?”, “선생님, 하나님께 바치고 싶은데 바칠 것이 없어서 제 마음, 제 생명을 바친다고 기도했어요.” 감동을 받은 선생님이 30불을 주었습니다. 그때 30불은 큰돈이었습니다. “이것 가지고 매주 1불씩 바치면 30주 동안 바칠 수 있다. 반 년 동안 바칠 수 있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헌금을 해라.”,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음 주에 언더우드가 헌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언더우드, 선생님이 네게 30불을 주었는데 왜 헌금을 하지 않니?”, “예, 선생님은 매주 1불씩 하라고 하셨지만 제가 생각해 보니 매주에 1불씩 하면 나중에 남아 있는 돈으로 과자를 사 먹고 빵을 사 먹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해 헌금을 써버릴까 봐 지난 주에 30불을 다 바쳤어요.” 그때 선생님이 감동을 받아서 목사님에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이 그런 아이는 그냥 두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장학금을 주어 대학과 대학원 공부를 하게 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한 그는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연세대학교를 세우고 한국 교회를 일으켰습니다. 언더우드의 헌금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드린 최선의 헌금이었습니다. 자기를 드린 것도 그렇고, 선생님에게 받은 30불을 드린 것도 최선의 것을 드린 것입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헌금해야 합니다.
➁깨끗한 돈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대접해도 그릇이 더러우면 그 음식의 가치가 없습니다.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깨끗한 돈을 원하십니다. 성경은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하나님께 가져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 돈은 여호와께 가증한 것입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번 돈, 주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고 주님의 방법으로 번 돈이 깨끗한 돈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헌금을 원하십니다.
➂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믿음 없이 행한 것은 다 죄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헌금도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아벨과 가인이 하나님께 제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고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드렸고, 가인은 믿음 없이 드린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가장 적절한 선물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들이 드린 선물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입니다. 전통적으로 황금은 왕에게 바치는 예물입니다. 황금은 아기 예수님이 왕으로 오신 것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황금은 가장 적절한 선물이었습니다. 유향은 고대 사회에서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던 것이었습니다. 이는 아기 예수님이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셨기 때문에 유향도 적절한 선물이었습니다. 몰약은 고대 사회에서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하던 값비싼 물질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장차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실 분으로 오셨기 때문에 몰약도 가장 적절한 선물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요람에 계신 아기 예수님께서 참된 왕이 되실 것과 온전한 대제사장이 되실 것과 마침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구주가 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이렇게 예수님에게 꼭 맞는 것들을 기뻐하며 드렸습니다.
2) 구제입니다. 제가 동방박사들의 세 가지 선물로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먼저는 헌금이었고요. 또 하나는 구제입니다.
헨리 밴 다이크라는 분이 쓴 [네 번째 동방박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전설을 기초로 해서 정리해 놓은 책입니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
페르시아의 한 지도자였던 알타반은 친구들로부터 큰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께 경배하러 간다는 전갈을 받고는 다른 박사들을 만나 함께 가려고 했지만 그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는 페르시아에서 혼자 출발해서 고생 끝에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3일 전에 3명의 동방박사들은 이미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마치고 돌아가 버렸고, 아기 예수님도 애굽으로 피신하셨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그가 허탈해서 쉬고 있는 중에 갑작스런 말발굽 소리와 비명소리 그리고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자기가 묵고 있던 주인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헤롯의 군인들이 아이를 빼앗아 죽이려 했습니다. 그는 아기를 살리기 위해서 왕께 드리려고 준비한 청옥을 꺼내 군인에게 주며 살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아기를 구했지만 예수님께 드리려던 한 가지 예물을 써버렸습니다.
알타반은 아기 왕을 찾아 애굽으로 달려갔습니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 생계를 위해 또 하나의 예물인 루비를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빈민촌의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33년이 되던 해 그는 아직도 예루살렘에서 그 왕을 찾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사형 당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찾던 왕이 돌아가신다는 소식을 듣고서 골고다 언덕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로 가던 길에서 한 소녀가 채찍에 맞으며 노예로 팔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왕께 바치려던 또 하나의 예물인 진주를 주고 그 소녀를 구했습니다.
왕께 드릴 예물을 다 써 버린 알타반은 예수님의 처형과 함께 지진이 일어나자 무너져 내린 집 더미에 깔려 죽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구나!’ 알타반은 안타까움 속에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알타반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언제 주님이 병드셨을 때, 목마르실 때, 옥에 갇히셨을 때 도와 돌아보았나요?” 또 다시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니라.” 그 순간 알타반은 미소를 지으며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것은 곧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타인을 섬기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그리스도인의 섬김이 교회와 가정과 사회에 필요한 때입니다.
이런 글을 하나 읽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백화점의 ARS 자동응답의 내용입니다. 손님이 전화를 했더니 이런 내용이 나오더랍니다. “만일 손님께서 물건을 주문하실 생각이시면 5번을 눌러 주세요. 만일 손님께서 불평거리가 있으시면 304에 978372643498712번을 눌러 주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물건 주문은 받지만 불편함에 대해서는 처리해주지 않겠다는 것이죠. 이 시대에 가장 아쉬운 것이 섬김과 봉사의 정신입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나님께 드릴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이웃에게 무엇을 기꺼이 나눌까를 고민하고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동방박사들을 통해서 들리는 주의 음성 세 가지를 나눴습니다.
1.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라.
2. 주님께 경배하라.
3. 주님께 귀한 것을 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