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하알로트카
하나님은 필요치 않은 빛
이스라엘의 국립 홀로코스트 기념관이자 박물관인 야드 바솀(Yad Vashem)에 보존된 생존자들의 증언 중에는, 작은 불꽃 하나만으로도 치명적인 위험이 따를 수 있는 장소에서 유대인들이 하누카 촛불을 밝혔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증언에서 홀로코스트 생존자 예헤즈켈 허슈틱(Yechezkel Hershtik)은 루마니아의 수용소들을 도보로 이동하던 중 강가를 따라 진흙탕을 걸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때는 하누카 기간이었습니다. 다섯 번째 밤, 그의 아버지와 몇몇 다른 가장들은 다리 근처에 멈춰 서서 다리 벽에 하누카 촛불을 켰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두려움이 그들을 덮쳤습니다. 촛불이 적군 비행기에 보내는 신호로 오인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일행이 다시 이동하기 전에 두 사람이 돌아가 촛불을 껐습니다.
또 다른 증언에서 생존자 지셀(지시) 샬롯 바움 플라이슈만은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강제노동 수용소에서의 하누카를 회상했습니다. 은으로 된 메노라도, 안전한 유대인 가정도, 반짝이는 식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감자들은 가지고 있는 것들로 준비했습니다. 그들은 감자 한 조각에 구멍을 뚫고, 작업하던 기계에서 기름을 훔쳤고, 이불과 침대 시트에서 실을 뽑아 심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집도 없고 아무도 볼 수 없는 강을 마주한 창가에 하누키아, 즉 하누카 메노라를 켰습니다. 그들은 ‘마오쯔 쯔르(מָעוֹז צוּר:영원한 반석)’를 노래하고, 기억에 의존해 축복의 기도를 외웠습니다.
유대인의 빛은 완벽한 조건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 빛은 다리 위, 막사 안, 텅 빈 강을 마주한 창가, 그리고 기억과 믿음, 그리고 용기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람들의 손에서 비칩니다.
민수기 8장은 아하론이 성막(미쉬칸)에서 메노라에 불을 밝히라는 명령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히브리어 ‘베하알로트카(בְּהַעֲלֹתְךָ, beha’alotcha)’는 단순히 “불을 밝힐 때”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올라가다’, ‘승천하다’, ‘솟아오르다’를 의미하는 어근 ‘알라(עָלָה, alah)’에서 유래했습니다. 중세 유대교의 위대한 주석가 라시는 아하론이 “불꽃이 저절로 치솟을 때까지” 불을 피워야 했다고 설명합니다. 아하론은 단순히 심지에 불을 붙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불꽃이 스스로 서 있을 수 있을 때까지 불을 키운 것입니다. 그러니 질문은 명백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메노라의 빛이 필요하지 않으셨다면, 왜 아하론에게 매일 불을 밝히라고 명령하셨을까요?
토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דַּבֵּר אֶל־אַהֲרֹן וְאָמַרְתָּ אֵלָיו בְּהַעֲלֹתְךָ אֶת־הַנֵּרֹת אֶל־מוּל פְּנֵי הַמְּנוֹרָה יָאִירוּ שִׁבְעַת הַנֵּרוֹת׃
아하론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등불을 켜면, 일곱 등불이 메노라 앞쪽에서 빛을 비추게 하라.” (민수기 8:2)
메노라는 하나님의 집을 밝히기 위해, 즉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빛의 창조주께서는 보시는 데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메노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빛에 대한 책임을 가르치기 위해 존재했습니다. 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빛은 자기 표현의 수단이 아닙니다. 빛은 모호한 영적 분위기도 아닙니다. 토라에서 빛은 규율과 방향, 그리고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메노라는 미쉬칸(성막) 안에, 나중에는 베이트 하미크다시(성전) 안에 세워졌습니다. 그것은 순금으로 만들어졌으며 정교한 세부 사항까지 세심하게 다듬어졌습니다. 모든 가지, 컵, 손잡이, 꽃 모양 하나하나가 중요했습니다. 그 불꽃은 무작위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불꽃은 정성껏 관리되었고, 정해진 위치에 놓였으며, 중심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잠언은 그 불꽃의 내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נֵר יְהֹוָה נִשְׁמַת אָדָם חֹפֵשׂ כָּל־חַדְרֵי־בָטֶן׃
“사람의 생명의 숨결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그로 말미암아 사람의 속사람이 드러나느니라.”
(잠언 20:27)
히브리어로 등불을 뜻하는 말은 ‘네르(נֵר, ner)’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네르’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등불입니다. 용기는 등불입니다. 믿음은 등불입니다. 도덕적 명철함은 등불입니다. 연민은 등불입니다. 타인을 위로하고, 가르치고, 세우고, 보호하고, 이끌고, 창조하고, 강하게 하는 능력은 등불입니다. 이러한 선물들은 우연히 생긴 성격적 특성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맡겨진 불꽃입니다. 그리고 맡겨진 불꽃은 사적인 소유물이 아닙니다.
아하론은 유대 전통에서 '오헤브 샬롬 브로데프 샬롬(אוֹהֵב שָׁלוֹם וְרוֹדֵף שָׁלוֹם, ohev shalom v’rodef shalom)', 즉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토라에 가까이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토라의 가르침을 희석시키거나 거룩함을 축소함으로써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토라를 사람들에게 끌어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토라의 높이로 끌어올렸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람들을 어둠 속에 내버려 두고 그것을 친절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다른 사람 안에 숨겨진 불꽃을 보고 “너는 더 큰 일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아하론의 임무는 그 불꽃이 스스로 타오를 수 있을 때까지 불을 지피는 것이었습니다.
메노라의 일곱 가지 가지가 이 교훈을 더욱 선명하게 해줍니다. 메노라는 하나의 그릇이었지만, 그 안에는 여러 개의 불빛이 있었습니다. 각 가지에는 제자리가 있었습니다. 각 불꽃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등불은 중심을 향해 있었습니다. 토라 속의 일치는 획일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거룩한 목적을 향해 향하는 서로 다른 힘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혼자만 간직하면 그 힘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결코 가르치지 않는 지혜, 결코 지키지 않는 용기, 결코 다른 사람을 지탱하지 않는 믿음, 결코 책임이 되지 않는 축복, 이 모든 것은 본질을 놓치는 것입니다.
불꽃은 스스로를 찬미하기 위해 높이 들어 올려진 것이 아닙니다. 섬기기 위해 높이 들어 올려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하론에게 메노라에 불을 밝히라고 하신 것은 하늘이 어두워서 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하론에게 어두운 세상 속에서 빛을 어떻게 지녀야 할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장식용 빛이 아니라. 감상적인 빛이 아니라. 거룩한 빛. 분명한 방향을 가진 빛. 기둥 같은 힘을 지닌 빛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불꽃을 주셨다면, 그것을 높이 들어 올리십시오. 지키고, 거룩함을 향해 비추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십시오.
By Sara La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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