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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Ⅰ -문화재』
- ▣조선시대 회화(繪畫),▣전적(典籍),▣금속·공예(金屬·工藝),▣조각(彫刻),▣토기·도자(土器·陶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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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Ⅰ-문화재』 https://blog.naver.com/ohyh45/222497140688
▣ 조선시대 회화, ▣ 전적, ▣ 금속·공예, ▣ 조각, ▣ 토기·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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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1. "돈 있음 된다? 이 의지는 광기" 이건희 컬렉션에 놀란 미술계
국립중앙박물관에 귀속될 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약 2만1600점은 지금까지 기증된 유물(약 5만 점)의 43%에 달하는 규모다. 이 중 1급 유물로 통하는 국가지정문화재가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다. 이번 기증 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의 최대 기증은 고 동원 이홍근 선생이 1980, 81년에 내놓은 4941점이었다.
문화재계에선 박물관 기증품 중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와 단원 김홍도(1745∼?)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를 첫손에 꼽는 이가 많다. 조선 회화사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그림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문화재계 인사는 “겸재와 단원의 그림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지만 이들의 대표작으로 내세울 만한 작품은 거의 없다”며 “기증품들은 이런 빈틈을 메울 수 있는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영조 27년(1751년) 겸재가 그린 인왕제색도는 가로 138.2cm, 세로 79.2cm의 대작으로, 인왕산에 비가 내린 후 안개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담았다. 거대한 암벽을 그릴 때 아래로 붓을 내리긋는 대담한 필치가 인상적이다. 이 그림은 중국 산수화를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선의 산수를 직접 보고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추성부도는 단원이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의 시를 읽고 그 감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단원 그림의 상당수가 작자나 연도 미상인 데 반해 이 그림은 단원이 1805년 동지 사흘 후 그렸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이수미 국립광주박물관장은 “단원의 말년 작으로 그의 쓸쓸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시적인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문화재계 일각에선 기증품 수량과 질을 감안할 때 박물관에 별도의 전시실을 두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박물관 관계자는 “별도의 기증관을 만들 계획은 아직 없다”며 “기존의 주제별 상설전시관에 기증품을 분산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물관은 두 그림을 포함해 이건희 컬렉션 중 대표작 40, 50점을 추려서 올 6월 특별전을 열 계획이다. 이어 내년 10월경 전시품을 수백 점으로 늘려 이건희 컬렉션 명품전(가칭)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의 수준을 크게 높이게 됐다. 박물관은 보유 문화재의 스펙트럼을 넓히게 됐고, 미술관은 희소가치가 높고 수집하기 어려웠던 근대미술 작품을 대거 보강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진우 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은 “발굴 매장 문화재가 대부분이었는데 우리 역사 시대 대부분을 아우르는 회화, 공예 등 문화재를 고루 소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 작가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거장의 작품을 상설전으로 볼 수 있게 됨에 따라 우리 국민의 문화 향유권이 한층 높아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는 “세계 미술계의 시간표가 어떻게 짜여졌는지 항상 볼 수 있어야 예술적 안목을 키워 한국 미술을 국제화할 수 있다”며 “대단히 중요한 작품들이 기증돼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삼성이 ‘한국의 메디치가’에 비견될 정도의 역할을 해 한국 박물관과 미술관이 큰 도약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단숨에 마련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미술계 인사들은 이번 기증이 이뤄진 배경에는 이 회장이 일찌감치 기증을 염두에 두고 걸출한 미술품들을 수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기도 한다.
이 회장은 과거 일본 오쿠라호텔의 뒷마당에 있던 조선 왕조 왕세자의 공부방인 자선당의 기단을 구입해 정부에 기증하기도 했다.
1997년 펴낸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동아일보사)에서 국립박물관을 관람한 경험을 전하며
“상당한 양의 빛나는 우리 문화재가 아직도 국내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실정이다. 이것들을 어떻게든 모아서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천수관음보살도'다. 그는 "한국 미술사에서 불화가 매우 중요한데도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불화가 없어 늘 안타까웠다"며 "이제야 빈 자리가 메꿔지게 됐다. 국립박물관이 비로소 부끄러움을 면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이건희 컬렉션은 절대로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다"라며 "좋은 컬렉션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네 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4가지 요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화재와 미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냥 관심이 아니라 말그대로 지대한 관심이어야 한다.
둘째, 좋은 작품과 중요한 문화재를 알아보는 높은 안목이 있어야 한다.
셋째,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 바로 결정할 수 있는 결단력도 필요하다. 소장할 기회가 왔는데 우물쭈물하다가
놓치는 경우도 많다.
넷째, 그걸 확보할 수 있는 재정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안 교수는 "간송 컬렉션과 마찬가지로 이건희 회장은 그 네 가지 조건을 갖추고 수집했다"며 "절대로 돈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 소장가가 평생 들인 노력의 가치를 알지 못하면 이번에 우리 사회가 크게 배우고 갈 부분을 놓치고 마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번 기증에 대해 국가와 정부와 국민이 진심으로 고마워해야 하고 이에 대해 합당한 예우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가 생각하는 합당한 예우란 컬렉션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국민이 알게끔 전시를 잘 하는 일이다. 도록 역시 최대한 성의 있게, 명품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안 교수는 "이번 기증을 통해 온 국민이 문화를 즐기고 누리는 것을 넘어서 문화에 대한 인식을 끌어올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서 "정부와 각 미술관이 그 노력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 우리 모두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중앙일보] "돈 있음 된다? 이 의지는 광기" 이건희 컬렉션에 놀란 미술계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 소장품 특별전』
고미술 전문가들이 손꼽는 미술사 명품들로 <인왕제색도>(국보)를 필두로 삼국시대 한반도 금동불의 대표작중 하나로 꼽히는 <일광삼존상>(국보), 글씨와 그림이 빼어난 고려 사경(寫經)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국보), 현존 유일의 <천수관음보살도>(보물), 거장 단원 김홍도(1757~1806?)가 말년에 그린 <추성부도>(보물) 등이 나왔다. 이건희 컬렉션의 전통문화유산들은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우리나라 전 시기와 전 분야를 포괄한다.
<인왕제색도>는 기증 작품 중에서 단연 독보적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1751년 장맛비가 지나간 뒤 갠 하늘 아래 청초하면서도 장중한 자태를 드러낸 인왕산의 전모를 당시 76살의 노대가 정선이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필력으로 담은 역작이다.
<인왕제색도>에 나온 치마바위, 범바위, 수성동계곡 등 인왕산 세부 명소와 비가 갠 인왕산 풍경을 담은 영상
‘인왕산을 거닐다’를 98인치 대형 화면으로 곁들여 더욱 입체적으로 이 걸작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게 해놓았다.
그림 못지않게 주목해볼 만한 것이 고고학 유물들이다. 청동기시대 토기로 산화철의 붉은 광택이 독특한 미감을 안겨주는 ‘붉은 간토기’, 초기철기시대 청동기로 당시 권력을 상징하는 ‘청동 방울’(국보), 삼국시대 배 모양을 추측할 수 있는 ‘배 모양 토기’ 등이 나왔다.
삼국시대 조각의 유려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보살상’(보물), 삼국시대 뛰어난 금세공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쌍용무늬 칼 손잡이 장식’(보물), 넉넉한 기형과 문양이 어울린 18세기 걸작 ‘백자 청화 산수무늬 병’(보물)은 당대 최고의 신소재 기술과 기술혁신, 디자인 미학을 보여주는 명품이라고 박물관 쪽은 소개했다.
대부분 국외에 있어 실물을 볼 수 없었던 고려불화 2점을 볼 수 있는 점도 이 전시의 묘미다. 고려불화 특유의 섬세한 아름다움이 옷의 정교한 문양의 매무새 등으로 표현된 <천수관음보살도>와 <수월관음도>다.
박물관 쪽은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고려불화 세부를 감상할 수 있도록 적외선과 X선 촬영 사진을 터치스크린 영상으로 함께 내놓는다.
먹으로 그린 밑그림을 볼 수 있는 적외선 사진을 통해 <천수관음보살도>에서는 보살의 여러 손 모양, 손바닥과 광배에 그려진 눈, 손에 들고 있는 여러 물건을 확인할 수 있다. X선 사진으로는 두 불화의 채색 기법과 안료의 실체도 감상이 가능하다.
또,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의 노력과 결실을 보여주는 <석보상절 권11><월인석보권11·12·17·18>(이상 보물) 등의 귀중한 한글 전적들도 나왔다.
15세기 우리말과 훈민정음 표기법, 세종과 세조, 일반 관료들의 설명글의 글자 크기와 위치를 다르게 차등화했던 당대 한글과 한자 서체 편집 디자인 양상 등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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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립중앙박물관이 고(故) 이건희 회장 소장품 중 문화재 9797건 2만1600여 점을 기증받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8일 고 이건희 회장 유족 측이 이 회장 소장품 1만1023건 약 2만30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받는 기증품 중에는 겸재 정선(1676~1759)의 '정선필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국보 제216호), 현존하는 고려 유일의 '고려천수관음보살도(千手觀音菩薩圖);(보물 제2015호), 단원 김홍도(1757~1806?)의 마지막 그림 '김홍도필 추성부도(秋聲賦圖)'(보물 제1393호) 등 우리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 등 국가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 포함됐다.
이 외에도 통일신라 인화문토기,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 도자류와 서화, 전적, 불교미술, 금속공예, 석조물 등 한국 고고·미술사를 망라했다.
발굴 매장문화재가 대부분이었던 박물관은 우리 역사의 전 시대를 망라한 미술, 역사, 공예 등 다양한 문화재들을 골고루 기증받아 고고·미술사·역사 분야 전반에 걸쳐 전시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통칭 이건희 컬렉션에는 고 이병철(李秉喆, 1910~1987) 회장의 소장품도 대거 포함되어 있다.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던 정선 필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가 국보 제216호로 지정된 것은 1984년 8월 6일이었고, 보물 제780호 [금동보살입상], 보물 제776호 [환두대도]도 같은 날짜에 지정 고시되었다.
국보 제235호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은 1986년 11월 29일에 지정 고시되었다. [월인석보권12]가 보물 제935호로 지정된 것은 1987년 12월 26일이었다.
이보다 먼저 호암미술관이 개관할 즈음에 이병철 소장의 국보 12건, 보물 9건 등 1167점이 삼성문화재단에 기증되어 호암미술관 소장품이 되었다. 하지만 소장품의 유형이나 시대가 고르지 않은 점 등을 수정하고 보완하기 위하여 호암미술관 개관을 계기로 집중적으로 컬렉션을 확장했다.
이병철 회장은 어떻게 컬렉션을 시작하게 됐을까? 호암미술관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고고학자 이종선에게 들려준 작품 수장 과정은 이렇다.
“젊은 나이에 대구에서 뛰어난 상재를 발휘해 삼성상회(지금의 삼성물산)를 설립해 거부(巨富)로의 첫발을 딛게 되었다. 초기에는 사업 사이사이에 자연스럽게 대구 사람들과 미술품을 주고받으며 수집을 이어나갔다.
향리의 서예인이나 대구 출신 화가 서동진의 작품을 한두 점씩 모아 나가며, 차츰 그 분야와 수집 양을 다른 쪽으로 넓혀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살아 있는 서예인의 작품에 머물러 있었지만, 재미가 붙어 옛날 고서화 쪽으로, 또 도자기 골동품 쪽으로, 다시 현대미술품으로까지 관심이 바뀌면서 그 대상이 크게 확대되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재미도 있고 집중력이 발동해 규모와 수준을 대폭 늘려나가게 되었다.”
이병철의 컬렉션은 고고학적인 유물에서부터 동시대 김은호(金殷鎬, 1892~1979)와 문학진(文學晉, 1924~
2019)과 가까이 지내면서 문학진의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호국상]을 비롯한 여러 작품과 김은호의 대표작들이 애장됐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김은호 작품 중에는 한 폭의 크기가 59.5×307㎝나 되는, 두 점이 한 세트인 [화조대작](1973년)을 비롯한 채색화들이 있다. 그는 김은호의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가는 내용을 그린 [삼고초려도(三顧草廬圖)]를 제일 훌륭한 작품’이라고 했다는데, 이는 ‘인재를 찾는’ 기업인의 특성상 그러했을 것이다.
▣회화(繪畫)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인왕제색도]는 이건희의 의미 있는 컬렉션 1호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림 속 작은 집은 자신을 알아주던 친구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의 집인데 그가 병에 들어서 위독해지자 그의 쾌유를 비는 의미에서 그렸다고 해석되는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는 이전 시대의 그림에서는 보지 못하였던 ‘변화하는 대기의 순간적 포착’을 볼 수 있다. 비 온 후의 습기에 더욱 또렷해진 자연경관과 물먹은 바위의 장쾌함은 이 그림을 매우 근대적인 것으로 보이게 한다.
겸재가 76세에 그린 ‘인왕제색도’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겸재의 최고 걸작일 뿐만 아니라 한국 회화사에서 진경산수의 최고봉에 있는 작품”이라며 “이 한 점의 가치만 해도 돈으로 따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귀한 작품을 유족이 내놓았다는 것은 이번 기증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빈틈을 메우는 데 기여하겠다는 강력한 뜻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겸재가 1751년에 인왕산을 바라보며 장맛비가 내린 뒤 맑게 갠 뒤의 풍경을 그린 것”이라며 “바위산이 많은 인왕산의 절경이 겸재의 사실적 기법으로 탁월하게 묘사돼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기증된 작품은 1946년 박물관 개관 이래 전체 기증품 5만여 점의 절반(43%) 가까운 규모.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로써 총 43만여 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게 됐다.
조선 후기 화가 정선이 비에 젖은 인왕산을 그린 진경산수화로 금강전도와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중국의 그림을 모방하는 것이 추세였던 당대의 산수화와 달리 조선 고유의 풍경과 화법을 잘 나타낸 걸작으로 평가된다.
퇴락한 사대부 집안 출신인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은 평생을 인왕산에 살며 당대 실세인 노론과 교유하며 집을 짓고 사대부처럼 살았다.
1958년에 국회의원에 출마하느라 돈이 필요해 저당 잡혔던 서예가 손재형(孫在馨, 1903~1981)의 소장품 김홍도 필 [군선도병풍](국보 제139호)과 함께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 2점은 호암미술관 소장이 되었다.
“삼성가 고미술 컬렉션의 아이콘이죠.”
겸재 정선(1676∼1759)이 말년에 그린 명품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국보 제216호)를 두고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렇게 평가했다.
조선 후기 화가 정선은 이전까지 산을 그리더라도 관념 속 중국의 산을 그리던 관행에서 벗어나 우리 산을 직접 눈으로 관찰해 그리면서도 심중을 담는 진경산수를 열었다. 인왕제색도는 진경산수를 완성한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제목에 한자로 ‘비 갤 제’(霽)를 쓰는 이 그림은 비가 퍼부은 뒤 날이 갠 인왕산 자락의 풍경을 그렸다. 붓으로 북북 그어 내린 우람한 암석, 빗물을 머금은 수림(樹林)의 먹색, 산허리를 휘감고 피어오르는 안개, 폭우로 생겨난 폭포의 세찬 물줄기, 솔숲 속 기와집 등에서 정선 특유의 힘찬 필치가 드러난다.
그림에는 화가였던 정선과 시인이었던 사천 이병연(1671∼1751)의 우정이 담겨있다. 인왕산 밑에서 태어난 둘은 인왕산 계곡서 물장구치던 죽마고우였다. 각각 시와 그림으로 일가를 이루며 평생을 교유했다.
그 우정의 비밀을 푼 이는 재야 미술학자였던 고(故) 오주석이다. 그는 이 그림에 감도는 비장감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러다 겸재가 그림을 그린 날짜에 시선이 갔다. ‘신미 윤월 하완’(辛未閏月下浣). 1751년 윤오월 하순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의 날씨를 승정원일기에서 찾아봤다가 뜻밖의 수확을 올렸다.
‘윤오월 초하루부터 18일까지 2, 3일 간격으로 계속 비가 오락가락했다. 그러다 19일부터 25일까지 지루한 장맛비가 계속됐다. 25일 오후가 돼서 비가 완전히 개었다.’
긴 장마 끝에 날씨가 활짝 갠 날 오후에 인왕제색도를 그렸음을 밝혀낸 것이다. 평소 인왕산에 없던 폭포가 세 군데 생겨난 것도 그런 연유였다. 그림 속 기와집은 이병연이 살던 집으로 추정됐다.
75세의 겸재가 당시 사경을 헤매던 친구 사천이 장맛비가 개듯 쾌유하기를 비는 마음에서 이 그림을 그리며 친구 집을 집어넣은 것이다. 겸재의 바람과 달리 사천은 4일 후인 29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래서 인왕제색도에는 인물이 없는데도 사람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이 그림은 삼성 창업자인 이병철(1910∼1987) 선대 회장이 1971년 이후 구입했고 나중에 이건희 회장에 물려준 것으로 전해진다. 미술계 관계자는 “71년 덕수궁에서 열린 호암컬렉션 전시에는 포함되지 않았다”며 “한때는 소전 손재형의 소장품이었다가 다른 소장자를 거쳐 삼성가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손재형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등 고서화 걸작을 수장했던 서예가이자 수퍼 컬렉터였는데, 정치에 뛰어들며 소장품을 처분했던 사연으로 유명하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국보 제217호,
뽀얀 우윳빛이 도는 흰색 바탕에 푸른색으로 깔끔한 선비 취향의 대나무를 두 군데 그려넣었다. 미술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국보 30점과 보물 82점을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선 전 호암미술관 부관장의 저서 '리 컬렉션'에 따르면 이 회장은 1982년 호암미술관 개관 전에 이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와 '금강전도'(국보 제217호)를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었다.
76세 겸재가 인왕산 실제 경치를 보고 그린 '인왕제색도'는 조선 화단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중국의 관념산수화를 따르지 않고 비 온 뒤 안개가 낀 인왕산의 거친 암봉과 소나무숲, 기와집의 실경을 담은 진경산수화의 대표작이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부감법으로 금강산 1만2000봉을 그린 '금강전도'는 천지조화의 이상경을 담은 걸작으로 꼽힌다.
기증 목록에 포함된 작품 중 가장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기증품은 겸재 정선의 말년작인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다. 가로 138.2cm, 세로 79.2cm 크기의 대작으로 정선의 400여 점 유작 가운데 가장 크다. 국보 217호인 '금강전도'와 함께 조선후기에 꽃피운 진경문화를 상징하는 걸작이다.
고려불화인 '고려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와 '수월관음도'(비지정문화재)의 존재도 두드러진다. 고려불화는 예술성, 희귀성면에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문화재다.
국립박물관에 기증하는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 1805년, 보물 1393호. 55.8x214.7㎝ ,
화면의 오른쪽에 메마른 가을 산이 그려져 있다. 능선 위를 수평 방향의 갈필로 그려 음영을 준 탓에 시간이 한밤중임을 알 수 있다. 왼쪽에는 보름달이 환한데 천지사방이 고요해 적막감이 돈다.
가운데 중국식 초옥(草屋) 둥근 창 안에서 글 읽는 선비가 밖을 내다보고 있다. 동자가 왼쪽을 가리키며 뭔가를 아뢰는 순간을 포착한 이 작품은 김홍도(1745∼1806?)가 죽기 전 61세에 생애 마지막으로 그렸다.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1007∼1072)가 52세에 지은 ‘추성부’(秋聲賦) 내용을 형상화해 ‘추성부도’(秋聲賦圖·보물 제1393호)라 부른다. 부(賦)는 일종의 산문시다. 구양수는 가을밤 독서하다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느낀 감흥을 동자와 대화 형식을 빌려 글을 지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 “별과 달이 밝게 빛나고 하늘엔 은하수가 걸려 있으며 사방에는 인적이 없으니 그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나고 있습니다.” “아 슬프도다. 이것은 가을의 소리구나.”
늙고 병든 김홍도는 이 시에 공감해 바로 이 대목을 스냅사진처럼 잡아냈다. 동자가 바람 소리 나는 쪽을 가리키고 집에서 기르는 학 두 마리도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목을 빼고 입을 벌리고 있다. 낙엽수들은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고 마당에는 떨어진 낙엽들이 드문드문 흩날린다.
김홍도는 화면 왼쪽에 ‘추성부’ 일부를 자필로 썼다. 끝부분에 ‘을축년동지후삼일 단구사’(乙丑年冬至後三日 丹邱寫·을축년 겨울 동지 지나 삼 일째 단구가 쓰다)라 적었다. 단구는 김홍도가 말년에 쓰던 호이며 을축년은 1805년이다.
김홍도는 이 무렵 건강이 나빠졌고 생활 형편도 좋지 않았다. ‘단원유묵첩’(檀園遺墨帖)의 1805년 11월 29일자 편지에 “못난 아우는 가을부터 위독한 지경을 여러 차례 겪고 생사 간에 오락가락하였으니 오랫동안 신음하고 괴로워하는 중에 한 해의 끝이 다가오매 온갖 근심을 마음에 느껴 스스로 가련해 한들 어쩔 수가 없다”고 썼다.
같은 해 12월 19일자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는 “너의 훈장 선생 댁에 갈 월사금을 구해 보내지 못하는 것이 한탄스럽다”고 했다.
김홍도는 ‘예원의 총수’로 불린 문인화가 강세황의 추천으로 화원이 됐다. 영조의 어진과 왕세자(정조)의 초상을 그렸고 후일 정조의 어진도 그리는 등 최고의 궁중 화원이 됐다. 경북 안동 안기찰방에 이어 충청도 연풍현감을 지내며 종6품까지 올랐다. 중인 출신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 직책이었다.
말년의 몰락은 1800년 정조가 죽은 뒤 정국이 일변하며 정조의 총애를 받던 인물들이 된서리를 맞은 탓으로 추정된다. 그런 상황에서 추성부에 쓰인 구양수의 슬픔을 수백년이 지난 뒤 김홍도가 공명했다. 노년의 비애, 죽음을 앞둔 심리를 추성(秋聲), 즉 가을바람 소리를 형상화한 시에 의탁한 것이다.
‘추성부도’(55.8×214.7㎝)는 연도가 확실한 점, 기량이 최고조였던 말년에 제작된 점, 무엇보다 가로 2m가 넘는 대작인 점 등에서 값을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라는 평가가 많다.
김홍도 작품으로 연도도 적혀 있지 않고 보물도 아니며 크기도 훨씬 작은 ‘공원춘효도’(36.5×70㎝)가 지난해 옥션에서 4억9000만원에 낙찰됐다. 고미술계 관계자는 “수백억원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출처 : 손영옥 국민일보 문화전문기자 :<명작 in 이건희 컬렉션> / 국민일보. 2021.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