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쪽 눈이 없잖아요. 태어날 때 의료 사고로 눈을 잃었다는 사실을 중학생 때 알았어요. 그땐 시간이 많이 흘러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도처에 있을 텐데 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이 싸워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를 묻자 김예원 님(41세)이 답했다. "공부도 잘했고요." 그가 장난스레 웃으며 덧붙였다.
그는 공익 변호사로 활동하며 '장애인권법센터'를 혼자 운영한다. 처음엔 법무법인에서 일했다. 회사가 크다 보니 그곳에 오는 사건들은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된 경우가 많았다. 사건이 시작될 때부터 개입하고 싶어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로 직장을 옮겼다. 다 좋았지만 서울에서 일어난 사건만 맡아야 했다.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의뢰인을 만나고 싶었다.
비영리 법률 사무소를 열기로 했다. 수입이 없을 수도 있다는 고민이 있었지만 남편의 한마디에 용기를 얻었다. "그게 옳은 방향이면 가야지."
그는 의뢰인을 직접 찾아간다. "몸이 불편한 분들이 대다수고 인터넷 사용이 익숙지 않은 분들이 많아 화상으로 만나거나 서류를 떼 달라고 하기가 어렵거든요. 찾아 뵙는 건 힘들지 않은데, 다만 그러느라 사건을 더 맡지 못하는 건 아쉬워요."
그는 모든 의뢰인을 기억한다. 꾸준히 연락하는 의뢰인도 있다. "아동 학대 피해자인데 강제로 정신 병원에 들어가 있었어요. 아이를 데리고 나와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왔죠. 그래서인지 저한테 자주 연락하고 사소한 것도 상의해요."
인권 강의를 하는 모습. 수임료를 받지 않는 대신 강연을 하고 책을 쓰며 활동비를 충당한다.
의뢰인을 만날 때마다 '해결사가 되진 말자' 하고 다짐한다는 그. 눈앞의 문제만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함께 고민하는 지원군이 되고 싶다고. 그래서 더 세심한 마음으로 의뢰인들을 들여다보고 길을 열어 주려 노력한다.
"의뢰인이 동물을 좋아하는 것 같으면 유기견 봉사 활동에 함께 참여해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면 피해자 모임 같은 곳에 슬쩍 데려가고요. 저는 옆에 있기만 해요. 그럼 이분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요.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이럴 때 살아 있다고 느끼는구나' 하면서요. 그러다 보면 이들을 돕는 사람들이 또 생겨나요. 제가 없어도 괜찮은 때가 오는 거죠. 그럴 때 참 보람을 느껴요"
변호사로 활동하며 세상에 완전히 착하거나 나쁜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이분법적으로 나눠 이를 이용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고.
"사람은 누구나 약한 부분이 있어요. 특정 상황에 처하면 그 부분이 확 드러나기도 하죠.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사회적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을 개인의 악행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경향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때면 가슴이 뭉클하다.
"처음에는 숨으려고 하고 자기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의뢰인이 많은데, 사건를 진행될수록 용기를 얻어요. '이렇게된 게 내 탓이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거죠."
그는 수임료와 후원을 일절 받지 않는다. 강의를 하거나 책을 쓰거나 연구 용역을 해서 활동비를 충당한다. 수임료 대신 마음을 전하는 의뢰인도 있다.
"한번은 어느 의뢰인이 고맙다며 깻잎 장아찌를 만들어 줬어요. 그게 너무 맛있어서 잊을 수가 없어요. 그분이 계시던 지역을 생각만 해도 그 깻잎장아찌가 떠오를 정도예요."
인권이 중요한 이유를 묻자, 그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모두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아이나 손자가 없어도 아동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철학에서다.
"아이들이 성장해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이 될 테고, 내가 그 정책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간단해요. 인권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그저 '내가 존중받는다는 건 뭘까?' '나답게 산다는 건 뭘까.' 생각해 보고 남도 그럴 수 있게 배려하는 게 바로 인권을 존중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직장에서 상사에게 어떤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쁠지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내가 그 위치에 있을 때 후배에게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인권이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살던 대로만 살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런 작은 실천들을 쌓아 가다 보면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변호사 일이 잘 맞는다는 그.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없었단다. 세 아이의 엄마인 그는 쉬는 날이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오디오북을 듣는다. "눈이 하나밖에 없어 아껴 써야 하거든요. 그래서 책을 보는 것보다 듣는 걸 좋아하나 봐요." 농담을 던진 그는 맑게 웃었다.
그에게 가족은 땅 같은 존재다.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닐 수는 없잖아요. 남편과 아이들은 제가 디딜 수 있는 든든한 땅이에요. 아이들을 처음 안았을 때가 생생해요. 분만 후 아이를 배에 올려 안고 '세상에 와 줘서 고마워!' 하고 말하며 토닥여 줬어요. 그러자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꼬물거리는 거예요. 그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걸 세 번이나 느낄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해요."
그는 급변하는 세상에 잘 적응하되 자신의 가치관을 잃지 않고 오래도록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잠깐이라고 생각하기에 더욱 그렇다.
"인생은 짧으니까 더 사랑하고 돌아보며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끔 그렇게 살아 보려고 해요."
글_이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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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고운 멘트
감사합니다 ~
비가 그친 뒤에는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
깊어가는 가을날 체감하며
좋은시간 보내세요
동트는아침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