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1939년 9월에 2차 대전이 일으키자마자 유럽 대륙을 순식간에 점령하였다. 승전의 여세를 몰아 독일은 1940년부터 영국 침공을 준비하였다. 영국은 프랑스 해안에서 바로 눈앞에 보일 정도로 상당히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동원하여 영국에 상륙하는 작전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영국의 남부 해안은 대부분 해안 절벽이기 때문에 직접 상륙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해안선을 돌파할 때 영국 공군이 출격한다면 상륙부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따라서 독일 공군의 사령관인 괴링 원수는 영국 침공에 앞서 공군력으로 영국을 굴복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하였다. 1940년 7월 10일부터 독일 공군은 일제히 영국에 대규모 공습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약 4개월 동안 벌어진 영국 본토 방공전(Battle of Britain)에서 절대적인 영국 공군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승리하였다.
당시 영국 공군은 공중전에서 2:1 이상의 격추 비율을 유지하면서 독일 공군의 전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독일 공군이 접근하는 방향과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였던 영국 공군은 부족한 전투기를 효과적으로 투입하였다. 영국 공군의 성공적인 작전을 이끌어낸 일등 공신은 바로 레이더(Radar)이다.
1930년대 말에 실용화된 레이더는 영국 해안에 설치되어 프랑스에서 이륙하는 항공기까지 탐지할 수 있었다. 독일 공군도 레이더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공습에 앞서 레이더 기지를 공격하였지만 완전히 무력화시키지는 못하였다.
이처럼 성공적인 방공 작전의 핵심은 다우딩 시스템(Dowding Systems)이라고 불리는 방공관제체계에 있었다. 영국 공군의 전투기사령관인 휴 다우딩(Hugh Dowding)의 이름을 붙인 다우딩 시스템은 비록 수작업이지만 현대적인 방공관제체계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레이더 기지보다는 실제로 지하에 숨겨진 방공관제체계가 방공 전투의 승패를 결정하였다. 영국 공군은 레이더와 더불어 대공감시초소를 설치하여 적기의 규모와 방향, 속도, 고도와 같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확하게 수집하였다. 지하에 설치된 방공지휘본부에서 지휘관은 각종 정보를 종합하여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고 매우 효율적으로 전투를 지휘하였다. 만약에 영국 공군에 이러한 방공관제체계가 없었다면 승리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냉전의 시작과 전략폭격기의 가치
2차 대전을 계기로 유일한 핵보유국이 된 미국의 전략적인 우위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필사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였던 소련은 1949년 8월 29일에 첫 번째 핵실험에 성공하였다. 이어서 소련은 1951년 10월 18일에 Tu-4A 폭격기에서 42kt급 핵폭탄을 투하하는 핵실험에 성공하였다. 소련은 1945년에 일본 폭격 도중에 피탄 되어 사할린에 비상착륙한 미 육군 항공대 소속 B-29 폭격기의 기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소련 정부는 기술자를 불러 모아 전략폭격기를 개발하도록 하였다. 투폴레프(Tupolev) 설계국의 주도로 B-29 폭격기를 그대로 모방하여 개발한 Tu-4 폭격기는 B-29 대비 비행 성능이 다소 부족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 공군 최초의 4발 장거리 폭격기라는 존재로 인정을 받았고 1952년까지 무려 850대가 생산되었다.
1947년에 독립한 미 공군은 전략공군을 중심으로 절대적으로 앞서는 항공력을 보유하였다. 그러나 1951년에 소련 공군이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미 공군은 전략폭격기보다 미국 본토를 방어할 요격전투기(Interceptor)가 시급하였다. 1950년대 초반에는 아직 지대공 미사일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방공 전투는 요격전투기가 중심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소련 공군이 공중 급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미 공군은 최단거리로 폭격기가 접근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당시 미 공군의 제트 전투기는 대부분 1인승 주간 전투기이었고 야간 공습에 대비한 요격전투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야간에 대형 폭격기를 정확하게 요격하려면 레이더가 탑재된 전천후 요격전투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공군이 보유한 야간전투기는 P-61 블랙 위도우(Black Widow)처럼 구형 기종이 전부였다. P-61 야간전투기도 우수한 기종이었지만 왕복엔진을 탑재하였기 때문에 고공을 비행하는 적 폭격기를 추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북미 대륙의 방공 작전
미 공군은 1951년에 방공사령부(Air Defense Command)를 창설하고 본격적인 본토 방공 작전을 시작하였다. 방공사령부는 본토 방공 작전에 적어도 1,000대 이상의 요격전투기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폭이 넓고 직사각형에 가까운 북미 대륙을 빈틈없이 방어하려면 실제로 많은 요격전투기가 필요하다. 방공사령부는 전체 방공 전력의 절반을 북쪽에 배치하고 나머지 전력을 동쪽, 서쪽, 남쪽에 빈틈이 없게 배치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소련 공군의 폭격기가 언제 어느 방향에서 침공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많은 요격전투기를 모든 방면에 배치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항공기는 비행 도중에 필요에 따라 조종사가 판단하여 임의로 경로를 변경할 수 있다. 따라서 적의 폭격기의 불규칙한 비행 경로에 대응하여 아군의 요격전투기를 목표로 유도하는 방공 관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2차 대전 당시 영국 본토 방공전의 교훈을 잘 알고 있었던 미 공군의 지휘부는 당시 보유한 첨단 기술을 모두 동원하였다. 그러나 제트 전투기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적 폭격기를 요격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이 큰 문제였다. 더구나 유사시 수백 대의 적 폭격기가 내습한다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시간 부족은 심각한 문제였다.
적기를 탐지하고 경로를 분석하고 아군기를 출격시켜 정확한 요격 지점으로 유도하는 일련의 과정이 당시에는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되었다. 더구나 수많은 레이더 기지에서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경우 관제사가 수작업으로 모든 정보를 분석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아무리 빨리 처리하여도 수백 대의 적기가 여러 방향으로 접근한다면 허점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미 공군은 1950년대 당시에 최첨단 기술이었던 컴퓨터 기술을 동원하였다. 비록 아날로그 방식이지만 단순 반복적인 계산을 컴퓨터가 처리하면 관제사는 본래의 임무인 상황의 판단과 통제에 집중할 수 있다.
SAGE 방공관제체계의 등장
이러한 배경으로 미 공군이 개발한 방공관제체계가 바로 SAGE(Semi-Automatic Ground Environment)이다. 1940년대 말부터 개발이 시작된 SAGE 방공관제체계는 적기를 조기에 발견하고 추적, 요격하기 위한 모든 처리 과정을 자동화한 컴퓨터 체계이다. SAGE 방공관제체계는 AN/FSQ-7 컴퓨터를 중심으로 레이더, 요격전투기가 하나로 연결되며 상호 유기적인 협동 작전이 가능하다. 다만 1950년대 기술의 아날로그 컴퓨터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완전한 자동이 아닌 반자동(Semi-Automatic) 방식이었다.
그러나 현대전에 필수적인 통합형 지휘통제체계(C4I), 데이터링크(Datalink), 네트워크 구성, 분산처리, 다중접속, 광역통신,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 기술이 이때 시도되었다는 점은 놀랍다. 전체적인 체계의 구성은 MIT 링컨 연구소에서 설계하였고, 컴퓨터는 RCA(나중에 IBM으로 변경)에서 개발을 담당하였다. 인공지능의 개념을 도입한 SAGE 컴퓨터는 MIT 공대 링컨 연구소의 제이 포레스터(Jay Forrester) 및 조지 밸리(George Valley) 교수가 주도하여 설계하였다.
지금까지도 단일 컴퓨터로는 최대급인 AN/FSQ-7 정보처리체계는 55,000개의 진공관을 사용하였으며 무게가 무려 275톤이다. 그렇지만 AN/FSQ-7 정보처리체계는 수명이 짧은 진공관을 사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동률이 99%에 달하는 우수한 컴퓨터였다. SAGE 방공관제체계는 다수의 레이더 기지에서 탐지한 정보를 AN/FSQ-7 정보처리체계에서 수신하여 처리하며, 방공관제사는 콘솔(console) 화면으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하나의 AN/FSQ-7 정보처리체계는 150명의 방공관제사가 동시에 접속할 정도로 성능이 높았다.
유사시를 대비하여 콘크리트 구조물로 방호된 SAGE 방공관제소는 1957년부터 건설되었다. 1963년까지 모두 3개의 방공지휘통제소와 22개의 지역 방공관제소가 완공되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SAGE 방공관제체계는 정보를 융합하여 상황을 판단한다는 지휘통제의 개념에 충실하면서도 중앙 집중적인 소련의 방공 작전 개념과 다르게 구역별로 방공 작전의 권한을 분산, 위임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 공군이 SAGE 방공관제체계에 투입한 예산은 1964년 기준으로 120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많은 예산이 투입되었다. 미 공군은 1979년까지 SAGE 방공관제체계를 사용하였으며, 훗날 민간 항공교통관제(ATC) 개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F-86D 요격전투기
소련 공군이 Tu-4 장거리 전략폭격기를 실전에 배치하자 다급해진 미 공군은 항공기 업체에 전천후 요격전투기의 개발을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록히드(Lockheed)는 F-94 스타파이어(Starfire), 노스 아메리칸(North American)은 F-95A 요격전투기(나중에 F-86D로 변경)를 개발하였다. 그러나 급하게 개발된 아음속 요격전투기는 임시적인 대책에 불과하였고 미 공군은 궁극적으로 초음속 요격전투기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T-33 고등훈련기를 개조하여 레이더를 탑재한 F-94 스타파이어는 높은 고도에서 방공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비행 성능과 무장이 부족하였다. 본토의 방공을 담당한 미 공군의 방공사령부(ADC)는 F-94 요격전투기를 대체할 기종으로 F-86D 세이버 독(Sabre Dog)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결정에는 F-86D 요격전투기가 1인승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하였다.
사실 야간 비행을 포함한 전천후 요격 임무를 수행한다면 레이더를 작동하기 위해 2인승 요격전투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냉전이 깊어지면서 미 공군은 전략적인 우위를 위해 장거리 전략폭격기의 크게 증강하고 있었다. 그 결과 승무원이 크게 부족하였고 임시방편으로 예비역까지 재소집하여 충당하는 형편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할 때 2인승 요격전투기를 한꺼번에 1,000대 이상 실전에 배치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었다. 더구나 1950년대 초반에 미 공군은 6.25전쟁으로 인해 조종사를 포함한 인원과 물자가 넉넉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사정으로 1950년대 중반 미국 본토에 배치된 요격전투기 중에서 F-86D 기종이 98%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실 야간에 출격하여 조종사 혼자서 비행하면서 수동식 레이더까지 조작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렇지만 이를 감수할 정도로 1950년대 미 공군의 작전 환경은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
F86D의 특징
기체
미 공군이 처음으로 실전에 배치한 후퇴익 전투기인 F-86A 세이버(Sabre) 전투기는 공중 기동 성능이 우수한 기체로 유명하다. F-86D 요격전투기는 노스 아메리칸(North American)에서 자체적으로 F-86A 전투기의 기수에 레이더를 추가하여 개발한 기종이다. 원래는 2인승이었으나 후방석이 추가되면 비행 성능이 크게 저하되고 연료 탑재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개발 도중에 1인승으로 변경되었다.
외형상으로는 레이더가 내장된 레이돔(radome)만 달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부분이 변경되었으며 F-86A 전투기와 F-86D 요격전투기의 기술적인 공통점은 25%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F-86D 요격전투기는 엔진이 변경되면서 동체가 불룩해지고 길이도 연장되었다. 한편 기체의 중량이 증가하면서 착륙 속도가 크게 증가하자 이에 대한 대책으로 드래그슈트(drag chute)가 추가되었다.
엔진
요격전투기가 긴급 이륙한 다음 목표 고도까지 최단 시간에 상승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F-86D 요격전투기는 애프터버너(afterburner)가 추가된 J47-GE-17B 터보제트 엔진을 탑재한다. 엔진 추력이 향상되면서 F-86D 요격전투기의 최대 속도는 거의 음속에 가까운 속도를 낼 수 있게 되었다. F-86D 요격전투기의 탑재 엔진은 나중에 J47-GE-33 엔진으로 개량되었다.
레이더
주야를 불문하고 날씨와 관계없이 적기를 요격하려면 레이더가 필수적이다. 1950년대 당시의 요격용 레이더는 진공관을 사용하는 아날로그 방식이었다. 따라서 구조도 복잡하고 자동화되어 있지 않아 실제로 사용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편이다.
F-86D 요격전투기에 탑재된 휴즈(Hughes) E-4 사격통제체계는 AN/APG-36 레이더(나중에 AN/APG-37 레이더로 개량)가 탐지한 목표물에 대해 공대공 로켓탄 사격에 필요한 제원을 산출하는 역할을 한다. 초기에 배치된 F-86D 요격전투기의 경우 출격한 다음 방공관제소의 통제사가 음성 통신으로 적기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개량형인 F-86L 요격전투기는 SAGE 방공관제체계와 연동되는 AN/ARR-39 데이터 링크(Datalink)가 추가되어 효과적인 방공 작전이 가능하다. F-86L 요격전투기는 미 공군의 SAGE 방공관제체계와 연동한 최초의 전투기로 유명하다.
무장
F-86D 요격전투기는 적 폭격기를 격파하기 위해 화력이 부족한 12.7 mm 기관총을 대신하여 공대공 로켓탄을 탑재한다. 탑재하는 탄약은 무유도 방식의 Mk.4 FFAR(Folding-Fin Aerial Rocket) 마이티 마우스(Mighty Mouse) 2.75인치(70 mm) 공대공 로켓탄이다. F-86D 요격전투기 동체 아래의 로켓 발사기에는 모두 24발이 장전된다. 로켓탄 발사기는 평소 비행할 때는 내부에 격납되어 있으며 발사할 때만 외부로 펼쳐진다. 로켓탄 자체는 무유도 방식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명중률이 낮은 편이다.
나중에 일부 기체는 로켓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AIM-9 사이드와인더(Sidewinder) 공대공 미사일을 추가로 탑재하였다. 한편, NATO 공군에 배치된 F-86K 요격전투기는 24연장 공대공 로켓탄 발사기 대신에 M24A1 20 mm 기관포 4문을 탑재한다.
당초 미 공군의 방공사령부는 1950년대 중반까지만 F-86D 요격전투기를 임시로 운용하다가 신형 초음속 요격전투기로 교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초음속 요격전투기의 개발이 지연되고 1960년대에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자 투입할 자원이 부족해졌다. 이러한 사정으로 F-106 요격전투기의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부족한 수량을 채우기 위해 F-86D 요격전투기가 당분간 필요하였다. 이에 따라 F-86D 요격전투기는 1965년까지 미 공군에서 현역을 지켰고 우방국에 공여된 기체는 1970년대 초반까지 활약하였다. F-86D 요격전투기는 모두 2,504대가 생산되어 미 공군의 방공사령부에 순차적으로 배치되었다.
F-86D 요격전투기는 미 공군 이외에도 덴마크(F-86D), 프랑스(F-86K), 독일(F-86K), 그리스(F-86D), 온두라스, 이탈리아(F-86K), 일본, 네덜란드(F-86K), 노르웨이(F-86K), 온두라스(F-86K), 필리핀(F-86D), 대만(F-86D), 태국(F-86L), 터키(F-86D/K), 베네수엘라(F-86K), 유고슬라비아(F-86D)에 군사 원조로 공급되었다. 우리나라 공군도 1960년부터 45대의 F-86D 요격전투기를 도입하였다. 도입할 당시 레이더와 사격통제장치를 갖춘 유일한 기종이었던 F-86D 요격전투기는 전천후 요격 임무와 야간 방공 임무에 투입되었다. 방공 작전에서 활약하였던 F-86D 요격전투기는 F-4D 전투기가 도입되면서 임무를 교대하고 1972년 3월에 퇴역하였다.
파생형
F-86K 미국 본토의 전략적인 방공 임무를 담당하는 F-86D 요격전투기는 1950년대 당시에 최신예 장비였었던 E-4 사격통제체계를 탑재하였다. 때문에 미 공군은 첨단 기술의 노출을 우려하여 NATO 공군에 공급할 F-86K 요격전투기를 별도로 개발하였다. F-86K 요격전투기는 기존의 AN/APG-37 레이더는 유지하되 E-4 사격통제체계를 MG-4 사격통제체계로 변경하였다. 또한 탑재 무장도 70 mm 공대공 로켓탄을 대신하여 20 mm 기관포 4문(탄약 각 132발)으로 변경되었다. F-86K 전투기는 이탈리아 피아트(FIAT)에서 면허 생산되어 유럽 각국에 공급되었다.
F-86L 서둘러 개발된 F-86D 요격전투기는 실전에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특히 출격한 다음 목표물에 대한 정보를 방공통제소에서 무선으로 받았기 때문에 효과적인 방공 작전이 어려웠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고자 미 공군은 방공 작전을 자동화한 SAGE 방공관제체계를 개발하였다. F-86L 요격전투기는 SAGE 체계와 데이터 링크로 연동하는데 성공한 최초의 기종이다. F-86L 요격전투기는 적기의 위치 정보가 화면에 표시되기 때문에 작전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F-86L 요격전투기는 기존의 F-86D 기체에서 981대가 개조되었다.
제원(F-86D)
형식 : 단발 단좌 전천후 요격전투기 전폭 : 11.30m 전장 : 12.3m 전고 : 4.57m 주익 면적 : 27.76m² 자체 중량 : 6,132kg 최대 이륙 중량 : 9,060kg 엔진 : GE J47-GE-17B 또는 J47-GE-33 터보제트 엔진 (2,268 kg, A/B 3,470 kg) × 1 최대 속도 : 1150km/h 순항 속도 : 885km/h 항속 거리 : 1,482km 상승 고도 : 50,000ft 무장 : 70 mm 공대공 로켓탄 × 24 승무원 : 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