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여행 중에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정체성을 찾게되는 두 여자의 이야기다.
남편의 억압적인 태도에 길들여진 델마.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루이스는 그런 델마와 여행을 계획한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단지 기분전환 삼아 나선 여행 이었다. 하지만 델마를 폭행하려던 한 남자를 루이스가 죽이게 되고 두 여자의 목적지는 별장이 아닌 멕시코로 변경된다. 그리고 여행이 아닌 도피가 되고 만다.
새로운 삶을 위해 준비한 자금을 델마가 거리에서 만난 남자 제이드에게 털리자 루이스는 자포자기한다. 그런 루이스를 위해 델마는 강도행각을 펼친다. 점점 꼬이는 상황들. 곧게 뻗은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는 두 여자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길 위에 들어서고야 만다. 기분전환만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니 그런 여행 이여야만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벌어지면서 델마와 루이스는 전혀 다른 길 위를 달려가게 된다.
영화 안에서의 길(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난 낯선 시간(사건)과 공간을 제시함으로써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또 동시에 변화와 수용이라는 과정을 겪게 함으로써 두 여자가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초코바를 먹는 델마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루이스의 담배를 입에 물고 루이스를 흉내내는 델마의 모습은 어린아이가 엄마구두 또는 화장품에 갖는 동경과 맞닿아 있다. 그녀는 그렇게 미성숙한 자신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이다. 델마가 진정 찾고자 했던 그리고 찾았던 정체성은 바로 '어른' 이었다. 나이나 신체, 지적수준 등의 일반적 기준이 되는 '어른'이 아니라 상황에 의해 던져진 문제를 풀어가고 수용함으로써 변화하게 되는 성숙을 전제한 '어른'을 말하는 것이다. "한번도 깨어있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어. 뭔가 달라. 너도 느끼니."라는 그녀의 대사에서 그녀는 정체성을 찾은 듯 싶다.
루이스는 강간당했던 과거의 기억에서 풀려나지 못한 채 아픈 상처를 안고 산다. 벗어나고 싶지만 문신처럼 새겨진 기억은 결국 델마를 강간하려던 한 남자에게 총알을 발사한다. 지나간, 하지만 잊을 수 없던 기억은 같은 상황이 맞물릴 때마다 상처의 그녀를 불러들이고 그녀는 그것이 버겁기만 하다. 루이스가 진정 찾고자 했던 그리고 찾았던 정체성은 바로 '치유' 였다. 자꾸만 덧나는 상처는 그녀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곤 했다. 수갑을 채운 것처럼 부자유스럽고 혼란스러운 상처에서의 해방감. 그녀의 정체성은 이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듯 싶다.
-다시 달릴 준비를 하다-
삶을 돌아보는 계기는 상황에 따라 계절에 따라 제 각각이다. 단지 계절의 영향을 받아 시간의 길을 되짚어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상황의 변화를 통해 되짚게 되는 이들도 있다. 후자의 경우 상황의 변화는 낯설거나 또는 극단적이다. 하지만 던져지는 질문은 같다. 스스로의 정체성.
이쯤 한 두 가지씩은 돌아보게 된다. 인간관계, 진로, 가족, 등등 그러다 보면 삶이 갑자기 시들해 지기도 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기도 한다. 가방하나 둘러매고 산으로 바다로 훌쩍 떠나고 싶지만 잡혀있는 일상이 있기에 그러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영화한편을 통해 잠시 떠나보는 것은 어떨는지.
그러다 보면 엉켜있는 생각들이 제 스스로 매듭을 풀고 답을 찾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