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났던 사람이나 가보았던 곳이 TV 같은 곳에 나오면 친근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만남을 통해서 그 사람이나 그곳에 대
해서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다 아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방문하는 나라마다 그 나라의 여러 정보를 다 아
는 것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의 기본적인 앎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내가 방문했던 그 나라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항상 하게 된
다.
그래서 이번에 다녀온 네팔에 대해서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을 정리해 보았다.
네팔의 국경은 남쪽은 대부분이 인도와 접경을 이루고 북쪽은 중국의 티베트자치구와 국경을 이루며 수도 카트만두의 위도가 북
위 27도 정도로 산악지대를 제외하면 아열대 기후이이다.
네팔의 위치와 우리나라의 위치 6시간 15분 늦으며 우리나라와는 4,200KM정도 떨어져 있으며 카트만두의 위도는 북위 27도 정
도이다.... 참고로 제주도의 위도가 북위 33도 정도이다.
히말라야의 8천미터가 넘는 산...11개가 네팔에 있으며 카트만두에서 뜨는 비행기로 네팔의 산들은 대부분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세계 유일의 4각형이 아닌 국기
네팔의 국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각형이 아닌 삼각형 두 개를 위아래로 포개놓은 형태로 테두리 선은 진한 파란선이며, 빨간
바탕의 하얀 초승달과 태양이 있는데 파랑은 세계를, 빨강은 행운을 뜻하며 광선이 뻗어나가는 달과 태양이 함께 잘 지내는 것을
염원한다고 한다.
각나라의 국기의 의미를 알아보는 것도 재미 있는 일 중의 하나이다.
2008년 7월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바뀐 네팔(Nepal)은 히말라야산맥 중앙부의 남쪽에 위치하며 면적은 14만7,181㎢, 2021년 공식
인구 규모는 29,164,578명이라고 하며 국민 총생산은 국민총생산은 39,028백만달러로 세계 제 98위이고 국민소득은 1,372 달러
로 163위이다.
일단 네팔은 지리적 요건 때문에 세계에서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운 환경을 가지고 있는 불행한 나라이다.
네팔의 국화...랄리구라스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우리나라에서는 만병초라고 부른다.
인종은 인도와 같은 아리안족이 80%, 티베트 몽고족이 17%이며, 언어는 네팔어가 공용어이며 국화는 우리나라에서 만병초라고
불리우는 릴리구라스이며(4월에 피며 우리나라 진달래처럼 온 산이 붉게 물드는데 꽃이 너무 곱다)
네팔은 석가가 태어난 나라이지만 이나라의 종교는 힌두교가 80.6%, 불교가 10.7%, 기타 4.2%(이슬람) 등이다.
카트만두
네팔의 수도는 카트만두이며 인구는 90만 명(2012)이고 해발 1300미터에 위치해 있지만 분지로 둘러싸여 있다.
카트만두의 1596년에 한 그루의 나무로 사원을 지었다고 카트만두가 되었다고 하는데 나무를 뜻하는 카트 와 사원을 뜻하는
만디르 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포카라의 사랑코트에서 보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제2의 도시는 포카라로 포카라가 네팔어로 연못을 의미하는 말로 이 곳에 호수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안나푸르나를
찾는 사람이 반드시 거쳐가는 도시이다.
인구의 95%가 농촌에 살고, 노동인구의 90%가 농업에 종사하며 다른 산업이 없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은 관광업에 종사한
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 나라도 해외에 있는 노동자들이 보내주는 송금이 국가 운영자금의 30%를 충당한다고 한다.
네팔은 9세기∼14세기까지 인도의 지배를 받았으며, 1769년 구르카(Gurka) 왕조가 카트만두 계곡을 정복하고 통일왕국을 건설
하였으며 1814년 영국에 지배당할 때까지 독립을 유지해 왔다고 한다.
1951년 2월 18일 왕정이 복고되면서 입헌군주제가 되어서 국왕이 직접통치하는 나라가 되었으나 국민들이 군주제에 불만을
품고 저항을 하였고 그러는 과정에 2001년 6월에는 네팔의 왕세자가 국왕 등 왕족 8명을 총으로 사살하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
하기도 하였으며 2008년 7월 21일 왕국에서 대통령이 통치하는 공화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네팔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구르카병사들인데 네팔의 구르카족으로 이루어진 영국의 외인부대로서 이루어진 세계
에서 가장 용맹스러운 군인으로 인정하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1951년 한국전쟁에도 참전하여 지평리 전투에서 구르카 1개 대대가 중공군 1개 사단을 전멸시켰다고 한다.
네팔의 구르카 용병 이렇게 생긴 칼로 단칼에 목을 친다고
지금도 영국에서 네팔의 젊은이들을 모집하는데 경쟁률이 700대 1이 될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하며 합격을 위한 학원도 있다
고 카드만두에도 30여개가 있다고 한다.
네팔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용병에 구름처럼 몰려드는 것은 네팔에서는 일자리가 없지만 영국 부대에서 받는 급여가 네팔의 국
민소득의 수십 배가 되어 무사히 전역을 하면 부유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용병의 역사는 1815년 영국이 인도를 정복하고 네팔의 구르카 왕국까지 정복하기 위해서 쳐들어갔다가 그들의 용맹함을 보고
마음을 바꾸어 용병으로 고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지금까지 용병으로 고용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 파견하고 있다고 한다.
용병이라는 것이 나라가 가난하기 때문에 자식들을 용병으로 내보내는 것으로 용감하지 못하면 다음 세대에는 용병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용감해야만 하는 것이 용병이다.
네팔의 구르카 용병과 비슷하게 스위스에도 용병이 전통이 있으며 지금도 로마교황청의 경비를 스위스 용병들이 맡고 있다.
스위스도 네팔처럼 산악지대로 먹고 살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용병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1792년 프랑스 혁명 때 왕실을 지
키던 다른 나라의 용병들은 다 도망을 갔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끝까지 남아서 죽음을 당했는데 왜 그렇게 했는가 하면 자식들
이 용병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죽어간 786명을 기억하기 위해서 루체른에 ‘빈사의 사자상’을 새겼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의 하나에 속하지만 네팔은 여전히 용병을 파견해야 하는 가난한 나라
이다.
빈사의 사자상... 빈사(瀕死)라는 단어는 죽음에 이른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죽어가는 사자라는 뜻으로 1792년 프랑스 대혁명 때
루이16세의 궁전을 지키다가 죽은 스위스의 용병을 상징한다. 옆구리에 부러진 창과 스위스를 상징하는 방패 그리고 부르봉왕가
를 상징하는 백합문장을 깔고 죽어가고 있다
나라가 가난하고 일자리가 없다가 보니 젊은이들은 이 나라의 소녀들은 인도 등의 인신매매범에게 인도나 동남아 등의 의 사창가
로 팔려 나갔었는데 지진 이후에는 더욱 심하다고 하며 그 숫자는 1년에 1만2천에서 1만 5천 정도라고 한다.
나라가 가난하면 남자들은 목숨을 용병으로 나가서 목숨을 희생하여 국가와 가족을 지켰었고 여성들은 몸을 팔아야 했던 것이 인
류의 역사였고 지금 이시대에서 이런 상황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며 네팔도 그런 나라 중의 하나인 셈이다.
그런 현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지만 나라가 이렇게 되어지는 이유들은 위정자들의 무능과 부패가 대부분으로 네팔도 그 범주에
서 벗어나지 못한다.
네팔이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첫댓글 좋은글과 사진,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 글자를 드레그 하여 붙이면 아프리카나 남미 등 여러곳을 여행했던 곳을 기록해 놓았으니 한 번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https://cafe.daum.net/moo-jongg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