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은 마음이 어질고 착하며 지극 정성의 효자였다.
어머니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은지 일주일 만에 승하했다.
세살때 계모로 들어온 문정왕후는 자기소생 명종을 왕으로 등극시키기는데 있어 걸림돌인 인종을 죽이려고 섬뜩한 음모를 획책했지만 죽지않고 살아 남은게 천운이라고 했다.
한밤중에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시뻘건 회염에 휩싸였다
누군가가 여러 마리의 쥐 꼬리에 화선지를 달아 외길 통로를 낸뒤 동궁으로 쫓아 보낸 것이다. 꼬리에 불이 붙어 뜨거움을
참지 못한 쥐가 갈곳은 동궁 안뿐이었다.
세자는 모든 것을 직감하고 미우나 고우나 자신을 키워준 계모 문정왕후에게 효도하는 길은 죽어주는 길이라 생각하고 나오지 않았다. 그때 밖에서 아버지인 중종이 속히 나오지 않고 무얼 하는냐고 그러자 세자는 다시 생각했다. 자신이 불에 타 죽는 것이 무정왕후에게 효도일지 모르나 부왕에게는 불효에 불충까지 더해진다는 생각이 들어 밖으로 나왔다,
또한 중종 1515년 2월 26일에는 쥐를 잡아 사지와 꼬리를 자르고 입 눈 귀를 불로 지져 동궁의 은행나무에 걸고 세자를 저주하는 작서의 변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주도한 것은 김안로의 아들 김희, 세자의 매형으로 밝혀졌지만 엉뚱한 복성군이 누명을 쓰고 사사 당했다.
인종은 부왕이 승하하자 맨발로 땅에 엎드려 6일 동안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다.
국상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계모 문정왕후에게 문안을 빼놓지 않았다, 문정왕후는 12세 아들 경원대군을 앉혀놓고,인종에게 우리 모자를 언제 죽일것이냐고 포독스럽게 몰아쳤다. 그러던 어느 날 문안차 들른 내전에서 평소와 달리 문정왕후가 친절히 맞으며 떡과 음식을 권했다,
맛을 보니 이상했으나 뿌리칠 수 없어 그냥 먹었다,
그후 병세가 극도로 쇠약해진 인종은 죽음을 직감하고 영의정 윤인경을 불러 유명을 내렸다. "내가 몹쓸 병에 걸려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아 경원대군에게 전위하고자 하니 경들은 그를 책려하고 보위하여 내 뜻에 부응하도록 하시오. 장지는 반드시 부모의 능소 옆에 묻어 내 소망을 들어주도록 하고 장례는 소박하게 치려 민폐를 줄이도록 하세요,." 이튼날 경복궁 정전에서 흥서하니 보령 31세 왕위에 오른지 8개월 보름 만의 일이었다
경원군으로 하여금 대통을 잇게 하기 위해 일부러 후사를 두지 않고 검약하게 산 성군 인종대왕은 1515년 2월 25일 돼지띠로 태어나 모진 핍박속에서 왕이 되었으나 모두를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곧 인자(仁者)의 덕이지요
꿀꿀님들 돼지띠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 볼만하지 않습니까? 돼지의 지혜를 모아 단합된 모습으로 돼지방 활성화되길 바랍니다. 즐거고 행복한 날되세요

첫댓글 손삿갓님께서 올려주신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자니유님의 열정적 첫댓글 감사합니다
손삿갓님께서 올려주신 역사이야기 잘보고갑니다.
돼지방 친목과 화합을 생각을 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친구님 덕분에 역사 공부 좀 했네요 잘 보고 갑니다.
친구님 잘못해 지워졌서 죄송합니다 이해부탁드립니다
거~참~ 참으로 억울하게 그리고 좀 바보스럽게 죽은 것이 아닌지.........
많은 사람들 중 우리가 이해 못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높은자리 노리는 사람이 많으니 새삼 놀라운일은 아닐진데
큰사람이 되려면 하늘과 땅이 먼저 안다 하지 않았소,,, 저또한 역사공부 재미있게 보고갑니다.
인종같은 사람은 하늘이 내려주신 임금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