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반가워요."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이를 자세히 보니 예전에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후배였다. 나 역시 반가워서 한걸음에 다가가 손을 붙잡고 사무실 복도에 한참을 서 있었다. 이게 얼마만인지. 족히 7년이 다 됐다. 후배는 우리 기관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들으러 왔다고 했다. 아직 시간이 남아 휴게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가까이서 후배를 보니 전보다 살이 많이 빠졌다. 머리카락도 희끗희끗했다. 물론 세월이 흐른 것을 어쩌겠냐만, 훤칠하니 잘생겼던 예전 30대의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같이 일했을 때의 추억을 곱씹던 중 최근에 후배에게 힘든 일이 있었음을 알았다. 부서 실적이 저조했는데, 그 책임을 오롯이 혼자 짊어지게 됐단다. 그 말을 하는 잠깐 동안 그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곧 교육 시간이었다. 아쉬워하는 후배의 표정을 보니 이대로 보내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에 술 한잔할까?" 그렇게 덜컥 술 약속을 잡아 버렸다. 나는 갈수록 내향성이 커져 사람 만나는 일을 꺼렸다. 자주 보는 사이가 아닌 사람과의 만남은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도움을 청하는 듯 한 후배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 뒤로 몇 차례 문자가 오가고, 서로의 근무지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퇴근하고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있으니 후배가 왔다. 오자마자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줘 받았더니 꿀이었다. 얼마 전 다녀온 여행지에서 샀다는데 예나 지금이나 사람 잘 챙기는 모습은 변함없었다. 사실 후배를 만나기 전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나 했다. 어설픈 조언은 하지 말고 그저 들어주자는 거였다. 잔에 소주를 따라 둘 다 한입에 털어 넣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취기가 오를 때쯤 후배는 천천히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부서에 온 지는 6개월 정도 됐는데, 바로 위 선임과 맞지 않아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선임은 실적 부진의 원인을 후배의 근무 태만으로 몰아 부서장에게 보고까지 했다. 그 바람에 무능한 사람으로 찍혀서 곤욕을 치렀단다. 함께 일할 때 지나칠 만큼 꼼꼼하고 성실한 친구였기에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번 자리잡은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럴수록 주말에도 나가 더욱 열심히 일했지만 상황은 점점 늪으로 빠져들었다고 했다. 한 달 사이에 몸무게가 5킬로그램이나 빠지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 그의 말에서 그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후배가 쏟아 내는 말을 묵묵히 들으려 노력했지만 순간순간 차오르는 분노에 격한 말이 튀어나왔다. "열 받네. 그냥 확 쓸어버려!" 나 역시 몇 년 전 회사에서 부당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어 후배가 지금 어떤 마음일지 알 수 있었다. 이대로 계속 근무하다간 정말 무슨 일이 날 듯했다. 후배에게 잠시 쉬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면 좋겠다는 말을 건넸다. 그렇게 술자리는 3차까지 이어져 자정 무렵에야 끝났다. 막차가 끊기기 전이라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나는 아래쪽으로, 후배는 위쪽으로 가야 했다. 헤어지기 전 후배는 내 손을 꼭 잡더니 고맙단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떨리는 손을 타고 진심이 내 안에 스며들었다. 아무 말 없이 그 손을 계속 두드렸다. 돌아오는 길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후배 걱정과 그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밥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 직장인의 현실 등이었다. 그날은 밤새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다. 며칠 뒤, 닥친 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신없는 때 전화가 울렸다. 후배였다. 목소리가 한결 밝아 다행이었다. 그는 한 달간 휴직을 냈다고 했다. 나와 만난 뒤 진지하게 고민했고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지었다고. 부서장에게도 보고했고 지금은 마음이 후련하다고 했다. 나는 연신 잘했다며 후배의 선택을 지지했다. 그 결심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지 생각하니 코끝이 찡했다. 후배는 분명 더욱 단단해져서 돌아올 것이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어느 유명한 희극인의 말처럼, 우리는 굽이굽이마다 찾아오는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며 산다. 가까이 있는 누군가 지치고 힘들어 보일 때 다가가 위로를 건네 보면 어떨까. 따듯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준다는 '위로'의 뜻처럼, 그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큰 힘이 될 테니까. 신재호 | 상담 교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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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동트는아침 님 !
보람과 즐거움 가득히
행복한 주말보내세요
~^^
조석으로 쌀쌀합니다
감기조심 하세요~~~
반갑습니다
아카향기 님 !
고운 걸음주셔서
감사합니다 ~
새로이 시작하는 한 주
보람과 즐거움으로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