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화 '가을의 전설'
바람 불면 생각난다…'금발의 짐승남' 브래드 피트
영화 '가을의 전설'의 한 장면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가을의 전설'(1994)이다. 이 영화를 본 이들은 모두 이 마법에 걸린다. 가을만 해도 시린 사랑이 떠오르는데, 거기에 운명 같은 전설을 더했으니 이미 제목으로 사람을 녹이고, 가슴을 적시는 영화다. 깊어가는 가을날에 맞춰 이번 주 재개봉했다.
1990년대 초 커피숍에 가면 반드시 걸려 있는 영화 포스터 액자가 2개 있었다. 계곡물에 몸을 맡기고 낚싯줄을 던지는 '흐르는 강물처럼'(1992)과 가을빛이 붉게 물든 세피아톤의 '가을의 전설'이다.
흥미롭게도 이 두 영화는 모두 미국 몬테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캐나다와 인접한 미국 북부의 험한 땅. 아름다운 자연과 그 속에 녹아든 인간을 성찰하기에 더없이 좋은 배경이다. 그래서 두 편 모두 영상미가 아름답다.
또 하나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부자지간은 가깝지만, 어느 순간 제어할 수 없는 힘이 작용하는 관계다. 그들의 운명 같은 가족사는 대서사시로 엮기에 더할 나위 없는 소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치하는 것이 바로 브래드 피트의 존재.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짧은 머리의 앳된 모습의 반항아가 '가을의 전설'에서는 긴 금발에 야성미까지 넘치는 남자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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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을의 전설'의 한 장면
배경은 1913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이다. 울창한 숲과 넓은 대지를 지닌 미국 몬테나의 한 농장. 대령 러들로(안소니 홉킨스)는 세 아들을 키우는 홀아비다. 첫째는 성실하고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지 않는 알프레드(에이단 퀸)이고 막내는 철없이 자기중심적인 새뮤얼(헨리 토마스)이다. 둘째는 역시나 반항적이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야성을 소유한 트리스탄(브래드 피트)이다.
자연과 함께 자란 셋은 다들 청년이 됐고, 어느 날 막내 새뮤얼이 약혼녀 수잔나(줄리아 오스먼드)를 데리고 고향으로 온다. 이날 세 형제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운명에 사로잡힌다. 곧이어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전쟁터로 향하는 새뮤얼을 지키기 위해 세 형제가 모두 참전하면서 집을 떠나게 된다.
'가을의 전설'은 미국 근대사를 관통하는 한 가족의 몰락을 그리고 있지만, 감정 라인은 한 여자를 사랑한 세 형제의 이야기가 주된 플롯이다. 정작 약혼을 한 새뮤얼이 죽으면서 두 형제의 반목과 갈등은 극을 치닫는다. 트리스탄은 속내를 숨기기 위해 전쟁터로, 대양으로 떠나 보지만 역시 돌아오는 것은 고향이고, 그녀의 품이다. 수잔나는 세 형제의 어긋난 사랑의 화신이다. 그녀의 마음에는 늘 가을처럼 가슴 저리는 트리스탄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와 함께 하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트리스탄은 가을을 통째 녹여 넣은 캐릭터이다. 거대한 곰과 맞서 싸우는 야성과 함께 그는 늦가을에 태어나 가을만 되면 집을 떠나 또 다른 가을에 돌아온다. 늦가을로 접어든 가문의 운명을 그가 온몸으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방랑의 시점이 가을이란 점에서 그 정서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 근처를 배회하는 첫째 아들과 달리 그는 수시로 길을 떠난다. 배를 타고 오대양의 대륙을 유랑하거나, 야생의 삶으로 되돌아가 인연을 끊기도 한다.
결국에는 어디서 살았고, 어디서 생을 마감했는지도 모르며, 그가 남긴 것도 알 수 없는 희미한 그림자가 된다. 곰과 싸워 그가 곰이 된 것인지, 자연으로 돌아간 것인지도 모를, 말 그대로 전설의 주인공이 된다. 흐린 가을 하늘 같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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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을의 전설'의 한 장면
원제 'Legend of the Fall'에 대한 오역 논란도 있었다. 한 가문의 '몰락의 전설'을 '가을'로 번역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원작자 짐 해리슨은 두 가지 뜻 모두 가지고 있다고 했다. 정확한 것은 '몰락'이지만, 가을의 상징 또한 맞다는 것이다. 오역 논란을 떠나 '가을의 전설'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을까.
'가을의 전설'은 한 형제의 사랑과 좌절, 갈등을 대자연과 전쟁의 운명 속에 그려 넣은 대서사시다. 불행과 맞서기 위해 무수한 방황과 방랑의 길을 걸었던 트리스탄의 삶이 뜨거운 여름을 보낸 가을의 성찰과 잘 어우러진 영화다.
고전은 보고 또 봐도 좋은 레퍼런스다. '가을의 전설'이 바로 그런 영화일 것이다. 30년 전 극장의 추억을 이 전설 같은 영화로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133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문화부 jebo@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