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진실규명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단 단식기도회 - 4일째
[단식 사제] 이동화, 이균태, 김인한, 이영훈, 권순호 신부
[연대 방문자]
- 사제: 유연창, 경훈모, 신진수, 최병권, 김효근, 유병창, 김종화, 조성제 신부
- 수도회: 예수성심전교수녀회, 전교가르멜 수녀회, 예수성심 시녀회, 작은형제회
- 부산교구 신학생 2명
- 단체: 서강대 민주동문회, 시민단체원로, 새정치민주연합 부산시당, 민주공원 관장, NCC, 녹색당,
천주교 사회교리 실천 네트워크 회원들, 부산교구 사회사목센터(우리농, 노동사목, 정평위, 빈민사목) 실무자들, 가톨릭센터 행정실 직원들, 사하성당 예비자 2명,
[단식 4일째 미사] (주례 및 강론 : 김준한 신부) / 미사 참례: 83명
- 사제: 이균태, 김인한, 이동화, 김효근, 김종화 신부
- 참석 수도회 :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예수성심전교수녀회, 스승예수제자수녀회,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전교수녀회,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 예수성심시녀회, 전교가르멜수녀회, 노틀담수녀회, 작은형제회,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
- 참가 단체 : 천주교 사회교리 실천 네트워크, 신빈회
⊙● 강론
세월호를 선택하는 이유
강론 : 김준한 신부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서면서도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부산교구의 여러 신부님들께서 더러는 단식 기간 내내, 또 더러는 하루 이틀의 시간을 내어 동조단식을 하시는데, 저는 이 와중에도 무엇이 그리도 바쁘다고 단 하루도 온전히 봉헌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됩니다. 어쩌면 그렇게 다들 바쁘다는 이유로 마음만은 함께 한다는 말로 자위하면서 그렇게 457일을 흘려보낸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저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그 많은 중요한 문제 중에서 지금 왜 세월호에 집중해야 하느냐?’라는 물음이고, 다음은 ‘그 많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또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많은 일이 있음에도 아직도 세월호에 집중해야 하느냐?’라는 물음에 답을 하고 싶습니다. 바로 이 ‘왜’와 ‘아직’에 대해 제대로 답을 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세월호 문제에 대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구원, 진정한 안식과 자유의 길에 대해 가르침을 주십니다. 솔직히 지금과 같은 험난한 시기, 아니 오히려 어이없고, 기도 안 차며,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현실 속에서 진정한 안식을 얻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고민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 시대에는 안식이고 나발이고 없이 그냥 앞뒤 계산하지 말고 투신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울화통 터지는 감정이 가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디 하나 제대로 아귀가 맞아 돌아가고 있는 구석이 없다 보면 어디에 있든 안식의 한 조각도 찾아볼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가치의 전도현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이처럼 완전히 역전된 상황이 당연한 것인양 여기는 우리의 모습을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바로 잡아야 할지 암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냉철하게 현실을 들여다보고, 이 모든 일의 뿌리로 인도할만한 실마리를 찾아 끈기 있게 줄을 타고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 다시 현실을 재역전시키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회개가 되고, 또 그 결과로 얻게 되는 것이 바로 오늘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 안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먼저 ‘왜 세월호이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미 모두가 그렇게 동의하고 있다시피 세월호 사건은 한반도에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모순의 가장 극명한 예이고, 또 이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리는 시대의 질곡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과 권력이 협잡하여 벌이고 있는 진흙탕 싸움은 생명을 담보로 욕망과 죽음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세월호 사건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시대에 무엇보다도 먼저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께 새로운 신앙고백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든 모순이 이 생명을 매개로 벌어지는 악다구니라고 할 때, 오늘 우리는 수많은 생명을 수장시킨 이 모순과 맞붙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은 어두운 시대의 억압 앞에서 정신마저 허물어져 버린 어떤 개인의 묻지마 살인사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돈이라면 생명마저도 노골적으로 거부해도 된다는, 아니 생명을 내팽개치지 않으면 당신도 이 사회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강한 암시를 줍니다. 이처럼 생명을 가라앉히고 죽음을 길어 올리는 어이없는 일이 공개적으로 벌어졌다는 것은 참담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대의 안식을 위해서라도 세월호 사건을 통해 생명의 주님께 철저하고 새로우며 근본적인 신앙고백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고 하신 것처럼 우리는 각자 세월호를 우리의 십자가로 메고서 도대체 이 암울한 시대를 어떻게, 또 왜 살아내야 하는지를 철저하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왜 아직도 세월호에 집중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답하고자 합니다. 분명 우리에겐 세월호를 제외하고도 우리의 연대를 목말라하는 사건과 사람이 넘쳐납니다. 부산시청 생탁노동자, 택시노동자, 그리고 제가 있는 밀양송전탑 등 고개를 조금만 돌려봐도 어디 하나 피눈물 흐르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세월호일까요? 흔히들 우리는 언젠가 자신의 온 삶을 흔들어 놓은 사건을 거치며 자신의 존재가 그 사건 이전과 이후로 구별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아마 세월호 사건이 우리 모두의 집단적인 체험 속에서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세월호 이후 우리의 삶이 그 이전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세월호는 분명 생떼 같은 아이들의 생명과 관련한 너무도 아프고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그러나 세월호는 그래서 다른 사건에도 빛을 비추어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부산교구 사제단이 날씨만 허락한다면 내일 단식기도회의 마지막 미사를 부산시청 생탁노동자와 택시노동자들과 함께 하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세월호는 지금껏 무디고 거칠었던 우리의 생명감각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월호를 통해 각성된 의식은 노동자의 문제를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 우리 생명과 관련한 당연하고 절박한 문제라는 것을 더욱 풍요롭게 깨닫게 해줍니다. 그래서 한 손에는 세월호를, 또 한 손에는 절박한 그 시대의 사건을 마주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 끝내 풀어내야 합니다. 이것을 또다시 그냥 하나의 추억과 역사적 사건으로 흘려보낼 수는 없습니다. 만약 이 정도의 사건도 그냥 흘려보내고 잊어야 한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이 이후 그가 무슨 일을 겪더라도 절대 눈물을 보여서도 안 되고, 절대 울부짖어서도 안 되며, 절대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지금 이 미사를 드리는 것은 그래서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세월호를 통해 새롭게 체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깊은 물속으로 들어간 죽음의 아이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들어 올려져 우리 가운데 복원되지 않는다면 우리 신앙의 진실도 퇴색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이름으로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먼저, 그리고 더불어 침몰한 세월호 속에서 길을 찾아 떠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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