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한국 가톨릭이 부활하고 있다
‘맑은 영혼’에의 목마름인가?
조용한 대약진, 가톨릭의 힘 |
20년간 신자 증가율 175%, 10년간 74%. 가톨릭이 지금 한국에서 소리없이 부활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가톨릭을 바라보는가? “그들의 헌신에 감동했어요” 일산의 주부 K(43)씨는 새내기 가톨릭 신자다. 2006년 초 입교했다. 시아버지의 죽음이 계기였다. “상을 당하면 누구나 경황이 없잖아요. 마침 시어머니가 가톨릭 신자세요. 성당 연령회(煉靈會)라고, 장례를 도맡아 치러주는 분들이 있다면서 새벽 3시쯤 연락을 했는데, 4시가 안 돼 그분들이 찾아왔어요. 병원에서 성당 영안실로 운구해 빈소를 차리고는 발인까지, 정말 모든 일을 다 해 줬습니다.” 그 과정에서 K씨 가족은 연령회원들의 성심(誠心)과 신심(信心)에 감동했다. “발인 전까지 이틀 밤새 연령회원들이 빈소를 지키면서 기도해 주시는 거예요. 더욱이 병사하신 시아버님 시신을, 그 분들 중에는 제 나이 또래 젊은 여자분도 있었는데 자기 가족처럼 염해 주는 거예요. 맨손으로 거리낌없이 시신을 정성스럽게 닦는 것을 보고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고 놀랐어요.” 더욱이 장례비용 또한 염가의 실비(實費)만 들었다. 수고를 아끼지 않은 연령회원들은 그 어떤 사례도 받지 않았다. K씨 가족이 놀란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가톨릭도 기독교인데 우리 전통 방식의 장례를 존중해 주는 거예요. 개신교보다 가톨릭이 더 엄격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연령회의 헌신적 도움에 감동한 K씨는 물론 남편과 두 아이 등 온 가족은 두말없이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 K씨는 “이제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왕 종교를 가질 거라면 가톨릭을 택하라고 권유한다”고 말한다. “사람들과 마주치고 어울리고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아파트 반상회조차 나가기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시아버님 일을 겪고 나서 처음 성당 미사에 갔는데 제가 생각했던 그런 분위기, 사람들이 모여 북적대고 하는 분위기가 아닌 거예요.” “정말 신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 같았다”고 K씨는 기억했다. “뭐랄까, 묵직한 바윗돌 같은 것이 제 마음을 꾹 눌러 진정시켜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미사 도중 몇 차례나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것이 좀 우습게 생각됐지만 웅장한 오르간 소리, 다 같이 기도문을 읽는 소리, 신부님의 말씀 등이 이어지는데, 여기는 세상과는 동떨어져 있구나, 내가 지금 뭔지는 몰라도 거룩한 곳에 와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성스럽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제가 말로 표현은 잘 못하지만, 정말 성스러웠어요.” 그러면서 K씨는 “다른 사람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덧붙였다. “누가 미사에 나오고 안 나오고 하는 것에도 신경 쓰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는 분위기도 아니고, 각자의 신앙과 프라이버시가 잘 지켜지는 조용한 분위기여서 너무 좋았어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상에서처럼 다른 사람과 비교나 경쟁할 일도 없고 눈치볼 일도 없다는 거, 그 점이 정말 좋아요. 오래된 신자분들 중에서는 그것이 가톨릭의 문제라고 하는 분도 있던데, 제가 보기에는 그것이야말로 가톨릭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미사에 참석한다고 해서 곧바로 성당의 등록신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K씨는 정식 등록신자가 되기 위해 6개월 넘는 교리공부 기간을 거쳐 지난해 가을에야 교적(敎籍)에 이름을 올렸다. “남편은 한 번에 교리문답을 통과했는데 저는 창피하게도 한 번 떨어지고 재수해서 붙었어요. 그 과정도 지내고 보니 참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정식 등록신자가 됐다는 것이 뭔가 뿌듯하다, 내가 정말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 성당에 소속되는구나 하는 소속감이 생기는 거예요.” “거룩하고 성스러워 좋아요” K씨가 성당에 나가면서 특별히 과외로 하는 활동은 없다. 그는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배우는 단계여서 선뜻 어떤 다른 일을 맡아 하기가 겁난다”면서 “그러나 최소한 일요일 하루만은 성당에서 생활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적어도 성당 안에 들어서면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왠지 깨끗한 기분이 되는 것 같거든요. 신부님이나 수녀님을 보고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껴요. 그분들은 항상 편안한 말투에 어떤 경우든 흥분하거나 큰 목소리를 내는 법이 없으세요. 모든 사람을 애정이 담긴 진지한 눈빛으로 공평하게 바라보는 것 같아 좋아요. 말 그대로 성직자 같아요.” 영화에서만 혹은 남들이 하는 것만 보던 고해성사를 직접 할 때는 가슴이 떨렸다고 한다. “미사 때 빵을 떼어 나눠 먹는 성체(聖體)의식이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고해(告解)성사도 처음 해 보는 경험이었죠. 내가 정말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서 한 번, 이웃과 언짢은 일로 다투고 나서 또 한 번 고해성사를 했거든요. 제 마음속 죄를 밖으로 꺼내 드러내는 것인데도, 그렇게 하고 나니 오히려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함이 드는 거예요. 놀라울 만큼 마음도 차분해지고요.” “딱 잘라 가톨릭의 어떤 점이 좋다고 구체적으로 열거할 수는 없지만 열정보다 냉정, 마음속에 어떤 부담감도 갖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 등이 가톨릭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며 K씨는 정말 편안해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종교라는 것, 신앙이라는 것이 결국 하느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통해 영혼의 안정을 구하는 것 아니겠어요? 헌금도, 선교도, 봉사활동도 내 형편대로, 내 마음 내키는 만큼 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생활이잖아요? 세상살이에 찌들고 마음 고생이 심한 분들에게 이왕이면 가톨릭을, 성당에 한번 다녀 보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K씨는 곧 남양주시로 집을 옮긴다. 이사하면 그쪽 지역 성당에 나가게 된다. 교적(敎籍)도 일산에서 전출(轉出)돼 남양주성당으로 전입(轉入)된다. 자기를 돌아보는 ‘默想의 종교’ “아, 내가 이제야 정말 거듭났구나, 저는 지금 그렇 게 느끼고 있습니다.” 서울 잠원동성당에서 만난 P(여·45)씨는 자리에 앉으면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핸드백에서 두 번 접은 A4 용지를 꺼냈다. 1, 2, 3…. 번호를 매긴 메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P씨는 먼저 자기의 신앙 이력부터 들려줬다.
그러다 가톨릭 신자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서로 종교를 인정했고, 특히 남편이 가톨릭 신자이기는 해도 흔히 말하는 ‘나이롱(가톨릭에서는 ‘냉담자’라고 일컫는다)’이어서, 가정 내 종교갈등은 없었다. 그렇기는 해도 이따금 남편과 함께 성당 행사, 나아가 주일미사에도 참석하게 됐다. “같은 기독교인데도 다가오는 분위기가 달랐어요.” 미사에 몇 번 참석한 뒤 그는 개종을 결심했다. 무엇이 그를 결단하게 했을까? 그는 메모 내용을 짚어가며 이야기했다. “제가 ‘묵상(默想)’이라는 말을 자꾸 쓸 텐데, 바로 거기서 가톨릭의 진수를 느꼈다고 보면 됩니다. 처음 미사에 참석했을 때 피아노가 아닌 오르간 소리를 듣는데 가슴에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인간 내면에 새로운 힘을 주는 것 같은 울림이 전해지는 거예요. 세상의 그 어떤 악기도 따라갈 수 없는 전율을 일으키는 소리랄까, 그런 거였죠. 피아노와 달리 오르간은 그야말로 제 속으로 파고드는 깊이, 심오함이 있더군요. 저는 개신교가 열정적인 표현의 종교인 반면 가톨릭은 고요 속에서 자기 신앙을 돌아보는 묵상의 종교라고 생각해요. 교회에서는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부흥회 같은 때는 큰소리로 기도하고 찬송하고 하거든요. 반면 가톨릭은 상대적으로 조용합니다. 차분히 가라앉아 있어요. 교회의 부흥회나 수양회처럼 열정이 가득한 모임과 달리 ‘피정(避靜)’이 있죠. 고요함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이에요. 그런 차이가 있어요.” 성당의 엄숙함과 고요함, 미사 분위기에서도 종교적 진지함을 느꼈다고 한다. “말을 잘 못하는 저는 예배 때나 행사 때 공개적으로 기도하는 일이 왠지 거북했어요. 뭔가 말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야 하고, 남들 앞에서 ‘막힘 없이 기도를 줄줄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거든요.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라고는 하지만 그런 점 때문에 하나님 쪽이 아니라 사람들을 의식하는 어색함도 느꼈고요. 그런데 가톨릭에서는 상황에 따른 기도와 기도문이 대개 정해져 있어요. 기도하기보다 기도문을 읽는다는 표현이 맞겠죠. 수천, 수백 년 동안 변함없이 내려온 기도문이랍니다. 그것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정말 하느님에게 기원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고,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가족도 재산도 없이 묵묵히 성직에 봉사하는 수도자들의 모습도 P씨는 보기 좋았다고 한다. “사람 속은 알 수 없지만, 일단 신부님이나 수녀님들 생활하시는 모습은 세상의 인간적인 욕심을 다 버린 것같이 성스러운 모습이에요. 자기 것을 쌓아 놓는 일도, 쌓아 놓을 필요도 없어 보여요. 2년, 4년 하는 식으로 임지(任地)가 바뀌기 때문에 무리하게 어떤 업적을 쌓을 욕심도 없어 보이고요. 그런 가운데 자신이 부여받은 일을 성실하게, 특히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해 나가는 모습에서 ‘아, 저분들은 확실히 일반인과 뭔가 다르구나. 종교인은 바로 저런 모습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가톨릭 신자가 된 지 2년, P씨는 “충만한 기쁨 속에 성당에서의 각종 활동과 봉사활동에도 열정적으로 나선다”고 말했다. 無宗敎 47%, 종교의 블루오션 한국 종교인들 사이에서 한국은 두 가지 종교적 특수성을 띠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하나는 세계 200여 국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비신앙인이 많다는 점이다. 2005년 통계청 센서스 결과를 보면 전체 인구 4,800만 명 가운데 절반을 좀 넘는 53%가 종교 혹은 신앙을 갖고 있고, 47%는 그렇지 않다. 가톨릭이 지배하는 유럽과 남미, 개신교가 지배하는 미국, 이슬람이 지배하는 중동, 가톨릭과 이슬람이 혼재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주요 종교, 그 나라 국민의 절대다수가 신앙하는 종교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 지배적 종교가 없다. 다른 하나는, 그런 가운데 역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세계 거대종교로 일컬어지는 개신교와 가톨릭, 불교가 공존(共存)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평화 속의 공존, 곧 정치적 압박이나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평화롭게 정립(鼎立)하면서 (선의의) 교세 확장 경쟁을 벌인다.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서 그렇지, 세계에서 이 같은 종교적 무풍지대 혹은 거꾸로 종교의 개척 여지가 많은 블루오션도 드물다. 이런 두 가지 이유로 한국에서의 특정 종교의 부침(浮沈)은 곧 그 종교와 현대인의 관계를 가늠해 볼 중요한 척도가 된다. 오늘, 메마른 현실에 지치고 각박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이 그 마음의 안식처, 영혼의 쉼터로 삼고 싶어 하는 종교는 과연 어떤 것인가? 그 질문의 해답과 직결되는 것이다. 그 답은 무엇인가? 아무도 생각 못한 가톨릭의 약진 앞의 K씨, P씨의 사례는 이미 그 답을 던져주고 있다. 바로 가톨릭이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에서 더욱 조용히 가톨릭의 지평이 확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른 땅으로 빗물이 스며들 듯 그 신자는 줄곧 늘어났고 교세는 다른 종교보다 훨씬 빠르고 넓게 확장됐다. 앞의 개인적 경험과 사례를 넘어 공식적인 큰 통계자료가 제시됐다. 그것은 그동안 많은 사람이 다른 종교보다 좀더 가톨릭을 받아들였거나 혹은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는,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던 현실을 드러나게 했다. 2006년 5월 정부(통계청)가 발표한 주택-인구총조사 결과다. 이 조사에서 가톨릭 신자는 10년 전에 비해 74.4% 증가한 514만6,000명으로 응답됐고, 불교 신자는 3.9% 늘어난 1,072만6,000명이었다. 반면 개신교는 10년 전보다 오히려 1.6% 줄어든 861만6,000명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통계 결과는 개신교 측이나 가톨릭 측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의외의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지난 20년간의 신자 증가율에서도 의미 있는 수치들이 도출됐다. 가톨릭 신자는 20년 전보다 175.9%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불교는 33.1%, 개신교는 32.3%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1,000만 성도를 넘어섰다’는 얘기가 나오던 개신교에 비해 가톨릭의 선교 방식은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그 행태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덜 적극적인 것으로 인식돼 왔다. 그럼에도 오히려 가톨릭 신자가 20년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나 그 증가율에서 다른 종교를 앞지르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통계청, 2005년 종교지도). 이 같은 통계 발표는 우리 종교계에 충격파를 던졌다. 특히 가톨릭은 가톨릭대로, 개신교는 개신교대로 ‘왜 개신교 신자는 줄었는데 가톨릭은 늘어났는가’라는 제목을 놓고 분석과 연구, 반성과 대책에 부심했다. 그런 과정에 가톨릭 쪽에서는 신자의 증가라는 양적 측면을 뛰어넘는 또 다른 두 가지 특성이 새로 발견됐다. 먼저 하나는 공식 등록신자든 아니든, 일반인이 가톨릭에 대해 호감(이미지)을 갖고 있다는 추론이다. “정부의 통계 발표를 계기로 한국천주교협의회(가톨릭 교회의 한국총본부 격)에서도 실제 등록신자 호적조사를 면밀히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470만 명이 안 돼요. 그러니까 정부의 조사치보다 48만 명가량 적은 거죠. 등록신자도 아닌 사람들이 ‘나는 가톨릭 신자’라고 응답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 배영호 신부는 이런 분석과 함께 계속 말을 보탠다. 그의 분석을 더 들어보자. “정부 통계에 그런 사람들까지 대거 포함된 결과 실제 우리 등록신자보다 숫자가 부풀려졌다고 봅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등록신자도 아니면서 그런 대답을 했을까?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것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심정적으로는 가톨릭에 기울어 있다, 가톨릭에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질적 특징은 타 종교 신자의 가톨릭 개종 현상이다. 이어지는 배 신부의 분석.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혹은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옮기는 것은 어차피 하느님 안에서 한 가족, 한 형제이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 왔습니다. 마침 이번 정부의 통계를 계기로 그 부분도 따져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성당에 신자로 등록할 때 입교 경위를 밝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떻게 가톨릭에 들어오게 됐는지, 전에 갖고 있던 종교는 어떤 것인지 소명하는 내용입니다. 이번에 등록신자 수를 세어보면서 그 입교 경위를 더불어 살펴보니 개신교 쪽에서 천주교 쪽으로 옮기는 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에서의 가톨릭 3대 役事 단순히 신자 수가 증가했다는 결과만으로 덮어놓고 ‘가톨릭이 일상과 현실에 지친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영혼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고 비약적으로 단언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가톨릭이 한국인의 눈길과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다’는 표현은 가능할 것이다. 세계 메이저 종교들이 공존하며 경합을 벌이는 한국에서 ‘얌전하고 조용한 줄만 알았던’ 가톨릭이 뜻밖에 다른 종교보다 활발한 확장세를 보이며 주목의 대상이 된 것이다. 어쨌든 이번 정부의 통계조사 결과는 한국의 가톨릭이 (세계교회사와 한국교회사 어느 쪽에서 보든) 획기적인 또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가톨릭 역사에서 한국은 선교사가 들어오지 않고 자체 학습과 선교를 통해 가톨릭의 복음화가 이뤄진,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축복의(가톨릭 입장에서 보면) 땅이라고 이야기 된다. 그것이 첫 번째 역사(役事)로 꼽힌다. 두 번째 역사는 지난해 정진석 서울대교구장이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된 일이다. 1969년 김수환 추기경이 서임된 이후 두 번째다. 가톨릭이 국교도 아니고, 전통의 불교와 개신교의 교세가 훨씬 앞선 나라인데도 추기경이 2명이나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가톨릭 세계에서 갖는 위상과 영향력을 상징한다. 여기에 통계조사 결과도 실제 가톨릭 신자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종교 선택의 자유가 있고 선택할 수 있는 종교 또한 다양한 오늘의 한국인에게, 다른 종교를 제치고 다름 아닌 가톨릭이 ‘영혼의 쉼터’로 받아들여지거나 최소한 그렇게 인식된다는 점은 확실히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한 줄로 엮어, 우리는 그것을 ‘한국에서의 가톨릭의 부활’이라고 부를 수 있다. 오래전 자기 부패와 타락으로 털썩 쓰러졌던 가톨릭이 이제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한국 땅에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톨릭을 부활하게 하는가? 가톨릭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요인은 무엇일까? 애초 이 글은 그 질문의 답을 찾아나선 것이었다. 그 답을 찾기에 앞서 먼저 ‘가톨릭의 부활’이 과연 무엇으로부터의 부활인가 생각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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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서임된 김수환 추기경(오른쪽)과 2006년 서임된 정진석 추기경. ‘2명의 추기경’은 세계 가톨릭계에서 한국 가톨릭이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을 상징한다. |
인터뷰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 배영호 신부 | ||
“가톨릭은 다만 ‘어제의 가톨릭’과 경쟁하려고 합니다”
― 가톨릭 신자가 늘어났다는 정부 통계조사 결과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첫 느낌은 ‘어, 이상하다. 이게 아닌데’라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가톨릭은 다른 종교에 비해 조용하고, 외부에서 보면 주눅 든 상태였습니다. 반가움보다 두려웠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도 두렵고 사실이 아니라도 두렵고….” ― 왜 두렵습니까? “사실이라면 가톨릭의 책임이 그만큼 막중하다는 것이고, 사실이 아니라면 뻥튀기로 웃음거리가 될 테니까요. 미처 우리가 어떤 입장을 정리하기도 전에 그 통계 결과를 놓고 언론에서 좋은 이야기들을 앞서나가면서 많이 써줘서 정말 곤혹스럽기도 했습니다.” ― 가톨릭 신자가 증가했다는 것은 뜻밖이라고 합니다. ‘뜻밖에 증가했다’는 것은 가톨릭이 그만큼 선교에 열성을 보이지 않았는데도 신자가 늘어났다는 의미일 텐데요. 가톨릭은 선교에 힘쓰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교와 복음화가 첫째 사명인데, 그럴 리는 없고요. 다만 그 방식이 개신교 등에 비해 조용한 편이었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은 유럽식 선교 방식이어서 개별적·내면적으로 선교해 나갑니다. 반면 개신교의 전도는 처음부터 교육사업·계몽사업·의료사업 등과 맞물리면서 공개적·대중적·적극적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 선교 방식에서 이미지상 차이가 생겼으리라고 봅니다.” ― 가톨릭이 대중에게 접근하기 위해 교리와 원칙을 넘어 지나치게 관용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세상을 복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세상에 대해 혹은 타 종교에 대해 관용적 태도를 갖게 된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선교와 복음화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바깥’을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해서 가톨릭이 곧 세속화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이의 문화와 뿌리를 존중하는 것이 참된 종교의 자세이며, 결국 그것을 통해 선교와 복음화가 효율적으로 이뤄지리라는 것이 가톨릭의 시각입니다.” ― 가톨릭이 더욱 공격적이고 열정적인 선교활동에 나서면 지금보다 훨씬 효과적인 선교 실적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 “선교전략, 그러니까 기업으로 말하면 더욱 세련된 판매전략, 새로운 브랜드 전략 같은 것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 되겠죠. 하지만 종교는 소금입니다. 짠맛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세상이 변할수록 종교는 고유한 자기 정체성, 자기 뿌리를 확고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에서 사람들의 영혼은 위안받는다고 믿습니다.” ― 가톨릭이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눈길과 마음을 잡아끄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사회의 지난 반세기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근대화와 발전으로 요약되는 그 시간은 정말 숨가쁘게 뛰어온 나날들입니다. 물질과 돈은 많아졌습니다. 정신이 따라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영혼의 고갈, 거기서 모두 영적으로 지친 것 같습니다. 종교 또한 성숙의 길보다 성장의 길을 택해 사람들과 똑같이 사회 흐름에 맞춰 정신없이 뛰었고요. 그나마 가톨릭은 느려서 흐름에 휩쓸리기보다 자기 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정신의 세계에서 원칙을 지켜온 것이 전화위복이 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 통계조사 결과를 보면 무신앙이라고 응답한 국민이 47%에 이릅니다. 이들을 놓고 종교 간에 어차피 경쟁해야 할 텐데요. “우리는 신자 수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신앙으로 성숙한 신자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 내적 성숙이 우리의 주요한 관심사입니다. 무신앙자들에 대한 선교 때문에 개신교나 다른 종교와 경쟁해야 한다는 관념은 사실 가톨릭에는 없습니다. 우리를 반성하고 나아가야 한다, 가톨릭의 경쟁 대상은 바로 ‘어제의 가톨릭’뿐이라는 입장입니다.” |
인터뷰 | ‘가톨릭 신자의 증가와 그 요인’논문 발표한 인천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오경환신부 | ||
“결국 일상에서 얼마나 사랑을 실천하느냐가 선교의 관건”
― 발표 논문에서 제시한 ‘가톨릭 신자의 증가 요인’을 간추려 소개해 주십시오. “다섯 가지, 곧 ▷가톨릭 교회의 (세계적) 결속력 ▷가톨릭 교회의 청렴성 ▷정의와 인권활동 ▷조상 제사와 장례식에 대한 유연한 태도 ▷타 종교에 대한 열린 태도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가톨릭의 결속력이 가톨릭 자신의 끊임없는 혁신을 가능하게 했고, 그것이 힘이 됐다고 봅니다. 그런 요인들이 시간을 두고 축적되면서 일단 가톨릭이 일반 대중에게 그런대로 괜찮은 종교, 종교다운 종교로 인식돼 왔다고 봅니다.” ― 가톨릭 신자가 늘어났다는 정부의 통계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에서 가톨릭이 부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가톨릭을 너무 거창하게 띄우는 표현이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물론 그것이 500년 전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을 기점으로 잡는다면 ‘부활’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겠지요. 사람들의 영혼을 씻어줘야 할 가톨릭은 그때 한 번 죽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정화(淨化)돼서 이제 다시 사람들이 영혼을 위탁할 만큼 깨끗해졌다면 그런 의미에서는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이제 가톨릭은, 어떤 종교든 권력과 가까워져서는 안 됩니다.” ― 가톨릭 성직자 입장에서 개신교 신자가 줄었다는 통계조사 결과를 어떻게 보십니까? “글쎄요. 개신교 쪽에서 더 많이 생각하실 테니 제가 따로 드릴 말씀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친한 목사님이 ‘개신교 신자가 왜 가톨릭으로 개종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왔는데, 제가 딱 잘라 말했죠. ‘사람은 누구든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하는데, 목사님과 교회가 신자 개인에게 너무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주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하하 웃더군요. 아무래도 신자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종교든 뭐든 일단 마음이 편해야 하거든.” ― 개신교의 열정적 선교 방식에서 본받을 점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있겠죠. 개신교의 열정은 분명히 좋은 점입니다. 또 가정방문선교다, 지하철선교다, 거리선교다 하는 것들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가톨릭 교회에서는 기본적으로 그것보다 좀 더 일상적이고 장기적이며 올바른 종교적 사랑의 실천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것이 일반인들의 마음에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선교로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좀 더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자, 그러한 선교 방식은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
인터뷰 | 경기도 산본성당 연령회장 이상환 | ||
“연령회 봉사는 온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것”
― 연령회(煉靈會)가 일반인에게는 생소합니다. 소개해 주십시오. “본래 ‘연령’이라는 말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머무르고 있는 영혼을 깨끗이 정화해 천국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뜻입니다. 가톨릭 신자 자신이나 가족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의 처음부터 끝까지 절차를 밟아 의식을 거행하고 수발을 들면서 일을 모두 처리해 주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자원봉사죠. 빈소에 모여 앉아 고인을 위한 연도(煉禱, 영혼을 위로하는 기도)도 드립니다. 연령회는 성당마다 구성돼 있습니다.” ― 시신을 운구, 안치하고 조문객을 맞을 빈소도 있어야 할 텐데요? “영안시설은 성당의 기본 시설로 다 마련돼 있습니다. 우리 성당의 경우는 동시에 3구까지 안치할 수 있는 냉동고,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빈소도 다 준비돼 있습니다. 미세한 부분까지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죠.” ― 가톨릭 신자여야 연령회의 도움을 받습니까? “가족 중 신자가 있으면 신자가 아닌 분도 저희가 수습합니다. 또 독거노인이나 어려운 분들도 사회봉사 차원에서 저희가 장례 절차를 대행합니다.” ― 궂은 일인 만큼 사례도 좀 받으셔야 하지 않습니까? “일절 없습니다. 정말 없습니다. 장례용품과 접대음식도 모두 실비(實費)만 내면 됩니다. 대단히 합리적인 가격입니다. 연령회가 그 과정에 단 한 푼도 이익을 보는 일도 없고, 나중에 수고비 같은 것도 1원 한 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을 큰 죄악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령회라고 하면 아는 분들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입니다.” ― 장례를 치르는 것은 상(喪)을 당한 가족에게도 힘에 부치는 일입니다. 그런 일을 도맡아 나서는 이유가 있겠지요? “세상에는 여러 가지 봉사할 일이 많지만 특히 장례 절차는 대단히 당황이 되고 힘든 일입니다. 가장 궂은 일 가운데 하나죠. 그런 일을 바로 우리 신앙인들이 해야 한다, 그것이 곧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일을 당한 가족에게는 진정한 위로가 된다고 봅니다. 오직 신앙심만으로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깊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그런 저희 모습을 보면서 감화돼 가톨릭에 입교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가톨릭의 장점이 많지만, 우리 전통 장례 절차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가족 아닌 사람들이 선뜻 달려들어 일을 치러준다는 점에서 이 연령회를 통해 가톨릭이 일반인에게 쑥 다가섰다고들 합니다.” |
김영현_월간중앙 객원기자 | [2007년 02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