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대구여행
달성 토성 위에 조성된 산책로를 걷고 있는 사람들
금호강과 그 지류인 신천으로 둘러싸인 기름진 들판의 중심에 자리 잡은 대구. 이렇듯 사람이 살기 좋은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기에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많이 모여 살면서 문화를 꽃피웠다. 유적이 발굴된 것을 기준으로 따지면 후기구석기시대인 1만 년 이전부터 사람이 살아왔다. 이후 석기, 청동기, 철기 등으로 도구가 발달하며 집단을 이루었고 자연스럽게 국가가 생겨났다. 이에 따라 문명은 더욱 발달하며 많은 유적을 남겼다. 이중 삼국시대의 흔적을 찾아 대구여행을 시작한다.
동물원으로 친숙한 달성공원의 옛 이름, 달성 토성
달성 토성 위에 조성된 산책로
대구의 중심인 대구역에서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도착하는 달성공원. 드넓은 잔디광장에 곳곳에 쉴 수 있는 벤치가 놓여 있어 찾아오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 197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꽃사슴 다섯 마리를 기증하며 시작된 동물원까지 있어아이들의 손을 잡고 찾아오는 가족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도심에 있는 공원으로 연간 입장객이 200만 명을 웃도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달성 토성 위로 옮겨온 경상감영의 정문 관풍루
공원을 둘러싼 약 1.3km의 산책로를 빼놓자니 서운하다. 공원이 문을 여는 새벽 5시부터 산책로를 따라 운동하는 사람은 꾸준히 늘어만 간다. 돌계단을 따라 오르기도 하고, 소나무 숲 사이를 걷기도 하고, 도심으로 떨어지는 일몰을 감상하기에도 제격이다. 그러나 이러한 산책로가 원삼국시대(삼한시대) 부족국가를 이루었던 달구벌의 성터 ‘달성 토성’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언제나 대구의 역사와 함께하며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공간이건만, 달성 토성이 견뎌온 2,000년 세월을 너무 몰라준다.
달성공원은 달성 토성보다 동물원으로 더 유명하다.
역사가 전하는 부족국가 달구벌과 달성 토성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기록된 ‘서기 108년 신라가 다벌국(多伐國)을 병합한 뒤 서기 261년 달벌성(達伐城)을 쌓았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삼국시대의 대구는 금동관이 출토될 정도로 큰 세력이 위용을 과시하던 곳이다. 나아가 통일신라 시대에는 신문왕이 신라의 도읍을 경주에서 대구로 옮기려 시도하기도 했다. 그만큼 대구는 영남지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지역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이 바로 달성 토성이다. 비록 지금은 동물원으로 친숙한 달성공원이라 불리며 사람들을 반기고 있지만, 그보다 더 오랜 기간 간직한 이름이 ‘달성 토성’인 것이다.
낙동강을 굽어보는 최고의 군사요새, 화원 토성
[왼쪽/오른쪽]화원 동산 입구의 표지석 / 삼국시대 호족의 무덤인 화원 성산리 제2 고분
삼국시대에 건립된 토성 중 달성 토성이 대구 중심에 자리 잡고 있지만, 화원 토성은 낙동강과 금호강의 풍광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에 서 있다. 비록 일제강점기에 유원지로 개발되며 본래의 모습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빼어난 경관만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과거와 다름이 없다. 또한, 달성 토성이 달성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맞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화원 토성은 화원 동산으로 불린다. 즉,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에 위치한 화원 동산이 화원 토성 위에 조성된 것이다.
외형은 시대를 거듭하며 많이 달라졌지만, 화원 동산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로 들어서면 바로 삼국시대 지배세력의 무덤인 화원 성산리 제2 고분이 보인다. 과거에는 수십 기의 고분이 산재했지만, 현재는 화원 동산 조성으로 대부분 훼손되어 4기만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상화토대 안내판
길을 재촉해 언덕길을 더 오르면 ‘상화토대(賞花土臺)’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신라 35대 경덕왕이 가야산에 병으로 수양 중이던 세자를 문병하러 다니며 이곳에 행궁(行宮)을 두어 꽃과 더불어 감상에 잠겼다는 내용이다. 이 주변에서 유심히 관찰하면 흙과 돌로 토성을 쌓은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왼쪽/오른쪽]봉수대가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화원 동산 전망대 / 낙동강과 금호강 두 물줄기가 만나는 풍경
과거 봉수대가 있었던 자리인 전망대를 지나 강변으로 향하면 비로소 낙동강과 금호강 두 물줄기가 만다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달성군이 ‘사진찍기 좋은 경관 명소’로 지정한 곳이 바로 여기다. 낙동강의 상류와 하류를 연결하던 사문진의 일몰을 감상하기에도 제격이다. 국내 최대의 내륙습지인 달성습지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이처럼 화원 토성은 시대가 평화로울 때는 절경을 감상하는 최적지로, 흉흉할 때는 낙동강을 굽어보는 최고의 군사요새로 기능하는 삼국시대의 유적이다.
삼국시대 토착세력의 집단 묘지, 불로동 고분군
[왼쪽/오른쪽]입구에서 바라본 불로동 고분군 / 고분마다 번호를 정해 관리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북대구 나들목에서 도동 분기점으로 가다 보면 그 사이에 우측으로 수십 개의 커다란 무덤이 보인다. 얼핏 보면 대규모 공동묘지로 보일지도 모른다. 사실 ‘공동묘지’라는 표현은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당시의 토착 지배세력의 집단묘지라는 역사성이 간과되어 있을 뿐이다. 이 집단묘지가 바로 ‘불로동 고분군’으로 동구 불로동 일대 야산에 약 214기의 고분이 있다. 또한, 그 중요성에 걸맞게 사적 제262호로 지정되었다.
[왼쪽/오른쪽]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고분 너머로 보이는 도시 모습 / 고분군에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는 노부부
‘불로동’이라는 지역 이름에도 오랜 역사가 담겨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왕 견훤과 벌인 동수전투에서 패하여 도주하다 이 지역에 이르렀는데, 어른들은 피난 가서 보이지 않고 어린아이들만 남아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고분군 일대에서 떨어진 과일을 줍고 있는 주민
과거에는 무덤이라는 인식으로 다른 유적에 비해 찾는 발길이 적었다. 그러나 대구 올레길이 조성되며 불로동 고분군이 6코스인 ‘단사지 가는 길’의 시작점이 되며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고분군에 조성된 산책로를 걷다 보면 남다른 즐거움에 빠진다. 주변에 감, 자두, 살구, 탱자 등 여러 과실수가 있어 땅에 떨어진 과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문화재 관리지역이라 나무에 달린 과일을 먹어서는 안 되지만, 땅에 떨어진 것을 줍는 재미는 쏠쏠하다. 약 1,500년 전에 조성된 고분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도 신기할 뿐이다. 여기에 이색적인 공간이 주는 선물이 하나 더 있으니, 수십 개의 고분군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사색의 시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여행정보
달성 토성(달성공원)
주소 :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공원로 35 40
문의 : 053-521-6407, korean.visitkorea.or.kr
화원 토성(화원 동산)
주소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로1길 40-12
문의 : 053-635-7111~2, korean.visitkorea.or.kr
불로동 고분군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335
문의 : 053-985-6408, korean.visitkorea.or.kr
1.주변 음식점
국일생갈비 : 생 갈비, 불고기 / 대구시 중구 국채보상로 492 / 053-254-5115
교동면옥 : 냉면, 갈비탕 /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로 416 / 053-634-9222
팔도웰빙쌈밥 : 쌈밥, 흑돼지 찌개 / 대구시 동구 팔공로31길 6-3 / 053-985-0124
2.숙소
엘디스리젠트호텔 : 대구시 중구 달구벌대로 2033 / 053-253-7711
용연장 : 대구 달성군 옥포면 비슬로 2312-6 / 053-615-0345
호텔이시아 : 대구시 동구 팔공로 47길 38 / 053-986-7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