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만 해도 지금쯤이면 상권이 확 살아날 것으로 기대했는데, 좀처럼 (상권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네요. 뭐, 언젠가는 (상권이) 살아나겠죠”. 서울 송파구 신천역 주변 먹자골목에서 3년째 의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54)씨의 푸념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천역 중심으로 형성된 이른바 ‘신천역 상권’이 맥을 못 추고 있다. 주변 재건축아파트가 하나 둘 새로 입주하면서 상권이 부활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직까지는 시장이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면도로 주변엔 권리금 없는 임대 물건 나오기도
이면도로를 중심으로 권리금이 없는 임대 물건도 더러 나오고 있다. ‘점포 정리’라는 팻말을 붙인 빈 상가도 적지 않다.
잠실동 대성공인 최원호 사장은 “액세서리 상품 등 젊은이들을 위한 업종은 그나마 장사가 잘 되지만, 주변 아파트 단지들이 일제히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빠져나갔던 배후 수요가 좀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전했다.
재건축 단지인 레이크팰리스(옛 잠실주공4단지)와 트리지움(옛 잠실주공3단지) 등이 입주했으나 수요가 상권을 받쳐줄 만큼 탄탄하지 않다는 얘기다. 신천역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그나마 10~20대 젊은층 중심의 외지인 수요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점포들이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물가 상승 감안하면 밑진 장사”
현재 신천역 메인거리 1층 점포의 경우 66㎡ 기준으로 보증금 1억원에 월세 350만원 수준이다. 1층 33㎡ 점포는 보증금 2000만∼3000만원, 월세 100만∼250만원, 권리금 5000만∼1억5000만원 정도다. 잠실 일대 재건축 단지 이주로 상권이 ‘말살’되기 전에 형성된 시세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물가 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밑진 장사’라는 게 현지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메인거리에선 상가 권리금도 조금 붙었다. 장사가 잘되는 20㎡ 짜리 1층 점포의 경우 권리금이 1억원 가량 붙었다. 하지만 이는 4~5년 전에 비하면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잠실동 굿모닝공인 강수자 사장은 “대로변과 코너 1층 상가들은 아직까지 장사가 잘되지만 가격이 너무 올라 실제 문의나 거래는 거의 뜸한 편”이라고 말했다.
상권 활성화 더딘 이유 있나한때 명동·신촌 등과 함께 서울 10대 상권의 한 축을 형성했던 신천역 상권. 잇단 잠실 재건축단지 입주에 불구하고 이 상권이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현지 부동산중개업계에선 배후 수요 부족을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레이크팰리스와 트리지움이 입주했지만 아직까지 입주율이 낮아 상권 회복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입주한 레이크팰리스는 빈 집이 거의 없지만, 지난 8월말 입주한 트리지움의 경우 입주율이 50% 선에 머물고 있다.
신천역 상가시장의 경우 전통적으로 유흥 성격이 강하다는 것도 상권 활성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현재 신천역 상권은 한마디로 20대 젊은이들의 ‘유흥’ 기능 하나로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유흥 상권의 특성상 업종은 술집과 음식점이 양대 축을 이루고 있다. 음식점 중에는 중저가 돼지고깃집이 단연 많고 술집은 저가 소주·호프방이 주축이다.
잠실동 송파공인 김미자 사장은 “소비력이 강한 주부와 직장인 대상의 클리닉·피부관리점·헤어숍 등이나 중·고생 대상의 학원가가 형성되기 힘든 것도 유흥 이미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동인구의 60% 이상이 10~20대 초반의 젊은층이라서 주머니가 가볍다는 것도 점포 매출을 높이기 어려운 이유다. 또 상업지역인 대로변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천역 상권 구역이 제3종 일반 주거지역이라 주차시설이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상권의 집중도도 낮은 편이다. 즉, 소형 매장만 많을 뿐 1층 기준 대형 매장(165㎡ 이상 대형 평형대)이 적어 임차인 입장에서 선택 폭이 좁다. 넓은 점포가 필요한 대형 프랜차이즈 업종들이 쉽게 들어오기 힘들다는 얘기다.
상권 부활 기대감 여전신천역 상권이 옛 명성을 많이 잃었지만 상권 부활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하다. 이미 레이크팰리스(2678가구)와 트리지움(3696가구)이 입주한 데 이어 내년까지 2만4000여가구 재건축 단지가 들어서면 상황이 반전될 것이란 희망이다. 그래서 많은 현지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지금 신천역 상권은 한마디로 ‘숨고르기’ 상태”라고 말한다.
잠실동 한솔공인 현금순 사장은 “인근 잠실 일대에서 재건축 단지 입주가 완료되면 배후 수요가 많아지고 상권 수요의 연령대도 높아져 결국 상가 몸값도 상승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잠실 대성공인 최원호 사장은 “상가 점포들이 일정 정도 구조조정을 거친 뒤 대형 프랜차이즈 업종들이 많이 들어서면 자연스레 상권의 고급화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신천역 상권이 기존 젊은이 위주 상권에서 중산층 고정고객 수요가 뒷받침되는 생활밀착형 업종 중심 상권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상가뉴스레이다 정미현 연구원은 “신천 상권을 배후로 두고 있는 인근 삼전동 등의 상가주택이나 단독주택 투자를 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