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 ‘명품 재테크 자문단’은 19일 중앙일보 본사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2시간 넘게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회는 고현곤 경제·산업 에디터가 맡았다.
사회=부자의 개념부터 정리해 보자. 현금과 부동산을 얼마나 갖고 있어야 부자인가.
한동철 교수=전 세계 70억 인구 중 부자는 1000만~1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재산 규모에 따라선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재산이 1000억원 이상인 ‘절대적 부자’, 수백억원 정도인 ‘상대적 부자’, 수십억원 정도인 ‘한계적 부자’다.
이재경 상무=우리나라 부자들도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 오너의 가족들이다. 이들은 자금 담당자가 따로 있다. 안전자산 위주로 투자한다. 다음으로 대기업의 고위직이다. 이들은 20억~30억원의 현금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업이 너무 바쁘다. 주부보다 금융지식이 떨어진다. 세 번째가 자수성가한 중소기업인이다. 이들은 자기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재테크 지식을 구하고 오피니언 리더 사회에 속하고 싶은 욕구도 강하다. 재테크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부자들이다.
윤설희 센터장=과거엔 한 은행이나 증권사에 현금으로 10억원 이상을 맡기면 부자로 봤다. 2~3년 전부터 그 정도로는 고액 자산가라는 타이틀을 붙이긴 어렵게 됐다. 강남 부자들은 대개 5~6개 금융회사와 거래한다. 한 곳에 20억~30억원씩 맡긴다면 전체 금융자산은 100억~200억원 정도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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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희 부회장=우선 낭비를 하지 않는다. 내가 만난 개성상인 한 명은 수백억원대 부자인데 “자장
면 값이 30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랐다”며 꼭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하지만 선행이나 사회공헌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깜짝 놀랄 만한 금액을 과감하게 낸다. 또 부자는 상상력이 풍부하다. 어떤 부자가 더운 여름에 자녀에게 사이다를 사오라고 시켰다. 잠시 후 이 자녀는 “몇 군데 가게를 돌아다녔지만 물건이 다 떨어졌다”며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그는 바로 관련 회사의 주식에 투자해 큰돈을 벌었다.
윤설희 센터장=근검절약은 부자의 공통점이다. 대리주차비로 1000~2000원을 내는 것도 아까워하는 부자를 많이 봤다.
이정조 대표=부자들은 위기에 강하다. 경제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부자로 재탄생한 경우가 많다. 부자는 또 사회 전반의 변화에 민감하고,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정보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신문 등에 공개되기 전에 관련 정보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변화의 흐름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공짜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발품을 팔면서 내공을 키워간다. 자기가 하는 본업에도 열정적인 프로다.
김중래 상무=가업의 승계·상속 관련 업무를 하면서 기업 경영자나 오너를 많이 만난다. 세금과 관련한 복잡한 내용을 설명하면 나이가 많아도 계속 질문하면서 세부적인 것까지 알고 싶어하는 학구열이 강하다. 사고의 폭이 특정 분야로 국한되지 않고 폭넓게 생각한다.
고준석 지점장=부자들은 시장 흐름에 유혹당하지 않는다. 결정엔 신중하지만 한번 결정을 내리면 머뭇거리지 않고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긴다. 투자에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다. 훌륭한 멘토를 두고 수시로 조언을 구한다. 이전 세대 부자들의 경우 가장이 혼자 판단하고 투자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배우자와 함께 즐기면서 투자하는 것도 특징이다.
사회=부자들은 주로 어디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 있나.
박의준 소장=몇 년 전 싱가포르에서 열린 ‘포브스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여기선 부자들의 관심사를 요트·샴페인·우주관광·건강·교육의 다섯 가지로 소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세계적 부자들의 소비 행태가 달라지면서 이런 분야가 유망 산업으로 각광을 받는다는 설명이었다.
이재경 상무=부자들의 관심은 정말 다양하다. 그리스 사태가 터지면 유럽 투자 전망에 대해 물어보고 미국 경기가 좋아진다고 하면 뉴욕 증시에서 직접 사는 것을 고려한다. 실물 투자에서도 와인이나 그림은 물론 보석 등으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금융회사의 프라이빗뱅킹(PB)도 종합 컨설팅이 필요해졌다. PB는 전담 매니저 역할을 하고, 그 뒤에는 변호사·세무사·회계사 등 전문가 그룹의 지원을 받는 식이다.
김순응 대표=부자들이 살다 보면 지친다. 영혼의 안식처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림·골동품·보석·와인 등을 즐기면서 투자하고 싶어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 부자인 멕시코의 카를로스 슬림이 지난 3월 멕시코시티에서 초대형 개인 미술관을 연 것을 들 수 있다. 이곳에선 다빈치·로댕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포함해 6만6000여 점의 개인 소장품을 무료로 전시한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인이 막연히 그림이 좋다는 말만 듣고 뛰어들었다간 십중팔구 실패한다.
조재홍 상무=주식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주식시장이 좋을 때만 잠깐 투자하다가 빠져나와 다른 대안을 찾았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때는 나라가 망하는 줄 알고 도망가는 데 급급했다. 하지만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졌을 때는 부자들의 태도가 과거와 달랐다. 위기를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좋은 투자 기회라고 판단하고 뛰어들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이 성공했다.
고준석 지점장=우리나라에선 아파트가 부동산 투자의 대명사처럼 돼 있다. 하지만 부자들은 중소형 빌딩과 상가 건물 같은 수익형 부동산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일반인은 당장의 임대 수익만 놓고 계산기를 두드리지만 부자들은 미래의 자본 수익까지 보고 투자한다. 상속에도 유리하다. 100억원을 현금으로 자식에게 물려주려면 절반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반면 수익형 부동산은 기준시가에 따라 과세하기 때문에 과표가 크게 줄어든다.
박원갑 소장=상가는 종합부동산세에서 제외되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투자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주식·채권 같은 ‘종이조각’이 아닌 실물에 투자함으로써 재산을 굳히려는 목적이라면 괜찮다. 하지만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투자전략으로서 상가 매입은 현재로선 매력이 별로 없다. 전반적으로 공급 과잉 상태라서 시세 차익을 크게 기대하기 어렵고 임대 수익률도 연 4% 정도에 불과하다. 자칫 세입자 관리나 건물 유지 비용 등으로 골치 아플 수 있다.
사회=부자들도 고민은 있을 것이다.
박의준 소장=가장 큰 고민은 가업의 승계 문제다. 십중팔구는 자식에게 평생 일군 가업을 물려줄 때 세제가 매우 복잡하고 세율도 높다는 것 때문에 고민한다.
김중래 상무=소득세나 상속·증여세 등 대부분의 세금은 과세표준이 커질수록 내야 할 세금이 크게 늘어나는 누진 구조다. 따라서 장기간에 걸쳐 자산을 분산해 승계하는 게 필요하다.
윤설희 센터장=우리나라 부자들이 제대로 못하는 게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다. 끝에 가선 세금이란 벽에 부딪친다. 미리 물려주면 다양한 절세가 가능하지만 그랬다가 자녀들에게 ‘찬밥 신세’가 될까 걱정한다. “다 물려줬더니 며느리가 다음 날부터 밥상도 차려주지 않더라”는 말까지 나온다. 부를 형성한 1세대가 자녀들에게 올바른 부의 개념을 물려주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부를 소비하는 주체는 자녀들이다. 이들에게 단순히 재산만 물려준다면 앞 세대의 부를 지키지 못한다.
고준석 지점장=당나라 태종의
이재경 상무=그래서 우리 회사에선 기부 컨설팅이란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사회공헌이나 기부를 하고 싶어도 의외로 장애물이 많다며 하소연하는 경우가 있다. 제도적으로 정비가 덜 돼 있기 때문이다. 부자들의 기부를 사회적으로 뒷받침해줄 필요가 있다.
사회=부자를 꿈꾸는 일반 사람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김순응 대표=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 중산층 이하 사람들은 부자에 대한 패배의식이 있다. 그걸 버리고 부자들과 어울리고 놀아야 기회가 생긴다.
박원갑 소장=강남 부자들 방식을 무조건 따라가면 돈 번다는 건 실제라기보다 일종의 이데올로기다. 부자들 중에는 부동산 버블 시기에 운이 좋아 큰돈을 번 사람이 많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예컨대 박찬호·이승엽 선수가 강남 요지에 빌딩을 샀다고 하면 마치 훌륭한 재테크 방법인 것처럼 회자된다. 하지만 착각해선 곤란하다. 그들은 재테크로 큰돈을 번 게 아니라 본업에서 성공해서 번 것이다.
조재홍 상무=앞으로 부동산으로 큰 부자가 될 기회는 적다. 반면 주식시장에서는 남들과 거꾸로 투자하면 반드시 기회가 생긴다. 요새처럼 주가가 많이 올랐을 때 뒤늦게 따라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주가가 한 차례 크게 떨어질 때를 기다렸다가 남들이 팔 때 사라.
강창희 부회장=부자들은 심하게 표현하면 인간적인 삶보다는 돈 버는 일 자체를 목표로 하는 사람이 많다. 부자 흉내를 낼 게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인생설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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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철의 ‘부자는 다르다’] ‘그집 상한 고기, 다 사와라’
[중앙일보] 입력 2011.05.21 01:20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
부자학연구학회 회장
부자의 색깔은 검은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돈에 검은색을 연결시키는 게 대표적입니다. 매일 나쁜 짓을 해도 별로 티가 나지 않는 것, 그것이 부자들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자도 하얀색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제가 만든 ‘부자시민행동(Affluent Citizenship Behavior)’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부자가 풍요한 시민으로서 적절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부자시민행동은 4개로 구성돼 있습니다. 스포츠맨십(Sportsmanship), 신사도(Gentlemanship), 지도력(Leadership), 봉사헌신(Servantship)이 그것입니다. 한마디로 부자가 원칙을 지키고, 품위를 유지하고, 사회를 이끌면서, 남들에게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왜 힘들여 번 내 돈과 내 시간을 남들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부자들이 대체로 가난한 사람의 돈을 받아 부를 쌓았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거의 공통된 사실입니다. 부자들은 다른 부자의 돈을 받아서 재산이 불어난 게 아닙니다. 부자가 아닌 분들의 것을 받아서 자산가 반열에 오른 경우가 많지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부자는 쓰는 돈보다 버는 돈이 더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부자시민행동을 적극 실천한 사례가 많습니다. 먼저 모르는 남들을 위해 돈 쓰는 부자들이 그렇습니다. 제가 만난 어느 여성 부자는 ‘세금 납부가 가장 좋은 애국 사업’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회사가 힘들어 어쩔 수 없이 밀린 세금은 그 다음에 사업이 흥하면 반드시 다 갚는답니다. 그러고 나서 밀렸던 세금만큼의 사회 기부를 추가로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시골에 사는 어느 부자는 저녁식사를 위해 “고기를 사오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구입한 고기가 상한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곤 돈을 내주며 “그 고기를 몽땅 사오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기를 모두 땅에 파묻기 위해서였습니다. 가게 주인은 계속 상한 고기를 팔 것이고, 누군가는 몸에 해로움을 당할 테니 미리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자기 돈으로 좋은 일을 한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서울 근교의 어느 부자는 자신의 공장으로 들어오는 도로에 아스팔트가 안 깔려 동네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론 공장으로 원재료를 배달하는 트럭들도 덜컹거려 불만이 끊이지 않았고요. 그는 큰맘을 먹었습니다. 회사로 들어오는 도로 몇 킬로미터에 자신의 돈으로 아스팔트를 쫙 깔았습니다.
감행하기 쉽지 않은 희생을 보여주는 부자도 있습니다. 필자가 자주 만나는 연로한 의사가 들려준 과거사입니다. 한국전쟁 때입니다. 어느 부잣집에서 아들과 조카가 같이 숨어 있었습니다. 공산군이 젊은이들을 찾으러 오자 부자는 조카를 숨기고 친아들을 내주었습니다. 결국 친아들은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숙부의 큰 뜻을 평생 마음에 새긴 그 조카는 나중에 의사로 부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세금을 완벽하게 냈습니다. 너무 많이 세금을 내니 세무서가 예단을 했답니다. 소득이 어마어마하리라고 말이지요. 집중조사를 나왔습니다. 모든 자료를 다 제공했더니 하도 깨끗한 것에 놀라서 세무서 직원들이 인사를 크게 하고 갔답니다. 남부럽지 않은 부를 축적한 어느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들을 데리고 외식할 때 한 번은 비싼 곳으로, 한 번은 가난한 데로 꼭 데리고 갑니다. 벤츠를 타고 허름한 감자탕 집에 들러 왁자지껄한 곳에서 뼈 추가하는 데 얼마라고 반드시 인지시킵니다. 이유는 부자가 아닌 사람들의 생활을 알아야 나중에 손자들이 회사를 물려받더라도 아랫사람들의 어려움을 안다는 것이지요. 또 재산액 자릿수가 12자리가 넘는 거부 한 분은 아주 평범한 곳에 살면서 중형 국산차에 차림도 수수하게 입고 다닙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제가 호화롭게 살면 남들이 저를 보며 열등감을 느끼거나, 그냥 불편한 감정을 가질 수도 있겠죠. 나도 편하고 저를 보는 분들도 편하게 되어야겠지요”라고 답하시더군요. 사실 우리는 원래 백의민족 아닙니까. 먹물이 쥐꼬리만큼이라도 튀면 더럽게 보는 그런 사람들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일부 검은 부자들’이 순백의 하얀 부자들로 거듭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부자학연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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