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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체험수기 / 나의 갈릴래아
2022.11.6
교구에서 실시한 신앙생활 체험수기 응모한 글입니다.
과거 부끄러운 신앙생활에 대한 고백이지만
주님은 회개하는 사람 하나를
소중하게 여기시고 더 기뻐하시지요.
지금 힘든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공유합니다.
나의 갈릴래아
갈릴래아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처음으로 만나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한 꿈과 희망과
서로의 신의와 사랑을 키운 곳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하여 실의에 차있던 제자들을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다시 찾아주시고 예수님과 함께했던 기억을 상기시켜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며, 새로운 열정을 불어 넣으시어,
새사람으로 변화시키신 곳도 갈릴래아입니다.
그리고는 40일 후 승천하셨지요.
대부분 신자들은 영세 때가 갈릴래아겠지만
나에겐 영세 때는 결혼을 위한 수단으로 별 느낌이 없었고
돌아보니 진정한 갈릴래아는 어려운 시기인 광야시절,
주님과 함께 한 시절인 것 같습니다.
요즈음도 신앙여정이 힘들고 나태해지면
그 때를 기억하며 힘을 얻곤 합니다.
이 글은 광야체험 7년 후 퇴직하고 서울을 떠나
여주에서 주님과 함께 2막 인생을 살 때
나의 광야시절인 동시에 갈릴래아를 회상하며 쓴 글입니다.
서울에서 여주로 이사하여 10년 살고,
지금은 제주로 이사와 7년째 살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만나는 사람마다 제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과 함께하는 오늘을 사는
일상도의 삶을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 했삽나이다.
님은 나와 같이 계시건만 나는 님과 같이 아니 있었나이다.
당신 안에 있잖으면 존재조차 없을 것들이
이 몸을 붙들고 님에게서 멀리했나이다.
7년 전 까지만 해도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고백하신 것처럼
주님 안에 있지 않으면 존재조차 없을 것들에 쫓기듯
매일매일의 삶을 여유 없이 살았고
얼굴은 늘 근심 걱정에 찡그린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1980년 제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처가집에 인사하러 갔는데
장모님께서 사위감으로 별로 탐탁하지 않았는지
떼어버릴 생각으로 조건을 걸었습니다.
외지에서 낳고 자란 사람을 무얼 믿고 딸을 주느냐고 하시며,
영세를 받으면 나에 대해 모든 것을 믿고 딸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곧 바로 성당에 알아보고 교리반에 입교했고
6개월 동안 개근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의 신앙생활은
겨우 주일만 지키는 신앙생활을 18년 동안 했습니다.
단체활동도 하지 않았고, 기도 생활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공부하고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정생활도 원만하지 못했는데
모든 것을 먹고 살기 위해 그런다는 이유로 합리화시켰습니다.
그런대로 직장생활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회사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 인정받음이 모든 어려움을 보상해 주었고
그것이 행복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1997년 IMF이후 외국회사와 조인트 벤쳐가 된 후
경영권을 외국회사에서 갖게 되었고 많은 마케팅 직원을 퇴직시켰는데
그 와중에 나는 다른 업무를 할 것을 권유받아
영업교육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각광받던 마케팅팀에서 한직으로 밀려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던 시절...
내가 그토록 추구해 왔던 남에게 지지 못하는 일류병, 칭찬,
인정, 인기, 자존심 등이 한꺼번에 무너진 듯한 절망감에
스스로 깊은 구렁으로 빠져들어갔던 시절...
다른 사람이 나를 조소하는 듯한 느낌 때문에
동료 후배들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숨고만 싶었던 시절...
거의 3개월 이상 잠 못 이루는 불면증과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에 시달리고
한편으론 아내의 수술, 전세금 반환 문제와
아파트 입주 문제 등으로 죽고만 싶던 때...
내 스스로 해결하려고 친한 친구도 찾아보고
정신과에도 가보고 한의원도 찾아가고
수녀님이 추천해주신 책과 테이프도 들어보고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실망감과 공허함 뿐.
2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도 안타까우셨는지
꿈결에 하얀 소복차림으로 시골에 있는 선산에서부터
매일 조금씩 제가 살고 있는 집 가까이로 오시더니
나중에는 집 앞 버스 정류장 맞은편까지 오셨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어서 어머니 품으로 오라는 듯
당시엔 심지어 우리집 개가 부럽고
세상을 하직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지요.
이 때가 저의 광야생활이었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요.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의 한 마디.
"당신 그렇게도 정신을 못 차리면
주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깨우쳐 주실거야.
예를 들면 내가 수술받다가 잘못 되든지...
아니면 하나 밖에 없는 딸 유나가 무슨 사고를 당하든지.."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에는 섬광 같은 느낌이 오면서
'그래 정신을 차리자. 주님께 매달리자'는 생각이 들어
매일미사 참례, 성서쓰기, 묵주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강남 성모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던 아내를 찾아오신
스승 수녀님의 기도와 한 마디 말씀도
나에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묵주기도는 주님의 일생을 묵상하면서
성모님과 함께 드리는 좋은 기도이니 자주 바치라고 하시면서
시작 전에 '성모님, 제가 지금 몹시 힘듭니다.
한 발짝만 저와 함께 떼어 주십시오' 하고 나서
기도하라는 말씀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합니다.
출퇴근 전철에서, 점심 후 회의실에서
시간만 나면 묵주를 손에 들고 기도를 했지요.
그러자 서서히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가슴을 찌르는 고통도
줄어들어가는 것을 느꼈고 여러가지 걱정거리들도
하나 하나 해결이 되는 것을 보면서 주님의 은총을 느꼈습니다.
신앙 생활을 20여 년 하면서도 그 동안 느끼지 못하고
무덤덤하게 살아 왔던 무딘 마음에 주님의 사랑이 들어오면서
내 마음도 서서히 부드럽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서야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이제 나도 주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기도 중에 결심하곤 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정상으로 회복된 후 생각해 보니
아프기 전과 후가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이 이렇게 평화스러운 것은 왜일까?
원효대사가 했다는 말 '일체유심조' 즉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동안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해 왔던
부귀, 명예, 존경, 건강, 자존심 등에 대한 것이 뭐가 그토록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내 구원의 문제요.
구원에 이르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지...하는 생각으로
내 인생관, 가치관이 바뀌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이제부터는 인생을 주위를 둘러보면서
서로 나누고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뀐 것이지요.
그 이후에는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내 십자가라고 생각하고
불평 없이 지고 가면서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다 보니 내 마음은 평화와 기쁨이 넘치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주시는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부터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고
매일미사에도 참례하고 기도 생활도 하면서
하느님의 사업에 더욱 비중을 두는 생활을 하게 되었고
내 마음은 점점 평화로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교육팀에서 일하게 된 것도
다 주님의 배려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더욱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이끌어 주셨고 나는 이에 응했던 것입니다.
2천년을 1주일 앞두고는 가족 모두가 장기기증을 했고,
우리 부부는 시신기증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하고 나니까 정말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앙 생활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점점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즐기게 되면서는
기도중에 '주님, 시간을 주십시오.
저는 승진도 필요 없고 해외출장도 필요 없습니다.'
하는 기도가 거침없이 흘러 나왔습니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변화였습니다.
정말 성령으로 가득찬 은혜로운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교육팀에서 일하면서 시간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고
성경공부, 선교활동, 카페에 글 올리기, 교회의 봉사활동 등을 할 수 있었고
나 자신도 조금씩 성화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하기 싫었던 교육팀이 지나고 보니 은총이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다 잘되도록 돌보아 주시는데
이를 싫다고 외면하는 것은 우리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이후로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퇴직하기를 원하는 것 같았을 때도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순리대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제와 돌아보면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임을 알게 됩니다.
늘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 것을 다짐해 봅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주님만 있으면 모든 것이 좋다.
0 +God = Good
제주교구 신창성당 지학남 스테파노
신앙생활 체험 수기 응모자 나눔의 시간 및 시상식이 11.6 교구청에서 있었지만,
나는 1차 성지순례 중으로 참석치 못해 아쉬움이 많았다.
표창장은 본당으로 보내왔고, 상금은 계좌이체로 받았다.
자동차 Key에 대한 단상
2022.11.18
며칠 전 잃어버렸던 자동차 Key를 어제 찾았습니다.
자동차키는 2개로 한 개는 아내가, 그리고 한 개는 내가 갖고 다닙니다.
둘다 기억력이 떨어져 물건을 자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에
항상 열쇠두는 장소를 마련해 운전이 끝나면 그곳에 둡니다.
지난 성지순례 중 계기판에 여러가지 점검하라는 불이 들어왔습니다.
느낌표, 몽키 스패너, 공기압 체크, 스마트키 배터리 교체 사인도 있었기에
2차 성지순례을 앞두고 자동차 점검을 위해 정비소에 예약을 해놓았습니다.
정비를 하러 가려고 보니 열쇠 2개가 모두 없는 것입니다.
우리부부가 모두 자기 열쇠를 찾았는데, 아내는 가방에서 찾았지만
제것은 미사때 입고갔던 점퍼와 바지 주머니를 찾아보고
집안을 샅샅이 뒤져도 없었습니다.
월요일 새벽미사를 다녀온 후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까지는 Key를 갖고 온 것으로 추정되어 집안에서만 찾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민구(개) 산책을 위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미사책과 휴대폰은 아내에게 주고 산책을 다녀온 것이 생각났습니다.
이틀이 지났지만 혹시나 하고
산책했던 길을 샅샅이 훑으며 찾았지만 없었습니다.
그냥 하나 구입하고 싶어서 정비소에 전화를 했더니
미리 결재하고 부품이 준비되는 시간이 필요해
4일 후에 준비가 된다며 가격은 18만원 이라고 했습니다.
가격을 듣는 순간 예상보다 비싼 사실에 놀라
아내는 다시 찾아보라고 독촉하고 나도 아까운 생각이 들어
집안과 산책했던 길을 다시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할 수없이 아내 통장으로 입금을 시키고 나는 마늘밭 검질하러 나가고
아내는 정비소에 방문후 판매용 대림환 40개 만들 재료를 사러 시내에 갔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오후 1시에 돌아온 아내가 키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기쁜 소식을 나에게 전하려고 했는데 핸드폰을 집에 두고 갔기에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하며 찾은 경위를 말했습니다.
곰곰히 생각을 더듬어 보니 집주위에서만 찾았는데 혹시
성당에서 흘린 것은 아닌지하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
시내가는 길에 성당주차장을 둘러보았답니다.
그런데 주차장 전기선 연결된 곳에 키가 놓여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교우분이 땅에 떨어진 것을 찾기쉽게 얹어놓은 모양입니다.
그 순간 너무 기뻐 가슴이 벌렁거리며
'주님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 수없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 동전 한닢
그리고 집 나간 아들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지요.
산티아고에서 한 외국인이 잃어버린 알록달록한 양말 한 짝을
가던 길을 돌아오면서 애타게 찾다 포기하고 걷던 중
앞에서 길을 걷던 순례자들이 찾았다는 함성을 듣고 달려가
함께 기쁨을 나누던 일도 생각납니다.
그때도 찾기 쉽게 전봇대 올라가는 발판에 누가 걸어놓았지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 정비한 총 금액이 18만원이랍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마련해주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과거에는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신앙체험을 한 후에는 모든 것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며 도와주신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20여년 전 5년 동안 성가복지병원(무료)에서 봉사할 때
수녀님들과 봉사자들이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하는데,
자주 부활하신 예수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병원에 쌀이 떨어져간다고 이야기하면 예수님께서 들으신 것처럼
다음날 어느 분이 익명으로 쌀을 갖다놓기도 하고
행사에 과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그날 저녁에
트럭에 싣고 아파트를 돌며 장사하시는 과일 행상하시는 분이 퇴근길에
오늘 장사가 잘 안되어 많이 남았는데 집에 가지고 가면
상할 우려가 있어 가는 길에 놓고 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비슷한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기에 정말 부활하신 예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돌보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어떻게 하면 남들처럼 믿음이 커질까 생각하며,
기적같은 체험을 겪어야 올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에 꿈결에라도
예수님이나 성모님 옷자락이라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성가복지병원에서 봉사한 후에는
조그만 예수님 체험들이 모여서 믿음이 자란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우연히' 라는 말은 쓰지않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도와주셨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차 성지순례에서도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많은 천사들을 만났지만
2차 여행준비 과정에서도 만났기에 다가오는 2차 순례도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