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봄
박 현 기
새벽녘 깜빡 잠이 들었던가 보다. 소스라쳐 일어나니 바람은 여전히 어제처럼 세차게 불고 TV 화면은 능선을 타오르는 불길을 비추느라 시뻘겋다. 내 고향 영덕군 축산면이 이렇게 뉴스의 중심에 서게 될 줄은 몰랐다. 밤사이에 몇 마을이 전소되었다는 뉴스는 참 기가 막힌다. 불구덩이 속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형님에게 또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여동생에게 걸었다. 발신음만 가뭇없이 허공으로 사라진다. 어제저녁 아홉 시쯤부터 아무에게도 전화가 되지 않는다. 고향 마을로 향하는 불길을 지켜보며 밤새 마음만 졸였다. 당장 달려가 보고픈데 도로마저 막혔다. 산불 때문에 통신이나 도로가 두절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제 아무리 잘난 척 똑똑한 척 살아도 거대한 자연재난에는 당할 재간이 없음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걱정이 산불만큼이나 뜨겁다.
“그때 아버님이...” 반쯤 포기한 상태로 아침밥을 먹는데 아내가 옛날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우리 식구들에겐 잊어버릴 수 없는 추억이다. 집안의 연중행사 중 음력 시월 첫 토요일은 묘사를 지내는 것으로 못 박혀 있었다. 그날도 산소에 가기 위해 후손들이 모두 모였고 아버지는 당신 손주들을 앞세우고 동요를 부르며 선산으로 갔다. 젊은이들이 먼 산소를 다녀오는 동안 불을 피웠는데 바람이 조금 거셌다. 불은 순식간에 선산을 태웠고 아버지와 아이들은 모두 불을 끄느라 혼이 반쯤 나갔다. 동네 사람들이 달려오고, 미리 간벌작업 해놓은 덕에 더 큰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잠깐의 방심으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그을음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그 현장에 있었던 아내와 아이들은 몇 년간 자다가 깜짝깜짝 놀라는 후유증을 앓았다. 벌써 삼십여 년 전이지만 산불만 보면 생각나는 끔직한 일이다.
휴대전화가 문자 왔음을 알린다. 형님이 보냈다. 무엇보다 반갑고 고맙다. 열었더니 오 맙소사! 불길에 휩싸인 고향 앞산 사진이다. 어두운 밤하늘이 불길로 빨갛다. 검은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강렬하다.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덮쳐오던 불길이 바람 방향이 바뀌면서 바닷가로 갔고, 그 난리통의 진로에 있던 주유소와 마을, 지나가던 자동차가 전소되었단다. 정전과 통신두절 상태에서 연기와 불냄새, 마구 휘날리는 재 때문에 지옥 같은 밤을 보냈지만, 우리 마을과 일가친척들이 안전하다니 불행 중 다행이다. 산골 마을과 바닷가마을 몇 군데가 전소되었고 사람들은 우리 집 옆의 면사무소에 대피해 있다는 소식도 곁들인다. 여동생 내외도 안전하니 통화가 되지 않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란다.
사람 마음이란 게 간사해서 내 형제자매가 안전하다니 좀은 누그러진다.
며칠 후 교통통제가 풀리자마자 아내와 고향으로 향했다. 구경 중에 잔인한 것이 물구경 불구경 싸움구경이라 하지만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안동에서 영덕까지의 고속도로는 화마가 내달린 길이다. 그 길을 가야 한다. 대구에서 의성까지는 봄이 실감났다. 막 물오르는 초록이 싱그럽고 진달래와 산벚꽃이 흐드러진 한 폭의 수채화였다. 이번 산불의 발화지인 의성 안계를 지나자 가깝고 먼 산야가 온통 새까맣다. 길옆의 잔디까지 알뜰히 탔다. 안동을 지나고 길안을 지나고, 보이느니 황량한 검은 색뿐이다. 산은 검정 크레파스를 죽죽 그어놓는 것 같고 집은 아예 형체도 없이 재만 남았다. 고향을 오갈 때마다 들리던 청송휴게소는 하얀 가림막에 둘러싸여 있다. 보이는 모든 것이 참혹하다. 전쟁이 나면 이럴까. 아무리 봐도 전쟁보다 더 비참한 재난이다.
바닷가 마을은 볼수록 황당하다. 안동 영덕 간 고속도로를 달려온 불이 마지막 종점에서 온갖 난동을 부렸다. 고스란히 재가 된 집으론 부족하여 배까지 불탔다. 연기와 불길에 갇힌 사람을 해양경찰이 배를 타고 가서 구조했단다. 우리가 가끔 묵었던 펜션은 석축에 새긴 상호만 남았다. 후덕한 주인 부부의 절망하는 모습이 퍼뜩 떠올라 아픔을 더한다. 아마 면사무소의 대피 시설에 있을 것이다. 목재와 패널로 지은 건축물은 영락없이 재가 되었고 시멘트와 벽돌로 지은 건축물은 그나마 형태를 유지했다. 영덕 대게와 청정한 자연으로 명성이 자자한 마을인데 언제쯤 다시 복구할 수 있을까. 가능하기나 할까.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고 파도만 무심히 방파제를 때리고 있다.
인간의 무절제함과 무책임함에 분노하고 아파하며 천천히 바닷길 모퉁이를 지나는데 산기슭 불탄 자리 아래에 산벚꽃 한 그루가 환하다. 배경이 암울하니 더 밝게 대비된다. 자세히 보니 진달래 몇 포기도 있다. 그래도 살아남았구나. 감격스럽고 반갑다. 이런 걸 자연의 섭리라고 해야 하나. 이치라고 해야 하나. 바로 눈앞의 불길 속으로 모든 것이 소멸하고 있음에도 탄생은 계속되고 있었으니 오, 위대한 생명이여! 고향집 마당의 부지깽이나물에 날아와 앉은 불티를 형수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툭툭 털더니 새순을 뜯는다. 바지랑대에 걸린 건조망 속에서 물가자미 몇 마리도 꺼내어 비닐에 싸준다. 집도 배도 타버린 바닷가 지인에게 약간의 도움을 줬더니 고맙다며 오늘 아침 가져다준 것이란다. 대피소에서도 일상을 유지하려 고기잡이를 한 모양이다. 검게 타버린 봄의 한켠을 환하게 밝히는 빛이 있었다.
첫댓글 산불을 두 번이나 내어보아서
위력을 가까이서 실감했었지요
아름드리 소나무가 휙 타버리는데 걸리는 시간 0.5초
겁나기 보다 무썹습니다
어쩌면 산불도
자연의 흐름이 아닐까 싶네요
어릴적 산에는 깔비(마른솔잎 )는 물론이고 잔디까지 깎아
땔깜으로 썼으니 산불이 그리 오래 번져가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너무 울창한 숲이 스스로 답답해 태우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래지 않았는데도
불탄 그 산들은 벌써로 일부러 만든 목초지처럼
푸르름을 드러내니 또 한번 자연의 힘을 느낌니다
그때 피해를 당한 분들도 자연처럼 복원 하셨기를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