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발견, 조기 치료'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의학상식. 그러나 질환 중에서도 특히 서두르지 않으면 후회막급인 병들이 있다. 발병 초기에 발견하면 쉽게 잘 낫지만 조금만 늦으면 치료가 어렵고 후유증이 남는다. 시간을 다투는 질환엔 어떤 것들이 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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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K씨는 최근 해외 출장 중 입술이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낭패를 겪었다. 이마를 찡그리는 것도 어려운 안면신경마비였다. 그러나 업무를 처리하느라 일주일이 지난 뒤 귀국해서야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수개월 이상 마비 증세를 각오해야 하며 현재로선 약도 도움이 안된다는 것. 치료시기를 놓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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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 을지병원 신경과 구자성 교수는 "안면 신경마비엔 염증을 가라앉히는 스테로이드가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지만 약의 효과는 증세가 나타난 지 3일 이내"라고 말했다. 따라서 입술이 돌아간 쪽의 반대쪽 귀 뒤가 쑤시고 아프며, 눈이 잘 감기지 않는 신경마비가 올 때는 민간요법에 매달리지 말고 신경과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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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페스 바이러스로 인한 대상포진이나 수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한 독감도 빨리 치료해야 약물이 효과를 발휘하는 대표적 질환이다.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는 "대상포진이나 수두 치료제인 조비락스,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와 리렌자는 모두 이틀 이내 사용해야 바이러스 증식억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독감은 일반 감기와 달리 몸살과 근육통.두통.고열 등 특유의 증세가 나타나면 지체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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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초를 다투는 응급질환도 있다. 가슴 한가운데가 뻐근하게 아픈 심근경색증이 대표적이다. 심장이 멎게 되면 5분만 지나도 뇌사로 직결된다. 고혈압과 고지혈증, 부정맥 등으로 심근경색증이 나타날 확률이 높은 사람은 호주머니에 니트로글리세린 등 비상 약물을 지참하는 것이 좋다. 뇌동맥류 파열이나 대동맥 파열, 심한 천식 발작도 수분 이내 생과 사가 엇갈릴 수 있는 질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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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시간 안에 손을 써야 효과를 보는 질환도 있다. 뇌졸중의 경우 네시간 이내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혈전용해제 치료를 통해 막힌 뇌혈관을 다시 뚫을 수 있다. 이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반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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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 신경과 정진상 교수는 "뇌졸중 환자의 치료결과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병원 응급실 도착 시간"이라며 "반신마비 등 뇌졸중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혈전용해치료가 가능한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환자의 집에서 병원간 거리가 가까울수록 뇌졸중 사망률은 비례해서 감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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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수는 "침과 우황청심환 등 한방치료도 좋지만 이것은 혈전용해치료 이후로 미루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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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영역에선 폐쇄 우각 녹내장을 들 수 있다. 눈에서 만들어진 방수 통로가 막혀 생기는 녹내장의 한 유형이다. 앞으로 몸을 숙일 때 안구 통증이 생긴다. 서너시간만 지나도 안압이 올라가 시신경이 파괴돼 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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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두통도 욱씬욱씬 머리가 아프기 시작할 때 바로 약물을 써야 효과를 본다. 눈앞에 검은 점이나 불빛이 어른거리거나 손이 저리는 등 본격적 두통 수 분 전에 감지되는 전조 증상 때 약물을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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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이상 지속하는 만성질환도 조기치료를 받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인 것이 있다. 대표적인 치매의 경우 아리셉트.액셀론.레미닐 등 신약들이 있지만 일찍 사용해야 효과를 본다. 경기도립노인병원 정신과 이동영 박사는 "치매 약은 기억력 감퇴가 시작되는 초기 1~2년 이내에 써야 하며 중증엔 효과가 없다"고 밝혔다.
시간을 다투는 질환의 유형
1) 분초를 다투는 질환
심근경색증(5분만 지나면 뇌사가 시작됨),뇌동맥류 파열,대동맥파열,천식발작.
2) 시간을 다투는 질환
뇌졸증(병원도착은 3시간 치료는 4시간내),녹내장,편두통,식도정맥파열,저혈당증.
3)하루 이틀을 다투는 질환
안면신경마비(3일내치료),대상포진과 수두,독감.
4)수개월 이내 조기치료가 필요한 질환
치매,암,당뇨,고혈압등 대부분의 만성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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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