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자 하면 마르틴 루터와 함께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장로교회의 시조인 존 칼뱅이다. 칼뱅은 종교적 교만과 경제적 부패에 빠져 타락한 중세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위대한 종교개혁자로 역사에 남아 있다. 그렇다면 칼뱅은 경제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실천했을까?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칼뱅은 평생 동안 경제적으로 궁핍에 가까울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칼뱅은 구약의 선지자와 예수님, 사도, 초대 교부들처럼 청빈한 삶의 모범을 몸소 보이면서 종교 권력과 부자를 향해 종교개혁과 경제 개혁을 동시에 외치는 선지자적인 삶을 살았다.
칼뱅이 살았던 16세기는 유럽 사회가 중세 봉건제에서 근대 상업/산업사회로 전환하는 시대였다. 이 당시 루터는 봉건제를 옹호하며 기존 사회질서 체제 내에서 종교개혁과 사회경제 개혁을 이루려했고, 재세례파는 농민 중심의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반면 칼뱅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인정하고 상업/산업사회에 맞는 신학과 경제윤리를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요약하면 루터는 중세 봉건 영주, 재세례파는 농민, 칼뱅은 신흥 상업/산업 세력의 힘을 등에 업고 세상을 바꾸려고 시도했다.
칼뱅은 프랑스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제네바로 건너와 제네바 시의회를 통해 종교개혁과 사회경제 개혁을 동시에 펼쳤다. 칼뱅은 제네바에서 발달한 상업/산업사회를 인정하면서 제네바에 하나님나라를 이루려고 시도했으며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이루려고 노력했다.
부와 건강, 번영이 구원받은 증거라고?
칼뱅은 그런 적 없다
칼뱅의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그리스도의 주 되심(Lordship)을 강조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칼뱅도 루터처럼 중세 교회의 성속이원론과 사제주의에 반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모든 노동이 다 거룩하다는 직업 소명론을 주장했으며 칼뱅이 주장한 예정론은 지금까지도 신학적으로 많은 오해와 논란이 되는 독특한 신학으로 유명하다.
칼뱅의 경제윤리는 이런 칼뱅의 신학에 기초하고 있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강조하는 신학은 제네바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려는 시도로 나타났다. 칼뱅의 경제윤리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따라야 할 생활 원리로서 구원론에 기초하고 있으며, 예정론과 소명론도 칼뱅의 경제윤리에 영향을 미쳤다.
칼뱅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통해 얻는 구원을 강조했다고 잘 알려져 있지만 칼뱅이 구원 이후의 성화된 삶, 특히 경제적으로 성화된 삶에 대해 강조한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칼뱅의 신학과 경제윤리는 성화된 삶을 구원론과 연결시키는 점이 특징이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며 이런 순종의 삶은 경제적인 영역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영역에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은 청지기적인 태도가 아니며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주인 된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 즉 칼뱅이 주장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이 아닌 나의 주권과 통치, 내가 주 되심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
한국교회의 '삼박자 복음'은 칼뱅의 신학과 정반대
구원받은 사람은 만사가 형통하고 건강하며 경제적으로도 복 받는다는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유행하는 소위 '삼박자 복음'은 칼뱅의 가르침이 아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부하든 가난하든 경제적으로 청지기적인 삶을 살아야 하며 청지기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면 구원받지 못했다고 보는 게 칼뱅의 신학과 경제윤리다.
칼뱅이 가르친 신학과 경제윤리는 결코 인간이 노력해서 구원받거나 복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신학'이 아니다. 또 부를 많이 획득한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것이기 때문에 부가 구원의 증거라는 것도 칼뱅의 원래 가르침이 아니다.
칼뱅은 불행이나 가난에 처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냉대하시는 것이며 부와 건강에 처한 사람은 하나님이축복하시는 증거라고 보지 않았다. 칼뱅은 부와 번영, 건강이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라고 보지 않았으며 구원의 증거라고 보지도 않았다. 칼뱅이 가르친 것의 핵심은 전적인 은혜로 인한 구원과 구원 이후에 모든 영역에서 성화된 삶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로 얻지만 구원 이후에는 성화된 삶 (특히 경제적으로 성화된 삶)을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살아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구원받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칼뱅의 신학과 경제윤리에서는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유행하는 번영신학이나 기복신학을 이끌어 낼 수 없다. 그렇다면 칼뱅은 경제의 여러 영역에 대해 어떻게 가르쳤는지 살펴보자.
사유재산은 인정하지만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사용해야
칼뱅은 물질세계를 악하거나 비천한 것으로 바라보는 영지주의와는 달리 초대 교부들을 따라 물질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며 선한 것으로 보았다. 칼뱅은 영지주의적인 금욕주의도 반대했지만 방종과 쾌락주의도 반대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적인 경제생활을 할 것을 가르쳤다.
칼뱅 당시 재세례파가 사유재산을 폐지하려고 시도했던 것과는 달리 칼뱅도 루터처럼 사유재산을 인정했다. 칼뱅은 공산주의적인 이상향을 세우려고 한 재세례파의 뮌스터 사건에 대해 반대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사유재산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사유재산의 사용과 처분을 공동체적인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울러 다른 사람을 희생하면서까지 재물을 얻는 일은 없어야 하며 재물을 사회의 공공선과 공익을 위해 써야 한다고 가르쳤다.
칼뱅도 루터처럼 초대 교부들을 따라 재산의 소유권을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가 있을 때는 공유할 수 있는 제한적이고 조건적인 것으로 보았다. 오늘날로 말하면 사유재산을 인정하더라도 사회 공동체적인 제약을 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칼뱅은 사도행전 2장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한 물질의 유무상통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일시적인 조치였으며 재산을 공유한 것이 아니라 신앙심 깊은 성도들이 재산을 팔아 구제할 정도로 열심을 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즉 재산의 공동 소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칼뱅은 다른 사람을 돕는 구제 활동을 할 때도 합리적으로 계산하여 자기 가족을 힘들게 만들지 않을 정도로 구제하라고 가르쳤다.
칼뱅은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면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줄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사랑의 실천을 할 수 없게 된다고 가르쳤다. 또 재산을 공유하면 인간들이 일하기 싫어하고 나타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칼뱅의 선견지명은 지난 20세기에 벌어진 공산주의의 몰락과 실패를 예언한 것처럼 정확했다.
하지만 칼뱅은 사유재산을 인정하면서도 사유재산을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오늘날로 말하면 우리나라 헌법과 같이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칼뱅은 사유재산과 상업/산업, 이자, 경제적 이윤 추구 등을 인정했지만 오늘날과 같이 탐욕에 기반 한 시장 만능주의나 신자유주의를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칼뱅은 인간의 탐욕에서 나온 경제활동은 제약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시험하기 위해 보낸
그리스도의 대리자
칼뱅은 부와 가난에 대해 빈부 격차를 인정했지만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재산을 사용하고 나누어주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또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감사와 만족이 있는지, 부유한 사람에게는 사랑과 나눔이 있는지를 시험해보기 위해 빈부 격차를 인정하신다고 칼뱅은 생각했다. 즉 부와 가난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은혜의 통로이자 인간의 믿음을 증거 하기 위한 하나님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칼뱅은 물질적인 재물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섭리를 완성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로 보았으며 모든 사람을 생존케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즉 물질은 모든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도구이자 은혜라고 칼뱅은 보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살리기 위한 공동의 부를 혼자서 독차지하거나 가로채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갈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을 가로채고 도둑질하는 것이라고 칼뱅은 가르쳤다.
하지만 칼뱅은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빈곤을 일으키는 잘못된 법과 구조를 그대로 두거나 방관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잘못된 사회구조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런 칼뱅의 가르침이 바로 진정한 '개혁주의'다.
가난한 사람을 계속 가난하게 만드는 잘못된 사회구조를 그대로 두면서 단지 자선만 행하거나 숙명론에 빠져 방관만 하는 것은 절대 칼뱅의 가르침이 아니다. 칼뱅은 기존 체제에 단지 순응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의하고 잘못된 사회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칼뱅은 이 세상의 빈부 격차를 인정했지만 초대 교부들이 가르친 것처럼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야 하며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부자들의 사랑을 시험하기 위해 보낸 하나님의 수납인이자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가르쳤다. 또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공복(公僕)이라고 말했다.
임금을 가로채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빼앗는 죄악
칼뱅은 루터가 그랬던 것처럼 중세 교회의 성속 이원론과 사제주의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세상의 모든 일은 거룩하며 그리스도인은 일을 하나님 앞에서 하는 자세로 해야 하며 일을 통해 구원의 열매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칼뱅은 세상의 일을 하나님이 부과하신 의무를 이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 칼뱅은 노동을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수단으로 보았다. 따라서 누군가 노동한 것을 가로채거나 일자리를 빼앗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없다고 가르쳤다. 또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거나 가로채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빼앗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라고 칼뱅은 보았다.
고용주는 하나님이 노동자에게 주시는 은혜를 대신 전달하는 자에 지나지 않고, 노동한 것을 가로채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며, 노동자에게 돌아갈 임금을 빼앗는 고용주는 '흡혈귀'라고 칼뱅은 공격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은혜의 통로인 일을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을 섬겨야 한다고 칼뱅은 가르쳤다.
칼뱅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당시 중세 교회의 성속이원론과 사제주의에 반대하여 직업 소명설을 주장하면서 세상의 일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무대이며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수단이라고 칼뱅은 가르쳤다.
세상에서는 아무리 미천해 보여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일이라면 소명으로 알고 열심히 한다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모든 일은 귀한 것이며 사회에 대한 봉사는 곧 하나님에 대한 봉사라고 칼뱅은 가르쳤다.
칼뱅은 정당한 임금이 얼마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칼뱅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황금률과 사랑의 계명에 따라 그리스도인은 임금을 후하게 주라고 가르쳤다. 그리스도인들 고용주는 법적으로 정해진 임금보다 더 많이 주어야 하며 노동자를 인격적으로 대하라고 칼뱅은 가르쳤다.
반면 칼뱅은 임금을 책정할 때는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에 미리 합의에 따른 계약이 필요하며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는 외부의 중재가 필요하다고 가르쳤다. 칼뱅은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와 임금 인상을 제네바 시의회에 요구하면서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중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런 칼뱅의 노력 덕분에 당시 제네바에서는 프랑스 파리와 리용을 휩쓴 파업을 피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새로운 경제 질서를 수용하면서 엄격한
규율로 경제를 다스림
칼뱅은 루터가 당시 발흥하던 상업과 금융업을 경계한 것과는 달리 이를 수용하면서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경제윤리를 제시하려고 했다. 칼뱅은 이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교리를 세우기도 했고 중세 교회가 경제적 이윤 추구를 죄악시한 것과는 달리 경제적 욕구를 해방시켜 경제적 덕목과 도덕적 가치로 인정했다. 경제적인 이윤을 어둠의 왕국에 속한 것으로 보지 않고 물질적인 경제를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림, 하나님에 대한 봉사에 종속시킴으로써 경제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칼뱅은 중세 교회가 상업을 천시했던 것과는 달리 상업도 농업과 같이 사회에 유익을 주는 산업이라고 보았다. 또 상업은 하나님의 풍요로움을 전달하기 위한 산업이며 인간들이 서로 교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보았다. 아울러 상인들의 사업 이윤은 노력의 정당한 보상이라고 인정했다.
반면 칼뱅은 정당한 상업 활동은 인정했지만 부정직한 계약과 불공정한 계량 기구 사용, 매점매석, 독점, 폭리를 일삼는 자들은 '살인자'’라고 비판하며 공격했다. 또 정부는 이런 불법 및 죄악을 금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칼뱅이 살았던 시대는 상업/산업이 새롭게 발흥하던 시기여서 더 이상 이자 금지라는 원칙을 고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칼뱅은 새롭게 일어나고 있던 상업/산업 세력을 옹호하면서 상업/산업을 긍정했다. 사실상 칼뱅의 종교개혁을 재정적으로 후원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 상업/산업 세력이었다.
생산적인 이자는 인정하지만 가난한 사람에 대한
이자는 금지
칼뱅은 초대교회부터 중세 교회가 이자를 금기시한 것과는 달리 이자의 정당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칼뱅이 제네바에서 이자를 인정한 것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종교 분쟁으로 인해 제네바 상인들과 은행가들이 제네바를 떠나면서 경제가 침체되었다가 종교 박해를 피해 제네바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몰려오자 제네바 경제는 다시 회복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자를 엄격히 금지하고 통제하면 경제가 다시 침체될 수 있기 때문에 칼뱅은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인 이자 금지 원칙을 깨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이자에 대한 윤리를 제시했다.
루터를 포함한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이 이자를 허용했지만 이자의 정당성을 교리로 만든 사람은 바로 칼뱅이다. 종교개혁 시기에 와서 칼뱅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교리를 비로소 수립한다. 하지만 칼뱅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소비성 대부와 고리대금에 대해서는 이자를 금지하고 돈을 더 벌려는 생산성 대부에 대해서만 이자를 허용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화폐불임설을 거부하고 돈이 다른 상품들처럼 생산성이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칼뱅은 가난한 자에 대한 부정한 이자 수취는 금지하면서 비난했지만 성경은 모든 이자를 반대하지 않으며 만일 모든 이자를 반대한다면 상거래 활동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칼뱅은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눅 6:36)"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자의 전적인 금지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이자를 부과해서는 안 되지만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는 생산적인 대부에 대한 이자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칼뱅은 마치 약제사가 독약을 취급하는 것처럼 이자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칼뱅은 이자를 허용하기는 했지만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이자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인식했다. 칼뱅은 이자를 허용하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자를 받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과도한 보증을 요구하거나 가난한 자의 꾸어 달라는 요구를 거절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말했다.
칼뱅은 이자를 허용하면서도 죄의 현실을 감안하여 이자에 대해 무한정 자유가 아닌 규제와 통제를 주장했다. 특히 가난한 사람에 대한 이자와 고리대금은 경멸할 정도로 반대했다. 칼뱅은 법적으로 허용된다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이자를 받는 것은 부정한 짓이라고 가르쳤다.
칼뱅은 토지 회복과 빚 탕감을 명하는 희년사상을 강조
칼뱅은 토지에 대해서는 희년사상을 강조했다. 김유준 교수는 <희년, 한국 사회, 하나님 나라>(홍성사)에서 칼뱅은 "부 자체는 선하게 보았지만 공유해야 할 토지를 사유하여 부를 얻은 부자들에 대해서는 비판"하였고 "일정한 연한이 되면 땅을 회복하고 빚을 탕감해 주어 재산이 사회적 억압의 수단으로 탈바꿈하지 않도록 했던 희년법의 사상을 강조"했다고 말한다.
칼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부 그 자체는 선하지만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분 짓는 독점적인 부는 비난했다. 이런 칼뱅의 사상은 전적으로 자본주의적인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폐지하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도 아니다.
칼뱅은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인정하면서도 토지의 공개념을 주장하는 지공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앙드레 비엘레는 <칼빈의 사회적 휴머니즘: 칼빈의 경제신학>(대한기독교서회)에서 칼뱅의 경제사상을 '사회적 인격주의(Social Personalism)'라고 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