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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첫해, 올 가을에 들어 난생처음 햇알곡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벅찬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난데없는 일을 겪었다. 뱀, 그것도 맹독을 품었다는 살모사에 기습을 당한 것이다.
9월 하순 어느 날. 오전에는 아들 세혁이와 함께 참깨를 털었다. 세 번째 만에 참깨농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그날 소나무 자연학교의 생태화장실 짓는 부역(?)이 있어서 오후에 잠시 일을 거들다가 내려오는 길에 학교 어항에 잡아넣고 아이들에게 보여주던 뱀을 모두 정리할 참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던 독사 세 마리를 비닐봉지에 잡아넣어 집으로 왔다. 이 뱀들을 어찌 할까 한참 머리를 굴린 끝에, 마냥 가두어두는 것도 못할 짓이요(가을이 한참인데 놈들도 겨울채비를 할 수 있게 해주든지 아니면 먹이를 대주던지 해야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어렵게 잡아온 놈들을 그냥 풀어주자니 그것도 영 싱겁기도 해서, 생각은 뱀술을 담그는 것으로 쉽게 옮겨갔다. 그렇지 않아도 갖가지 과일로 술을 담그던 중인지라 이번에는 뱀으로도 술을 담그고 싶다는 욕심이 고개를 쳐든 것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우선 술을 담글 플라스틱 병을 세 개 준비하고 세혁이의 도움(마당으로 난 수도꼭지를 열고 잠그는 임무를 맡았다)을 받아 술병과 뱀들을 씻었다. 그 다음 한 마리씩 잡아서 병에 넣는데, 첫 번째의 까치독사는 문제없이 병 안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의 살모사를 비닐에서 꺼내어 잡았는데, 여기서 내가 잠시 방심을 했던 모양이다. 보통 뱀을 잡을 때에는 끝이 벌어진 작대기로 뱀의 대가리를 지그시 누른 상태에서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뱀 대가리 바로 아랫부분 오목한 부위를 꼭 쥐는데, 이렇게 제대로만 잡으면 그다지 위험할 것은 없다. 헌데 이 녀석을 잡을 때 대가리의 바로 아랫부분을 바투 잡지 않고 그보다 더 밑 부분을 잡았던 모양이다. 그리고선 뱀을 꼬리부터 넣는데, 잘 들어가지를 않아서 실갱이를 벌이는 차에 어느새 이놈이 고개를 틀어 제 모가지를 틀어쥔 오른손 엄지를 물고 있지 않은가.
녀석은 고개를 모로 틀어서 두 개의 이빨을 엄지손톱 오른쪽에 박아 넣고 있었다. 어마 뜨거라! 놀라서 순간적으로 땅바닥에 패대기친 다음, 왼손으로 물린 엄지 밑을 꼭 감싸쥐고 세혁이에게 뒷집에 사는 이웃 사람들을 불러달라고 하고서는 던져놓은 뱀을 가두고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곧 이어 뒷집 사는 봄날과 느림보가 득달같이 쫓아왔다.
우선 독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끈을 찾아 엄지 아랫부분과 손목, 그것으로도 모자라 팔뚝을 힘껏 잡아매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지나치게 세게 맬 필요는 없다고 하기도 하는데 그때는 아무도 경험이 없어 당황한 나머지 무조건 세게 졸라매었다. 어찌나 힘껏 매었던지 피가 통하지 않아 그 자체의 통증이 대단했다. 두 사람 모두 우선 병원부터 가보자는 성화였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전부터 뱀이나 해충에게 물리면 상처에 쑥뜸을 뜨면 너끈히 제독할 수 있다고 들은 얘기가 떠올라, 이참에 한번 그걸 입증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뜸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뜸으로 가족의 건강을 다스렸고 웬만한 병은 모두 뜸으로 물리치곤 했다. 그래선지 커서는 병원과 현대의학에 병적으로 의존하고 맹종하는 태도에 대한 반감도 자라났다. 게다가 아내가 내 어머니를 따라 몇 년째 침구학을 연구하고 있지 않은가. 아주 쉽게 나는 내 방식대로 치료하기로 작정했다.
자가 치료 과정과 병원에 대한 생각
손을 심장 높이 아래로 최대한 낮추고 5분 내로 상처 주변을 끈으로 매어서 피가 통하지 않게 한 뒤, 쑥뜸을 상처 위에 30장 정도 떴다. 서두르다가 상처를 칼로 째고 독을 빨아내는 일을 빠뜨렸으므로 10여 장쯤 떴을 때 손톱 아래쪽 마디에 사혈침을 세 군데 찔러 직접 피를 빨아냈다. 뜸은 말려놓은 약쑥을 비벼 얹어 태우는 직접구를 썼다. 처음에는 쌀알 크기로 시작하여 점차 크게 떴는데 나중에는 쌀알 서너 개 크기가 되었다. 처음 통증은 오히려 뜸으로 인한 것 같았고 뱀독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너무 심하게 잡아매서 더 아픈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나중에는 손끝이 하얗게 핏빛이 가실 정도여서 조금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어느 부위에 조인 끈을 느슨하게 해주어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판단하기가 참 어려웠다. 한 시간이 지나도 뜸을 뜬 엄지의 통증을 제외하고는 전혀 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는 확신을 가졌다.
사고 발생 후 시간 반이 지났을까, 아내가 조퇴를 하고 부랴부랴 서울서 내려왔다. 이때까지도 손가락은 붓는 기미가 없고 그밖에 어지럼증, 통증, 출혈 같은 것도 없었다. 완전히 제독이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여서 돌아다니며 다른 일을 보던 중이었다. 움직이면 위험하다는 아내의 말에 즉시 추가로 뜸뜨기를 시작했다. 훨씬 큰 뜸을 다시 30장 정도 연거푸 뜨고 나서 다시 침을 몇 대 맞았다. 응급조치가 끝나고 누운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제야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손목까지 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너 시간이 지나도 손가락의 신경은 그대로여서 일단 한고비 넘겼다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 뒤로도 손가락이나 손의 마비는 전혀 없었다. 손등이 거무튀튀했는데 침을 맞고 나자 다소 제 색을 찾아가는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한이 들고 잠이 쏟아졌다. 물린 부위의 통증 때문에 밤새 앓았다. 아내는 밤을 지새며 수시로 나를 흔들어 깨워 손가락을 들어 숫자를 묻기도 하고, 집 주소를 외워보라며 의식상태를 체크하기도 하였으나, 의식은 분명했다.
다음날. 어지럼증과 시각이상이 심각했다. 눈에 초점이 맺히지를 않아서 사물의 표적이 정확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지럼증은 비틀거릴 정도여서 계속해서 누워 있었고 잠에 취해 지냈다. 부기가 팔뚝 끝까지 내려왔고, 물린 자리의 아랫쪽으로 살갗이 한거풀 벗겨지면서 출혈이 있었다. 계속해서 뜸, 침, 측백나무를 태워낸 숯가루로 만든 백매라는 환제와 매실주스를 수시 복용했다. 숯은 장내의 독을 흡착하여 배출한다고 한다. 뱀독의 해독에 좋다는 황태를 고아낸 물도 수시로 복용했다. 검은색 물집도 생겼는데, 사혈침으로 피를 빼내기도 했다.
셋째 날. 상태가 상당히 호전되었다. 부기는 팔뚝을 넘어서고 있었고, 눈의 초점이 맺히지 않는 증상이 여전했다. 부은 부위는 누를 경우에는 통증이 있으나 그냥 있을 때에는 모를 정도였고, 부기는 풍선을 불어놓은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전날까지는 계속 누워 잠을 잤으나 원기가 많이 회복되는 듯했다. 눈은 한 쪽을 감고 다른 쪽으로 보면 차라리 편한 상태였다. 물집을 수시로 따서 진물을 빼냈는데, 처음 물집을 따니 검은 피가 섞여 있었으나 그후부터는 맑은 진물이 고이면서 팽팽하게 찼고, 한 번 짜면 몇 시간 후에 다시 고이는 식이었다. 진물을 짜내고 나면 시원한 느낌이다. 부황으로 손등과 팔뚝의 피를 빼냈는데 그러고 나면 훨씬 시원한 느낌이 들고 부기도 다소 가라앉았다. 눈 주위에 침을 맞고 나면 시력이 다소 좋아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한 달여가 지났다. 아직도 상흔이 남아 있기는 해도 나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에 아내가 오랜 교분이 있는 의사를 만나 내가 뱀에 물린 것과 병원을 찾지 않고 자가치료를 통해 나았다는 얘기를 한 모양이다. 그 의사의 응답이 퍽 재미있다. “아마 독사가 아니었을 거야. (병원에 오지 않고 나았다면) 그냥 두어도 나았을 거야.” 의사들의 오만이란…….
뱀은 이 지구상에서 어쩌면 우리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살아온 동물일 것이다. 성경에도 아담과 나란히 등장하니 말이다. 인간은 그 뱀과의 공존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투를 벌였을까. 치명적인 뱀의 독을 넘어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기울여졌을까. 헌데 이상한 것은 뱀에 물리면 병원을 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왜 그 많은 인간들이 사투를 통해 얻었을 뱀독에 대처하는 다양한 치료방법을 알 수 없는 것일까.
도시화가 진행된 이래, 뱀은 이제 산 속이나 들판 혹은 논밭에서나 만날 수 있는 동물이 되었기는 하다. 그러나 시골생활을 해보니 뱀은 아직도 인간의 곁에서 아주 멀리 떠난 동물은 아니다. 논이나 밭에서는 물론이고 비가 온 다음이면 어김없이 도로에서도 녀석들을 만날 수 있으며 가끔은 집 주변에서도 마주치곤 한다. 뱀이 오래 전보다 수적으로 감소하고 그로부터의 위험이 줄었다는 점은 맞겠지만 다양한 대응법이 사라진 것은 단지 그 이유가 아닌 것 같다.
병원이 문제가 아닐까. 현대화된 병원이 언제부턴가 인간에게 질병에 대한 다른 대처방법을 잊게 만든 것이 아닐까. 어디 그게 단지 뱀에 대한 것일까 마는. 뱀에 물리고 나서 그 얘기를 전해들은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는데(죽을 수도 있는 사고였으므로) 거기에는 특이하게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병원’이었다. “병원으로 먼저 갔어야지”, “병원에 가면 빨리 나을텐데”,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 아냐?” 등등. 병원이 우리의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온통 사로잡고 있는 건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소위 ‘대체의학(이건 그 의학과 의술을 가진 분들에게 꼭 적합한 표현은 아니다. 무엇이 무엇을 대체했단 말인가. 병원중심 사고의 표현일 뿐)’을 하고 있는 분들조차 ‘병원 행(行)’을 권했다는 사실이다. 그 얘기는 병원이 이 나라의 의료를 장악한 이후부터는 거의 모든 뱀에 물린 사람들이 병원을 찾았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뱀독에 대응한 임상 경험을 가진 병원 밖의 의사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뱀에 물려서 병원을 가게되면 대개 백신을 주사하는 모양인데, 한 번 맞는데 20만원 가량 든다고 한다. 대개 서너 차례를 맞아야 하고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제독이 되지 않는 수도 있다고 한다. 두 달을 전신이 퉁퉁 부은 상태로 지내는 경우도 예사라 한다. 동네의 한 할머니의 경우 물린 손가락이 썩어 들어가 결국은 절단을 한 경우까지 있었다 한다. 전해들은 그 얘기들에 비하자면 나는 결과가 썩 좋은 편이었다. 불과 2주가 지나지 않아 부기는 거의 내렸고, 밭에 나가 고구마를 캐고 깨를 벨 수 있었으니까. 물론 아직도 방심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병원 치료를 받고도 뱀독 후유증으로 팔다리 마비와 저림증 따위의 후유증이나 신체일부를 절단하게되는 경우도 있다니까.
내가 나은 이유가 결정적으로 뜸이었는지, 숯이었는지, 황태 국물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환자가 입증해야할 의무는 없으니 말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병원의 힘을 빌지 않고도 살아날 방도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스스로 나았다는 점이다. 우리 시대에 교육은 반드시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것이나, 병은 현대의학에 의존해야 한다고 믿고 따르는 맹종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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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에구.산에 자주 가는데 조심에 또 조심해야 겠네요.좋은내용 잘 읽었습니다..
글쎄요. 자가 치료는 위험하다는 생각입니다. 그것도 살모사한테 물려서... 이 글을 읽으며 생각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광화문에서 번듯한 약국을 하시던 분이 철학 전공의 남편과 함께 선이골에 들어 갔지요. 선이골에서 막내를 낳으며 7남매를 두었지만 자신의 전공이었던 현대 의학을 버리고 자연 요법과 대체 의학에만 의존을 했는데... 결국 막내의 산후 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산후 후유증으로 7남매를 등지고 말았다는... 선이골 칠남매라는 제목으로 인간극장에 출연했던 분이었지요. 응급하거나 현대 의학에 의존할 부분은 의존하면서 민간 요법이나 대체의학을 병행한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저도 산적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산적님 의견에 적극 동참. 음냐.... 저도 위험해 보이네요. 간호사이셨던 울 엄마... 아버지의 직장 따라 오지로 다니면서 그곳 사람들의 출산과 응급상황에 댓가없는 도움을 주셨지만... 그리고 최대한 그 사람들의 처지에 서서 민간요법을 궁리하고 알리셨지만... 궁극적으로는 현대의학을 결코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셨지요.
생명을 담보로 한 자가 치료는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 에효,,, 나았으니 다행이지만요 ,,노일이 처남도 슬리퍼 신고 볏짚 작업하다가 발가락을 물렸는데 너무 꼭 조여 묶어서 난 자리가 2년 넘게 자국이 남았었습니다 ,,,뱀은 멀리 피해야 하고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조심 또 조심 ,,,
휴...글을 읽는 동안 내 몸이 오그라드는것 같아서 정말 경직 되었었네요..대단하신분이라고 밖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구만요..부인또한 대단하신분이구요..제자신도 민간요법이라고 하나요?..많이 신봉하는 편인데 ..얼마전 과수원으로 통하는 길로 앞집을 가는데 저만치 앞에서 뱀이 머리부분을 세우고 얄랑 얄랑 노니는 모습을 보고 나도 놀라서 멈추어서고 뱀도 놀랐는지 바로 머리를 땅에 최대한 가까이 하고 빨리 가더라구요..아직 독사인지 아닌지 구분도 못하지만 난 정말 생각만 해도 무서운것이 뱀이에요..그것만 아니면 시골생활이 정말 멋진데...ㅠㅠ..여튼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시골살때 어디를 갈때 작업용 장화를 신으면 뱀 걱정은 없습니다. 뱀은 설치류의 천적이니 죽이면 안되지요. 그냥 보이면 지나치거나 작대기로 슬쩍 건드리면 자기도 사람만났다는게 놀래서 쌔가 빠지게 달아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