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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지브크레인과 파업중인 한진중공업 조합원들
1995년 LNG 선상 점거파업(사진=한진중공업지회).1995년 LNG 선상파업에서 승리하고 내려오는 한진중공업노조 조합원들(사진=한진중공업지회).87년 노조 민주화투쟁을 거치면서 91년 박창수 열사 의문사 규명 등으로 한진중공업의 투쟁력은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2003년 구조조정에서 김주익 지회장이 85호기 크레인에 올라가 129일을 버텼지만, 그는 스스로 음식물을 올려주던 끈에 목을 매 죽었다. 그때, 크레인 아래 모여 있던 인원은 70여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모 부서 조합원이 말한다. "그때(2003년) 우리 부서에 120명 정도 있었는데 19명 참가하고 나머지는 모두 통상임금 받으면서 집에서 회사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주익이가 죽고 나서 100명이 모두 다시 나왔다. 한 달을 더 싸우고 김진숙 조합원을 뺀 해고자 전원 복직되고(95년에 6명 복직되고 남은 인원 총 17명 ) 2003년 이후 임금이 계속 오르고 성과급도 많이 받았다. 임금협상 안 가지고 찬반투표할 때 기분이 참 더럽더라. 주익이는 죽고 임금은 오르고..." 그러다가 2009년 800여명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해고되고(하청까지 합치면 2000여명) 다시 400명을 정리해고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김진숙 동지가 크레인에 올라갔다는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났다. 주익이도 태풍 매미가 와서 크레인이 빙글빙글 돌 때조차 죽을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조합원이 다 떠나고 마지막 선택을 했던 것이다. 119를 불러서라도 김진숙 동지를 강제로 끌어내리자고 했다. 다시 또 무슨 꼴을 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김진숙 동지는 웃는 얼굴은 순해 보여도 무섭다. 김주익 지회장이 죽고 나서 2003년부터 크레인에 오르기 전날까지 보일러를 단 한 번도 돌리지 않았다니, 그렇게 가슴에 사무친 죄책감과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생각도 안했었는데 계단을 타고 중간 지점까지 올라갔다. 좁은 철계단이 가파르기도 하고 높아서 아찔하기도 했지만, 아래에 있던 조합원들이 올라가 볼 것을 권했다.2011년 1월 5일 85호기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 해고 조합원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다. 밧줄에 매달아 필요한 물품을 올려 보내고 쓰레기를 내려 받고 한다. 물건을 올리고 나면 혹시라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위에서 줄을 끌어올리지 못하게 아래에서 양쪽으로 줄을 단단히 매어두고 있다. 정규직 노조는 파업중이지만, 하청에서 배를 만들고 있다. 수주받은 마지막 배라고 한다. 한진중공업은 필리핀에 공장을 짓고 그쪽으로 수주받은 물량을 돌리고 있으며 모든 공장을 하청화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작년 6월 말 폐쇄된 한진중공업 울산 조선소도 정기적으로 기름치고 점검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곳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하청으로 운영할 계획이 아니겠느냐고 울산에서 영도조선소로 전환배치된 조합원이 말했다.
김진숙 동지가 올라간 크레인 바로 아래에서 중간 역할을 하고 있는 이용대 대의원. 물품은 아래에서 1차로 이곳으로 올리고 여기서 다시 윗쪽에 있는 김진숙 조합원에게 전달된다. 이곳에서 두 시간 가까이 있었다. 손이 시리고 바람이 매섭다. 2년째 싸우고 있으며 집에는 일주일에 한 번 들어간다고 한다. 부산역, 시청, 서면, 노동부, 서울 안 가본 곳이 없다면서 선전물 들고 다니는 것도 지쳤고 하루 소주 한 병 안 마시면 잠이 오질 않는다고 한다. 2009년 구조조정 발표되고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게 되었다고 한다. 대의원으로서 단 한 가지 바람은 임금인상도 아니고 조합원들이 제발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자신도 4개월째 강제휴업(회사측의 사유로 쉬어야 하는) 상태라고 한다. 아이가 셋인데 대학생 한 명, 대학 들어갈 아이, 고1 되는 아이 이것저것 제하고 나니 3만2000원 남더란다.토요일이라 집회 일정은 없었다. 조합원들은 50미터 가량 떨어진 생활관에서 대기하고 있고 크레인 아래는 30명이 두 팀으로 나누어 크레인 양쪽을 지키고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바깥쪽보다 조금 덜 부산스럽다. 인사를 먼저 하고 사진을 찍자 얼굴을 가리는 분이 계시다. 오랜 기간 아픔이 많아 쉽게 입을 떼지 않는다. 그러다가 이내 군고구마을 건네주며 경계심은 풀어지고 이야기들을 이어 나갔다. 실은 말하는 시간보다 같이 앉아서 크레인 올려다 보고 불 쬐고 했던 시간이 더 길다.
낮에는 이 정도면 날이 매우 따신 거라던 분들도 밤이 되니 바닷바람이 매섭다. 삽자루에 호일을 씌워 순대를 데워 먹는다. 앞쪽으로 가니 오징어를 구워먹고 있었는데 위에서 김진숙 조합원이 소리친다. "뭐 먹노~~" "암것두 안 먹는다~~~" 금속노조나 민주노총에서 투쟁을 결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함께한다면 싸움은 힘이 붙는다. 그러나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투쟁에서 보았듯이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정리해고 막아내고 이분들이 다시 현장에서 일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간절히 바란다... 마음만 가지고 무얼 하겠는가 싶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본다. 그건 조금이라도 투쟁을 알리고 이들에게 관심 갖고 지지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많아지는 것이다. 갈 때, 투쟁기금을 내려고 하니 돈도 얼마 되지 않아 유자차랑 생강차며 대추차를 사가지고 갔다. 커피는 많아도 그런 종류는 없어서 잘 사갔다 싶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라면이나 순대나 쥐포나 고구마, 이런 것들을 가지고 가도 좋을 것 같다. 8시간씩 교대를 하는데 8시간 보초 서려면 입이 많이 심심하다. 그리고 편지를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합원들에게나 위에 있는 김진숙 조합원에게 마음을 담아 글을 보내면 힘이 되지 않을까. 편지도 아래에서 위로 통에 담아 올려보낼 수 있다. 따뜻한 차도 보온병에 담아 올려보낼 수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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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감사 ㅎ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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