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아들>/ 구연식
추석 대목 때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벼 이삭을 타고 몰려와서 철썩거린다. 밭에는 콩알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콩깍지가 장전된 방아쇠처럼 벌어져 있다. 뒤뜰에는 움푹 팬 보조개에 탱글탱글한 얼굴로 소년을 설레게 하는 대추 소녀가 주렁주렁 윙크한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넉넉해지는 계절로 조상을 모시는 자손들의 마음가짐도 덩달아 흐뭇해지는 추석이다. 차례 음식의 준비는 모든 가정에서는 어머니들의 몫이었다. 가정에서 수확되지 않은 제수품들은 이웃끼리 나누어 주거나 시장에서 구입하여 준비했다. 그래서 추석 무렵 시골 전통시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분주해서 추석 대목장이라고 했다. 나는 7남매의 장남으로 어머니와 나이 차이는 스무 살이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어머니 일을 많이도 도와가며 자랐다. 특히 설날과 추석 때 어머니는 셰이퍼로 나는 인턴으로 구색이 척척 맞아 명절 음식을 장만했다. 어머니는 익산지역 모 불교 신도회장을 맡으셔서 명산 사찰을 그리도 좋아하셨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남한에 있는 사찰은 거의 모두 예방했다. 절 길을 따라 올라가면 많이도 들어본 공통된 말이 있다. 뒤에 따라오던 나이 든 여자 신도들은 “나이 차이가 좀 나는 것 같지?” 하면서 어머니와 나를 부부로 착각하여서 했던 말들이다. 어머니는 체구가 아담해서 언제나 동안 모습이었고 나는 체구가 건장하여 나이 들어 보였다. 그래서 어머니와 나의 나이 차이를 좁혀주는 시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 빨리 갑시다.”라고 하면 뒤따르던 신도들은 미안했는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어떤 아주머니는 씽씽 걸음으로 앞질러 와서 나와 어머니 얼굴을 획 돌아보며 나의 얼굴에서 어머니 모습을 발견하고서야 모자 관계를 확인하는 신도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나이에도 해가 지면 고향 집이 그리워지며 어머니 모습이 아른거려 길 잃고 엄마 떨어진 어린애처럼 몸 가눔을 못 할 때가 많았다. 내가 공직 정년퇴임 후 봉사활동을 하는 곳은 익산 중앙시장 옆 학교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시간이 있을 때마다 의도적으로 시장 상가 중심을 거닐며 그 옛날 생전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겨 보기도 한다. 현직에 있을 때 8월 추석 무렵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퇴근하면 익산 중앙시장 입구에서 만나서 추석 장보기를 같이 하자는 내용이다. 나는 부랴부랴 업무 정리를 마무리하고 군산에서 달려와서 익산 시장 입구 주차장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여름 내내 논·밭에서 일하시느라 그을려 얼굴은 까맣고 머리는 푸석푸석하여 억새꽃처럼 하늘거렸다. 한눈에 봐도 시골에서 고생만 하는 어느 아낙의 모습이었다. 나는 대조적으로 희멀건 피부에 양복을 입고 어머니를 맞이하니 어머니의 저 모습이 이 아들을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하니 한없는 죄스러움이 눈가를 촉촉하게 한다. 드디어 시장 골목을 어머니와 같이 걷고 있었다. 상인 아주머니들은 외모와 의복이 대조되는 어머니와 나를 번갈아 보면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보면서 갸우뚱하는 모습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어머니” 하면서 의도적으로 크게 부르면서 어머니와 자식임을 각인시켰다. 그런데 어머니는 물건을 사지도 않고 온 시장 바닥을 다녀온 길을 다시 오가면서 눈요기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어머니가 은근히 미웠다. 속마음이 얼굴의 표정에 나타났는지, 어머니는 금방 알아채고 “야? 빨리 가자” 하시면서 대충대충 장보기를 마치고 아무 말 없이 시골집에서 추석 음식을 장만하셨다. 온종일 어머니는 나한테 그리도 서운하셨는지 말 한마디 안 하시고 그해 추석을 보냈다. 그날 익산 중앙시장에서 마치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얼굴을 알리는 것처럼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전체 상가를 누비시다시피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은 그 당시도 짐작은 했다. 어머니는 단골 가게에 가서 아마도 이 못난 아들 자랑을 많이도 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고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는 항상 당신은 벌레 먹은 삼 잎처럼 초라하고 볼품없지만 이 못난 아들은 어머니가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여름 내내 뙤약볕에서 그을리고 야윈 당신과 그늘 속에서 선비처럼 생활한 아들을 시장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는데, 나는 알면서도 짜증스러운 표정을 어머니에게 보여드렸으니, 천하에 나쁜 아들이었다. 나의 희멀건 피부색은 어머니가 뙤약볕을 막아준 그늘 막의 덕분이다. 나의 허울 좋은 양복은 어머니의 얼룩지고 헤진 앞치마의 실오라기를 한 올 한 올 엮어서 짜깁기한 옷이다. 내가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대학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평생 소 멍에처럼 짐을 지셨던 아버지와 손가락이 삭정이처럼 앙상하고 뒤틀어진 손으로 갈퀴처럼 일하신 어머니 덕분인데, 그 몇 분간 못 참고 어머니 가슴에 옹이 못을 박은 나쁜 아들이다. 효도는 타고난 심성에서 나오는 것이 진정한 효도이지 선택적 사고에서 나오는 효도는 거짓이고 나쁜 아들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봉사하고 있는 학교가 그 시장 옆에 있어서 마음이 허전하면 그 시장 길을 가끔 걸으면서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나는 “나쁜 아들, 나쁜 아들”을 뇌까리며 오늘도 걷고 있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나에게는 선택적 심성의 가식적 효자라고 단서를 붙이시며 너는 “나쁜 아들”이라고 말하신다. 어머니의 옹이 못은 벌써 사그라졌을 테지만 이제는 부메랑 되어 나의 가슴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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