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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촉이 자신을 희생하여 불법의 이익됨을 깨닫게 하다
[그는] 죽백(竹栢)과 같이 [곧은] 자질을 드러내고 수경(水鏡)과 같이 [맑은] 뜻을 품었으며, 적선(積善)한 이의 증손으로서 조정의 중심(爪牙)註 076으로 촉망되고, 성조(聖朝)의 충신으로 태평성대(河淸)註 077의 시종이 되기를 바랐다. 그때 나이 스물두 살로 사인신라 관작에 대사(大舍), 소사(小舍) 등이 있었는데, 대개 하사(下士)의 등급이다.의 자리에 있었다.
용안(龍顔)을 우러러보고 [왕의] 뜻을 눈치 채고 아뢰기를, “신이 들으니 옛사람은 비천한 사람(蒭蕘)에게도 계책을 물었다고 하니, 중죄를 피하지 않고 [대왕의 뜻을] 여쭙기를 원합니다”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네가 할 바가 아니다”고 하였다. 사인이 말하기를, “나라를 위하여 몸을 희생하는 것은 신하의 큰 절개이며, 임금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은 백성의 바른 의리입니다. 사령을 그릇되게 전했다고 하여 신을 형벌하여 머리를 벤다면 만민이 모두 복종하여 감히 지시를 어기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살을 베어 저울에 달더라도 한 마리 새를 살리려고 했고,註 078 피를 뿌리고 목숨을 끊어서라도 일곱 마리의 짐승註 079을 스스로 불쌍히 여겼다. 나의 뜻은 사람을 이롭게 하려는 것인데, 어찌 죄 없는 사람을 죽이겠느냐? 네가 비록 공덕을 짓는다고 할지라도 죄를 피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고 하였다. 사인이 말하기를, “모든 것이 버리기 어렵지만 제 목숨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소신이 저녁에 죽어 아침에 대교가 행해진다면, 불일(佛日)이 다시 중천에 오르고 성주(聖主)께서는 길이 편안하실 것입니다”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난새와 봉새의 새끼는 어려서도 하늘을 뚫을 듯한 마음이 있고, 기러기와 따오기의 새끼는 나면서부터 바다를 건널 기세를 품었다고 하더니 네가 이와 같구나. 가히 대사(大士)註 080의 행이라고 할 만하다”고 하였다.
이에 대왕은 일부러 위의를 갖춰 바람 같은 조두(風刁)를 동서로 늘이고 서릿발 같은 무기를 남북에 벌여 놓고 여러 신하들을 불러 묻기를, “그대들은 내가 정사(精舍)를 지으려고 하는데 고의로 지체시키는가?”향전에 이르기를, “염촉이 왕명이라고 하면서 공사를 일으켜 절을 창건한다는 뜻을 전했더니 여러 신하들이 와서 간하였다. 왕은 이에 노하여 염촉을 책망하고, 왕명을 거짓으로 꾸며 전하였다고 하여 형벌을 가하였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이에 여러 신하들이 전전긍긍하며 황급히 맹서하고 손가락으로 동서를 가리켰다. 왕이 사인을 불러 힐문하니, 사인은 얼굴빛이 변하면서 대답할 말이 없었다. 대왕이 분노하여 그의 목을 베라고 명령하니 유사(有司)가 [그를] 묶어 관아로 끌고 왔다. 사인이 발원하고 옥리(獄吏)가 목을 베니 흰 젖이 한 길이나 솟아올랐다.향전에는 사인이 맹세하기를, “대성법왕(大聖法王)께서 불교를 일으키려고 하므로 [저는] 신명을 돌보지 않고 인연을 모두 버리니 하늘에서는 상서를 내려 사람들에게 두루 보여주소서”라고 하니, 이에 그의 머리가 날아가서 금강산(金剛山)註 081 꼭대기에 떨어졌다고 하였다.
하늘은 사방이 침침해지고 사양(斜陽)이 빛을 감추고, 땅이 진동하면서 꽃비가 내렸다. 성왕(聖人)은 슬퍼하여 눈물이 곤룡포를 적시고, 재상은 근심하여 조관(蟬冕)註 082에까지 땀이 흘렀다. 샘물이 갑자기 마르매 고기와 자라가 다투어 뛰고, 곧은 나무가 먼저 부러지니 원숭이가 떼를 지어 울었다. 춘궁(春宮)에서 말고삐를 나란히 했던 친구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서로 돌아보고, 월정(月庭)에서 소매를 맞잡던 친구들은 창자가 끊어지듯 이별을 애석해 하였다. 상여를 바라보며 장송곡을 듣는 이들은 마치 부모를 잃은 듯하였다. 모두들 말하기를, “개자추(子推 )가 다리 살을 벤 것註 083도 이 고절(苦節)에 비할 수 없고, 홍연(弘演)이 배를 가른 일註 084인들 어찌 이 장렬함에 견주랴. 이는 임금님(丹墀)註 085의 신앙력을 붙들어 아도(阿道)의 불심을 이룬 성자(聖者)다”고 하였다.
望柩聞聲如䘮考妣. 咸謂子推割股未足比其苦節, 弘演刳腹詎能方其壯烈. 此乃扶丹墀之信力咸阿道之本心聖者也.
드디어 북산의 서쪽 고개즉, 금강산이다. 전(傳)에서는 머리가 날아가 떨어진 곳에 장사지냈다고 하였는데, 여기에 밝히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인지?에 장사지냈다. 나인(內人) 들은 이를 슬퍼하여 좋은 터를 잡아서 난야(蘭若)註 086를 짓고, 이름을 자추사(刺楸寺)註 087라고 하였다. 이에 집집마다 예를 하면 반드시 대대로 영화를 얻고, 사람마다 도를 닦으면 마땅히 불법의 이익을 깨닫게 되었다.
遂乃葬北山之西嶺即金剛山也. 傳云頭飛落處因葬其地, 今不言何也.. 内人哀之卜勝地造蘭若, 名曰刺楸寺. 於是家家作禮必獲世榮, 人人行道當曉法利.
난야
아란야(阿蘭若)의 줄임말로 사원을 말한다.
자추사
이차돈을 위하여 세운 절로 지금의 백률사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