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화로 글로벌 경쟁력 높이는 K-발효식품
CJ제일제당, 1년간 김치 맛 유지하는 발효제어기술 적용해 수출
샘표, 조선 영조가 즐겼던 고추장 맛 구현한 ‘조선 고초장’ 출시
최근 식품업계가 프리미엄 발효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GETTYIMAGES]
CJ제일제당은 지난해 12월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상온에서 1년간 유통할 수 있는 수출용 ‘비비고 썰은 김치’를 유럽에 출시했다. 깔끔한 김치 맛을 선호하는 외국인 입맛에 맞게 젓갈 없이 100% 식물성 원료로 담근 이 제품에는 ‘발효제어기술’이 적용됐다. 발효제어기술은 국내에서 만든 김치가 수출국에 도착할 때까지 알맞은 숙성 정도를 유지하는 기술이다. 지금까지는 김치가 선적된 후 통상 한 달이 지나 푹 익은 상태로 현지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발효제어기술을 적용하면 김치 맛에 영향을 미치는 산도와 배추의 조직감이 1년간 신선한 초기 상태로 유지된다.
김치업계 고급화 전략 본격 시동K-발효식품이 프리미엄 전략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알려지면서 K-발효식품이 한 단계 더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경제 매체 ‘마켓워치’에 따르면 2020년 세계 발효식품 시장 규모는 319억 달러(약 42조2600억 원)로 연평균 6.2%씩 성장하고 있다. 특히 세계 김치시장 규모는 2018년 30억 달러(약 4조 원)에서 2025년 42억8000만 달러(약 5조67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발효식품 시장보다 프리미엄 제품 시장이 더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해정 가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프리미엄 발효식품 출시가 시급했는데, 최근 들어 한 끼를 먹어도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찾는 소비자의 니즈와 맞물려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있다”면서 “원료와 제조공법 차별화로 프리미엄 제품 출시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치업계는 발효식품 프리미엄화에 가장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하연 세계김치연구소 회장은 “김치시장은 이미 프리미엄 제품이 대세”라며 “한 번을 먹어도 맛있는 김치를 먹겠다는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개성보쌈김치, 해물섞박지 등 차별화된 김치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프리미엄 김치는 대부분 배추, 고춧가루, 젓갈, 마늘 등 100% 국산 재료를 사용한다. 특히 젓갈은 질소 함량이 2% 이상인 원액을 사용해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찾는 소비자가 점점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해정 교수는 “대표적인 프리미엄 발효식품으로 기능성 김치를 꼽을 수 있다”며 “2021년 장내 유익균 증식과 배변 활동을 돕는 기능성 김치 1호가 출시된 이후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정한 기능성 김치 10종이 출시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능성 된장도 연구개발되고 있다”면서 “기능성 된장은 면역력 향상, 당뇨와 혈압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김치업계에서는 김치의 프리미엄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인증등급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치도 한우처럼 국산 인증제를 시행해 사용한 재료나 공정에 따라 등급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이하연 회장은 “김치 등급제는 국산 김치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며 “김치 종주국이라는 인식도 심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회장은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고품질 김치를 생산하는 것뿐 아니라, 유통과정에서도 맛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특히 해외에서 국산 김치의 브랜드 파워를 끌어올리려면 수출 제품의 맛과 영양이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주류시장에서는 프리미엄 K-증류주가 인기를 끌고 있다. 명욱 연세대 미식문화최고위과정 교육원장은 “최근 국내 주류시장에 위스키 붐이 일면서 오크통에서 곡물을 숙성시킨 K-증류주 시장이 커지고 있다”며 “오크통 숙성 K-증류주는 위스키보다 저렴하지만 위스키 못지않은 맛과 향이 나 주류업계가 제품 개발에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광주요가 출시한 프리미엄 증류주 ‘화요XP’는 품귀 현상을 빚고 있으며, 2월 초 GS25가 진행한 ‘김창수위스키 3호 캐스크’ 판매에는 애호가들이 몰려 매장 ‘오픈런’이 이어지기도 했다.
면역력 강화 돕는 발효식품
된장, 고추장, 김치 등 발효식품은 발효 과정에서 생성된 유익균이 장 건강을 돕는다. [GETTYIMAGES]
K-발효식품이 본격적으로 프리미엄화되는 것은 세계적으로 그 효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발효식품은 효모, 유산균 등 미생물의 작용으로 유기물이 분해되고 새로운 성분이 합성되는 발효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유익균이 만들어져 면역력이 강화된다. 특히 김치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았다. 세계김치연구소가 2021년 장 부스케 프랑스 몽펠리에대 폐의학과 명예교수 연구팀과 1년 동안 공동연구한 결과 김치 같은 발효 채소를 많이 섭취하는 국가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김치연구소는 국가별로 코로나19 발생률, 증상 심각도, 사망률에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를 추적했는데, 그 결과 코로나19 사망률이 낮은 한국 등 동아시아, 사하라 인근 아프리카 국가는 김치 같은 발효 채소나 다양한 향신료를 많이 섭취하고 있었다. 또한 김치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30여 종의 유산균이 다양한 효과를 내는데, 코로나19 증상 완화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치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유산균은 장내 유익한 미생물의 증식을 촉진하고 콜레스테롤 농도를 감소시키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이해정 교수는 “된장, 김치 등 식물성 발효식품에는 다량의 식이섬유가 함유돼 있어 장내 총균을 다양하게 만들고 무기질의 생체 이용률을 높여 항노화 생리활성물질을 증가시킨다”고 설명했다. 이런 효능을 인정받아 김치는 ‘2023년 10대 슈퍼푸드’에 선정되기도 했다. 미국 영양 전문 잡지 ‘투데이다이어티션’은 영양사·영양학자 757명을 대상으로 영양 트렌드를 조사했고, 그 결과 “김치가 올해 슈퍼푸드에 선정됐다”고 밝혔다.
다양한 프리미엄 제품 출시
(왼쪽부터)김치 맛이 1년간 신선하게 유지되는 수출용 ‘비비고 썰은 김치’. 샘표는 조선 영조가 즐겨 먹었던 고추장 맛을 구현한 ‘조선 고초장’을 출시했다. ‘꼬마나또’ ‘한끼요리나또’ 등 다양한 연령층에 맞춰 나또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는 풀무원. [CJ제일제당 제공, 샘표 제공, 풀무원 제공]
식품업계도 발효식품의 프리미엄 트렌드에 발맞춰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샘표는 조선 영조가 즐겨 먹었던 고추장을 구현한 ‘조선 고초장’을 출시했다. 고초장은 고추장의 옛말로, 조선시대 최장수 임금인 영조가 고초장을 즐겨 먹었다는 ‘승정원일기’ 내용에 착안해 10년 넘게 연구개발한 것이다. 이 제품은 깊은 구수함과 깔끔한 매운맛, 텁텁하지 않고 은은한 단맛으로 차별화한 고추장이다. 또 간장을 빼지 않고 통째로 발효, 숙성시킨 토장 메주의 깊은 감칠맛을 살려 ‘집고추장’을 연상케 한다.
풀무원은 다양한 연령층에 맞춘 나또 제품 출시로 발효식품 프리미엄화에 나서고 있다. 최근 풀무원은 소비자의 다양한 취향을 고려해 아이를 위한 ‘꼬마나또’, 잘게 다진 콩으로 발효시킨 ‘한끼요리나또’를 추가로 출시했다.
출처 주간동아 한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