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디움 외 1편
조창희
지휘봉이 허공에서 음을 그린다
관객들의 침묵 뒤편에서 나오는 음이 선율로 실현되기 시작한다
아일랜드 들판에 부는 바람과 지휘봉이 발생시키는 음이 어울리고 들판을 지나온 바람이 천상의 목소리와 어울려 릴라 호수에서 동화를 펼친다 또 다른 선율이 야생마처럼 몽골의 들판을 달리고 고비 사막에서 모래 폭풍처럼 회오리친다 이윽고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강에 젖은 선율이 저녁 빛으로 흐른다
그는 흐르는 강에 오선지를 펼친다 오선 위에 날것의 낱말들이 떨어지고 리듬의 모든 것처럼 음표가 오선지로 흐른다
토마토에서 빨간 입술이 나와
자몽에서 잊어버린 생각들이 나오고 수박에서는 까만 낱말들이 튀어나올 거야
튀어나오는 생각을 음표로 만들고 낱말을 세워 놀이하고 장난감 음과 화음을 맞춘다 지휘봉 끝에서 천천히 또는 빠르게 음들이 춤을 춘다 백지의 고요를 찢는다
관객들이 앙코르를 던지면서 환호한다
포디움은 갈채다
사각 너머로 가는 첫 번째 뱅크 샷
빨간 공을 향해 흰 공이 달려간다
달리는 공이 그리는 선을 따라 코스모스가 휘어진다
휘어지는 은하에서
화려한 장미성운에서
반짝거리는 것은 지구상에 없는 나비들의 날갯짓일까
신들의 춤일까
빨간 공과 흰 공과 노란 공이 엇갈려 사각을 돌고 돈다
빙판 위에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돌고 일요일 아침이 돌고 농담처럼 지구가 돌고 도는데 돌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는 누가 어떻게 설계한 것일까
이 공들의 배치는 설계를 잘해야 키스를 뺄 수 있어요
벤치 타임을 부를게요
타임을 끝내고 보조 브릿지를 세운 선수가 테이블에 몸을 엎드린다 부드럽고 짧게 공을 친다 공의 라인을 따라 몸과 눈이 팽팽하게 휘어지며 코스모스로 달려가는데
탁 탁 탁
키스는 황홀한 악몽
그녀의 눈에서 불꽃이 튄다
사각의 우주가 소용돌이친다
조창희
월간 시문학 등단 (2014년 4월호 신인우수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