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와 장묘문화
조상을 잘 섬겨야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생각은 마치 민간신앙처럼 아직도 우리 생활 속에 남아 있다. 제
사를 지내고 성묘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주술적 기복(祈福)의 효(孝)사상인 셈이다. 특히 자손들이 이름
을 떨치고 큰 재산을 모으는 것은 조상의 묘를 얼마나 정성스레 모시는 가에 달려있다고 믿었던 까닭에
추석 성묘를 앞둔 벌초(伐草)는 집안의 중요한 행사였다.
잡초를 뽑고 잔디를 깎는 벌초는 처서부터 시작돼 이슬이 내리고 가을기운이 완연해지는 백로 무렵에 절
정을 이룬다. 요즘이 그 시기여서 주말이면 낫과 예초기를 들고 시골을 찾는 사람들로 고속도로가 붐빈다
조상의 묘를 방치한다는 것은 곧 불효자로 치부되는 것이어서 가능한 손수 벌초를 하려 애쓰는 모습이 역
력하다. 그러나 벌초하기가 말같이 그리 쉽지 않다.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래인데다 시간을 내기가 여의치 않아서인데,이를 벌초대행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
민간 전문업체들이 성업중인가 하면 시ㆍ군 지역의 산림조합과 농협에서는 실비만을 받고 가까운 거리의
벌초를 대행하고 있기도 하다. 조상의 묘를 모시는 것은 비단 벌초만이 아니다. 사초(莎草)라 해서 훼손된
묘지에 잔디를 입히는가 하면, 성묘는 말할 것도 없고 '소분'(掃墳)이라 해서 경사스런 일이 있을 때 그 사
연을 고하고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매장이란 장묘문화에서 벌어지는 풍습들이다. 매장을 고집하던 인식이 달라지면서 이러한 풍습들도 해
가 갈수록 시들해지고 있다. 화장률이 높아지면서 납골당이 인기를 끌고 있는게 주된 요인이다. 화장 후
유골을 나무뿌리에 안치하자는 '수목장'(樹木葬) 운동도 앞으로 매장문화를 바꿔 놓을 것 같다.
수목장은 환경론자들이 주장하는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일종의 자연장 캠페인으로 유
럽에서 큰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장묘문화가 어떻게 바뀌든 조상을 받드는 일만은 소중하게 지속돼야
할 것이다. 더욱이 도덕과 윤리가 무시되고 있는 현실이어서인지 벌초를 하는 정성 하나도 의미있게 느껴
진다.
장묘문화의 변화
내 세상 뜨면 풍장(風葬)시켜다오 /
섭섭하지 않게 /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
손목에 달아놓고 中略) …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튀기는 씨들을 /
무연히 안보이듯 바라보며 /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
화장(化粧)도해탈도 없이/
이불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마를 때까지 /
바람과 놀게 해다오
황동규의 연작시 풍장에 나오는 내가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의 일부다.
없는 이력도 덧붙이고 싶어하는 세태에 묘표(墓標) 하나 없이 집착과 욕망을 덜어내‘이불여미듯 바람을
여미고’풍화하는 주검을 들여다보는 삶, 죽음을 관조하는 그 삶의 여유(?)는 정신의 넓이일까 깊이일까
가늠해 보았던 적이 있다. 풍장은 죽은 자의 시신을 들판이나 산 속, 동굴 등에 두어 비바람에 자연히 썩
어서 흙으로 돌아가게 하는 방법이다.
아시아, 동남아, 호주, 북미의 원주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장례풍습인데 우리나라 서해의 섬지방에도 이
런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섶으로 초분(草墳)을 설치하여 육탈이 된 후에 매장하는 것을 풍장이라고 불렀
다. 시집 풍장의 서문에 보길도에 초분(草墳) 2기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우리나라에도 십 수
년 전까지 풍장의 관습이 남아 있었음을알 수 있다.
당시 장례는 곧 매장이라는 의식이 지배적이었던 때에‘바람의 장례(風葬)’라니 그 적나라한 용어가 주는
느낌과 죽음의 적나라한 모습이 떠올라 전율한 기억이 남아있다.죽음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필수 코스
이자 마지막 코스다. 죽음이 인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도저한 생의 의지로 고군분투한
다고 해서 죽음이 비켜가지 않는다.
장묘의 풍습은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의 두려움과 애착, 초자연적이고 절대적인 것에 숭배하는 사생관에 의
해 자리 잡아 왔다.장례의식은 죽은 자를 위한 의식절차이자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는 죽음의 보편성을 확
인하는 자리다. 특정종교나 기후 풍토에 따라 인류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장묘 문화를 가지고 시대에 따라
변모시켜 온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행해지고 있는 매장(埋葬)의 방법이 있고, 인도와 같이 날
씨가 고온다습한 지역에서는 시신을고온의 불로 연소시켜 인위적으로 자연계에 환원시키는 화장(火葬)
의 방법을 행하고 있다. 파키스탄이나 티벳에서는 아직도 조장(鳥葬)이 행해지고 있다. 그들은 시신을 산
위의 절벽으로 올려 새들의 먹이로 제공하면 죽은 이의 영혼이 새를 통해 하늘로 보내진다는 믿음을 가지
고 있다.
사막기후의 특성상 시신이 잘 썩지 않기 때문에 형성된 그들의 사생관의 표현인 셈이다.우리나라는 흙으
로 돌아간 시신이 땅의 기와 작용을 하여 후손들에게 복을 준다는 풍수지리를 많은 사람들이 굳게믿고 있
다. 명당이라는 소문이 돌면 몰래 남의 묘 발치에라도 조상의 묘를 쓰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좋은 자
리에시신을 안치하려는 매장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얼마 전에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 두 집안 사이의 묘지 다툼이400여 년 만에 타결되었다는 소식만 보아
도 묘지에 대한 애착이 유난함을 알 수 있겠다.92 Machinery Industry(葬墓文化)많은 사람들이 매장을
선호하다보니 좁은 국토에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12배가 넘는 토지가 묘지로 쓰인다. 전국토의 묘지화
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1990년대부터 정부는 화장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기 시작하였다.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장례의식의 엄숙하고 경건함이야 장례의 형식에 구애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 지방
의 기후와 환경에 걸맞는 장례방법을 택하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낯선 지역의 생소한 장례풍습을 들을 때
면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것이 장례문화의 일반적인 정서다.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장례문화의 정서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 왔다.
매장보다 화장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간 것이다. 폭발적인 화장의 증가와 납골시설들이 매장과는 또
다른 폐해를 드러내고 있다. 화장장 건설에 따른 지역주민의집단 반발과 환경파괴, 호화분묘에 못지않은
호화 납골묘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그나마 현재의 납골묘도 머지않아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리란 추정
이다.보건 복지부에 따르면 해마다 우리나라 사망자의 화장(火葬)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매장(埋葬)에서 화장(火葬)한 후 납골(納骨)이나 산골(散骨)로 장례문화의 틀이 급격히 바뀌고 있음을 보
여주는 통계다. 우리나라의 장묘문화는사회적인 변화를 거쳐 가면서 진화의 행보가 가파르다.최근에는 납
골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산골(散骨) 방식의 수목장(樹木葬)이 시선을 끈다. 자연훼손이 없는 친환경
적인 장례문화로 2004년 타계한 한 원로 임학자의 장례식이 수목장으로 치러진 후부터다.
수목장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만들어지고 수목장을 사회운동으로 전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이
면서 수목장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정부 차원에서도 보급에 나서고 있고, 화장식 장례
문화의 발원지인 불교계에서도 적극 수용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수목장은 별도의 묘지가 필요하지 않아
자연의 원형을 보존할 수가 있고. 후손에게 벌초 등의 부담을 지우지 않아 좋다.
무엇보다 위생적이고, 적은 비용으로 고인을 편안하게 모실 수 있어 경제적이다.수목장의 종주국 스위스
에서는 26개 주에 수목장림(樹木葬林)을 운영하고 있고, 100% 화장률을자랑하는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유골의 가루를 땅에 묻고 그 위에 꽃과 나무를 심어 가꾼다고 한다. 독일은 물론이고 영국에서는 장미나무
아래 뼈 가루를 뿌리고 난 후 그 나무에 고인의명패를 걸어 둔다고 한다.
장미가 필 때면 고인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회상하는 재미가 각별하리라.출산율의 저하로 앞으로 203
0년 이후에는 아무도 찾는 이가 없는 무연고 묘가40%가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기의 죽음을 거두어
줄 후손이 없는 사람이 수두룩할 것이란 예측이고 보면, 앞으로 수목장은 더욱 각광받는 장례풍습으로 정
착할 것이다.
장묘문화가 지금의 추세로 변화해 간다면, 주변의 신세를 지기 싫어하는독신자들은 스스로 장례예약을
하는 풍습이 유행처럼 번질지 모르겠다. 그들은 스스로의 죽음을 갈무리해야만 한다. 장례대행사에다 미
리 대금을 지불하고‘내 고향 언덕의 미루나무 밑에 나의 유골을 묻어 주오’와 같은청탁서를 쓰는 시대가
보편화 될 날이 멀지 않을 것만 같다.
글/박영배 논설위원/이나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