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104]효도론- 우정론에 이은 사랑론
엊그제 어줍잖게 본채와 사랑채 당호堂號 ‘애일당’과 ‘구경재’를 빗대어 ‘효도론’과 ‘우정론’을 쓰고나니(그야말로 개똥철학이다), ‘애정론愛情論’이 쓰고 싶어졌다. 애정론은 어쩐지 한자가 어울리지 않은 것같아 ‘사랑론’으로 정했다. 엊그제 서재를 치우다 10년도 더 전에 소책자로 만들어놓은 <사랑해 일기장>을 발견한 때문이기도 했다.
<사랑해 일기장>의 서문을 옮긴다.
<<한국만화의 ‘전설’ 허영만과 언어의 연금술사 김세영 님의 만남은 아무리 생각해도 절묘하다. 그들의 빚어낸 ‘가족만화Family Cartoon’12권짜리 『사랑해』는 읽으면 읽을수록 감칠맛이 나고 사람을 너무너무 기분좋게 만든다. 연말연초 아예 한 질을 장만해 가족끼리 돌아가며 읽어보면 어떨까. 부부싸움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아내든 남편이든 누가 먼저랄 것없이 손가락 3개를 펼쳐 보이라. 그러면 아무리 화가 나있더라고 “사랑해”라고 대답해라. 손가락 3개가 뜻하는 정답이 “사랑해”이다. 그러면 만사 오케이. 하여, 2007년 ‘헌 년’이 가고 ‘새 년’이 오는 마당에, 나는 <사랑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낯 간지러울 필요는 없겠다. 사랑만큼 좋고 소중한 것이 어디 있으랴. <사랑해 일기장>의 무운장수를 기원하다>>고 쓰여져 있다. 흐흐.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밀한 일기인만큼 어느 평범한 부부의 사랑과 갈등 등을 아주 솔직히 기록한 것이다. 심지어 어느 날의 일기는 <연이틀 아내와 찐한 사랑을 나누다>로 시작되기도 하고, 아이들 문제로 크게 불화를 하거나, 아내의 건강, 나의 못된 술버릇, 대가족의 애환 등도 그려져 있다. 2007년 12월 15일 시작하여 2008년 3월 27일로 끝나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 완전히 낯선, 나의 글같지 않은 것도 많았다. 아내에게는 매일 보내주었나보다. 아내는 <짜증나 일기> <유감 일기>라는 제목으로 몇 편의 답변을 메일을 보낸 것같았다. 이 역시, 아내도 생각나지 않으리라.
아무튼, 우리가 한 생을 살면서 <사랑과 우정>이란 화두話頭(말뜸)처럼 중요한 단어가 어디 있을까? <우정과 사랑>이나 <애정과 우정>은 좀 어울리지 않은 것같다. 그리고 우정보다 사랑이 먼저이지 않을까? 이제 와 이 나이에, 나의 <사랑론>은 2008년 1월 24일에 썼던 일기로 대신할 생각이다. 읽어봐 주신다면 고마운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때 쉰 둘(52)였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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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24.
신새벽 메일함에 아내가 보낸 일기장 제목이 바뀌어 있다.
‘나도 드뎌 사랑해 일기장을 썼다’는 멘트와 함께.
아무렴, 부부의 일기장 제목이 <짜증나 일기장>이 되면 쓰겠는가.
‘짜증난다’는 말보다 ‘사랑한다’는 말이 몇 천 배 낫지 않은가 말이다.
인상을 박박 쓴 우거지상보다는 살랑살랑 웃는 얼굴이 몇 배 더 예쁘지 않던가.
아내의 현명한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
하여, 이제부터 우리 일기장 제목은 공히 ‘사랑해 일기장’이다.
사실, 부부의 일기를 대중에 공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 일기란 내밀한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루하루 기록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는 차마 공개할 수 없는 낯 뜨거운 이야기도 있을 것이고,
함께 나누며 즐거워야 할 사연도 있을 것이다.
허영만-김세영님의 <사랑해>만화책 12권을 단숨에 읽고
쓰기 시작한 <사랑해 일기장>이 한 달이 넘었다.
마치 남의 집 사생활을 훔쳐보는 듯이 가능한 한 객관적이려고 노력했다.
무슨 일이 터지면 ‘역지사지易地思之’로, 혹은 제3자적 시각으로 생각해보곤 했다.
그러다보니 평소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이 예쁘게 보이기도 했다.
또한 내가 사소하게 생각했던 나의 언행도 눈에 거스르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고 기특한 일이었다.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효과는 컸다.
오죽하면 스무 살 작은아들이 1년만에 시골에 갔는데
할머니께 신새벽에 “인자 엄마 아빠 안싸워요”라는 뜬금맞는 말을 했을까.
결혼생활 23년 동안 1천번도 넘게 아옹다옹 싸우며
살아온 우리로서도 생각지 못한 변화이다(어쩌면 나만의 생각일 것도 같다).
3주가 넘자 그동안 나의 <일기>에 침묵하던 아내가 반응을 보였다.
이른바 <짜증나 일기장>이었다.
제목이 살벌했다.‘주점뱅이’행태에 대해 속이 크게 상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반응이 있다는 것은 소통疏通이 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것인가.
‘막히면 뚫어야 하는 것’은 고금의 진리.
문득, 최근에 읽은 어느 철학자의 ‘사랑의 편지’가 생각났다.
『D에게 보낸 편지-어느 사랑의 역사』(앙드레 고르 지음)가 그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가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고 치켜세운
앙드레 고르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상가이자 언론인이었다.
60년대 이후 산좌파의 주요 이론가로 활동하며
일자리 나누기와 최저임금제의 필요성을 역설한 선구적인 노동이론가,
80년대 이후 산업시대의 노동중심성이 종말을 고하고
글로벌 경제, 정보화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고한 철학자였다.
24세때 23세의‘운명적인 여인’ 도린을 첫 만나 2년만인 1947년 결혼했으나,
아내가 불치병에 걸리자 공적인 활동을 접고 20여년간 지성으로 간호를 했다.
그러다 2007년 9월 22일 자택에서 아내와 동반자살을 하고 만다.
85세의 일이다.
불치병으로 스무 해나 고생하고 있는 아내에게 쓴 편지의 한 대목을 보자.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cm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kg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 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세상에,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다’고?
‘유럽의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 20년 동안 아내를 간호하다 동반자살을 하다니?
또다른 글에서 고르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
만난 지 60년, 결혼한 지 58년, 그들은 시골마을 정든 집에서 마치 잠자듯 침대에 나란히 누워 주사를 맞은 뒤 오랜 삶을 자유의지로 마감했다.
문득, 정호승 시인의 ‘포옹’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뼈로 만든 낚시 바늘로
고기잡이하며 평화롭게 살았던
신석기 시대의 한 부부가
여수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한 섬에서
서로 꼭 껴안은 채 뼈만 남은 몸으로 발굴되었다
그들 부부는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사진을 찍자
푸른 하늘 아래
뼈만 남은 알몸을 드러내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수평선 쪽으로 슬며시 모로 돌아눕기도 하고
서로 꼭 껴안은 팔에 더욱더 힘을 주곤 하였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줄 알지 못하고
자꾸 사진만 찍고 돌아가고
부부가 손목에 차고 있던 조가비 장신구만 안타까워
바닷가로 달려가
파도에 몸을 적시고 돌아오곤 하였다
그 섬의 연인들은 언제적 사람들인데, 대체 어떤 사연으로 그렇게 함께 꼭 껴안고 죽어
천년만에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냈을까.
인도 어디에선가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을 연상시키는
연인들의 시체가 짜란히 나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역사가 오래된 만큼 시공간을 넘어서
고샅고샅 사연도 많지만, 이런 이야기는 슬프기보다 아름답다.
‘따뜻한 슬픔’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도 살아볼 만하지 않겠는가.
우리들의 <사랑의 일기장> 몇 편을 글감으로, 이야기가 너무 오버해 버렸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화두는
인류가 숨을 쉬는 한 영원한 테마가 아니겠는가.
철학자 도르의 사랑도,
여수 앞바다 어느 무인도 연인들의 사랑도 아름답지 않은가.
당연히 우리들의 사랑과 미움도
아름다운 일상을 넘어 전설이 되어야 한다.
<사랑의 일기장>은 계속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