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가기 전날이었다.점심시간이었는데,밥먹고 쉴려고 그늘을 찾아가는 중이었다.어디선가 강아지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그 소리를 따라 가보니 아,이제 갓 눈을 뜬 강아지들이 어미도 없이 내버려져 있었다.더위에 지쳐 본능적으로 혀를 내물고 헉헉거리는 것이었다.복숭아 속살같은 투명한 혀가 측은해 보였다.모두 네 마리였는데 한놈씩 안고가서 찬물에 목욕을 시켰더니 금방 춥다고 몸을 떨었다.
먹을 것도 없었고 어쩌면 휴가를 다녀오면 녀석들은 죽어있을 지도 모를일이었다.그런데 어제 철판 야적장에서 그놈들을 보았다.철판을 포개놓은 그밑에 그늘이 진 곳에서 녀석들이 서로 장난을 치고 있는 게 아닌가.하,안죽고 살아 있었구나!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니 철판밑으로 도망을 갔다.손에 물을 받아 쑥 밀어넣었더니 내 손바닥을 핥아대었다.흐,간지러.
어미개가 없는데 녀석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어미개는 사복,더운날에 아마 인간들이 된장을 발라 버린 것은 아닐까.(삼복더위는 옛말이고 요즘은 사복이라 부른다.초복,중복,말복,그리고 광복)
돌아서면 쫒아오고 다가서면 도망가고......녀석들은 아마 인간을 가까이 하기엔 위험한 족속들로 알고 있는 듯싶었다.탈의실에 빵이 남은 게 있어서 그걸 가지고 다시 야적장으로 갔다.역시 먹어야 산다는 절대명제 앞에서는 본능이 발동하는 법이다.강아지 네 마리가 동시에 덤벼들어 순식간에 빵이 없어졌다.괜히 입만 버려 놓았나? 그런데 신기한 것은 녀석들의 배를 만져보니 빵빵하다는 것이었다.흐,도대체 무얼 먹고 살길래 이렇게 배가 빵빵한 거야? 철판밑에 드러누워 철판을 씹어먹기라도 하는 건가.한모숨에 두 마리가 잡히는 몸피.집에 가져가서 기를까도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이내 포기를 했는데 잘 기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얼마 전에 기르던 개도 목졸라 죽여 버리지 않았던가 말이다.또 공교롭게도 내손에 잡힌 강아지 두 마리가 암놈과 숫놈이 아닌가.한놈만 데려간다면 한놈은 얼마나 성질나는 일이겠는가.
집에서 밥을 챙겨주는 사람만 있다면 네 마리를 모두 집으로 가져오고 싶다.내 이기심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개를 무척 좋아한다.아마 조선소에 사는 개들은 야성의 본성으로 쥐를 잡아먹거나 할지도 모르겠다.사람들을 따라다니면 식당근처로 데려다줄 수도 있는데 왜 녀석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겨울이 오고 날씨가 추워지면 놈들은 모두 얼어 죽을지도 모르겠다.바닷가 바람이 좀 매서운가 말이다.겨울을 무사히 난다고 해도 내년 사복을 또 무사히 보낼 수 있을지.절단기 가스불에 털이 그슬리지나 않을지.몸에 된장이 발려 사람들 입으로 들어가지나 않을지.
모든 게 예전같지가 않다.아무리 술이 떡이 되어도 회사에 나가서 개겼는데,이젠 일어나지를 못하겠으니...일어나니 일곱시 이십분이었다.통근버스는 이미 떠났으니...그래도 짤리기는 싫은가? 난생처음 직장한테 늦잠을 잤노라고 변명을 했다.흐,먹고사는 일의 고단함이여!
아침에 일어나면 자동으로 밥을 챙겨먹고 아무 생각없이 본능적으로 회사에 출근하고 아무 생각없이 일하다가 퇴근하면서 거의 또 본능적으로 막걸리 두 통 마시고 또 아무런 반성없이 잠들고.....파블로프의 개처럼 나는 어느새 일상에 본능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선소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개들한테 물어보고 싶다.어떻게 사느냐고......도대체 어떻게 사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