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폐소생술 필요 유무를 어떻게 구별할까?전남의대 응급의학과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새우를 반주삼아 술잔이 깊어지던 어느 밤.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맞은 편에서 소주를 들이키던 형님이 반사적으로 뛰쳐나갔다. 등 뒤로 고개를 돌려보니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그는 특수구조대원이었고 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였으니 우리 둘은 말하자면 사람 살리는 선수들이었다. 일하는 장소와 방식은 다르지만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나서는걸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날도 우리의 술안주는 1년전 네팔에서 사람을 구했던 찬란한 무용담이었다.
환자는 잠시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윽고 딱딱하게 몸이 굳었다. 숨 쉬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점차 창백해졌다.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작하려면 형님(구조대원)을 제지하고, 경동맥을 촉지했다. 손끝을 타고 분명한 맥동이 전해져왔다. 나는 심정지가 아님을 알린 후 기도 확보에 주력했다. 얼마 후 환자는 의식을 회복했다.
*심폐소생술을 하려던 구조대원의 판단은 적절했을까? 내가 없었다면 그는 100% 확률로 심폐소생술을 했을 것이다. 그건 환자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해가 되었을까?
피 같은 오프에 이런 이야기를 주절대야 하다니. 쯧쯧. 심폐소생술을 둘러싼 작금의 모든 논의가 엉망진창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서는 바. 단호하게 말하는데 이렇게는 안된다. 이건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기사를 더 찾아볼 필요도 없고 논의를 더 이어나갈 필요도 없다. 다 틀렸다.
일단 하나 기억하고 시작하자. 당신들은 내가 아니다. 나는 응급의학이라는 특수한 분야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다. 함부로 따라하다간 패가망신하기 쉽다. 이는 의사들도 마찬가지.
*심폐소생술은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의 공통된 잣대만 있는게 아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그리고 구조자의 능력에 따라 각기 다른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이는 또한 의학의 보폭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화중이기도 하다.
가이드라인이 복잡하단 얘길 하려는게 아니다. 일반인은 아주 간단한 원칙만 새겨도 충분하니까. 실제 일반인 가이드라인은 아주 쉽게 만들어져 있다
내가 말하려는 대상은 여론에 영향을 끼치는 전문가들이나 기자들이다. 가이드라인의 행간을 읽고, 각각 항목이 어떤 근거를 가지며, 시간이 흐르면서 왜 어떤 이유로 항목들이 변화해왔는지 심도깊게 고찰하지 못하겠으면 그냥 침묵하는 편이 건강한 사회를 위해 더 고마운 일이 되시겠다.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을 때 심정지 여부를 구분할 수 있을까? 단순 실신이나 경련인지? 만취 상태로 길거리에 버려진건지 알 수 있는가? 좀 더 나아가자. 새벽에 옆에 자고 있는 가족이 자고 있는건지, 심장이 멎은건지는 어떻게 구분하는가?
심장이 뛰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시행하는 심폐소생술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심폐소생술은 아무리 잘해도 정상 심기능의 20%도 내기 어렵다. 대신 늑골 골절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만 생긴다. 자고 있는 가족의 갈비뼈를 부술 이유는 하나도 없으니, 우린 쓰러진 사람의 심정지 여부를 알아낼 필요가 있다.
*심장이 뛰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가장 원론적인 방법은 경동맥 촉진이다. 그래서 오래 전 가이드라인은 경동맥 확인을 권고했었다. 하지만 연구가 진행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일반인의 경동맥 측정은 ‘전혀’, ‘하나도’ 맞지 않는단 사실이다. 따라서 더는 일반인에게 경동맥 촉진이 권고되지 않는다. 지금은 훈련받은 의료인만 경동맥을 촉진하도록 권고된다.
고로, 일반인은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을 때 심장이 멎었는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온 인류가 밤새 잠에 취한 가족을 보며 혹시나 싶어 불안해하며 심폐소생술을 고뇌해야 한단 말인가?
*우린 한계를 인정한다. 일반인이 심정지를 알아낼 방법은 없다. 하지만 심정지 가능성이 높은 환자는 알 수 있다. 딱 2가지만 확인해서, 이에 부합하면 심장이 뛰든말든 그냥 심정지로 ‘간주’하면 된다. ‘간주’되면? 자고있든 취해있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심폐소생술을 하는거다. 그러다 갈비뼈가 깨지면? 칭찬받을 일이다.
1. 의식확인. 반응이 있는지 여부. 여보세요? 괜찮으세요? 불러보고 두드려본다. 대답하거나 반응하면 살아있음.
2. 숨을 쉬는지 확인. 정상적으로 잘 쉬면 살아있음. 숨을 쉬지 않으면 심정지로 간주. 정상이 아니고 껄떡거린다든가 아무튼 이상하게 숨을 쉬면 무조건 심정지로 간주.
즉, 불러보고 깨워보고 숨 쉬는지만 보면 된다. 그리고 ‘간주’하면 정답이다.
*심정지의 골든타임은 다른 모든 질환을 압도한다. 분초 단위로 생존이 갈리고, 살더라도 장애 여부가 실시간으로 요동친다. 고민하는 시간도 사치다. 긴가민가 싶으면 일단 진입하는게 원칙.
심정지가 아닌 사람을 오인하여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을때의 손해는 극히 미미하나, 망설이는 사이에 놓친 실제 심정지 환자의 예후는 하늘과 땅 차이다. 손해 대비 이득이 너무 확연하여 재고의 가치가 없다. 99명에게 실수해도 괜찮으니 1명을 놓치지 않는게 더 가치가 크다.
*또 하나. 심장이 뜀에도 심정지로 오인하여 일반인이 심폐소생술을 했을때, 이로인해 환자에 가해지는 손상은 굉장히 적다. 매우 희박한 확률로 늑골 골절 정도가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혹시 모를 해를 두려워해 망설일 이유가 없다. 가이드라인에 명시되어 있는 내용이다.
물론 사람을 구했다는 어떤 영상들을 보며 나도 간혹 피식할때가 있다. 살아있는게 확연한 사람인데 굳이 가슴압박을 하고 있을 때다. 지금까지 설명을 잘 따라왔다면, 무조건 하는게 좋다며? 라고 반론을 할수도 있겠다. 칭찬하고 싶다.
하지만 하나만 더 기억하자. 의식과 호흡 확인이 그것이다. 이 과정을 건너뛰면 멀쩡히 자고 있는 가족을 밤중에 깨우게 된다. 내가 영상을 보며 피식하는 것도 대부분 그 경우다.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기 쉽다. 심폐소생술이 장시간 지속되면 당연히 다양한 합병증이 발생한다.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문제가 발생하고, 때론 그로인해 환자의 소생에 실패하기도 한다. 그런 중증의 환자를 많이 볼수록 어떤 편견에 빠지기 쉽다. 그렇다고 그런 합병증이 존재하지 않는단 확신도 경험 부족을 드러낼 뿐이다.
아무튼 일반인이 현장에서 시행한 심폐소생술이 환자에게 큰 해를 끼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니, 기자들은 굳이 그런 케이스를 찾아 병원을 수소문 할 필요가 없다.
*현장과 병원은 다르다. 병실과 중환자실 그리고 응급실도 다르다. 응급실과 현장도 다르고, 일반현장과 재난현장은 또 다르다. 이 차이를 모르면 응급의학이란 학문을 아직 잘 모르는 것이다.
경동맥 측정은 의료인에게도 쉽지 않다. 응급실의 소란스런 상황에서 이 술기에 실패하는 경우는 무수히 많다. 더구나 현장은 더욱 그것이 심하다. 혼란하고 정돈되지 않은, 그리고 낯선 환경에서 시술에 자신감을 갖는건 만용이다.
의료인도 경동맥 측정은 10초 이상 해서는 안된다. 나 정도 되는 전문가도 현장에서는 심정지를 얼른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단 얘기다. 그럴 경우엔 일단 시작하는게 원칙이다. 긴가민가 싶으면 일단 들어가고 보라는 건 모두에게 통용된다.
*왜 이렇게까지 강조해서 말하냐면, 이런 논란이 일어나는 자체가 일반인들의 심폐소생술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우리나라는 일반인 심폐소생술 시행률이 낮은 나라다. 살릴 수 있는 무수한 환자를 지금 이 순간도 잃고 있단 얘기다. 그나마 최근에는 선진국을 많이 따라 잡았는데, 이는 수 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쌓는건 어렵지만 무너뜨리는건 쉽다. 무너진걸 다시 쌓는건 더욱 어렵다. 심폐소생술의 위험에 대한 논의나 기사는 모두, 일반인이 구조상황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주저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이는 모든 사회 구성원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수십년에 걸친 우리 모두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한 손이라도 개입한 인간들은 인간적으로 말도 섞기 싫다.
*정리한다.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면 두가지만 확인하라.
의식과 호흡.
확인해도 잘 모르겠으면?
일단 심폐소생술을 시작하면 된다.
혹시나 잘못되면 어떡하냐고? 걱정할만한 위해는 생기지 않는다고 이미 연구가 되어있다. 신경쓸 이유가 없다. 선한 사마리아인법도 제정되어 있다. 일반인은 법적인 걱정 또한 내려놓아도 된다. 그러니 그냥 나서라.
그게 너가 다른 이들을 살리는 길이고, 그래야 다른 이들도 너와 네 가족을 살린다.
지금까지 내가 심폐소생술 강의 나가서 하는 이야기의 일부분을 작성했다.
보통 1시간반 - 2시간 정도 이렇게 썰을 푼다.
내 이름걸고 강의에서 하는 얘기니 믿어도 좋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환자는 잠시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윽고 딱딱하게 몸이 굳었다. 숨 쉬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점차 창백해졌다. 심폐소생술을 하려던 구조대원의 판단은 적절했을까?
더 할 나위없이 훌륭했다. 심폐소생술을 하는게 맞다.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은 무조건 심폐소생술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럼 나는 왜 안했냐? 전문가니까. 내 흉내내면 안된다. 큰일난다. 선수도 아닌데 100미터를 9초대에 뛰려고 하면 쓰나. 가랑이만 찢어지지.
고로, 나는 내 할 일을 한 것 뿐이니 차치하고. 우리 사회는 저 구조대원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의인’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 사회의 모든 의인들에게 리스펙을 보내는 바이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