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춘배 아우구스티노 신부
연중 제27주일 (군인 주일)
이사야 5,1-7 필리피 4,6-9 마태오 21,33-43
소출을 내야만 하는 하느님 나라
“너희에게서 하느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들에게 주실 것이다.”(마태 21,43)
추석 명절은 잘 지내셨나요. 넉넉한 추석이 되었을까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자칫 탐욕으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소작인이 의당 내야 할 몫, 소출은 현대판 우리의 나눔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포도밭 소작인 비유입니다. 언뜻 지주에 대한 농민 봉기가 연상됩니다.
그러나 비유의 핵심은 더 본질적입니다. 포도원은 하느님이 만든 세상이고, 우리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피조물임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소출을 내야 할 소작인이 자기 분수를 모르고
탐욕을 부린다면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겁니다.
마음을 바꾸어 먹지 않으면 망한다는 하느님 나라 비유입니다.
1. 사태 파악이 안 되는 주인
오늘 복음은 무섭습니다. 폭력적인 상황에 피비린내가 진동합니다. 소작인들의 탐욕이 부른
참극이지만 사태 파악이 안 되는 주인도 참 딱할 노릇입니다.
밭 주인은 누구 도움 없이 홀로 포도밭을 일구고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웁니다.
그리고 감독관도 세우지 않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납니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소출을 받아오라고 종들을 보냅니다.
소작인들은 소출은커녕 종들을 매질하고 죽여버립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면 사태 파악이
되어야 할 터인데, 주인은 더 많은 종을 보내 죽게 만들고 맙니다.
급기야는 자기 아들까지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바보 같은 주인입니다.
비유 말씀의 밭 주인은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당신이 창조한 세상 모든 것을 기꺼이 인간 손에
맡기십니다. 인간이 사악하게 놀아나도 믿고, 믿고 또 믿어줍니다.
믿는 것 외에 당신 사랑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으셨을까요. 어쩌면 그리도 인간들을 믿을 수 있는지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래서 아들까지 죽이고 맙니다.
2. 하느님은 무골호인이 아니다.
포도밭 유혈 참극을 벌인 소작인들을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대답합니다.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41절)
그러자 주님은 그들의 말 그대로 확증해주며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서 하느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43절)
이런 가정을 해봅니다. 소작인들이 일으킨 반란이 성공을 거두어 주인까지 내몰고
포도밭을 차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소출을 내지 않는 그만큼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아닐 것입니다. 그들의 탐욕은 끝이 없을 터,
더한 폭력성으로 소작인 서로를 향한 칼날은 여지없이 피를 불렀을 것입니다.
어느 면에선 하느님의 뜻을 도외시하고 하느님 없는 양 살아가는 그 자체가 징벌이 될 것입니다.
지금의 지구촌이 그것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코로나 상황과 기후 위기도 그렇고
전쟁 상황과 거꾸로 가는 역사의식도 그렇습니다. 생태환경과 사회환경 모두가 두려운
징후를 보입니다. 그런데도 별문제 없는 듯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내야 할 소출은 결코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한 어떤 것이 아닙니다. 금전으로 본다면
보통 십일조가 기본입니다. 유다인은 회당 운영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몫으로 10분의 2 정도
한다고 합니다. 내 것으로 여겨지는 금전은 물론 시간이든 재능이든 일정 부분 내놓아야 합니다.
소출도 좋고 나눔이라 해도 좋습니다. 기꺼이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나누는 겁니다.
작은 일이지만 소명이 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명이 될 수 있습니다.
더 가지려는 허기진 마음의 동료에게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소출을 내야 하는 인간 실존! 자존심 상해 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닙니다.
다만 주인 된 마음으로 주인의 뜻대로 포도밭을 가꾸고 돌보아야 합니다.
오늘 있다 내일 사라질 하루살이와 다를 바 없는 피조물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의정부교구 서춘배 아우구스티노 신부
2023년 10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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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사도요한 신부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이사야 5,1-7 필리피 4,6-9 마태오 21,33-43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기쁨, 하느님만이 채워주시는 행복
병 복무 시절, 성당은 지친 영혼에 기쁨과 평화와 행복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열정적인 군종신부님과 따뜻했던 군 가족 신자들은 장병들을 한 명, 한 명 세심하게 챙겨주었고,
덕분에 신앙공동체가 만들어지고 활성화되었습니다.
그렇게 성당은 모든 이의 안식처가 되었고, 저희의 신앙과 열정은 커져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자 한 분이 제 손을 잡으시며 군종 사제로 꼭 다시 와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군종 사제를 희망해서 오시는 신부님이 계시지 않는 것이 공동체에 큰 아픔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군종 신부님처럼 장병들과 신자들을 세심하게 보살펴주는 군종 신부님이 되어달라는 부탁이
‘목자 없는 양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날부터 하느님께 ‘부족한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군종 사제의 삶을 살아가며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 싶다’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삶을 살아가게 되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군종 사제의 삶은 특별합니다. 성당에서 신자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 활동을 보장받지 못하는 곳에서의 신자들을 위해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종 사제는 사제의 역할뿐만 아니라 장교로서 요청되는 각종 업무와 교육 그리고
부대행사에 기쁘게 참여하며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활동합니다.
그래야만 장병들과 신자들을 위해 어떤 무언가를 부대에 요청했을 때 기꺼이 허락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무장님도, 봉사자분도 계시지 않아 그 모든 것을 혼자 관리하고 준비하고 나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제로서 하느님을 위해서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기쁨이,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행복이 군종 사제에게 힘을 매어줍니다.
오늘 제1독서 포도밭의 노래와 복음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는 하느님께서 주신 삶을
성실히 살아가며 지속적인 선행으로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을,
그리고 제2독서는 그 여정에서 맛볼 평화를 전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며
열매를 맺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기쁨과 평화와 행복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갑시다.
특별히 군인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나라를 지키는 장병들과 그 장병들과 함께하는
군종 사제를 위해 많은 기도와 후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광주대교구 박진호 사도요한 신부
2023년 10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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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용 바오로 신부
연중 제27주일 (군인 주일)
이사야 5,1-7 필리피 4,6-9 마태오 21,33-43
나는 누구인가?
예루살렘 입성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예수님을 향한 그 당시 지배계층의 견제,
오늘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는 그들을 향한 직접적인 비판이자 동시에 당신이 겪으셔야 할
구원의 길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수많은 예언자들을 몰라보고 그들에게 돌을 던진 조상들의 악행,
그것을 보시고도 아들만은 존중해 주리라는 희망으로 예수님을 보내신 하느님께,
소작인들로 대변되는 이스라엘은 또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합니다.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라는 소작인들의 말은 예언자들을,
예수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불완전한 인간의 이기심을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셨을지 생각해 봅니다. 이미 다 가르쳐주었는데, 이미 다 보여주었는데 …
자꾸만 무엇인가 더 보여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과, 반대로 보고 들은 것을 애써 뒤로한 채,
본인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해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얼마나 억울하셨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당신이 가셔야 하는 길을 가실 때의
그 걸음걸음이란 … 가늠이 되질 않습니다.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예수님을 답답하게 해 드렸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도 그저 우리들의 이기심과 욕심에 하느님의 뜻을
애써 외면하는 것들 말입니다. ‘내 마음은 하느님을 믿고 있으니 매주 미사에 참여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아도 나는 괜찮아.’, ‘굳이 내가 봉사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하겠지.’ 등등 …
군대에서 예비자 교리할 때, 마지막으로 힘을 주어 강조하는 부분이 ‘신앙인의 의무’입니다.
세례를 통해 신앙인이 되어 누리게 되는 권리로 인해 주어지는 의무가,
그동안 그렇게 살아보지 않은 친구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기에 마지막 이마에 물을 붓는
순간까지 고민해 보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자신만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던 친구들도,
얼마가지 않아 미사참석에 소홀해지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요.
그래도 다시 도전하고 나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계속되는 도전으로 주님의 포도밭에서 다른 것을 바라지 않고
제대로 된 소출을 내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전주교구 이성용 바오로 신부
2023년 10월 8일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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