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님의 이과 노예 장영실.
(문과 노예는 너무 많아 생략)
그는 말년에 임금님이 타시는 어가 문제로
곤장형을 받고 파직된 뒤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이걸 가지고 많은 음모론이 있는데.....
먼저, 한 가지 바로 잡아야 할 것이 있다.
안녕하세요, 조선 민원 24시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곤장 맞으러 왔는데여
왕이 80대 내렸어요.
밤낮으로 굴릴 땐 언제고...
어디보자....80대면....
몇포 몇 필만 내시면 되겠네요.
납부하시고 영수증 챙겨가세요.
우리가 생각하는 장형, 소위 말해서 곤장이
전부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속전이라 하여서
그냥 장형에 따라 돈이나 면포를 내면 그만이었다.
아예 가격표까지 있을 정도여서
사대부들은 어련히 속전으로 퉁치곤 했다.
(단, 왕이 빡쳐서 때려죽여버리라고 할때는 제외)
안녕, 나는 현명한 왕 킹 세종이야.
장씨 노예....아니 장영실 건으로
툭 하면 내가 까이는건 알고 있는데,
애초부터 나는 장영실을 처벌하지 말자는 쪽이었어.
그런데 신하들이 하도 난리니까
파직하고 곤장형을 내린거지.
그런데 왜 80대나 내리신거죠?
일종에
'내가 이만큼 장영실을 처벌했다~
그러니 만족해라~'라고 퍼포먼스 좀 한거지.
애초에 애민정신으로 유명한 왕이
가마부서졌다고 유능한 관리를 쳐죽이는게 말이 되냐
?
그런데 왜 저에 대한 자료는 없나요?
하잇!
임진왜란 때 저희가 다 불태워버렸스무니다!
저 샊이들을 내가 살아 있을 때 밟아버렸어야 했어..
암튼 장영실의 고향인 동래군에 대한 자료와
조선 전기의 기록이
임진왜란으로 불타 사라졌거든.
그래서 장영실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몰라.
하지만 몇 가지 사건으로 유추해볼 수 있어.
1. 만약 장영실이 죽었다면,
사관이 '장형으로 죽었다'라고 기록할 텐데
딱히 그런 기록이 없다.
2. 장영실과 함께 파직된 관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복귀 되었다.
3. 당시 장영실은 60의 나이였는데,
당시에는 그것도 오래 산 편이었다.
즉, 세종대왕은 신하들과 장단맞추기 위해
장영실을 형식적으로 파직시킨 다음
다시 부르려고 했던 거야.
애초에 세종 휘하에는 자유가 없어...
파직?
그건 널 다시 부려먹기 위한
작은 움츠림이 불과하다...
조선 임펠다운에 온 걸 환영해 노예들아.
너희들에게 인권은 없어.
아무튼 60의 나이로 고향에 돌아간 장영실.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데다가
지금까지 몸과 정신이 혹사 당해서
결국 노환으로 고향에서 사망한 것이다.
그래서 세종도 그를 부를 수 없었고,
대신 다른 관리들만 불렀던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뭐만 하면 음모론 펼치는 애들아.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나 킹 세종이야.
왜 관리를 죽여?
죽은 관리는 못부려 먹잖아!!!!
그 노동력을 짜내야 하는데 왜 죽여!!!!
그럼 저는 그저 죽음으로서
자유를 찾은 것 뿐이군요.
'조말생' 당한거지 뭐.
아무튼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장영실이 파직된 이유를 보면
꼭 무언가 요란하고,
남의 눈에 띄는 사건이라는 거야.
마치 '장영실이 잘못 있으니 파직하세요!'라고
광고하듯이 말이야.
횡령이나 매관매직이나 그런건 없어....
사학자들은 장영실을 시기 질투한 다른 이들이
그를 모함하기 위해서
음모를 판건 아니냐고
추측하곤 하지만....
진실은 이미 사라져서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난 파직됐다!
파직 됐다고!!! 보고 있냐, 황씨!!
내가 여기서
언젠간 탈출한다고 그랬잖아!!
난 자유다!!!!
황희 (세종 문과 노예 1호)
조케따...
첫댓글 이런 글 너무 좋다
ㅋㅋㅋㅋㅋㅋㅋ황희 짤 왤케 아련해
조말생 선생도 사직을 청했으나 끝까지 윤허하지 않았다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