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노이에스 박물관>
“새로운 박물관”이라는 뜻의 노이에스 박물관은 비파형 청동검의 전파 이주사에 대한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는 의미 있는 박물관 이었습니다.
1. 문 열자 마자 왼쪽편에 있는 첫번째 방 “발굴 고고학 아버지 슐레이만 방”
슐레이만의 방에는 수많은 청동검과 그에 대한 연구 논문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중에 신주 단지 처럼 모셔 놓은 청동검. BCE 17~16세기 마케도니아 그리스에서 발견 된 것인데 놀라운 것은 BCE 24세기 송화강 아사달 시대에 고조선 영역에서 발견된 “비파형 청동검”과 모양이 비슷해서 놀랐습니다.
수많은 발굴 유물이 있음에도 슐레이만의 방을 청동검의 방으로 장식한 것으로 볼 때 아마도 슐레이만은 청동검의 전파 경로에 원형문화의 비밀이 존재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던 듯 합니다.
2. 두번째 방은 “슐리만의 트로이 지역 발굴 방”
슐레이만의 업적 하면 떠오르는 것이 신화와 전설로만 여겨 졌던 '트로이 유적 발견과 발굴'일 것입니다. 사실 슐레이만이 고고학이 뛰어 든 이유도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가 담긴 '호메로스' 서사시를 읽고 난 뒤였다고 하네요.
놀랍게도 훈족 박물관에서 발견된 BCE 1600년대 유물과 너무도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사진 왼쪽이 트로이 지역 유물, 오른쪽이 헝가리 지역의 유물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트로이 지역 유물들이 3수 철학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위와 오른쪽에 유물은 동이족의 이주민이 세운 나라 은나라, 그리고 주나라 유물이고, 트로이 유물이 아래 왼쪽에 있는 사진입니다. 아래의 경우에는 거의 도플갱어 식으로 닮아 있지요. 사실 중국학자들이 왜 정(鼎)이 발이 3개로만 있어야 하는 지 모른다고 하죠. 중국것이라면 음양을 상징해서 다리가 4개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요. 어쩔수 없이 천지인 삼재를 상징한다는 식으로만 돌려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정(鼎)은 삼신상제님께 제사 올릴 때 쓰는 쓰는 솥입니다. 집일함삼, 회삼귀일의 정신의 주재자이신 한민족이 받들어온 삼신일체 상제님을 상징하여 한 몸통에 3개의 다리가 연결되게 만든 것입니다. 투박하지만 비슷한 형태의 토기가 보입니다. 삼신상제님의 3수 법칙을 고집스럽게 따르는 것 부터 비슷한 형태의 토기,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3. 2층과 3층에 전시된 BCE 500년 이전 청동검들
사진의
첫번줄 - 독일
두번째 - 켈트 BCE 3세기
세번째 - 스키타이 BCE 8세기
네번째 - 독일 북부
유물을 통해 보는 비파형 청동검 전파 역사가 자세히 진열 되어 있었습니다. 유럽에 나와서 고고학 박물관의 유물들을 사진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현장에서 확인 해 보니 청동검의 이주사 (실제로는 정복사)가 유럽의 고대사였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환단고기에 나오는 배달, 삼한의 영토가 생각보다 더 컸을 거 갔다는 생각도 듭니다.
청동검을 가진 이주민이 이주를 하면서 삼신의 문화가 전파 되었고 그 문화 코드를 토착화 하면서 지금의 유럽의 조상 문화가 형성된 것이라 보이네요. 환국, 배달, 조선이 실제로 대 제국이었고, 유라시아 대륙을 통해서 전파된 북방 유목 문화가 세계사에 미친 영향력은 가히 엄청 났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1세기의 한류가 있기 전에 이미 고대 시대에 한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내 조상님 역사를 너무 과소평가해 오면서 자격지심만 갖고 살아온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개벽밸리 카페 Marshal님 글
첫댓글 귀중한 자료사진 감사합니다 !!!
스키타이와 그 조상의 연원이 기원전 13세기 반정으로 정권을 뒤엎어, 권좌에 오른 색블루로부터라고 개인적으로 추정하고 있었지만, 위의 자료들을 보니, 더 오래 3세 가륵단군 때, 욕살에 임명된 색정부터라고도 추정 가능하겠군요 !! 감사합니다 !
좋은자료 되었다니 감사합니다. ^^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