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셋시어멍이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왔다.
토요일이 일 없는 날이라 시누이와 같이 가서 뵙고 오자고 약속을 했는데
갑작스레 그새 돌아가셨다.
올해 89세이나 잔병치례도 없었고 제사나 명절이 아니면 찾아뵙지 못한지라
죄송함이 앞선다.
시아버님이 열형제 중 맏이여서 이미 반은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시집가서 내리 고조,증조, 시부모님과 친족들의 죽음을 하도 많이 봐 왔고 하물며 惨槭까지
당하다 보니 이제는 죽음에 면역이 될 법도 한데 눈물부터 나온다.
메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나오는 건 내게도 죽을 날이 점점 가까워짐을 느끼기
때문인가 보다.
가까운 장례식장은 자리가 없어 근처의 마을청년회에서 운영하는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殮襲하는 동안 지붕도 없는 대기실 앞에서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서 있었다.
공동묘지 옆이라 한라산이 보이고 탁 트인 초원에 개망초와 민들레가 한창이다.
하얀 민들레 홀씨가 바람 타고 흩날린다.
줄 지어 선 산소 위에는 고사리와 노란 꽃이 무성하게 올라와 비석이 없으면 숲덤불로 보일
지경이다.
이래서 벌초는 오월에 또 팔월에 두번 해야하는가 보다.
가린 명주천 사이로 어머님의 팔이 드러났다.
저승꽃 가득한 살가죽이 앙상한 뼈를 덮고 있었다.
하늘로 눈을 돌렸다.
아! 하늘은 저리도 맑고 푸르구나.
산 부엉이가 이따금 한번씩 울어댄다.
이름 모르는 산새도 입관실 주위를 날아다닌다.
셋어멍도 명주와 삼베로 갈아입고 곱게 화장하고 마지막을 새소리와 꽃향기에 취해 먼 길을
떠나니 과히 슬프지는 않으리라.
창백한 형광불빛에 소독 냄새 도는 병원 지하 장례식장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轉糞世楽,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는 말을 요즘 들어 실감한다.
젊었을 때는 돈과 명예만을 위해 브레이크 없이 질주했다.
몇번이나 엎어먹고 뒤집고 살아오다 보니 경로우대 받을 나이가 되어서야 철이 들어가는 것 같다.
"자식들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 사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고 하다가도
올망졸망 커 가는 손자들을 보니 "저것들 장가 갈 때까지 살 수 있으려나" 욕심이 생긴다.
이승이 낫다고 하니 살 수 있는 데 까지는 살아보자.
오월의 장미가 저리도 고운 데 지금 죽으면 여한이 생 길 것 같다.
첫댓글 ㅎㅎ...손주들 자식 낳아 기르는 것도 보실거라는데에...한표!
에구구~ 징그러버요.
아우라님~오랜만에오셨슴니다.반가워요
상을당하셨네요?위로를드립니다.맞아요.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휠씬 나은게 맞는게 같아요.건강하게 살아서 손주들 잘성장 하는것도 보는복도누리시길 바래요
윌리스님.
그간 별고 없으시죠?
반갑습니다.
자주 삶방을 기웃거립니다. ㅎ
일어방에서 살지만 고향은 삶방이였지요.
좋은 계절에 즐거운 나날 되시길 바랍니다.
에이 전 한70후반쯤 되신줄 알고 ㅎㅎ
그러시는거 아닙니다 앞날이 챙챙하신데 ㅋ
아! 그렇습니까?
애 늙은이로 봐 주세요? ㅎ
@아우라 피이~ 여기서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 ㅋㅋㅋ
아우라님 글이 잔잔하면서도 정감이 있습니다
자주 뵙기를 원합니다 은근한 세련미에 빠져
또 읽어 봅니다
전에 가끔 글 올렸었지요.
민정님 글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아우라님 제주 분이신가봅니다.
우리 엄마 친정, 제 외가가 제주입니다.
돌아가신 우리 엄마는 제주시 1도2동에서 성장하셨다 하셨고, 제주시 노형동에서 이모님이 사십니다.
제 피의 절반이 제주 피이니, 일단 반가운 마음이 앞서고요, ^^*
차분하고 탄탄하신 필력에 감탄하는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제주의 장례에 몇 번 참석한 일이 있는데, 보리빵을 제수로 올리는 것이 특이하다고 느꼈고
큰일 있을 때 끓이는 몸국이랑, 빙떡인가요? 그저 심심하게 부쳐 먹는 전병, 그것도 잊지 못할 맛이고요.
어려서 제가 뭘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우리 엄마께서
"메께라, 영한 숭시도 이서?"
라고 제주 말로 놀라시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저도 노형에 삽니다.
식음을 전폐한 어머님이 마지막으로 메밀죽을 맛있게 두번이나 드시더랍니다.
머~언 저승밥은 먹고 간다는데 그랬나 봅니다.
제주여인들은 머슴처럼 억척스레 일 만 하다가
저 세상 갑니다.
선배님
위로의말씀드립니다
중학교2학년때 처음외숙모의죽음을겪으면서 가까운사람의 죽음앞에 세상이 다 녹아내리는듯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죽음앞에 감정또한무뎌져
눈물마저 말라버린것같은 느낌이네요
그렇게 나이들어가는가봅니다~
오래오래 뵐수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선배님~~^^
검버섯 가득한 살가죽에
뼈 만 붙어 있는 팔을 보며
'제 아무리 잘 나도
죽을 때는 저 모습이구나' 비참해집니다.
다음부터는 입관식 안 볼 랍니다.
너무 슬퍼요.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 사시는군요
계절에 여왕 오월 장미꽃필 때 멀리 가셨네요
둘째 시어머니는 누구를 말함일까 한참을 생각합니다
가신이의 명복을 빕니다
제주도에선
둘째 시아버님을 셋 시아버님.
셋째 시아버님은 말젯 시아버님.
막내 시아버니은 작은 시아버님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큰집입니다.
어머님 장례를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가족 공동묘지에서 지내고
또 바쁜 일상으로 일 하러 갑니다.
홀로 남은 셋아버님이 걱정됩니다.
치매기가 있어서 동서한테 고생하겠다며 위로와 부탁을 해 봅니다.
고마우신 글 감사합니다.
전에는 삶방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요즘은 지나가다 들여다 볼 뿐입니다.
가끔 방문하렵니다.
어제간 사람들이 오늘 산사람을 부러워 한데요
이왕 주신생면 열심히 살다 부르는날 잘들 있어라 하고 가지요 뭐
生을 즐기기 보다 의무감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