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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묘비명(墓碑銘) |
한평생 예술을 위해 영혼을 바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삶을 한마디로 정리한 묘비명(墓碑銘) 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예술로 다가온다. |
묘비명(墓碑銘)은 죽은 사람을 기리는 짧은 문구다. 묘비(비석)에 새겨진 문구를 가리킨다. 일부 묘비명들은 사망 전에 자기 자신이 직접 쓰기도 하며, 그 외에는 매장을 책임지는 사람들에 의해 선택된다. 대부분의 묘비명은 가문, 경력, 죽은 이의 간략한 기록일 수 있다. 여기에는 종종 ‘경애하는 아버지’와 같은 사랑이나 존경의 표현이 들어간다. 저명인사의 묘비명은 가문의 기원, 경력, 선행에 대해 점차 장문의 글을 쓰는 경향도 있다. 죽음은 삶을 건강하게 하는 중요한 방부제 같은 것이다. 만약 영원히 산다면 인간들은 지금보다 더욱 오만해질 것이 분명하다. 사람이 죽으면 묘비명을 쓴다. 자신이 직접 썼든 누군가가 써주었든 묘비명에는 죽은 사람의 삶과 정신을 보여주는 경구가 새겨지기 마련이다. 지나간 인생을 반추하면서 ‘내가 죽은 후 내 묘비명은 어떻게 쓰여질까.’를 늘 염두에 두면서 인생을 사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듯싶다.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영원한 존재로의 과정으로서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최근 들어 존엄사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존엄사란 최선의 의학적 치료를 다 했음에도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가치를 지키며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이다. 즉 사전에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 의지다. 그래서 죽음은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맞이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태어난 것을 자신이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례를 애도하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으로 인식했으면 한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나 혼자 울고 주위 사람들 모두는 웃었고, 내가 죽을 때는 나 혼자 웃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가 우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 자에게는 죽음은 승리이자 죽음으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인 것이다. 당신의 묘비명은 무엇으로 정할까?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어떤 말을 남길까? 묘비명은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해 생전의 업적과 관련된 내용을 비문에 새길 내용으로서, 곰곰이 사전에 작성해 보는 것도 현명한 일이다. 멀지 않은 훗날 지인이 성묘 갔다가 묘비명을 보게 될 것이다. 사례로 위인들의 묘비명과 유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시대를 밝힌 ‘큰 별’ 김수환 추기경의 묘비에는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라는 묘비명과 생전의 사목이었던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인간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 삶의 이유였던 추기경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남은 사람은 떠난 사람이 남긴 마지막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무엇을 배울까? 역사 속 위인의 유언과 묘비명을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삶을 ‘팍팍하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한 많은 민족 정서는 유언이나 묘비명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반면 서양의 묘비명은 예전부터 냉소적이고 재치 있는 형식을 갖추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공산주의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1818~1983)는 그의 평생 동지였던 엥겔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유언이란 평소에 할 말이 없었던 사람이나 하는 것 같네.” 오늘날에도 여전히 동양인의 사고를 규정짓는 공자(BC 551~479)는 ‘지는 꽃잎처럼 현자는 그렇게 가는구나.’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여기 한 무신론자가 누워있다. 옷은 차려입었는데 갈 곳이 없구나.’ ‘물로 이름을 쓴 한 남자가 여기 누워 있노라(존 키츠).’ 등 위트는 있되 그저 웃으며 지나칠 수 없는 의미를 내포한 묘비명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재치 있는 말을 남긴 사람이 있다. 걸레 ‘미치광이 중’을 자처하며 삶을 파격으로 일관했던 중광 스님의 묘비명은 ‘괜히 왔다 간다.’다. 권력이나 물질적 풍요를 누렸던 인생이든, 가난에 찌들었던 인생이든 모두 덧없는 것임을 명쾌하게 표현한 문장이다. 또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인생을 담담하게 정리하거나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 혹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유언을 남겼다. 묘비명은 한 사람의 치열했던 인생 기록이며, 또한 떠난 자와 남은 자들의 대화이다. 서양화가 박수근(1914~1965)은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 시인 조병화(1921~2003)는 ‘나는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라는 묘비명을 각각 남겼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사람이 죽고 나면 비록 육신은 사라지지만 살아생전 그 사람의 업적이나 행적을 묘비명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 풍습에는 추석 명절이나 기일에 후손들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산소를 직접 찾아 성묘한다. 묘비명은 세상을 살다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기 위해 하직하는 마지막 인사이다. 묘비에 이름을 새기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남기기도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압축해 설명하고,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 마음과 바람이기도 하다. 묘비명은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짧은 경구나 이행시(二行詩)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인생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교훈적 문구가 담겨 있다. 우리의 옛 조상들이 지켜온 전통방식에도 사람이 죽으면 비석에 ‘學生ㅇㅇㅇ金氏 之墓’라고 쓰고 벼슬을 했으면 관직을 함께 썼다. 선비들은 죽음에 대처하는 한 방식으로 자신의 지난 행적을 돌아보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죽기 전에 이른바 자찬(自撰) 묘비명이다. 이제 전통방식도 점점 사라지고 요즘에는 서양식으로 묘비명을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 묘비명에 어떤 글이 남겨질지 생각하고 산다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 어쨌든 묘비명은 한 사람의 치열했던 인생 기록이며, 떠난 자와 남은 자들의 대화이다. 우리 모두 순수한 열정으로 당장 묘비명을 써 보는 것은 어떨까? 죽음과 삶은 나의 과거를 반추해 보며 내면 깊숙이 숨겨진 사랑 덩어리의 조각난 파편을 찾아 맞추는 웰다잉(Well-Dying) 퍼즐이다. 죽음과 삶은 하나이며 이 성찰의 기록은 죽음과 함께 영원히 사라진다. 오직 남은 것은 순백의 도화지일 뿐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영국, 작가 벗들이여 부탁하네. 제발 참아주게. 여기 묻힌 것은 티끌도 파헤치지 말아주게. 무덤의 돌 하나 건드리지 않는 자에게 축복이, 내 뼈를 옮기려는 자에게 저주 있으리. 생전에도 ‘영국 최고의 극작가’ 지위에 올랐던 셰익스피어. 너무 유명한 나머지 사후에 자기 무덤이 도굴될 것을 걱정해 이런 비문을 남겼다. 에드거 앨런 포 Edgar Allan Poe 1809~1849, 미국, 작가 까마귀의 비문… 더 이상은 없다. Quoth the Raven… Nevermore. 1845년 그가 발표한 시 ‘까마귀’는 희망을 원하는 어떠한 질문에도 ‘더 이상은 없다’라고 답하는 까마귀의 모습을 담고 있다. ‘까마귀’의 유명한 시구 ‘Nevermore’를 묘비명으로 썼다.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1830~1886, 미국, 시인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았다. Called Back. ‘은둔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그는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썼다. 그런 만큼 묘비명은 오히려 종결편처럼 간단명료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Nikos Kazantzakis 1883~1957, 그리스, 소설가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그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관통하는 주제인 ‘자유’는 작가가 품은 평생의 화두이기도 했다. 그가 남긴 묘비명은 짧고 간결하지만 그의 인생을 가장 정확하게 투영하고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1899~1961, 미국, 작가 일어나지 못해 미안합니다. Pardon me for not Getting Up. 헤밍웨이는 유아기에 어머니가 자주 여장을 시킨 탓에 트라우마가 생겨 마초같이 강인하고 거친 성격으로 살았다. 묘비명에서도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스탕달 Stendhal 1783~1842, 프랑스, 소설가 밀라노 사람 앙리 베일: 살았노라, 썼노라, 사랑했노라. Errico Beyle, Milanese: Scrisse, Amo, Vise.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명언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를 연상시키는 이 묘비명은 스탕달이 생전에 직접 썼다고 알려졌다. 그의 본명은 마리 앙리 벨(Marie-Henri Beyle)이다. 조지 버나드 쇼 George Bernard Shaw 1856~1950, 아일랜드, 극작가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버나드 쇼는 생전에 미리 자신의 묘비명을 써놓았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해석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지나친 의역이다. 프랭크 시나트라 Frank Sinatra 1915~1998, 미국, 가수 최고는 아직 오지 않았다. The Best is Yet to Come.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엔터테이너로 삶을 마감한 그의 묘비명은 그의 인생관을 대변하는 듯하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영감을 주는 한마디로 다가온다. 멜 블랭크 Mel Blanc 1908~1989, 미국, 성우 이게 다야! That’s All Folks! 그가 연기한 포키 피그가 단편 애니메이션 <루니 툰>이 끝날 때 외치는 클로징 멘트를 묘비명으로 썼다. 딘 마틴 Dean Martin 1917~1995, 미국, 배우 모두가 누군가를 언젠간 사랑한다. Everybody Loves Somebody Sometime. 배우이자 가수인 그가 발매한 곡 ‘Everybody Loves Somebody’가 그의 묘비명으로 쓰였다. 유쾌한 성격으로 모두가 사랑한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투팍 샤커 Tupac Shakur 1971~1996, 미국, 래퍼 세상을 바꾸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세상을 바꿀 두뇌에 영감을 줄 것이다. I’m not Saying I’m Going to Change the World, but I will Spark the Brain that will Change the World. 힙합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인 투팍 샤커는 그의 묘비명처럼 여전히 후대에 영감을 주는 인물로 남았다. 디 디 라몬 Dee Dee Ramone 1951~2002, 미국, 음악가 좋아… 이제 가야겠어. O.K… I Gotta Go Now. 짧지만 강렬한 그의 묘비명. 그가 속했던 밴드 라몬스의 곡 ‘Blitzkrieg Bop’에서 “Let’s Go!”를 반복하는데, 세간에선 이 가사와 연관된 묘비명이라고 추측한다. 존 벨루시 John Belushi 1949~1982, 미국, 코미디언·음악가 내가 떠나도 로큰롤은 계속된다. I may be Gone, but Rock and Roll Lives on. 1970년대 ‘토요일 밤 라이브(SNL)’의 전성기를 이끈 희극인 존 벨루시는 2인조 밴드 ‘블루스 브라더스’로 활동하기도 했다.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이 엿보이는 묘비명이다. 짐 모리슨 Jim Morrison 1943~1971, 미국, 가수 당신의 영혼에 충실하라. KATA TON DAIMONA EAYTOY. 록스타이자 시인이었던 그의 묘비명. 묘비에는 그리스어로 적혀 있다. ~옮긴 글~ Rebecca Drimmel - Good morning, beautifu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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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학 시절 묘비명 쓰기를 했는데
저는
"보릿 고개 태어나서 하고 싶은 일 다 못하고 간다,, 이렇게 썼습니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살기가 고단햇는데,
명문의 비문입니다 ~~
기온차 큰 변절기
감기 유의하시고
늘 건강하세요
沃溝 서길순 님 !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고운 멘트 감사합니다 ~
희망찬 11월 맞이하시길
소망합니다 ~
감기 유의하시고
늘 건승하시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