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은 바티골에 살았다.
곧장 에베산밑에 닿으면, 우물 위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서 있고, 은행
나무를 향하여 사립문이 열렸는데, 두어 칸 초가는비바람을 막지 못
할 정도였다.
그러나 허생은 축구이론과 CM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피버노바를 꿰메
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감독을 하지 않으니, 축구이론은 배워 무엇합니까?"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전술을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구단직원이라도 못 하시나요?"
"프로구단은 본래 면식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유니폼장사는 못 하시나요?"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월드컵비디오만 보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
단 말씀이오? 코치도 못 한다, 용품장사도 못 한다면, 암표장사라도
못 하시나요?"
허생은 읽던 피파보고서를 덮어 놓고 일어나면서,"아깝다.
내가 당초 포메이션공부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이제 칠 년걸……."
하고 휙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허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에이전트가로 나가
서 시중의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스포츠 에이전트에서 제일 영향력이 있소?"
IMG의 맥코맥을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생이 곧 맥코맥의 집을 찾
아갔다. 허생은 맥코맥을 대하여 길에 읍(揖)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20억을 뀌어 주시기 바
랍니다."
맥코맥은"그러시오."하고 당장 돈 20억을 내주었다. 허생은 감사하다
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맥코맥 가의 에이전트와 매니져들이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실띠의 술
이빠져 너덜너덜하고, 축구화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쭈그러진 모자에
허름한 옛날국대 유니폼을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허생이 나가자, 모두를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돈 20
억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
가요?"
맥코맥이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
람은 으레 자기 능력을 대단히 선전하고, 학연,지연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얼굴에 나타나고, 말은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
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어도 스스
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
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이왕 20억을주는 바에 성명은 물
어 무엇을 하겠는냐?"
허생은 20억을 입수하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전국의
이름난 고교와 중학교 축구부를 돌아다녔다. 한국에서 학원축구는 아
직도 한국축구선수의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허생은 각 학교의 스트라이커들을 두 배의 돈으로 계약을 맺었
다.
허생이 공격수들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의 대학이나 프로구단
들이 골을 넣을 사람이 없는 형편에 이르렀다.
얼마 안 가서, 허생에게 두 배의 값으로계약을 했던 선수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으로 뛰어 프로에 가게 되었다.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돈 20억으로 나라 스트라이커들을 좌지우지했으니, 한국축구의 저변
을 알 만하구나."
그는 다시 나이키코리아와 계약을 맺고 국대 유니폼을 죄다사들이면
서 말했다.
"얼마 지나 월드컵시즌이 되면 나라 안의 사람들이 유니폼을 못 구해
안달할 것이다."
허생이 이렇게 말하고 월드컵기간이 되자 과연 대표 유니폼값이 열 배
로 뛰어올랐다.
허생은 늙은 사공을 만나 말을 물었다.
"프로구단이 없는 도시에서 축구 열기가 높은 곳이 없던가?"
"있습지요. 언젠가 목포에서 풍파를 만나 남쪽으로 줄곧 하루를 흘러
가서 제주도에 닿았습지요.
아마 비행기로는 한시간이 안 걸릴겁니다. 기온이 온화하고 잔디구장
과 연습장이 많아서 조기축구회도 잔디구장에서 볼을 찬다 합니다."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함
께 서포팅을 할걸세."라고 말하니, 사공이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바람을 타고 남쪽으로 가서 그 섬에 이르렀다. 허생은 한라산
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고 실망하여 말했다.
"인구가 백만도 못 되니 무엇을 해 보겠는가? 다만 끝내주는 구장이
있으니 사람들의 관심은 끌 수 있겠구나."
"제주도에 프로구단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대체 무슨수로 프로구단을
만든단 말씀이오?"
사공의 말이었다.
"시민참여열기가 있으면 구단이 절로 만들어진다네. 열의가 없을까 두
렵지, 구단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이 때, 전국에 실력이 좋아도 연줄이 없어 대학에 못 들어간 이을룡이
나, 다른문제로 축구를 그만두고 방황하는 김남일 같은 선수들이 우글
거리고 있었다.
고민끝에 전국의 나이트나 막노동판을 전전했지만, 축구못하면 저렿
게 된다는 수군거림에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었다.
선수들도 '재가 축구선수였대'라는 수근거림에 부담되고 곤란한 판이
었다.
허생이 그런 선수들을 모아놓고 달래었다.
"프로선수중 연봉이 가장 높은 선수는 누구지요?"
"전북현대의 김도훈이잖소?"
"프로선수가 되고 싶지 않소?"
"그걸 말이라고 하오?"
"태극마크를 달고 싶은 생각은 없소?"
선수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프로에 국가대표를 하는 선수가 뭐가 좋아서 나이트 웨이터를 한단
말이오?"
"정말 그렇다면, 왜 축구를 계속해서 이름을 날릴 생각을 하지 않는
가? 그럼 수군대는 소리 안 듣고 살면서, K리그에서 이름을 날리면 스
포츠신문에 날마다 얼굴이 실릴 것이요. 가는 곳마다 여고생들이 따
라 다니며, 기회가 생기면 유럽진출의 기회도 생기고, 길이 부와 명예
를 누릴 텐데.""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다만 인연이 없고 돈은 벌어야 하겠기에못 할 뿐이지요."
허생은 웃으며 말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어찌 돈을 걱정할까?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프로구단을 창단하려니, 계약금정도는 마
련할 수 있소. 내일 서울시청앞에 나와 보오.
붉은 깃발을 단 것이 모두 돈을 실은 수레이니, 마음대로 가져가구
려."허생이 선수들과 언약하고 내려가자,
선수들은 모두 그를 미칭놈이라고 비웃었다.
이튿날, 선수들이 시청앞에 나가 보았더니, 과연 허생이 수십억원
의 돈을 싣고 온 것이었다. 모두들 대경(大驚)해서 허생 앞에 줄지어
절했다.
"오직 감독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너희들, 힘껏 짊어지고 가거라."
이에, 선수들이 다투어 돈을 짊어졌으나, 한 사람이 수천만원이상을
지지 못했다.
"너희들, 힘이 한껏 수천만원도 못 지면서 무슨 억대 계약금을 바라겠
느냐?
인제너희들이 맘을 잡고 축구를 하려고 해도, 이름이 없으니,받아줄
구단이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이 일억씩 가지고 가서
부모님에게 프로축구선수가 되었다고 말씀드려라."
허생의 말에 선수들은 모두 좋다고 흩어져 갔다.
허생은 몸소 선수들이 1년치 연봉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선수들이 빠짐없이 모두돌아왔다.
드디어 다들 배에 싣고 서귀포로 들어갔다. 허생이 문제선수들을 몽땅
쓸어 가서 축구계에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허생은 몸소 FC제주의 구단주겸 감독이 되어 제주도에 프로축구구단
을 창단하고 유소년 클럽과 제반시설도 만들었다. 데리고 온 선수들
을 과학적인 선진축구 방식으로 맹훈련을 시켰다.
2년후 준비가 완료되자 FC제주는 K리그에 참가하였다.
허생은 좋은 용병을 영입하고 뛰어난 전략전술과 치밀한 용병술로 2년
만에 K리그 정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허생의 용병술에 현실에 안주한 다른팀 감독들은 상대가 되지 못했
다.
FC제주는리그 3연패를 이루었고 일본과 사우디의 내노라 하는 팀들을
모조리이기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다.
FC제주는 리그 최고의 인기명문팀이 되었고, 구단은 엄청난 자산가치
를 보유하게되었다.
허생이 탄식하면서,"이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하고 이에 선
수들과 프런트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가 처음에 너의들과 제주에 들어올 때엔 먼저 축구클럽으로 FC 바
르셀로나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같은 명문클럽을 만들고자 하였더니
라. 그런데 역시 아시아의 지역적 한계는 벗어날 수 없으니 나는 인
제 여기를 떠나련다.
다만 아무리 좋은 선수들을 많이 영입해도 유소년클럽운영을 게을리
하지 말것이며,하루라도 기량이 발전하는 사람이 주전을 하도록 양보
케 하여라."
다른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면서,"가지 않으면 오는 이도 없으렷다."
하고 수백억을 바다 가운데 던지며,"바다가 마르면 주워 갈 사람이 있
겠지. 돈이 많아도 투자에 인색한구단들이 많은데, 하물며 이런 구단
에서랴!"했다.
그리고 연대,고대출신 축구인사들을 모조리 함께 배에 태우면서,"이
구단에 화근을 없애야 되지."했다.
허생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의지 없는 축구선수들을
구제했다.
그러고도 돈이 200억이 남았다."이건 맥코맥에게 갚을 것이다."허생
이 가서 맥코맥을 보고"나를 알아보시겠소?"하고 묻자, 맥코맥은 놀
라 말했다.
"그대의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혹시 20억을 실패 보지 않
았소?"
허생이 웃으며,"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당신들 일이
오. 20억이 어찌 도(道)를살찌게 하겠소?"하고, 200억을 맥코맥에게
내놓았다.
"내가 하루 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축구공부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20억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맥코맥은 대경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십분의 일로 이자를 쳐
서 받겠노라했다.
허생이 잔뜩 역정을 내어,"당신은 나를 조중연으로 보는가?"하고는 소
매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맥코맥은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허생이 에베산 밑으로 가서 조그만 초가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
다.
한 늙은 할미가 우물 터에서 빨래하는 것을 보고맥코맥이 말을 걸었
다.
"저 조그만 초가가 누구의 집이오?"
"허 생원 댁입지요.
가난한 형편에 축구만 좋아허더니, 하루 아침에집을 나가서 5년이 지
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고, 시방 부인이 혼자 사는데, 집을나간 날로
제사를 지냅지요."
맥코맥은 비로소 그의 성이 허씨라는 것을 알로, 탄식하며 돌아갔다.
이튿날, 맥코맥은 받은 돈을 모두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서 돌려 주
려 했으나, 허생은 받지 않고 거절하였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수백억을 버리고 이 돈을 받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양식이나 떨어지지 않고 국대유니폼이나
입도록 하여 주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재물 때문에 정신
을 괴롭힐 것이오?"
맥코맥이 허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
었다.
맥코맥은 그 때부터 허생의 집에 양식이나 국대 유니폼이 바뀔 때쯤
되면몸소 찾아가 도와 주었다.
허생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않은
기색으로,"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
하였고, 혹 새로나온 피파시리즈를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서
로 컴퓨터앞에 앉아서 밤새도록 게임을 하였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날로 두터워 갔
다.
어느날, 맥코맥이 5년 동안에 어떻게 수백억을 벌고, FC제주를 명문팀
으로 만들었는지 조용히 물어 보았다.
허생이 대답하기를, "그야 가장 알기 쉬운 일이지요.
원래 한국이란 나라는 체계적인 클럽시스템으로 축구선수들을 배출해
가는 시스템이 아니고, 그 자리를 성적에 목을 매는 학원 축구가 대신
하고 있소.
전국4강안에 들지 못하면 대학에 못가는 판국이니 성적에 목을 맬 수
밖에 없고, 모든 부조리와 학원폭력이 여기에서 비롯된다오.
좋은 성적을 올리는 학교가 한정되다보니 학교축구팀은 크게 늘어나
지 않았고,이렇게 축구인프라가 작으니 내가 20억을 써서 선수수급을
좌지우지 할 수 있었던 것이오.
앞으로 이런 방식으로선수를 독점하여 체계적인 육성계획없이 계약만
하는 구단이있으면 반드시 K리그를 병들게 할 것이오.
FC제주는 내가 주도했지만 철저히 시민구단을 표방해서 시민들의 호응
을 얻었고, 선진축구클럽의 훈련방식과 운영방법을 도입하여 성공을
거두었소.
거기에다 다른 팀들의 감독들이 선진축구이론과 실제에 어둡고 오직
자신의 경험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니, 내 능력으로 능히 성공할수 있었
소."
"처음에 내가 선뜻 20억을 뀌어 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허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만이 내게 꼭 빌려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능히 20억을 지
닌 사람치고는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내 스스로 나의 재주가 족
히 수백억을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운명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낸들 그것을 어찌 알겠소?
그러므로 능히 나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 반드
시 더욱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은 하늘이 일일 텐데 어찌 주지 않
겠소?
이미 20억을 빌린 다음에는 그의 복력에 의지해서 일을 한 까닭으로,
하는 일마다 곧 성공했던 것이고, 만약 내가 사사로이 했었다면 성패
는 알 수 없었겠지요."
맥코맥이 이번에는 딴 이야기를 꺼냈다.
"방금 축구협회의 높으신 양반들이 지난 월드컵에서 당했던 치욕을 씻
어 보고자하니,
지금이야말로 지혜로운 코치가 재주를 뽐내고 일어설 때가 아니겠소?
선생의 그 재주로 어찌 괴롭게 파묻혀 지내려 하십니까?"
"어허, 자고로 묻혀 지낸 사람이 한둘이었겠소?
우선, 고(故) 김용식같은 분은 축구협회의 회장으로 모실만한 인물이
었건만 겨우 기술위원장정도에 만족해야 했고, 이용수 같은 분은 대표
팀 감독을 뽑을 만한 재능이 있었건만 지금은 학생들의 리포트와 씨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의 집정자들은 가히 알만한 것들이지요.
나는 축구에는 도통한 사람이라, 내 능력이 족히 월드컵 우승을 할 만
하였으되 초야에 묻혀 지내려는 것은, 도대체 지금 축협이 사람이 없
기 때문이었지요."
맥코맥은 한숨만 내쉬고 돌아갔다.
맥코맥은 본래 대한축구협회의 정몽준 회장과 잘 아는 사이였다.
정몽준이 축구협회회장이 되어서 맥코맥에게 재야나 알려지지 않은쓸
만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맥코맥이 허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정회장은 깜짝 놀라면서,"기이하
다.
그게 정말인가?
그의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소인이 그분과 상종해서 3년이 지나도록 여태껏 이름도 모르옵니
다."
"그인 이인(異人)이야. 자네와 같이 가 보세."
밤에 정회장은 구종들도 다 물리치고 맥코맥만 데리고 걸어서 허생을
찾아갔다.
맥코맥은 정회장을 문 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들어가서,
허생을 보고 정몽준회장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허생은 못 들은 체하고,"당신 가지고 온 피파2003이나 어서 이리 내놓
으시오."했다.
그리하여 재밌게 피파삼매경에 빠지는 것이었다. 맥코맥은 정회장을
밖에오래 서 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허생은 대꾸도 않다가 야심해서 비로소 손을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정회장이 방에 들어와도 허생은 자리에서일어서지도 않았다.
정회장은 몸둘 곳을 몰라하며 축구협회에서 어진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허생은 손을 저으며 막았다.
"밤은 짧은데 말이 길어서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직위에있느냐?"
"회장이오."
"그렇다면 너는 대한축구협회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군.
내가 나가누마 겐(일본축구협회장을 지냈으며 일본축구를 이만큼 올려
논 인물)같은 이를 천거했겠으니,
축 적 조중연을 짜르고 그에게 축협의 백년대계를 맏길 수 있겠느냐?
정회장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제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했다.
"나는 원래 '제이'라는 것은 모른다."
하고 허생은 외면하다가, 정회장의 간청에 못 이겨 말을 이었다.
"현재 뜻있는 기업들이 서울소재 프로축구단을 창단하고자 하나, 200
억이 넘는 축구발전기금과 너무 높은 가입요건으로 인하여 창단을 망
설이고 있다.
너는 서울시와 협의하여 축구발전기금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팀창단요
건을 대폭완화하여 서울연고 프로축구구단을 창단하는데 앞장 설 수
있겠느냐?"
정회장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어렵습니다."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가
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무릇, 축구강국이 되기 위해선 지도자가 뛰어나지 않으면 안 되고,
선진축구를터득한 지도자가 선수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히딩
크가 증명한 바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와 터키라는 축구강국이 갑자기 우리의 친구
가 되었고, 형제운운하니 저들이 우리를 가장 믿는 터이다.
진실로 일본이 브라질에 한 것 처럼, 우리도 네덜란드와 터키의 능력
있는 코치를 대거 파견해 달라고하면 저들도 아시아의 축구강국이 자
기들을 인정한 것으로 알고 기뻐 승낙할 것이다.
전국의 축구감독들을 초등학교감독이나 프로감독을 가리지 말고 모조
리 불러모아 외국인 코치들에게 드리블의 기초부터 다시 배우게 하
고, 작전의 ABC부터 가르쳐서 지도자들의 자질을 향상시키도록 할것이
다.
반발하는 자는 다시는 축구지도자를 하지못하게 하는 한편, 그중 뛰어
난 자는 외국에 장기 유학을 보내고 지도자가 맞지않는 사람은 축구선
진국에 많이 파견하여 선진축구동향을 정탐하게 하고 외국의 뛰어난
지도자와 결탁한다면, 이번 월드컵 이상의 호성적을 올릴 수있을 것이
며, 이탈리아나 중국같은 개소리들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일이 잘되면 가슴에 별을 무더기로 달 수 있을 것이며, 못 되어도 프
라이드 오브 아시아의 지위는 잃지 않을 것이다.
정회장은 힘없이 말했다.
"대한민국 축구감독들이 모두 자기가 최고인줄 아는데, 누가 새파란
외국인 코치밑에서 기초부터 다시 배우려고 하겠습니까?"
허생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소위 축구인들의 소리라는 것이 무엇이단 말이냐?
청소년 대표 감독은 고려대에서 했으니 올림픽대표감독은 연세대에서
해야 한다는 이런 말도 안되는 논리가 어디 있단 말이냐?
포상금의 동등지급은 공산주의의 발상이라는 사람이 축협업무를 좌지
우지하고 있고, "기껏 대 여섯번의 A매치를 위해서 뭐하러 감독을 임
명하느냐?"라고 말하는 작자가 기술위원장이랍시고 행세하니 축구협회
가 제대로 돌아갈일이 있겠느냐? 중국은 돈의 힘을 빌어서라도 선수하
나를 유럽리그에 진출시킬려고 안달을 하고, 일본축구협회사람들은 선
진축구 지도자들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이제 월드컵4강신화를 재현하겠다고 하면서, 그까짓 자존심을 내세워
축구인들의 기가 살아야 한다는 논리나 앞세우고, 선진축구를 받아
들이는 것을 마치 자기들 밥그릇 뺐는 것처럼 여긴다면 한국축구는 또
다시 선수들 기량 타령만 하는 한심한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축구협회장에 피파부회장이라고 하겠는가? 대한축구협회장이라
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너 같은 자는 황보관의 캐넌슛에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
하고 핸드폰으로 황보관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정회장은 놀라서 일어나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이튿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집이 텅 비어 있고, 허생은 간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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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