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의 전쟁에 껴들려고 하는 거야? 따지고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나라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이 남아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우리의 경우 국가적 지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내전’은 국가의 명령이 아니라 각자 개인의 지원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한 결단입니다. 전쟁터가 어떤 곳인지 몰라서 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비교적 나은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됐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 바로 전쟁터입니다. 그만큼 극단적인 환경에 처할 가능성이 훨씬 많습니다. 한 여름의 더위도 무섭겠지만 보급품 조달도 제대로 되지 않는 환경에서 겨울의 혹한을 견디어야 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그런 곳을 대가도 없이 제 발로 들어간다고요? 가능합니까?
사람이 기꺼이 목숨을 거는 경우가 있습니다. 종교적인 순교를 제외하고 생각해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을 위해서, 사명 감당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어떠한 보상도 없이 나서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념에 건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비슷하게 이념(사상)이나 주의에 빠져도 가능합니다. 우리의 한국전쟁이 이념을 앞세운 세력다툼이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우리만의 전쟁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민주와 공산주의 양대 진영의 전쟁이었습니다. 하필 그것이 우리 한반도였다는 것이 불운입니다. 많은 민주진영의 나라들이 참전하여 도왔습니다. 그 덕에 우리가 오늘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역 멀리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땅에 와서 고생하며 목숨을 잃었습니다. 국가의 명을 좇아 온 군인들도 있고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을 가지고 선 듯 나선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때는 공식적인 참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은 좀 달랐다고 봅니다. 파시스트 프랑코에 대항하기 위해 각자 자진하여 나섰습니다. 많은 사람은 자비량하여 참전도 하였습니다. 정식 훈련을 받고 격식을 갖춘 군대로 편성이 되어 싸운 예가 별로 없습니다. 소위 시민저항군을 편성하여 프랑코 정부군과 대적한 것입니다. 게다가 정부군은 막강한 주변국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들 나름의 이점이 있기에 껴든 것이지만 잘 이용하였지요.
독재 파시스트를 그냥 두면 안 된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른 젊은이들이 세계 여기저기서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명감으로만 전쟁을 치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의용군 ‘국제여단’을 결성해 공화파 시민군과 연대하여 수년에 걸쳐 대항하였지만 패배로 끝납니다. 당시 우리가 잘 아는 유명인사들도 많이 참전하였습니다. 스페인 사태 후 곧 이어서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합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런 전쟁터에 왜 목숨을 걸고 가느냐, 질문합니다. 물론 ‘미아’에게는 조국입니다. 망명하여 프랑스에서 살고 있지만 조국의 사태에 무관심할 수는 없습니다. 조국을 돕기 위해 프랑스로 와서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이제 돌아가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이’는 영국인입니다. 스페인 전쟁에는 뭐 하러 갑니까?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나라이고 일입니다. 놀러 가는 것도 광광하러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곳 형편이 좋기나 합니까? 고생길이 훤합니다. 자칫 목숨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까지 버려두고 가야 합니까?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요. 그게 여자와 남자의 차이입니까? 한꺼번에 두 사람을 잃는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고 복잡해지고 헷갈립니다. 물론 그럼에도 ‘길다’는 버팁니다. 천성적으로 매우 낙천적이며 재기발랄하고 자유롭습니다. 그것은 남녀관계에서도 구애됨이 없습니다. 비록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것이 장벽이 되지 않습니다.
2차 대전 파리까지 독일군에게 점령당합니다. 그리고 이제 가이는 독일군 장교와 지냅니다. 이미 길다가 미아와 가이와 함께 지내온 것을 잘 아는 이웃들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더구나 점령군 장교와 놀아나고 있으니 가시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제멋대로 노는 창녀이고 나아가 나라의 배반자 반역자입니다. 저렇게 놀아나는 사이 가까운 사람들이 저항하다 잡혀가고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합니다. 이제는 철천지원수가 되는 것이지요. 가이가 스페인에서 살아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국군 편에서 첩보 활동을 합니다. 길다가 알아챕니다. 잠자리에서 독일 장교의 전화 내용을 듣습니다. 그리고 몰래 가이를 만나 사전에 알려주어 구합니다. 뿐만이 아니라 남몰래 영국군에 정보를 흘려줍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파리를 탈환합니다. 그리고 벼르고 있던 일을 시행합니다. 길다를 끌어내어 처치하려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사태를 알게 된 가이가 급하게 프랑스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길다는 어찌 될 것인지 다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스페인전쟁에서 미아를 잃고 2차 대전으로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습니다. 더 바랄 것도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이는 마지막 메모로 남긴 길다의 편지를 발견합니다.
내 사랑, 난 지금
열심히 생각 중이야
과거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을!
인생은 자신에게 충실하며
옹골지게 살면 된다고 믿어왔는데
그 믿음이 흔들렸어.
모든 일은 예정된 걸지도 모른다고…
시간이 별로 없어.
인생을 허둥지둥 살아온 거 같아.
돌아보니 우정 외에 이룬 게 없더군.
당신과 나 그리고 미아의 우정.
영화 ‘러브 인 클라우즈’(Head in the Clouds)를 보았습니다. 2004년 작품입니다. 예쁜 배우들과 아픈 이야기로 많이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