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因緣
<제8편 풀꽃>
②기인도정(奇人道程)-53
천복은 잠시 그녀의 호들갑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 팔에 매달린 그녀는 몸을 마구 비비적거리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끄는 데는 꼭 도살장으로 끌리어가는 황겁한 수소가 되어 마치 굴 구멍마냥 컴컴한 방안으로 머리를 디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였다.
그런데 막상 방에 들어가서 무의식중에 스치어본 여자의 옷차림은 기급담벙거지할 노릇이었다. 얼핏 보더라도 낯빛이 까뭇한 데다 눈빛마저 쉴 새 없이 반짝거리었는데, 콧날이 반듯하게 솟은 얼굴 윤곽은 또렷하여 비범한 풍모를 지닌 여자이었다.
그야 그녀의 생긴 대로겠지만, 비록 오뉴월 뙤약볕에 한여름으로 치닫는 더위가 기승일지라도, 속살이 그대로 들이어다 보이는 모시홑적삼에 속치마차림인지라, 방금 팔로 전이되는 촉감이 마치 야들야들한 맨살 접촉과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방에 들어와서도, 잡았던 천복의 팔을 얼른 놓지 아니하고, 잠시 망설이는가하더니, 기여 그를 아랫목으로 끌어다 앉히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남편에게 입을 여는 거였다.
“당슨언 주인인게 윗목으로 앉이유.”
그녀는 서성이는 남편을 아랫목 천복과 마주보게끔 윗목에 꿇어앉히는 거였다.
이렇듯 주객이 바뀌어 아랫목의 지사님과 윗목의 남편이 마주보고 앉게 하더니만,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따님이 넷이나 된다며, 다 어디 갔나요?”
아랫목에 앉은 천복이 윗목의 박종길에게 떨떠름한 기분으로 묻고 있었다.
“요 옆이 내 동상(동생)집이서 임시 먹고 자고 놀아요. 방이 워낙이 비좁아갖고, 동생한티 올가을 새집 질 때까장 거그 있기로 혔어요.”
방금 들어오면서 보자니, 옆집은 그의 말마따나, 근사하게 새로 지은 양옥집으로 말끔한 모습을 자랑하며, 서있었던 거였다.
“갓난아이도 동생 집에 있나요?”
천복은 다 큰아이들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젖먹이도 있을 터인데, 괜스레 걱정되어 묻는 거였다.
“갓난아그넌 세 살인게, 큰 가시나가 봐주고이, 더러 젖멕여서나 데꼬가요.”
박종길이 말하자, 천복이 생경한 눈으로 방안을 둘러보면서 말하였다.
“워낙 옛날 집이라 방이 작군요.”
가뜩이나 작고, 좁다란 방에다가 살림살이며, 잡동사니들이 방안을 한껏 채워놓아서 남은 공간이란 내외가 밥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아 겨우 밥 먹을 만한 자리밖에는 안 되었다.
“제가 아랫목에 앉으면, 불편합니다. 어서 이리 내려와 앉으셔요.”
천복이 참다못하여 문득 몸을 일으키고서 그에게 아랫목을 내주려는데, 그가 대뜸 그의 팔을 휘어잡더니, 눌러 앉히는 거였다.
“울 마누라가 들오문 난리 나요. 마누라가 시킨 대로 앉으요.”
천복은 그 바람에 도로 주저앉기는 하였으나, 마냥 가시방석에 앉은 거처럼 미안하고, 불안하기만 하였다.
그때 바로 그의 아내가 밥상을 들고, 들어온 거였다.
그녀는 밥상을 두 남자사이에다 놓고는, 얼핏 보기에 천복의 앉은 자세가 매우 불안하게 보이었는지 추궁하고 있었다.
“지사님언 뭣땜시 엉거주춤허신규?”
“제가 주인양반보다 나이도 어린데, 아랫목 차지하는 게 예의가 아닙니다.”
천복은 여전히 가시방석에 앉은 거처럼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말하였다.
“고럼 지사님! 주인 말 안 듣넌 손님언 예의가 밝어라우?”
그녀가 대뜸 천복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아하! 그렇군!’
천복은 그녀가 말대꾸도 잘한다는 생각이 들자, 빙그레 웃고 말았다. 그러자 그녀가 방을 나서려다말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고메, 울 지사님, 웃넌 얼굴이 남원골 춘향이 낭군 이도령 같네잉. 아고메, 이뻐 죽겄네요이.”
그녀는 당장이라도, 달리어들어 손으로 천복의 볼을 쓰다듬어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손을 벌리고, 넘성거리는 거였다.
“울 지사님 시장허신디, 싸기 진지 잡숫고나 쓰다듬던지 미치던지 허요. 이히히.”
“긍게로.”
박종길이 빙긋 웃으면서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잽싸게 밖으로 나아가는 거였다.
그녀는 금세 밥사발을 손에 받히어들고, 들어와서는 하필이면, 천복이 앉은 쪽 상모서리로 바싹 붙어 앉는 거였다.
게다가 닭고기 국을 끓이었는데, 닭다리가 두 개나 천복의 국그릇에 담기어있었다.
그것을 본 천복이 또 속이 꺼림하였다.
“아주머니, 닭은 몇 마리 잡았나요?”
천복이 느닷없이 묻자, 그녀는 문득 입을 다물더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입에 넣고 씹다만, 음식을 목으로 꿀꺽 삼키더니만, 말하는 거였다.
“혹시나 어짓밤이 지사님 모시고, 올 줄 알고이, 지가 한 마리만 잡었어라우.”
그녀는 정녕 천복이 묻는 의도를 잘못 알고,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천복이 그녀를 볼 때는 성격이 매우 조급하고 다혈질이란 걸 짐작케 하는 거였다.
첫댓글 방은 비록 좁아도 옛날의 인심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ㅎ
어쩌면 아들 잘 낳는 지사님의 몸을 빌어서
자의반 타의반 또 다른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ㅋ~
얘기는 그런 쪽으로 흐르지만 천복도 지난날 불장난을 많이 한 사람이라
이제는 자기 품위도 지켜야한다는 생각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청소년시절
방탕했던 사람이 성인이 된 경우도 있지요. 석가모니께서도 왕자로 호화롭게
살아갈 때에는 난잡한 생활을 했으나 궁성을 빠져놔와 깨닫는 바가 있게 되자
성불을 위해 고행을 시작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성불한 성인이지만
인간이 어찌 악에만 머물러 있겠습니까. 천복도 생각하는 바가 있을 거예요.
그러나 박종길이나 그의 아내가 천복을 신주처럼 모시네요. 그에 넘어가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어떻게 될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