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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착하고 충성된 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최에스더
제 1 부 어떻게 무슬림을 대할까?
제1장 무슬림을 위한 사랑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우리가 올바르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과오를 고백해야 한다. 우리는 무슬림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보지 못하였다. 오랜 동안 그들과 갈등 투쟁하여 왔고 지금도 칼을 사용치는 않지만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을 비난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여겨왔다. 기독교인들이 무슬림들과 사업을 위해서는 만나지만 거리를 두고 살며 친밀한 친구로 사귀지 못했음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1. 왜 무슬림을 사랑해야 할까?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는 무슬림을 사랑해야할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이 같은 시민으로 사는 곳이 많기 때문이며, 같은 마을이나 가족으로까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는 어느 곳에서든지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이 함께 살며 선한 뜻을 가지고 협력과 조화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한다.
2) 예수 그리스도는 둘째 계명으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막12:31) 말씀하셨다. 무슬림도 우리의 이웃이므로 예수님은 무슬림을 사랑하라 말씀하신다.
3) 하나님은 무슬림을 포한하여 온 인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미를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에게 내리시고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슬림들을 사랑해야 하고, 어떤 때는 우리의 적으로 보인다 해도 사랑해야 한다.(마5:43-45, 롬5:-8).
2. 어떻게 무슬림을 사랑 할 수 있을까?
1) 친구가 되어야 한다. 기독교인들과 무슬림을 분열시키는 장애물을 점차적으로 거두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서로 웃으며 인사하는데서 출발하라. 친절하게 방문하라. 존경 받아야할 이들을 존중하라.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라.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 사업사의 관계를 성실히 하라. 무슬림들이 혹시 잘못했다 해도 용서하라. 무슬림에게 잘못했다면 용서를 구하라.
무슬림들과 서로의 복지와 발전을 위해 협력함으로 사랑을 보이라. 이슬람과 기독교는 서로 정의 위하며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동정해야할 사명이 있다. 선한 무슬림과 선한 기독교인들이 서로 함께 많은 것을 나누어야 한다.
2) 무슬림과 그의 신앙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기독교인이 도기 위해서는 비 기독교인들을 비난해야만 하는 줄 알고 있다. 이것은 잘못이다.(눅6:37을 보라). 우리가 더 좋은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을 굳게 지키며 다른 종교인들에게는 박애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자비로운 예수님은 사마리아인들(눅9:53-55, 10:29-37, 17:11-19)과 이방인들(마8:5-13)에게 어떻게 대하였는지 생각해 보라.
신실한 무슬림들도 신실한 기독교인들과 공통된 점이 많이 있다. 그도 선한 일하려고 노력하며 악의 시험도 받는다. 그들도 때로는 실망과 고독, 어려움과 질병, 죽음에 직면키도 한다. 그들도 삶의 의미를 찾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하나님께 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무슬림을 향한 사랑은 동료로써 그를 이해하려는 우리 노력의 첫 걸음으로 의미가 있다. 그후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소중히 여기는 종교를 공부해야 한다. 결점을 찾아내기 위해서 이슬람을 공부하지 말고 오히려 좋은 점을 찾도록 해야 한다.
3) 무슬림에게 예수를 말해 주어라.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란 말을 오해하기도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이 무슬림을 사랑합니다"고 말할 때 그들은 우리가 타협 같은 것을 찾는 줄로 안다. 그들은 복음에 대해 어떤 것도 말하지 않으려는 가보다고 생각한다.
이는 무슬림을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반대이다. 당신이 값진 것을 가지고 있을 때 당신이 사랑하는 이와 함께 그것을 나누길 좋아한다. 우리가 무슬림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들이 분명하게 알기를 원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에 순종할 뿐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모든 족속에게 전파"(눅24:47, 마28:19,20과 비교하라)되도록 전해야만 한다. 이는 다음 장에서 살펴 볼 것이다.
요약정리
이 책은 무슬림을 당신의 이웃으로 이해하도록 도울 것이며 어떻게 복음을 설명할 것인지를 가르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무슬림을 향한 사랑의 자세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무슬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더욱 힘있게 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격언에 "사랑으로 하지 않는 것은 아무 가치도 없다" 했고, "사랑하는 사람의 집은 결코 멀지 않다"는 말이 있다. 성경에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고전13:13)
토의사항
1) 어떤 사람이 "내 사는 지역의 무슬림이 대단히 공격적이고 거만해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랑하기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답 할 것인가?(벧전2:11-16, 3:8-18을 묵상하라)
2) 어떤 사람이 "내 산는 지역 무슬림들이 우리와 인종과 관습이 다르므로 우리가 그들과 접할 기회가 적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고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요4:7-9, 39, 40. 행10:28,29. 눅10:29-37을 상고해 보자)
3) 어떤 그리스도인이 "내 지역의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이 서로 사랑하나 좋은 관계가 깨질까봐 전도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마28:19, 고후5:14, 15, 19, 20을 상고해 보라)
4)어떤 사람이 "우리가 공부한 것처럼 이슬람의 좋은 점을 인정한다면 사람들은 기독교 보다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 이슬람을 비난해야 되지 않는가?"고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마7:1-5, 눅18:9-14, 고전13:4-6, 롬5:6-8을 상고해 보라)
제2장 무슬림들에 전할 멧세지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후4:5)
우선 잠시 멈추어 생각하라. 당신은 지난 몇일 동안 어떤 무슬림을 만났는가?
당신은 어떤 사랑을 보였는가?
우리는 지금 읽은 말씀을 중심으로 세 부분으로 살펴 볼 것이다.
1.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 결코 아니다.
1) 이 말씀은 우리가 복음 전할 때에 어떤 우월 의식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전도"는 "내가 당신보다 더 훌륭하다"는 뜻이 아니다. 전도(Preaching)는 "나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당신과 나누고 싶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전도"는 또 다른 종류의 우월적인 감정을 가지고 "내 종교가 당신의 종교 보다 더 좋다"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전도자가 타종교에 대한 풍부한 개인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나 이런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단순한 멧세지의 일 부분도 아니다.
3) "전도하는 사람 자신들"의 또 다른 잘못은 항상 전하기만 하고 듣는 것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마리아 여인의 말을 들으시며, 어떻게 빌립이 에티오피아인의 말을 듣는지 주의해 보라(요4장, 행8:26-38). 훌륭한 기독교 목사는 그의 성도들에게 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무슬림들에게 전도하는 자는 그들의 가장 깊은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헤아리며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전파할 때 그들의 마음에 닿으며 그의 멧세지에 더욱 이끌려 받아들이게 된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도하는 것"이 우월해지는 것이란 뜻으로 헛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설교"(Preach)란 말 대신에 "멧세지를 전함"(Giving Message) 또는 "그리스도를 증거 함"(Witnessing for Christ)으로 해야 한다.
2. 우리의 증거는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무슬림들에게 어떤 멧세지가 필요할까?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동일하며 동일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예배하는 방식과 습관이 다른 것뿐이므로 무슬림들에게 복음에 대하여 말할 필요 없다"고 한다.
이는 잘못이다. 우리는 무슬림들이 우상을 거부하고, 우리와 같이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을 기뻐한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신앙이 우리와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1) 무슬림들도 예언자로 예수를 존경한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주님과 구세주로써 알지 못한다.
2) 일반적으로 무슬림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7장을 보라)
3) 무슬림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은 아들이 없고, 사람들은 그분의 노예요 종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이들이 복음서를 존경한다 할 지라도 주와 구세주 되신 예수, 십자가와 부활,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이슬람에서는 알지 못한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도 경건한 종교인들이며,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께서 주님 되시며 구세주 되심을 그들에 전하라고 사도들에게 성령을 부으신 것이다. 이와 같이 많은 무슬림들이 헌신적이고 선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이루시는 위대한 일을 그들이 듣고 믿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다". 그러나 복음 전하는 이가 없다면 어떻게 세상이 알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화목케 하는 말씀(멧세지)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가치한 존재이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케 하심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ambassadors)로 삼으셨다.(고후5:19,20)
3. 우리는 예수를 위하여 전함 받는 이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이 말씀은 우리가 모든 우월 의식에서 피하기 위해 거듭거듭 상기해야 한다. 우리 주와 주인 되시는 예수님은 인간의 발을 씻으시려 엎드리셨다. 당신은 무슬림들에게 종이 될 수 있는가?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무슬림들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신앙을 타협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과 상종치 않는 것이 더 좋다"고 아직도 말하는 이들이 있다.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보자.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을 구원코자 함이니"(고전9:19-23을 찾아 읽으셔요) 라 하였다. 물론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라는 말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그것은 우상숭배자들과 우상숭배하고 술고래들과 술 마시라는 뜻이 아니지 않는가!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에 거스르는 것을 전혀 행할 수 없지 않는가. 당신은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를 부인 할 수 없지 않는가!
그러나 타협이 아니라 사랑을 보이고 섬기며 가능한 모든 것을 행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사람들이 알도록 해야한다.
요약정리
타종교인들을 접할 때 기독교인들이 흔히 범하는 잘못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적개심과 공격적인 자세이다. 이는 이웃 사랑하라 하신 예수님의 계명에서 금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믿음을 타협하거나 침묵하는 잘못이다. 바로 이웃사랑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타종요인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가 임하도록 힘써야 한다.
토의사항
1) 어떤 사람이 "우리가 무슬림들에게 전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가 온전해야 하며 모든 교파가 하나 되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은 어떻게 답하겠는가?
2) 당신은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음을 들었는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은 그들에게 답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3) 예수님은 어떻게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셨는가? 죄인들과 함께 하시고 바리새
인들과도 함께 하셨다.(눅5:29-32, 7:36-38, 19:1-10). 이것은 타협이 아닌가? 예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4) 무슬림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으로써 결정하기 곤란할 때가 있다. 타협을 피하기 위한 구분 선은 무엇인가? 어떤 경우에 당신은 결정하기 곤란한 때를 당하였는가?
제3장 복음 전하는 그리스도인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 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딤후 2:24-25)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젊은 전도자에게 어떻게 진실한 크리스찬 증인이 될 수 있는가?를 권하고 있다. 디모데후서 2장에서 13절까지 바울은 우선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구세주 되신 예수에 대한 믿음의 중심을 가르치고 있다. 그후 19절로 22절까지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악한 행실에서부터 돌아서라고 경고하고 있다. 상기에 24-25절 인용된 말씀에서 바울은 어떻게 주의 종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행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다.
1. 다툼으로하지 말고 모든 사람에 온유하라
"말타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딤후2:14) 하였다. 흔히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으나 아무 유익 없이 끝나고 만다. 어떻게 우리는 이러한 다툼을 피할 수 있을까?
1) 다툼을 일키는 자세를 피해야 한다. 무슬림들과 논쟁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우리가 옳고 무슬림이 잘못 됨을 증명하여 설복 시키는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이 서로 다른 성실한 관심을 친근감 있게 논할 수는 있다. 이러한 친절을 위해서 당신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이루신 일을 증거 하심에 참으심을 알아야 한다.
2) 무익한 다툼의 주제를 피하라.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무슬림을 공격하고, 코란을 비판하며 무슬림 사회 윤리를 비난하는 것이 복음 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접근이다. 당신의 멧세지에 무슬림을 더욱 굳게 만들며 성경과 기독교 사회를 비판으로 응수해 오도록 자극하는 것일 뿐이다.
3) 다투기 좋아하는 곳을 피하라. 번잡한 공공장소에서 종교토론을 시작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사적으로 몇몇 사람이 함께 하는 조용한 곳이 더 적합한 곳이다.
2. 가르치기에 적합한 이
다음은 잘 가르치는 몇 가지 원리이다.
1) 청중을 이해하라. 죤에게 수학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수학만 잘해서 되는 것 아니다. 죤을 이해해야 한다. 무슬림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슬람을 공부해야 한다. 진실한 질문을 묻고 응답을 들어야 한다.
2)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 이미 무슬림들이 알고 있는 데서 시작하라. 즉, 한 분이신 하나님, 예언자, 스승. 치료자로써 예수, 마지막 심판, 기도, 윤리 등. 거기서부터 인도하라.
무슬림들이 일반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말하는 데서 시작하지 말라.(삼위일체, 하나님의 아들 등). 당신이 이러한 주제를 말할 때 무슬림의 반대를 이해하고 동정함을 보이라. 잠시 쉼을 가지고 그들의 마음에 주길 원하는 것을 말하라. 그들에게 우리는 세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며, 육체적으로 아들이 아님을 확실하게 말하라.
3) 한 단계 한 단계 나가라. 한번에 한가지 주제를 지켜라. 무슬림이 많은 주제를 혼합하여 묻는다면 가장 적합한 주제를 선택하라. 토론에 대해 공손하게 답하고 다음날이나 후에 만나자고 하라.
4) 당신이 모르는 것이라며 모른다고 하라. 기독교인 증언에 모든 것을 다 알 필요 없다. 당신도 의문이 되는 것이라면 답하지 말고 더 알아보고 후에 답하겠다고 하라.
3. "참으며, 거역하는 자에게 온유함으로 정정하라"
모든 무슬림을 거역하는 자로 생각하라는 뜻이 아니나 당신의 증언에 반대하고 복음에 대해 오해하고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당신이 바르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인내와 온유함으로 해야 한다.
당신이 "실례합니다마는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거나 "나는 거기에 오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면 좋다. 만일 무정하고 화를 내는 사람을 만났다면 "실례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 중에 아무도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싸우지 말고 서로 이해하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도록 힘씁시다" 고 부드럽게 말하라. 미소와 유머가 때론 도움이 된다. 곤란한 상황에서 당신의 침착함과 인내함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가장 인상적이 될 것이다.
4.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회개할 기회 주사... 진리를 알도록"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무슬림들이 듣지도 않고 개종하지도 않는데 그것은 시간 낭비하는 것뿐이다" 말한다.
분명한 것은 당신이나 나나 무슬림을 "회심(개종)"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회심(개종)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논쟁으로 믿는 사람을 만들 수 없다. 논쟁을 많이 하는 것은 오히려 메시지를 가로막는 장애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에 제한 없음을 믿는다. 그분은 진리를 누구에게나 알도록 하신다. 기도로, 사랑으로 증언하는 것은 우리의 임무이다. 그후 하나님 자신의 역사에 맡겨야 한다.
실제로 많은 무슬림들이 복음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선언하기까지는 많은 두려움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큰사랑과 신실함을 보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5. 항상 기도하라
무슬림 친구와 그 가족을 위해 개인적으로 기도하라. 그들의 건강과 풍성함을 위해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토론 보다 더 깊은 뜻으로 인도하며 성경말씀과 같이 성령께서 저들의 심령에 임하시고 진리를 아는데 이끌어 주시도록 기도하라.
네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라. 당신의 사랑이 진실하도록, 항상 그리스도의 풍성한 지혜로 인도함 받도록 자신을 위해 기도하라.
토의사항
1) 어떤 지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친절하게 신앙 토론하기 어려움을 알았다. 어떻게 토론해야 할까?
당신은(당신의 지역에서) 무슬림들에게 그들의 신앙을, 의식이나 축제 등등을 묻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는가? 당신은 고난과 시련 속에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위로와 권고할 수 있는가? 당신은 기독교에 대해 묻는 질문에 용기를 얻는가? 무슬림과 그리스도인들이 적대적이거나 의심하는데 당신은 거절할 수 있는가?
2) 무슬림들이 물을 때 성경 어디를 읽으라고 선택해 줄 수 있는가?
3) 당신의 경험에서 무슬림들이 방문하거나 방문할 때 기도하였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하였는가?
제 2 부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무슬림을 이해하며 무슬림을 복음으로 인도 할 까?
제4장 하나님을 사랑하라-네 이웃을 사랑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니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막12:29-30)
1. 무슬림을 이해하라
1) 하나님의 유일성. 무슬림들은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la ilah illa-llah). 이슬람에 의하면 가장 큰 죄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숭배하는 것, 하나님과 다른 신을 함께 섬기는 것이다. 인가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2) 예배의식. 그들이 "예배하는 하나님"을 말큽 때 무스림들은 우선 기도와 금식 등의 의식을 생각한다.(의식과 외적 행위). 그러나 당신이 더 토론해 들어간다면 예배가 의식 보다 더 한 것을 내포한다는데 동의 할 것이다.
3) 그리스도인들은 한 분 하나님을 예배하는가? 여기에 이슬람에 대단히 중요한 두 가지 중요한 점(하나님의 유일성과 예배의식의 실행) 때문에 많은 무슬림들이 진실로 당황함과 기독교에 대해 곤란함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주로써 에수를 부르는 것을 듣고 우리가 그들 자신의 예배의식 같은 어떤 것도 행하지 않는다 보고 잇다. 그리스도인들은 한분 하나님을 실제로 예배하는 것인가?
2. 그리스도인 증거의 단계들
우리의 증거의 첫 단계는 무슬림에게 우리가 한 분 하나님을 실제로 믿고 있음을 전해 안심시키고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에 집중하라.
둘째 단계는 인간의 "예배"(Worship)와 "섬김"(service) 받으실 예수님의 교훈,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교훈을 그와 함께 나누어라.
3. 무슬림 친구와 토의하라
무슬림 "신조"에 관련하여 설명하라. 이슬람에 "신은 알아 외에 없다"(la ilah illah-llah)고 고백함에(예배에 부름이나 신생아의 귀에 첫 번째로 들려 주는 신조) 대해 질문하라.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동의하고 인간은 그분 외에 아무것도 경배해선 안됨에 대해 토의하라.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계명 중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 고 예수님께 물었음을 말하라. 당신은 어떻게 답 할 수 있느냐? 질문하라. 그후 예수님께서 "들으라 첫째는 한 분이신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씀으로 답변을 시작했음을 말하라.
그렇습니다. 기독교에 중요한 것은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시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나는 너를 애급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어다"로(출20:2,3) 시작되는 십계명을 배우며 마음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말하라.
그러나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하신 진실한 뜻이 무엇인가? 말로만으로는 충분치 않음을 말하라 사탄도 한 분 하나님임을 알고 있으나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있다.
이어서 예배의식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격언에 "도마뱀처럼 엎드렸으나 우리는 누가 투덜거리며 불평하는지 알 수 없다"는 말처럼 사람들은 엎드렸으나 하나님만이 그 중심을 아시며,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자를 아신다고 말하라.
진실한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예수님께서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말씀하실 때, "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어서 말씀 하셨다.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예배는 무엇보다도 더욱 그들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자신보다도 우리의 힘과 재물, 쾌락보다도 더욱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예수님은 둘째 되는 큰 계명을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당신의 친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하기 위해 격려해 주고 둘째로 하나님의 중요한 계명을 말하라).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말씀이 크고 둘째 되는 계명이라 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동료들을 사랑하고 있는가?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정 반대로 대하하고,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을 평하며 다른 사람의 악함을 말하는지 보라. 때로는 한 가족이 서로 다투고 싸우고 있다.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다른 마을과 다른 인종, 서로 다른 사회적 신분 계층들이 서로 싸우고 있음을 보라. 무슬림도 그리스도인도 어떻게 서로 사랑함과는 거리가 먼지 자신을 점검해 보라. 그리스도인인 우리도 많은 잘못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이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당신의 무슬림 친구가 사람들은 분열시키는데 열중하며 적대하고 있는 실례를 제시하는 것도 좋다. 누가 옳은지 누가 잘 못 댔는지 판단하고 가르기 어렵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데 실패하고 있으며,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비와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하도록 인도 받아야 할 필요를 지적해야 한다.)
특히 무슬림과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더욱 서로 사랑하길 원한다. 오늘 당신이 나를 환영해 주어 감사합니다. 우리 다음에 또 만나 토의할 수 있습니까?
4. 실제적인 중요 점
1) 기도하라. 토론하는 중에도 때때로 조용히 기도하라. "아버지여, 우리가 서로 잘 이해하도록 인도해 주셔서 진리를 듣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셔요.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삼아 주시고 저의 심령에 당신의 음성을 듣도록 도와 주셔요."
2) 논쟁을 피하라. 이 단계에서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같은 논쟁적인 질문이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무슬림이 물어 오며는 논쟁을 일으키지 말고 간단히 정중하게 말하라.
예를 들면, 어느 무슬림이 "그러나 너의 그리스도인을 한 분이 아니라 세 신을 숭배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이 답하라. "오,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세가지 길, 즉 창조주와 말씀과 성령으로써 알도록 하나님 자신이 만드심을 믿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로 부르는 것입니다."
혹시, "왜 당신은 예수를 경배하는가?"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우리에게 보이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신비하고 설명키 어려우나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예수님을 하나님 외에 또 다른 신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이러한 간결한 답변은 무슬림 친구에게 만족을 줄 수 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토의 주제로 다시 돌아 갈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삼위일체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 토론키 진실로 갈망한다면 거절하지는 마라. (제10장을 보라)
3) 친근감 있는 용어를 사용하라. 무슬림들에게 친밀한 이름을 칭하거나 표현 할 때가 있다. 즉, 알마시(alMasih) 혹은 아나비 이싸(annabi Isa, 예언자 예수;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를 예언자라 믿지만 예언자 보다 더 큰신 분을 칭함), 아나비 무싸(annabi Musa(예언자 모세), 이브리스 혹은 샤이탄(사탄), 등등
4) 성경을 권하라. 당신의 친구가 성경 대한 관심이 일어나도록 토론에 성경을 사용하라. 성경에 대해 따지듯이 하지 말고 경외감을 가지고 말하라. 성경을 전해주고 말씀 부분을 제시해 주라. 당신이 알고 있는 말씀을 제시해 주면 그가 읽기 좋아 할 것이며, 다음에 만날 때도 이일에 대해 말하라. 적당한 장소를 찾도록 그를 도우라.
토의사항
1) 무슬림들이 "La illah illah-llah"를 거듭 반복하며 무엇하고 있는가? 무슬림 친구에게 묻고 그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 보라.
2)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진실로 예배함을 알리기 위해 우리가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3)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는데 실패토록 이끄는 것이 우리에게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올바르게 행 할 수 있을까?
제5장 하나님은 사랑이라-우리의 아버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눅15:2-4, 15장 전체를 읽으시오)
1. 무슬림을 이해하자
1)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신 분이시다.". "알라 아크바르"(Allahu Akbar)는 무슬림 기도와 모든 일상생활에서 거듭 되풀이되고 있다. 하나님의 유일성에 이어 그분의 위대함이 무슬림의 하나님 신앙에 가장 중요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 분에 대한 우리의 사상 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시다. 권능과 지혜, 위대하시며 그 분과 비교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2)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는가?. 이슬람에서는 분명치 않다. 한편으로 코란은 하나님이 "자비하신 분", "사랑의 하나님"이라 부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코란에 하나님은 선한 사람은 사랑하시고 악한 사람은 사랑치 않는다고 거듭 되풀이하고 있다. (Sura3:140, 134).
이러한 주제에 대해 무슬림들은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무슬림들이 하나님의 사랑 개념을 다소 가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으나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길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즉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러한 사상은 무슬림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오직 성서에서만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신다.(롬5:8, 요일4:8)
3)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신가?. 코란과 전승, 오래된 무슬림 기록들은 결코 하나님은 아버지라 부르지 않는다. 무슬림들은 신체적인 아버지 되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측한다. 그러므로 실제로 하나님께서 여성과 괸계 맺으시고 자녀를 출산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들에게 이러한 사상은 불경스런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을 불경스럽다고 비난한다. 또한 많은 무슬림들은 하나님을 인간 존재로 전락시켜 비교하여 아버지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무슬림들이(특히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교육받은 이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을 신체적 인식이 아닌 은유로써(비유) 받아들이고 있다.
2. 그리스도인 증언의 단계
"하나님의 아들" 주제는 종종 논쟁을 일으킨다. 많은 무슬림들이 코란에서 하나님에게 아들이 없다는 말을 마음에 두고 있으며 당신의 설명을 듣는 것조차도 대단히 어려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과 확신시키려고 대화를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그 대신에 특히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하라. 그후 사랑하는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으로 인도하고 당신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써 신뢰하는 의미를 말하도록 하라.
3. 무슬림 친구와 토론
1)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 당시 사람들은 격언에 "흰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팜유(Palm-oil) 가게에 가지 않는다"란 말이 있듯이 거룩한 분, 종교 지도자는 거룩치 않은 사람들이 행하는 것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경멸받고 죄인들이라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놀랐고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비난하였다.
예수님은 목자에 대한 생각을 그들에게 물으며 설명하였다. 어느 목자가 우리에 안전한 양 일 백 마리 중 아흔 아홉인 것을 알았을 때 만족하였겠는가? 아니다, 한 마리를 잃었으면 찾을 때까지 찾으러 나갔을 것이다. 잃은 양을 찾았을 때 얼마나 기뻤겠는가!(눅15:1-7).
예수님이 사람들의 목자란 의미만은 아니다. 그는 하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며 일흥 자 죄인들까지도 사랑하시는 위대한 목자이심을 가르치신 것이다. 물론 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들이 계속 죄 가운데 있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에서 그들을 구하기 원하신다는 의미이며 그래서 잃은자를 찾아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눅19:10, 막2:17).
2) 하나님의 사랑은 아버지와 같은 사랑이시다.(그러나 더 위대하신 분임). 예수님은 "탕자"로써 알려진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을 알기 원하셨다. (눅15:11-32, 특히 24절을 보라). 많은 무슬림들이 아주 매력적인 이야기로 알고 잇다. 당신의 친구가 이를 듣고 알았다면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에게 성경을 찾아 보이거나 성경 구절을 보여 주어라.
이 이야기를 토론하라. 아들이 먼 나라로 가며 악을 행하였을 때 아버지는 아들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하였을까? 아버지는 아직도 그를 사랑할까? 만일 아버지가 "꺼져버려라, 네가 악을 행하였으니 이젠 내 아들이 아니다"고 거절했다면 당신은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당신은 아버지가 아들을 벌하여 두들겨 패리라 생각하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아버지들도 그렇게 하지 않고 아들을 아주 용서하고 다시 돌아 온 것을 기뻐하고 좋아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 아버지의 사랑 보다 더욱 위대하심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치신다. 우리가 기도 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6:9)라 부르도록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을 내게 넣어 줘 보셔요. 당신네 무슬림들은 하나님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내들을 가지고 자녀를 낳는 다는 육체적인 인식에서 아버지 되지 않는다 항상 말하고 있다. 우리도 하나님에 대하여 결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라 부르라고 가르치실 때에는 영적인 인식에서 하나님 사랑의 위대성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사람들 중에 어떤 이에 대해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우리를 낳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이며 존경하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줄 것).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이보다 더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3) 아버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쁨. 우리가 어려움 일 당 할 때, 슬픈 일은 당할 때, 악에 의해 시험받을 때 적들이 둘러싸여 있을 때가 있다. 이러한 때 어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절망하고 하나님이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세상의 고난을 볼 때 의문이 일어 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면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셨는가? 이상히 여길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문제가 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함을 배웠다. 전능하시고 심판 주되시며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녀를 돌보는 좋은 아버지 보다 더욱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고 계신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모든 악한 권세 보다 더 강하시다.(롬8:35-39).
예수 자신의 생애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처럼 신뢰하는 온전한 실례를 볼 수 있다. 친구들이 배신하고 적에게 고난받을 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 이다" 기도하였으며 죽음의 순간에도 그는 화긴을 가지고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기도하셨다.(눅23:34, 46).
4. 실제적인 중요 점
1) 어느 무슬림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질문하였다면 간결하게 친절히 답하고 가능하면 증언의 중점으로 향하라. 예를 들면 "물론 우리는 은유와 비유로써 "아들"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진리의 아들"로 말합니다"고 하라. 우리는 도로가 아내를 가지고 자녀를 낳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영적인(신체적이 아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 사랑 안에 있음을 믿는 것이다.(요일3:1)
2) 아버지를 믿는 어린이에 대해 "비추어" 준비하라. 예를 들면 어느 어린 소녀가 난생 처음으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아버지는 배의 선장이었다. 큰 폭풍이 몰아쳤고, 사람들은 이리저리 딩굴며 소리치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어린 딸은 고요히 웃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너는 두려움이 없는가?"고 물었을 때 이 소녀는 "내 아버지는 이 배의 선장입니다. 아버지는 내가 여기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고 대답하였다.
우리의 세상 아버지들은 항상 우리를 보호하지 못하나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심을 우리는 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멧세지를 믿는다. 즉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심으로 어떠한 폭풍이 몰아쳐 와도 우리는 그분이 "배의 선장"임을 알고 우리 각자를 보호하심을 믿는다.
3) 용어에 있어서 무슬림들에게 "사랑"이란 말을 하나님의 사랑 적용하여 말하지 마라. 하나님의 "자비"란 말로 시작하라.
4) 또한 마5:44, 45, 6:25,26,과 31-33, 7:9-11, 롬8:14-16, 히12:5-11을 상고해 보라
그리스도인과 더 토의할 사항
1)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아버지"라 말하며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고 흔히 말한다. 우리가 진실로 생각하고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생활에 어려운 일들을 당하면 어떻게 하는가? 하늘 아버지를 신뢰하는가? 낙담하고 기적을 바라지 않는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올바로 안다면 무슬림들에게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함이 얼마나 기쁘고 평안한지에 대해서 순전하게 증거할 수 있다.
2) 착한 아들은 아버지의 선 함을 닮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아들로써 행하고 있는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섬하심을 보여주고 있는가? (예, 마5:44,45을 보라).
제 6 장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만유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 하사...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모든 자들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행10:36-38)
1. 무슬림을 이해하자
1) 하나님의 사자(Messenager). 무슬림들은 하나님은 세상에 메신제를 보내어 특별한 자신의 뜻을 나타내셨음을 믿는다. 노아, 이스마엘, 모세 등에서 예수와 모하메드는 모두 사자(rasul)요 예언자(nabi)라 불린다. 무슬림들은 이분들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으며,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동일한 소식을 전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날 이들은 자신들이 전한 소식을 거절한 자들에 대한 증인이 될 것이라 믿고 잇다.
2) 모하메드는 하나님께서 전 인류를 위한 완전하고도 결정적인 계시로써 코란을 받았기 때문에 "예언자들의 봉인"(the seal of Prophets)이다. 또한 모하메드의 생애와 교훈은 인류가 따라야 할 완전한 모본으로 믿고 있다.
다소의 무슬림들 중에 특별한 사람으로 그를 찬양하지만 정통 무슬림들은 위대한 모하메드도 순수한 인간 본성을 지닌 한 사람"일 뿐이라 주장한다. 모하메드는 결코 어떤 위대하신 신이나, 작은 신도 아니며 숭배의 대상도 아니다. 그에게 기도하거나 그를 통해 하나님께 기도해서도 않된다.(Shaik M Adb Allah Draz).
3) 이싸('Isa, 예수), 마리아의 아들(ibnu Maryam), 메시야(alMasih)는 코란과 많은 전승에 거의 90 구절 넘게 표현 되어있다. 예수는 축복 받고 경건한 분이며 지상과 천상에서 존경받을 분으로 하나님과 긴밀한 분들 중 한 분으로써 예언자요 사자(messenger)로 불린다. 코란은 그의 출생이 가브리엘을 통해 마리아에게 전해졌고 처녀로써 초자연적으로 잉태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소경과 문둥병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심도 기록되어있다. 하나님께서 빛과 인도함이 내포된 인질(Injil,복음)을 예수에게 주셨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자로써 그를 믿는 제자들을 불러모았다. 많은 이스라엘 자녀들은 그를 거절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셨다. 하나님은 예수를 따르는 이들 보다 믿지 않는 자들을 부활의 날까지 두신다. 무슬림들은 "하나님의 말씀"(Word of God)과 "하나님의 영(Spirit of God)"이란 호칭으로 예수를 존경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도(무슬림 신앙에서) 다른 사자들과 같은 분으로 죽어야할 운명을 지닌 피조된 인간이며 종 이상도 아니다. 그는 결코 하나님의 아들이나 주님, 하나님으로 불리울 수 없으며 하나님 외에 어떤 다른 신이나 주가 될 수 없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북지 않았다. (제7,8장을 보라). 그러나 수준있는 무슬림들은 모하메드를 모든 세계를 위한 결정적인 사자요 최고의 존재라면서도 예수를 존경한다.
2. 그리스도인의 증언 단계
우리들에게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무슬림들이 예수를 존경하나 우리의 믿음에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해야 하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아는 것에서 모르는 것으로" 나아가라고 권고한다. 예수가 하나님증명하려 함으로 시작하지 마라. 무슬림도 대부분 오해를 피할 수 없으며 당신이 설명하는 것을 거절할 것이다. 제자들도 먼저 예수께서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들은 베드로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도록 첫 깨달음 받기 전에 많은 날들을 예수님의 삶을 살펴보았다.(마16:13-17).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한 증언의 첫 단계는 무슬림 친구에게 특히 코란에 기록된 사실을 설명하며 예수의 생애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당신의 친구가 예수의 말씀과 생활에 대한 이해가 증진될 때 그 스스로 보통 사람 이상이며, 한 위대한 예언자에 불과한 분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3. 무슬림 친구와 토의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점을 살펴보았다. 제4자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할 것을 우리에게 명하심을 보았다. 당시 종교 교사들은 상세한 율법과 의식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러한 모든 율법들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 가르쳤을 때 이는 새롭고도 충격적인 사상이었다.
제5장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죄인들, 경멸함 받는 이들과 친구 되심을 살펴보았다. 이것도 새로운 하나님의 사랑 개념을 세상에 준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시며 그의 자년들에 대한 사랑을 중지할 수 없으신 하늘 아버지란 새로운 개념을 준 것이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코란과 관련하여 예수의 생애 사건을 토의해 나갈 수 있다.
1) 당신의 무슬림 친구에게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 보라. 마1:18-25과 눅 1:26-56, 2:1-40에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읽어주어 듣게 하고 그에게 물어라. 코란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영을 마리아에게 넣어 주었고 그녀의 아들이 온 세상의 징표로 지으셔다고 한다.(수라21:91).
2) 코란은 세례요한(Yahya)을 예언자로 가르치고 있으며 그의 출생 이야기도 말하고 있다.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증언을 토론해 보라.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 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 나니 나는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쥬실 것이요"(눅3:16)과 같은 말씀이다.
3) 코란(수라3:49,43)에는 예수께서 소경과 문둥병 자를 치료하시며 죽은 자를 일으키셨다고 말하나 상세하지는 않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막1:40-45(문둥병자), 막10:46-52(바디매오)와 눅7:11-17(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같은 이야기를 알려 주면 기뻐할 것이다.
마가는 예수님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고 "기적을 일으키는 자"나 마술가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의 기적은 하나님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징표"이다. 그들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를 본 것이다. 그들은 하나螱의 나라가 예수님이 오심으로 임하였음을 보았다.
예언자들은 메시야의 오신 징표를 눈먼자가 눈 뜨며 저는자가 걷고 벙어리가 찬양하고,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눌린 자를 자유케하는 구원의 큰 날, 구원의 날을 선포하였다.
예수님의 기족은 이러한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임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사35:5,6. 61:1,2. 눅4:16-22, 7:18-23, 11:20).
4. 실제적인 중요 점
1) 절충하지 말라. 무슬림들이 때로는 절충하는 친밀한 자세로 물어 올 수 있다. 즉 "너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심만 포기하면 무슬림과 그리스도인들은 한 분 하나님과 예언자 예수, 그러면 윌와 차이 없음을 동의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선한 의도에 감사한다. 그러나 성경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 중 어떤 부분을 "포기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이 지침서는 점진적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이슬람과 기독교의 차이점을 지적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의 신앙을 숨기거나 절충하려는 어떤 의도를 갖지 말고 분명해야 한다.
2) 코란으로 복음을 증명하려 하지 마라.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차이 점을 없애려고 코란이 기독교 신앙을 받쳐주는 것으로 주장하는 다른 길로 가는 이도 있다. 도일한 구절들을 짜 맞춘다면 가능하기도 하다. 코란으로 삼위일체를 증명하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하나님의 아들 이심 까지도 증명하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이렇게 해서는 절대 않된다. 그것은 허위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슬림들을 약오르게 괴롭히는 것이며(만일 무스림들이 성경을 허위로 오용한다면 우리도 약오르는 것 처럼), 코란이 성경과 동일한 것처럼 거짓된 인상을 주게되어 그리스도인들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3) 모하메드의 성품을 공격하지 마라. 당신은 모하메드나 어느 누구에게든지 "심판자"가 아니며(눅6:37), 단지 무슬림을 화나게 만들고 어떻게 해서라도 모하메드를 옹호하게 만드는 결과 밖에 않된다.
거듭말하지만 예수와 모하메드를 비교하지 말라. 왜냐하면 첫째, 이는 무슬림을 항사 방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신은 정당한 일이라고 느끼지만 ntmffla들은 모하메드를 공격한다고 느낀다. 둘째,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주님과 구세주)는 이슬람에서 모하메드의 위치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오직 사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절충 타협은 잘 못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당신이 모하메드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좋은 일이기도 하다. 그가 우상숭배 하는 사람들에게 한 분 하나님을 섬기도록 어떻게 개심 시켰는지, 혹은 서로 다투는 종족들을 연합하고 질서있게 하였는지 등 호감 가질 점도 있어 보인다.
4) 예수위 기적과 동정녀 탄생을 "설복' 하려는 것은 주의하라.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 심을 증명하는 것으로 주장한다. 이는 논쟁적인 분위기만 일으킬 뿐이다. 또한 무스림들을 설득시키지도 못하게 된다. 첫째, 다른 예언자들도 기적을 행하였기 때문이며, 둘WO, 아담 또한 인간적인 아버지 없이 기적적으로 세상에 왔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결코 기적을 신성의 "증명"으로 사용한 적이 없음을 주의하라.(예, 마4:6,7). 우리는 당신이 성경적인 증언에 더 밀접하기를 권고한다. 기적은 예언 성취의 "징표"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징표이다.
그리스도인들과 더 토의할 사항
1) 우리의 솔직한 곤란은 우리 자신이 예수의 생애에 대한 이해가 빈약하다는데 있다. 우리는 에수님에 대해 단편적인 이야기를 다소 알고 있으며 요3:16을 마음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사실 기술할 수 있는가?(교회에서도, 수 많은 설교가 예수에 대한 것인가?)
실제로 오분 동안 예수에 대해 말해 보라, 화육론과 구속론만 말하지 말고 예수님이 세사에서 행하시고 말씀하신 것을 간략히 말해 보라.
2) 공부한 내용을 생각하면서 개인적으로 성경 이야기들을 간략히 말해 보라. 무슬림 신앙과 연관하여 이야기 해보라. 생활 속에서의 일도 이야기 해 보라. 어떻게 예수님은 그이 사역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음을 보이는 이야기를 사용했는지 말해 보자.
3) 우리가 예수님의 생생한 이야기에서 무슬림과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히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라. (예를 들면 우리가 병든 자를 위해 기돨 때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께서 환자를 치료하셨는지 말 할 수 있다)
(집필, updated- 200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