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남경은 절대 화로가 아니랍니다
남경 루커우 국제공항(南京禄口国际机场, 난징 루커우 궈지지창)은 의외로 아담했다. 외국인은 거의 눈에 안 띄었다. 소문이 안 난 것이라는 생각도 정 반대로 소문때문 피해를 본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와보지는 않았지만 익히 여름에 푹푹 찌고 겨울엔 습한 공기가 찬기로 바뀌어 감당하기 힘든 냉기를 선사한다 들었었다. 겨울에 그들은 난방을 잘 안 한다. 중국의 '3대 화로'는 중국 초•중학교 지리 교과서에 실린 대로 하자면 우한, 충칭, 난징이다. 이미 정평이 난 그 도시들인데 당한 그들로서는 불만이 엄청 많았던 모양이다. 당연 그들은 '화로 도시'로 불리는 것을 상당히 꺼리며 언론 등 대외에 사용 금지를 요구하기도 했었다. 뭐 대단한 논의 거리라고 지금도 화로 도시에 대한 각축은 치열하다.

'3대 화로 도시'로 명명된 이유는 1년 동안 낮 최고 기온이 35도 이상이 19일, 37도 이상이 4일, 밤 기온 28도 이상이 13일, 밤 최저 기온 30도 이상이 2일 정도 지속되는 찜통더위가 이어져서 '화로 도시'로 불리게 된 것이라는데 이곳 사람들은 창장(長江) 유역의 안칭(安庆), 난창(南昌), 창사(长沙)의 폭염과 고온이 우한, 충칭, 난징보다 훨씬 심하다고 다시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에 기상대는 "화로 도시는 무조건 기온이 높아 붙여진 것이 아니라 지리적 위치나 인지도 등을 감안 해 결정한 것"이라면서 "세 지역의 기온만으로는 중국의 대표 '화로 도시'로 불릴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다"고 밝혔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이 풀어질까.
전문가에 따르면 중국의 '3대 화로 도시'는 각 도시 마다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디고 한다. 최대 화로 도시인 우한의 경우 강과 호수가 많아 증발한 수증기로 인해 생긴 뭉게구름이 도시 전체를 뒤덮으면서 지면의 열이 대기에 복사되는 속도를 늦춰 습도가 높아 마치 도시 전체가 찜질방에 있는 것처럼 숨이 막힐 정도로 더운 도시이다. 또한 우한은 1934년 낮 최고기온이 41.3도를 기록하면서 중국 최대 '화로 도시'로 불리게 됐다. 유난히 많은 비가 내려 물난리를 겪고 있는 충칭은 쓰촨(四川) 분지의 중앙에 위치한 지형적 이유 때문에 전통적으로 더운 지방으로 유명하다. 더구나 지난해 8월에는 44.5도까지 올라가면서 기상관측 사상 이래 53년 만의 최고기온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난징(남경)은 "난징에서는 손에서 부채를 놓을 수 없고 땀이 물처럼 흐른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고온 다습한 기후의 대명사라 할 만하다. 당연 난징을 거론하면서 상하이를 뺄 수는 없다. 상하이 역시 더운 지역이긴 하지만 상하이는 바다와 가까이 있어 기온이 난징보다 훨씬 낮으며 바다와 육지 간의 기압 차이로 상하이의 밤은 난징보다 훨씬 시원한 편이다. 아무튼 서로 화로가 자기가 아니라고 주장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추세가 또 바뀌고 있다. 요즘 새롭게 '화로 도시'로 푸저우가 부상하고 있다. 그곳은 올 여름 낮 최고 기온이 35도를 넘는 날이 연속 31일간 이어졌다. 지난해에는 최고기온이 43.2도까지 올가가면서 36년 만에 무더위가 찾아오기도 했다. 항저우도 광저우도 7월 들어 최고기온이 35도 이상인 날이 20일째 이어지면서 불가마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바 중국에서 가장 더운 도시를 일컫는 '화로' 도시에 푸저우(福州), 광저우(广州), 항저우(杭州)가 새롭게 선정되아야 한다고 앞서 말한 난징과 우한 충칭 사람들은 볼 멘 소리를 그렇게 외치는 거다.
기후조건이 사는 조건으로서 크게 차지해 그럴 것이다싶기도 한데 장강 언저리 동네는 다 도찐 개찐이 아닌가 싶다. 설령 화로라고 낙인 찍힌다하여 세금을 더 걷나 손해 날 것이 있던가. 나중 민박집에서 3대 화로 거론하며 민박집 아줌마에게 얘기했더니 그녀 역시 쌍심지 돋우며 아니라고 완강하게 부인을 해 다시금 실소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거기만 그렇게 더운가. 요즘은 어디든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비해 엄청 덥다. 아무튼 재미난 화로 도시 이야기다. 아무튼 남경에 대해서는 누구든 선입견을 갖고 있다.
우리는 공항 출구에서 봉황민박이란 팻말을 들고선 웬 청년을 발견하곤 곧장 그에게 다가섰다. 우리는 민박에서 유숙하기로 하고 돈 200위안에 마중 나와 줄것을 미리 부탁했었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남경역에 와서 다시 버스로 타야 민박집에 당도한다는 수순을 듣고서 차라리 택시비 200위안이 시간상으로나 편리함에 있어서 더 싸게 먹히는 꼴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중국에 가면 웬만하면 중국 동포 민박집에 들르려고 한다. 호텔같이 깔끔하지는 않지만 숙박비가 호텔의 1/3가격으로 아침밥도 우리 일상식과 같아 입맛도 맞고 뭘 물어봐도 손쉬운 해결책을 얻으니 그만한 카운슬러는 없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이번에 택한 봉황민박(南京市 栖霞区 尧化门 新城佳园 5栋 1单元 302室 ;난찡쓰 씨샤취 요화먼 씬청쨔웬 5뚱 1딴웬 302실). 나는 이 주소를 큰 글자로 복사해 가슴 깊숙이 달고 다녔다. 여차하면 여기다 데려다 주세요 하려는 호구지책인 셈이다. 그런데 인터넷 소개가 다른 것과는 좀 달랐다. 국내에 지사라도 둔 격, 민박집 따님이 서울에 살고 있으니 거기와 연결지으면 된다는 짤막한 멘트, 혹여 중국말이면 어쩌나 걱정 필요 없고 굳이 중국에 전화를 할 필요 없으니 봉황으로 발길이 갈 수밖에는 없다. 그래서 정한 민박집이다.
마중 나온 친구는 우리말을 곧잘 해 당연 한국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는 왕유라는 이름의 중국 청년이었다. 한류열풍이 그에게도 여파가 밀린 것일까. 궁금증은 바로 풀렸다.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LG화학에 LG디스플레이 공장이 남경에 있음을 말했다. 그것도 공장이 8개도 넘는다고 했다. 그는 그들을 상대 해 서비스를 하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안내부터 통역등등. 나중 알고 보니 봉황민박도 거대 기업과도 같은 8개 숙소를 갖은 민박집으로 모두 LG와 관련한 사람들이 묵는 숙소라고 했다. 5월에 시안에서 묵은 민박집은 삼성전자 사람들을 상대하는 민박이었는데 이곳은 LG를 상대하다니. 그는 한 술을 더 떴다. 염성에 기아 차 공장이 있는데 거기는 아예 거리에 한글 이름을 같이 붙여 놓고 있다고 사진까지 보여주었다. 우리와 간격이 벌어진 중국이지만 같이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이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내가 남경에 가던 날 중국의 제2인자라 할 리커창 총리가 시안에 삼성전자를 방문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드디어 新城佳园 아파트 초입, 민박집 노부부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배정받은 숙소, 솔직히 고민스런 상황이었었다. 하루 방세 개인당 150위안, 방 두 개로 누가 같이 자고 누가 독방을 쓸 것인가. 민박집 딸은 이렇게 말했었다. 독채 방이 셋이 있는데 누가 추가로 안 들어오면 각자 방 하나씩 차지하는데요. 손님이 오면 어쩔 수 없이 방 두 개만 쓰셔야 해요. 그리고 오기 전 손님이 와 부득 방 2개만 써야 한다는 연락을 접했었다. 그런데 이런 행운이 또 있나. 분명 이는 一順에 이은 二順이라 할 것이다. 분명 순탄함은 순탄함으로 이어진다. 편하게 쓰라고 그들 방을 바꿨으니 독채로 편하게 쓰라는 거다. 일이 잘 풀리니 그러다가 百順까지 가겠다 싶다. 나는 그럴 줄 알고 우리의 자랑인 김을 미리 준비했었다. 내친 김에 숙박비도 선불로 바로 완납을 했다. 총 1800위안. 그런데 민박집 대문에는 하나가 잘 풀리면 두 번 째도 잘 풀리고 만사가 잘 풀린다는 한자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어쩌든 오늘은 왠지 만사가 오케이다 싶다.
우리는 여장을 풀고 정사 나리를 쫓아 길을 나섰다. 206번 버스. 한사람에 2위안 하여 6위안. 우리는 그 버스를 타고 남경역을 향하고 있다. 공기가 탁하다. 목이 금세 잠길 것만 같은 남경의 오후, 장강 때문 습한 공기까지 한 몫을 더해 대기를 짓누른다 싶었다. 해는 벌써 어둠을 향해 질주한다. 요즘은 석양빛이 물들자마자 금세 어둠을 남겨둔다. 이곳이라고 예외일까. 우리는 어둠이 두려워 남경역을 향해 바삐 발을 옮겼다.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순탄한 일정의 三順을 기대하며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