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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15회>
씬 나주 관아 외경(밤)
이날 따라 군사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다.
씬 동 관아 안
장일과 군사들이 서 있다. 왕건이 이미 궁예가 보낸 장계를 다 읽었
다. 모두들의 눈빛에 긴장이 돌고 있다. 형미도 보고 있다.
왕건 폐하께오서 나를 보고 철원으로 오라 하신다?
장일 그러하옵니다, 왕총사.
왕건 (생각하다가) 이 칙령에는 무슨 연유로 군무를 잠시 놓고 오라 하시
는지 그 내용이 보이지를 않는 구료.
장일 소장은 내군의 장수에 불과하옵니다. 폐하의 영을 받들어 뫼셔 왔을
뿐이옵니다.
태평 나주처럼 큰 전선의 총사를 맡고 계시는 분입니다. 또한, 시중을 지
낸 어른이시오. 이러한 분을 부르실 때에는 명백한 이유를 말씀하셔
야 하는 것이 아니오이까?
장일 나는 폐하의 명을 받들어 뫼실 뿐이오.
모두들 그렇게 긴장을 풀지 않는다.
다련군 영을 받는 즉시 오라고 하셨는데, 그만큼 급한 사정이란 무엇이오이
까?
장일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왕건 알았소이다, 장부장. 영을 아니 받들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잠시 기
다려주시구료. 떠날 차비라도 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장일 예, 왕총사.
왕건 이 사람들을 잠시 요기라도 하게 해드리게.
군사들 예.
장일이 군사들과 함께 그렇게 그 자리에 앉는다. 왕건이 잠시 고개
를 끄떡해주고는 그 자리를 벗어난다. 모두들 따라 간다. 장일이 예
리하게 그들을 보는 그 시선에서...
씬 동 관아 사랑
다련군, 오씨, 유금필, 능산, 태평, 박술희, 김락, 김언, 윤신달, 전이
갑 들이 보고 있다.
유금필 가셔서는 아니 될 것 같사옵니다. 아무런 내용도 없이 이 중요한 전
선의 수장을 오라고 하는 법이 어디 있사옵니까?
오씨 소첩도 생각이 같사옵니다. 뭔가 불길한 생각이 드옵니다.
태평 그렇사옵니다. 이미 우리는 철원 본가에서 보내온 서찰을 보았사옵
니다. 황궁에서 지금 국문이 벌어지려 하옵니다. 그곳에서 주군을
부르시는 것이옵니다.
능산 황후마마의 일과 더불어 주군을 해치려는 것이옵니다. 가지마시오소
서.
박술희 참으로 한심한 조정이옵니다. 이런 조정을 믿고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우리들의 처지가 너무도 딱하옵니다. 가지마시오소서, 주군. 함
정이 있는 줄 아시면서 어찌 가시겠사옵니까?
김언 어렵게 어렵게 저희들이 총사를 이곳으로 뫼시었사옵니다. 가셔서는
아니되옵니다.
왕건 아니 가면.... 아니 가면 어쩌란 말인가?
전이갑 어쩌기는요? 허면, 죽을 줄 아시면서 가신다는 말씀이시옵니까? 이
일대의 모든 군사가 왕총사를 따르고 있사옵니다. 아니 가시면 그만
이지요. 뭘 그러시옵니까?
윤신달 그렇사옵니다. 전령으로 온 저 장일의 목을 베고 차라리 독자의 길
을 걸으시오소서.
왕건 독자의 길이라... 항명을 하고 반역을 하라는 것이오?
유금필 이미 반역의 죄를 씌워 주군을 부르고 있사옵니다.
태평 가셔서는 아니되옵니다. 절대로 아니되옵니다.
그때, 껄껄껄 웃는 소리와 함께 형미가 들어선다. 모두들 본다.
형미 듣자하니, 철원에서 칙사가 왔다하더이다.
다련군 그렇사옵니다, 대사님. 모두들 위험한 길이라 하여 이렇게 만류하고
있사옵니다만은 왕총사는 대답이 없사옵니다.
형미 아니가면 항명이 되오이다. 항명은 곧 반역이지요. 가셔야 합니다.
가셔야 하고 말고요.
오씨 모두들 칼을 들고 우리 서방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곳이옵니다.
형미 그래도 가야지요.
태평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대사님?
형미 나주는 작은 곳이고, 철원은 황도가 있는 큰 곳이올시다. 목숨이 두
려워 이곳에 머문다면 그야말로 장부 중에서 작은 장부인 졸장부가
되는 것이오이다. 큰 일을 도모하려면 큰 곳으로 가셔야지요.
김락 그러나, 목숨이 위태로운 곳이옵니다.
형미 사람의 목숨은 하늘이 주관하는 법이올시다. 총사께서는 이미 대운
을 갖고 계신 분이신데, 이 나주 고을에서 끝을 내려고 하십니까?
가셔야하오이다. 그게 장부다운 일이시지요.
왕건 대사의 말씀이 저의 생각과 같습니다.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모두들 걱정스럽게 술렁거린다. 왕건이 다시 말한다.
왕건 나는 모반자가 되고 싶지는 않네. 그리고, 졸장부가 되기는 더더욱
싫어. 대사의 말씀이 백 번 지당하시네. 늘 당당하게 살자고 한 것
이 바로 나일세. 철원으로 갈 것일세.
오씨 서방님....
왕건 준비를 해주시구료. 나는 그리로 갈 것이오.
형미 소승도 이참에 철원 구경을 좀 하고 싶습니다. 함께 가면 아니되겠
습니까?
왕건 그리만 해주신다면 고마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허지만, 대사께서 위
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형미 부처님의 제자들은 죽고 사는 것에 그리 연연하지 않습니다.
왕건 고맙습니다. 자, 부인, 준비를 해주시구료. 기왕에 영을 받들기로 하
였으면 철저히 따라야 하지 않겠소이까? 어서요, 부인.
오씨 (마지못해) 예, 서방님.
다련군 허, 이거, 뭐가 뭔지, 도대체... 거기가 어디라고 가는가? 거기가...
그렇게 수선스러운 그들의 표정에서.....
씬 다시 관아 안
장일들이 그렇게 찻잔을 앞에 놓고 앉아 있다. 긴장한 그들의 표정
에서 수하하나가 말한다.
수하1 장군, 만약에... 저들이 눈치를 채고 철원으로 아니 가면 어찌하옵니
까?
장일 왕장군은 아마도 갈 것이다.
수하1 죽을 자리라고 알고 있다면 가겠사옵니까? 아이구, 이거 오금이 저
려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장일 침착하거라. 우리는 폐하의 칙사이니라.
수하1 아, 예, 예....
씬 다시 동 다른 사랑
이번에는 장수들만 모두 모여 있다. 태평이 고개를 외로 꼰다. 복잡
한 것이다.
유금필 태평학사, 말 좀 해보시구료. 주군께서는 저리 완강하게 가신다하니
이를 어찌하오리까?
태평 생각해보면 형미대사의 말씀도 그 뜻이 아주 깊사옵니다. 사실 주군
께서야말로 훗날 대권의 자리를 보시는 분이 아니시옵니까? 이만한
곳에 주저앉게 되신다면 그 또한 아니될 일이기는 합니다. 답답합니
다.
능산 그렇다면, 내가 뫼시고 가면 어떻겠소이까?
유금필 허면, 나도 가야지....
태평 공연히 잘못하면 군의 수장들이 한꺼번에 움직인다 하면 의심을 받
을 수도 있사옵니다. 능산장군 한 분만이면 될 것이옵니다.
박술희 차라리 가려면 태평학사가 함께 가셔야 하는 것이 아니겠소이까?
태평 아니옵니다. 저는 급할 때에 큰 도움이 될 수가 없사옵니다. 차라리
능산장군께서 철원에 남아 있는 군부의 도움을 얻기가 더 쉬울 것
이옵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떡인다)......
태평 그리고, 형미대사께서 또한 동행을 하시옵니다. 저는 이곳에서 뒷일
을 대비하고 대사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나을 것이옵니다. 형미
대사님은 그 누구보다도 앞날을 보실 줄 아는 분이시옵니다.
모두들 끄떡인다. 긴장한 그들의 표정에서....
씬 동 관아 마당
대문이 요란하게 열리고, 왕건들이 출발한다. 오씨와 다련군이 따라
붙는다. 제장들도 잠시 그렇게 함께 한다.
오씨 조심하시오소서. 모든 것을 냉철히 보시오소서, 서방님.
왕건 염려마시구료, 부인. (아들에게) 무야, 다시 보자꾸나.
무 예, 아버님.
다련군 조심하시게. 조심하시게.
왕건 예, 장인어른. (장수들에게) 자, 김장군 그리고 전장군, 윤장군 잘 부
탁하오.
그들 조심하시오소서, 총사.
왕건 자, 장부장, 가십시다.
장일 예. 뫼시어라.
군사들 예....
그들 그렇게 관아를 벗어난다. 형미와 능산도 물론 함께 간다. 그
뒷모습을 보며 오씨는 불안해 어쩔 줄을 모른다.
오씨 이런 일이 있을까봐, 그것이 두려워서 온갖 애를 써서 뫼셔 왔는데,
저렇게 오라고 하여 훌쩍 가버리시니 이를 어찌하옵니까?
유금필 저희들이 곧 뒤를 따를 것이옵니다. 너무 심려치 마시오소서.
오씨 너무도 겁이 납니다. 정말 너무 겁이 납니다.
그런 오씨의 표정에서....
씬 바다(낮)
왕건이 탄 배가 가고 있다. 형미는 즐거운 듯 바다를 보고 있고, 능
산이 조심스럽게 장일의 옆에서 눈치를 보다가 묻는다.
능산 이보시오, 장부장.
장일 말씀하시구료.
능산 이곳에서도 대강의 사정은 짐작을 하고 있소이다. 대체 황궁에서 일
이 어디까지 돌아가고 있는 것이오?
장일 나는 모른다 하였소이다.
능산 장부장은 다 보셨을 것이오. 그리고, 생각도 있으실 게 아니오?
장일 뭘 말씀입니까?
능산 황궁에서 국문이 열린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와 관련된 일임에
도 우리 총사께서는 충실히 그 영을 따르고 계시오이다. 잘못하면
죽음이 될 수도 있는 자리이지요.
장일 ......... (흠칫한다)
능산 일부 장수들은 그것을 알고 장부장을 이곳에서 목을 베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소.
장일 ........? (꿈틀 한다)
능산 왕총사께서는 그것을 나무라시고, 이 배에 오르셨소이다. 어떻소이
까? 이래도 그 내막을 말씀 못해주신다는 것이오? 그렇다면 장부장
은 사내가 아닌 모양이올시다.
장일 모른다 하였소이다. 국문이 열리는 것만은 사실이오. 그러나, 폐하께
서 관심법을 어떻게 쓰실 지는 누가 알겠소이까?
능산 (끄떡이며) 허긴 그건 그렇소이다. (사이) 내가 아는 장수분들 중에
염상이라는 장군이 계십니다. 한때는 내군에서 그대들의 상관이었을
것이외다. 지금은 마군에 속해 계시지요.
장일 알고 있소이다.
능산 장부장도 어쩔 수 없이 내군의 영을 받아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시는
걸로 압니다. 허나, 주변의 인심들을 좀 살피시는 게 좋을 겝니다.
백성들이 어찌 생각하는가, 세상은 어찌 돌아가는가 말입니다. 허허
장일 .......?
씬 그 일각
형미가 웃으며 왕건에게 말하고 있다.
형미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올습니다. 지금 서
서히 그렇게 또 많은 것들이 바뀌는 때인가 보옵니다.
왕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미 세상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운명도 바뀌고.... 세상을 살다보면 특
별히 그런 것들이 격하게 밀려오는 때가 있지요. (정색하고 보며)
왕총사, 지금 총사도 그 격류에 올라 계십니다.
왕건 소장은 아둔하여 무슨 말씀이신 지 모르겠습니다.
형미 불가에서 오래 도를 공부하다보면 세상 돌아가는 것을 깨우치게 됩
니다. 지난 날 도선대사께서 총사를 일컬어 세상을 구한다 하신 것
도 그 때문이올습니다. 그 분의 눈에 다 보이신 것이지요.
왕건 글쎄올습니다.
형미 미련한 이 중도 지금 총사를 따라 황도로 가는 이유가 있소이다. 버
리러 가는 것이올시다.
왕건 무엇을 말입니까?
형미 이 거추장스러운 육신 말이올시다.
왕건 예?
형미 삼한이 갈라지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이후 부처님께서는 저 천상
에서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그 중에서도 이 태봉국은 더
더욱 부처님과는 거리가 먼 땅이 되었습니다. 기왕에 썩어질 육신,
좀 더 값지게 버려볼까 하고 총사를 따라 나선 것이올시다.
왕건 아니, 대사님...?
그런 그들의 표정에서.....
씬 철원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궁예가 생각에 잠겨 있다. 그 앞에 종간이 앉아 있고, 최응이 보고
있다.
궁예 왕건아우가 오고 있다지요?
종간 예, 페하.
궁예 황후는 지금 어찌하고 있다 합니까? 태자들은 그곳에 가 있겠지요?
종간 그러하옵니다.
궁예 갓난아이는 어디에 있소이까? 내가 좀 보고 싶다고 하였는데...
최응 내관들에게 일러 놓았사옵니다. 곧 뫼셔 올 것이옵니다.
궁예 (한숨 섞여) 생각해보면, 참 파란만장한 세월들이었소이다. 우리가
제국을 세운 지도 언 이십여년이 가까워오고 있소이다.
종간 그러하옵니다.
궁예 비록 뜻대로 북벌은 잘 되고 있지 않지만, 어쨌든 우리는 지금 삼한
중에서 제일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소이다. 헌데, 언제부턴가 비틀
거리고 있소이다. 이 제국이 말이오. 생각해보면 다 내가 단단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소이다.
종간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궁예 그래서, 사람의 앞날은 모르는 것 같소이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백
성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고 저들의 추앙을 받아 제국을 건설했습니
다. 헌데, 왜 이렇게 되었을꼬..?
종간 길을 가시다보면 더러는 좋지 않은 곳도 밟기 마련이옵니다. 폐하께
서는 여전히 이 나라의 유일무일한 대 미륵이시옵니다.
궁예 그렇소이다. 옛날로 돌아가야 하오이다. 이제 그럴 수가 있어요. 나
를 괴롭히던 병마도 다 떠났고, 내 영토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소
이다. 그런데, 내가 어쩌다 이런 늪에 빠졌단 말이오? 왜..?
종간 황실의 일은 모두가 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일이옵니다.
궁예 그건 그렇소이다. 허나, 나도 잘못이 크지요. 사형이나 나나 바탕이
승려올시다. 애초부터 가족이니 뭐니 하는 것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었어요. 그런데, 내가 안해를 얻고 자식들을 낳다니 말이오. 보시오,
그것이 오늘날 이렇게 내 발목을 잡지 않소이까? 그야말로 무진번
뇌올시다. 더러운 업장이예요.
종간 폐하,
궁예 말씀하세요.
종간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한 번 더 은혜를 베푸시오소서. 황후마마와 태
자들을 용서하시고 차라리 멀리 보내시오소서. 그리고, 국사에 전념
하시오소서.
궁예 또 그런 말씀이오? 더럽고 질긴 것이 정이라고 하였소이다. 멀리 있
어도 살아 있다면 그 인연은 계속 되는 것이오. 세상에 없다면 그것
으로써 우리는 처음의 생각대로 돌아올 수가 있소이다. 업장을 잘라
버리는 것이예요.
종간 그렇게 잘라질 업장이겠사옵니까? 한 번 더 청하옵니다. 은혜를 베
푸시오소서. 백성들이 보고 있사옵니다.
궁예 이미 왕건아우도 이곳에 오고 있소이다. 오는 대로 국문을 열 것이
외다. 그때 신료들도 모두 들라고 하시오. 다 보아야 할 것이오.
그때, 대전내관의 소리가 들려온다.
대전내관 (E) 폐하, 태자아기님을 모셔왔사옵니다.
궁예 오, 그래. 우리 순백이가 왔구나. 들여라.
상궁 하나가 갓난아이를 안고 들어온다. 궁예가 말한다.
궁예 이리 주거라. (받아 안고) 오, 우리 순백이로구나. 우리 태자야.
종간 .......(표정이 어둡다)
궁예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것이니라. 모든 것을.... 순백이 너로부터 그
시점을 삼을 것이다. 다시 가는 것이다. 다시.... 참으로 기골이 웅장
하지 않소이까? 영락없이 나를 닮았어. 허허허....
종간은 그렇게 한숨을 쉬고, 최응은 표정이 없고....
씬 동 황후전 밖
내군들이 지키고 서 있다.
씬 동 황후전 안
진내관, 제조, 슬이들이 보고 있고. 두 태자들이 막 음식을 먹고 있
다. 연화도 말이 없이 그렇게 앉아 보고 있다. 그런 연화의 손에는
왠 목걸이 하나가 쥐어져 있다.
신광 어마마마, 왜 보고만 계시옵니까? 좀 드시오소서.
연화 드세요. 이 어미는 생각이 없습니다.
청광 점심도 아니 드시고, 저녁수라까지 거르시면 어찌하옵니까?
연화 많이들 드세요. 이제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신광 어째서이옵니까, 어마마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연화 묻지 마시고, 드시어요. 어서....
태자들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렇게 음식을 계속 먹고
있다. 신광이 보다가 다시 묻는다.
신광 어마마마, 그 목걸이는 무엇이옵니까?
연화 이거 말입니까?
신광 예, 아주 예뻐 보이옵니다.
연화 그렇습니다. 예쁜 목걸이지요. (한숨) 이 목걸이는 옛날 아주 옛날에
제 소꼽동무가 주었답니다.
제조,슬이 .........
연화 그때 그 동무는 신라의 서라벌을 다녀오면서 이것을 사왔답니다.
(사이) 오래오래 간직하겠다고 약속을 했었지요.
연화는 그렇게 중얼거린다. 두 태자가 먹기를 끝낸다. 상궁들이 음
식상을 내어간다. 물끄러미 보던 연화가 중얼거린다.
연화 태자들은 어찌할꼬...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이 태자들은....
슬이 황후마마, 차라리 한 번만 용서해주시라고 비시오소서.
연화 용서..?
제조 황후마마, 마마께오서 한 번 만.....
연화 무엇을 용서 빌 것이 있단 말이냐? 그래서, 구차한 이 목숨을 또 그
렇게 이어가란 말이냐? 나도 쉬고 싶단다. 이 고단한 육신을 그만
누이고 싶어.
모두들 황후마마...
연화 그래, 그 갓난것의 이름이 순백이라고 하였던가? 그래, 그렇게만 살
아라. 그저 그렇게.... 맑고 깨끗하게 살거라. 그것이 훗날 이 어미
얼굴이나 기억을 할꼬...? 하기사, 기억한들 무엇을 할까? 다 실없는
생각이로다.
계속 목걸이를 만지는 그런 연화의 표정에서.....
씬 동 은부의 전각
은부가 수북한 자료들을 훑어보고 있다.
입전 장군, 강장자의 양자는 아무리 문초를 해도 아는 것이 없다고 하옵
니다.
은부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어차피 죽을 목숨이야. 집안 모두가 역모
에 걸려 있는데, 어쩔 것인가?
입전 황후마마와 그 주변의 상궁 나인들은 어찌하오이까? 잡아다가 문초
를 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은부 왕건이 오는 대로 무슨 조치가 있으실 게야. 이미 폐하께서는 다 굳
어지셨네. 사실 이 기록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입전 그렇기는 하옵니다.
은부 그저 형식상 다 이렇게 꾸며놓는 것일세. 관심법이면 끝이야.
은부가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임춘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임춘길 (E) 장군, 임춘길이옵니다.
은부 들어오시오.
임춘길 (들어오며) 요즘 아주 바쁘시다고 들었사옵니다. 조정이며 세간의
소문들이 아주 무성하옵니다.
은부 오, 그래요?
임춘길 황후마마와 그 왕건장군에 대해서 말이옵니다.
은부 지금쯤 알 사람이야 다 알겠지. 그래, 무슨 일이시오? 뭐 또 좋은
소식이라도 가지고 왔소이까?
임춘길 (눈치를 보다가) 그 왕건장군에 관한 일이옵니다. 저희가 계속 조사
를 하던 끝에 드디어 결정적 증거를 잡았사옵니다.
은부 어허, 그래요? 결정적 증거라, 그게 무엇이오?
임춘길 그 석총이라는 중이 충주에 갔을 때 허월대사와 함께 있었다 하옵
니다.
은부 그래요? 그래서요?
임춘길 석총이는 그곳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그 종파의 상징인 간자라는 것
을 왕건장군에게 전해주었다고 하옵니다. 간자란 부처님의 사리의
일종으로써 다시 말하면 미륵을 상징한다 하옵니다.
은부 (흠칫하며) 미륵을 상징해?
임춘길 그렇사옵니다. 반역이옵지요. 분명한 반역이옵지요.
은부 그렇소이다. 반역이지요. 암, 반역이고 말고...
그렇게 굳어지는 은부의 표정에서.....
씬 왕건의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두 유씨, 왕식렴, 왕신이 모여서 걱정스럽게 서로들을 본다.
왕식렴 그예 형님께서 소환되어 오고 계신다 하옵니다.
왕신 신료들을 모두 형님 오시는 때를 맞추어 황궁으로 들라 하였다 하
옵니다. 국문을 시작하려는 것이옵니다.
왕식렴 황후마마는 사실상 태자마마들과 함께 연금 되어 계신다 하옵니다.
유씨 서방님께서 오시면 어찌되시는 것입니까?
수인 뻔한 일이 아니옵니까? 국문이라고 하지 않사옵니까?
왕식렴 형님께서는 우리가 이미 기별을 하였기 때문에 사정을 다 알고 계
실 것이옵니다. 그만큼 어떤 마음의 준비나 계산이 있지 않겠사옵니
까?
왕신 그럴 것이옵니다. 설마하니 무작정 오시기야 하겠사옵니까?
유씨 어찌한다.. 이 일을 어찌한다.....
씬 길(밤)
왕건일행들이 오고 있다. 능산, 형미, 장일과 군사들이다.
형미 바닷바람을 실컷 쐬고 배에서 내리니, 비로소 흙 냄새가 얼마나 좋
은지 알겠소이다. 아주 한동안 멀미를 심하게 했어요, 허허허.
왕건 (웃으며) 그렇습니까? 소장은 평생의 절반을 바다에서 보내고 있습
니다.
형미 들었소이다. 알고 있습니다. 대대로 조상님 또한 그렇지 않습니까?
왕건 그랬습니다. 허허허.
형미 참 알 수 없는 일이야. 이 세상이 말입니다. 참으로로 공평해요. 사
실 우리 불가에서는 삼한을 통일하는 기운이 이 태봉 안에 있다고
들 합니다. 그런데, 태봉의 황제는 저리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
뛰고 있으니.... 그러고보면, 그만큼 좋은 일이 있으려면 그에 따른
값을 어렵게 지불해야 하는 것 같소이다.
그들 그렇게 앞서 얘기하고, 가면 바로 뒤에서 능산과 장일이 따른
다.
능산 장부장,
장일 말씀하시지요, 능산장군.
능산 대략 일정이 어찌되오이까? 우리가 내일이면 철원으로 들어가는데
가자마자 국문에 임하는 것이오이까?
장일 아마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능산 우리 왕총사께서는 혐의가 무엇이오이까?
장일 난처한 것만 자꾸 물으십니다. 그러나, 어차피 이쯤 오셨으니 말씀
드리지요. 대역죄입니다. 황후마마와 보위에 관해서 논한 적이 있다
는 것입니다.
능산 허허, 이거 영락없이 사지로 들어가는 것이구료.
장일은 대답이 없다. 그들은 그렇게 계속 가고 있다.
씬 어느 집 사랑
촛불 하나를 켜 놓고 복지겸, 홍유, 배현경이 모여 있다. 그들은 모
두 심각하다. 찻상을 앞에 놓고 있다.
복지겸 지금 폐하의 결심이 예상외로 심각하신 것 같소이다. 내군과 의형대
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소이다.
홍유 왕장군도 지금 소환되고 있소이다. 예삿일이 아니올시다.
배현경 내일이면 왕장군이 도착을 할 것이고, 곧바로 국문이 열린다고 합니
다. 황후마마는 계속해 연금 중이신데 아마도 내일 그 국문장에 틀
림없이 끌려 나오실 것입니다.
복지겸 나라가 이대로는 아니됩니다. 오래전부터 폐하께서는 그 중심을 잃
으셨습니다. 황후마마와 태자마마에 관한 것은 황실 안의 일이라 그
렇다 하더라도 시중까지 지내신 왕장군을 벌하신다면 이야말로 잘
못 되도 크게 잘 못 된 것입니다.
홍유 우리라도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배현경 옳은 말씀이외다. 폐하께서 잠시 또 정신이 나가셔서 그 놈의 관심
법인지 뭔지로 왕장군을 벌주신다면 어찌 되겠소이까? 관심법이라
는 것 자체가 죽음이 아닙니까?
복지겸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들 모인 것이 아닙니까? 왕장군을 그렇
게 허망하게 다치게 할 수는 없지요.
홍유 허나, 내군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우리를 보고 있소이다. 우리가 비
록 군사력은 상당히 갖고 있으나 어찌 할 수가 있소이까?
배현경 참, 거 왕장군도 답답하십니다. 아, 이 살벌한 곳을 글쎄 오란다고
해서 그렇게 금방 달려오는 분이 어디 있습니까?
복지겸 허허, 어찌한다...? 이거 도대체 잠이 오지를 않소이다. 만에 하나 왕
장군께서 다치신다면 이제 이 나라에 희망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어
떤 대책을 준비해야 합니다.
홍유 허나, 시간이 너무 없어요. 당장 내일이면 국문이라고 하지 않습니
까?
복지겸 허허, 이거 참... 이거 참....
씬 유천궁의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유천궁, 유긍달이 마주 앉아 있다.
유천궁 대체, 충주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소이까?
유긍달 기가 막힌 일이 생겼습니다.
유천궁 이곳 황도도 말이 아니올시다. 혹시 그와 관련된 일인지요?
유긍달 그렇습니다. 우리 집에서 부리던 집사장이라는 자가 순군부의 임춘
길이 부리는 못된 중의 꾀임에 빠져 큰 일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유천궁 아니, 유장자 집에 집사장이 큰 일이라니요?
유긍달 장자 어른이나 저나 다 같은 왕장군의 장인이옵니다. 헌데, 그 집사
장 놈이 그만 황금의 유혹에 넘어가 아이구.....
유천궁 말씀을 하세요.
유긍달 예전에도 왕장군이 석총대사와 관련하여 폐하께 의심을 받은 적이
있지 않사옵니까? 바로 그 일이옵니다. 석총대사는 우리 충주에 들
렸을 때에 왕장군과 만나 간자를 전한 적이 있었사옵니다.
유천궁 간자요?
유긍달 예, 그야말로 그 일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반역으로 몰아 부치면 꼼
짝도 못할 그런 일이올습니다. 미륵을 상징하는 것이니까요?
유천궁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유긍달 이 일을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이미 저 자들이 다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옵니다.
유천궁 이런 세상에... 지금 그렇지 않아도 황후마마의 역모 사건에 왕장군
이 연루되어 오고 있습니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이런 일까지...
유긍달 어떻게 손을 써볼 수가 없겠사옵니까? 너무도 화급하여 이렇게 달
려 왔습니다.
유천궁 (도리질하며) 손을 쓰다니요? 아무도 그 국문에는 나설 수가 없소이
다. 나는 또한 관직에서 그만 둔지도 꽤 되었구요.
유긍달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유천궁 글쎄올시다. 하늘에 맡기는 수 밖에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씬 왕건의 집 사랑
두 여인이 초조하게 서로를 보고 있다.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수인 새벽이 옵니다, 형님. 서방님께서 이미 철원으로 드시고 계실 것이
옵니다.
유씨 그럴 것일세. 나주에서도 그 아우가 얼마나 노심초사를 하고 있겠는
가? (한숨) 그 국문이 어찌 될꼬...? 그 국문이....
씬 나주 관아 안
역시 오씨가 초조하게 자고 있는 어린 무를 보며 다련군과 함께 걱
정하고 있다.
오씨 너무도 불안하옵니다, 아버님. 지난날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번
일만큼은 도무지 가늠을 할 수가 없사옵니다.
다련군 기다려보자꾸나. 능산장군도 따라 갔고, 또한 형미대사께서도 함께
가셨다. 혼자가 아니니 기다려보자. 형미대사는 온 세상이 우러러
존경하시는 분이시다. 그 분이 옆에 계시니 그래도 좀 안심이다.
씬 동 관아 어느 전각
김언과 태평, 유금필, 김락, 전이갑, 윤신달 들이 보고 있다.
김락 허허, 그거 참... 도대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소이다. 지금쯤 어찌
되셨을꼬..?
전이갑 다 생각이 있어서 가셨소이다. 결과를 보십시다.
김언 황실은 썩을 대로 썩었소이다. 그런 황실을 총사께서는 왜 그리 충
성을 하시는지 모를 일이올습니다.
유금필 총사께서는 그런 분이시지요.
태평 결코 크게 잘못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윤신달 그걸 누가 보장합니까? 다 정신없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입니다.
허, 참... 한참 할 일이 많으신 분을 그런 쓸데없는 일로 부르시니...
나라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지금 백제는 모든 전쟁을 중단하고 내
치에 온 힘을 쏟고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우리는 이것이 무엇이오
이까?
씬 백제 전주 황궁 외경(낮)
견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씬 동 대전
견훤 재미있구먼. 과연 파진찬이야. 태봉 황실이 아주 쑥밭이 되고 있구
먼 그래. 황후와 태자들까지 죄를 물을 것이다?
최승우 그렇다 하옵니다. 뿐만 아니라 금성에 와 있던 왕건이가 다시 소환
되어 갔다 하옵니다.
견훤 하하하, 재미있어. 황제와 백성이 온 힘을 쥐어짜도 아니되는 판에
그런 소란이 있다니..? 결국 태봉국도 별 게 아니야.
최승우 궁예왕은 처음에는 참으로 현명한 성군이었사옵니다. 한 번 잘 못
발을 디디면 얼마만큼 실패할 수 있는 가를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옵니다.
견훤 암, 그렇고 말고. 헌데 말이야. 이건 참 안타까운 일이야. 나와 함께
삼한에서 패권을 다투어 온 영웅이 아닌가? 그런 사람이 어떻게 집
안 일에 묶여서 그 난리란 말인고..? 그러길래 가화만사성이라고 했
어. 집안이 편안해야 되는 거야. 집안이...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폐하.
견훤 (웃다가) 하긴 뭐, 나도 그렇기는 하지만 말이야. 에잉.... 거 참, 궁
예왕도 안되었어. 사람이 어쩌다 그리 되었어 그래.
씬 철원 저자 거리
왕건의 일행들이 가고 있다. 모두들 표정이 굳어 있다. 그렇게 지나
쳐 가면....
씬 철원 황궁 외경
씬 동 내원
종간과 은부가 마주 해 있다. 종간이 초조한 듯 계속 탁자를 가볍게
두드린다.
종간 왕건이가 황도로 들어오고 있단 말이지?
은부 예, 내원어른.
종간 국문 준비는 끝이 났고?
은부 예,
종간 황후전의 동정은 어떠한가?
은부 의외로 아무 소란 없이 조용하옵니다. 이제 곧 폐하의 영이 계시겠
지요.
종간 잘 못 된 것이야. 황후도 잘 못 되었고, 폐하도 잘 못 하고 계시는
게야. 백성들..... 저 백성들 순진하고 무지한 것 같으면서도 늘 날카
롭게 이 황실을 보고 있는 저 백성들의 눈과 귀는 어쩔 것인가?
은부 이미 시작된 일이옵니다. 어쩌면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것이 최선을
길일 수도 있사옵니다. 껄끄럽고 구차스러운 모든 것들을 씻어 내는
일이옵니다.
종간 사사로이는 처자를 죽이는 일이야. 백성들이 다 이해하여도 그런 것
에는 아주 민감해. 신료들도 그래. 지금은 우리가 무서워 쉬쉬하지
만 저들의 마음속에는 다른 생각들이 들어 있을 것이야.
은부 철저히 감찰하고 있사옵니다. 아주 단단히 말이옵니다.
종간 그래야 해. 이럴 수록 신료들은 물론이고 군의 동향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어. 엄히 감찰하게.
은부 예, 내원어른.
종간 특히나 왕건이는 군부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어. 그 많은 전투에
서 왕건이를 거쳐가지 않은 장수가 얼마나 되는가? 석총이에 관한
건은 어찌 되었는가?
은부 이미 죄목을 써서 기록으로 올릴 때에 함께 대전으로 올렸사옵니다.
이미 폐하께서도 아시고 계실 것이옵니다.
종간 이번에는 꼭 없애야 할 것이야. 이번에는....
은부 임춘길이에게 그 간자 이야기를 들으면서 온몸에 소름이 끼쳤사옵
니다. 내원어른이 처음부터 너무도 정확히 꽤 뚫어 보셨기 때문이옵
니다. 간자라니요... 한다 하는 고승들이 왕건이를 미륵이라 했다 하
옵니다.
종간 그럴 재목이기는 하지. 그러길래 이십년 전이던가 처음 왕건이를 보
았을 때 폐하께서 너무 관심을 두시길래 말씀드렸었지. 왕건이와 폐
하는 상극이시라고... 허나, 듣지 않으셨어. 지금까지...
은부 알고 있사옵니다.
종간 이번만은 폐하께서 잘 하셔야 하는데..... 이번에 왕건이를 다시 놓아
주면 다음부터는 우리의 목이 위험해. 폐하는 물론이시고....
씬 동 대전
궁예가 기록들을 읽고 있다. 여전히 최응은 옆에 있고....
궁예 간자를 받았다..? 왕건이가 석총이에게 간자를 받았다..? 간자라..?
이걸 받았으니 대역이라..? (끄떡인다) 대역이라...? 국문은 준비가
되었다 했느냐?
최응 예, 폐하.
궁예 황후는...?
최응 폐하의 영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으로 아옵니다.
궁예 왕건아우가 황궁에 가까이 왔다 하니 준비하라 이르라.
최응 예, 폐하.
최응이 그렇게 나간다. 궁예는 눈을 들어 밖을 보며 뭔가 생각하고
입술을 앙다문다. 그런 그의 표정에서...
씬 동 황후전 밖
내군들이 달려오고 있다. 금대가 그들을 지휘하고 있다. 황후전 안
으로 들어간다.
씬 동 황후전 복도
내군들이 들어와 황후전 문 앞에 선다. 앞에 섰던 진내관과 다른 상
궁들이 겁을 먹고 바라본다.
금대 폐하의 영이시오. 곧 국문이 있을 것이오.
진내관 ........
금대 이를 황후마마께 아뢰어 주시오.
진내관 구...국문이라 했습니까? 그것이 오...오늘 입니까?
씬 동 황후전 안
금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연화, 제조, 슬이들이 귀를 세우고
밖의 소리를 듣고 있다. 연화는 본능적으로 태자들을 껴안는다. 그
손에는 여전히 목걸이가 쥐어져 있다.
진내관 (E) 이보시오, 금부장. 오늘 국문을 연다 하시었소이까?
금대 (E) 그렇다고 하지 않았소? 예서 기다릴 것이오. 어서 죄인들은 차
비를 차리라 이르시오.
진내관이 급히 안으로 들어선다. 이미 연화들은 다 들어서 알고 있
다.
진내관 마마, 황후마마... 저들이 왔사옵니다. 그예 (울며) 국문을 연다 하옵
니다.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황후마마?
연화 어차피 올 것이 온 게 아닌가? 웬 울음인가? 그만 거두게.
제조,슬이 (역시 울며) 황후마마......
연화 자, 태자들 가십시다. 폐하께서 오라 하십니다. 태자마마들의 아버님
께서 말입니다. 가십시다.
두태자 (겁을 먹고) 어마마마..?
연화 자, 가세요. 의연하셔야 합니다. 이 나라의 태자들이십니다.
신광 무섭사옵니다, 어마마마.
연화 괜찮습니다. 잠깐이면 다 끝나옵니다.
청광 무섭사옵니다, 무섭사옵니다. 아버님이 우리를 죽이시는 것이옵니
까?
연화 자, 가십시다, 태자들. 어서 가십시다.
제조와 슬이가 계속 울고 있다.
제조, 슬이 황후마마.... 황후마마......
연화 웬 울음이냐? 그치지 못할까? 좋은 세상으로 가는 길인데, 무엇이
슬퍼서 운단 말이냐?
씬 철원 시가지
왕건들이 황궁 가까이에 이르고 있다. 얼마쯤 가다가 장일이 말한
다.
장일 왕장군께서는 칙령을 받고 오시는 것이지만, 대사께서는 황궁으로
드시라는 영이 아니 계셨소이다.
형미 허허허, 그러니까 황궁에 들어올 수 없으니 그만 가라 이런 말이오?
장일 어쨌든 황궁으로 드실 수는 없소이다.
형미 알겠소이다. 아, 오지 말라는 데야 어찌 가겠소이까? 더구나 저 지
엄하고 높은 황궁을 말입니다.
능산 이 사람은 장군을 모시고 수행해온 부장이올시다. 함께 가야겠소이
다.
장일 능산장군은 거론하지 않겠소이다. 자, 가시지요. 황궁에 다 왔소이
다.
저만큼 황궁의 궁궐담이 보여 오기 시작한다. 그들 길목을 잡아들고
그렇게 가까이 가고 있다.
씬 황궁 의형대 밖
신료들이 모두 모여 있다. 국문장이 이미 마련되어 있고, 신료들의
면면이 보인다. 임춘길, 도우, 유긍달의 집사장, 입전, 신방, 박질, 원
극유, 복지겸, 염상, 배현경, 홍유, 환선길, 박지윤 부자, 왕식렴, 왕
신, 천부장도 보인다. 그 상석에 궁예가 앉아 있고 그 밑으로 종간
과 은부, 최응이 보인다.
궁예 (한참 하늘을 보고 있다가) 날씨가 아주 청명하구나.
신료들 ........
궁예 죄인들이 왜 아직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고..?
은부 내군들이 갔으니 곧 뫼셔 올 것이옵니다.
궁예 황후와 태자들이 죄를 짓고 국문을 받는 자리이니라. 이것은 다른
죄안과 달라 길이 길이 후세에 본을 삼아야 할 자리이니라. 최응이
는 오늘 이 일의 전말을 다 기록하라.
최응 예, 폐하.
궁예 되도록 죄인들 가까이에서 상세히 듣고 빠짐없이 기술하라.
최응 예, 폐하.
궁예 나주에서 올라오는 장군 왕건은 어찌 되었느냐?
종간 이미 밖에 다 당도한 것으로 아옵니다.
그때, 신료들이 모두 술렁거리며 한쪽을 본다. 내군들의 인도를 받
으며 연화가 두 태자들을 데리고 오고 있다. 모두들 본다. 종간과
은부, 그리고 박지윤, 복지겸 등등의 면면이 지나친다. 모두들 초긴
장하여 보고 있다.
금대 폐하, 황후마마와 두 태자마마를 뫼셔 왔사옵니다.
궁예 ..........
연화 ..........
금대 어찌하오리까, 폐하?
궁예 본래 국문이라 하는 것은 이미 죄가 있어 불려와 조사를 받는 자리
를 말하는 것이다. 이미 죄인이니 죄인의 자리에 세워라.
금대 예, 폐하. 죄인들을 죄인의 자리에 데리고 앉혀라.
종간 다른 죄인들도 모두 끌어내라.
내군들이 대답하며 부산하게 움직인다. 황후와 태자들이 죄인이 서
는 자리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그 사이에 양자와 연화를 따라 온
진내관, 제조, 슬이들도 세운다. 그 중에서 지금껏 함께 따라 다녔던
첩자 상궁이 제외되며 한쪽에 가서 선다. 그제서야 제조들은 놀란
다. 아, 너였구나 하는 것이다. 아무도 말이 없다. 연화의 표정은 너
무도 담담하다. 그러나, 두 태자들은 떨고 있다.
궁예 (한참 내려다보다가) 이 자리는 짐이 직접 친국을 하는 국문의 자리
이오. 황후도 없으며, 태자 또한 없느니라. 짐이 관심법을 쓸 때는
죄인이 자복을 안하거나 관료들이 그를 평결하기 어려울 때이니라.
의형대는 들어라.
입전,신방 예, 폐하.
궁예 그 동안 법을 다루는 관청에서 올려 온 기록들을 다 보았노라. 황후
와 태자들의 죄목을 열거하라.
입전 예, 폐하.
입전이 앞으로 나서며 벌벌 떨면서 신료들을 보고 황제를 보고 다
시 황후를 보다가는 기록을 읽기 시작한다.
입전 죄인들의 죄안을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먼저 황후마마께오서는 일찍
이 대역죄로 형을 받은 죄인 강장자의 여식으로서 아비의 죄를 자
숙하고 반성하지 못하였고, 나아가 국모로써의 품위를 손상시켰사옵
니다. 더불어 대장군 왕건에게 역모를 권유하였으며 폐하의 위엄과
존엄에 심한 누를 끼치고 황실 전반에 해악을 가하였사옵니다. 보다
일찍 죄를 물었을 것이오나, 지엄하신 폐하의 혈육을 보존하고자 지
금에서야 국청을 열 게 되었사옵니다. 삼가 헤아리시오소서, 폐하.
궁예 (한참 보다가) 할 말이 있소이까?.....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소이다.
연화 ..............(희미한 냉소)
궁예 할 말이 없는 모양이로구먼. 자, 그렇다면 굳이 증인들을 불러 무엇
할 것인가? 헌데 황후의 죄를 논하자면 그 당사자인 장군 왕건이는
보여야 할 것이다. 왜 아직 아니 오는가?
그때, 사잇문이 소리나게 열리면서 거기 왕건일행들이 들어선다. 모
두들의 시선이 쏠려 있다. 왕건과 연화의 시선이 교차된다. 다시 왕
건과 궁예의 시선 또한 교차된다. 궁예가 웃는다.
궁예 왕건아우가 왔는가?
왕건 예, 폐하.
궁예 대역모반 사건이 있기에 국문을 여는 참일세. 어서 자네의 자리에
와 서게나. 저기 자네의 자리를 비워 두었어.
궁예는 차갑게 말한다. 종간, 은부들도 긴장해서 보고 있고, 다른 신
료들은 더더욱 그렇다. 임춘길, 도우, 집사장도 그렇다. 최응이 붓을
들고 기록하며 보고 있다. 거기 자리가 비었다.
궁예 아, 자네의 자리로 와서 서게.
왕건 ..........?
< 115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