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수필>
- 선비의 말과 시정잡배의 말 -
권다품(영철)
살다보면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존경하는 어르신들을 만나는가 하면, 선배 후배도 만나고 친구도 만난다.
나는 선배를 만날 때는 일부러 편하게 대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후배가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드리면 선배님들도 나이를 덜 느끼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그렇다고, 친구들한테 하듯이 예의없이 말을 함부로 한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선배들에게 함부로 하면, 선배는 나를 피할 것이고, 그것을 본 후배들도 내게 함부로 할 거란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어떤 선후배가 하는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어이, 동생한테 밥 쫌 사줘보소." 하니까, "야 이 씨발 넘아, 이 새끼 이거 형님한테 말하는 싸가지 쫌 봐라. 동생 같으면, 말이라도 '형님, 밥은 잡샀습니꺼' 먼저 물어볼 줄 알아봐라, 개새끼야." 하면서 장난을 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물론, 내가 보기에도 참 친한 선후배다.
그래도, 아무리 친한 선후배간이라도 서로 가장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편하게 농담을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사람을 만날 때 술이 빠지지 않는 것 같다.
옛날 선비들도 친구를 만날 때는 그 우정과 함께 술을 즐겼단다.
그런데, 선비들은 친구기 때문에 만나고, 친구를 만나다 보니 술을 몇 잔 마셨다.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보니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긴 하겠다.
그냥 술친구겠다.
요즘은 "한 번 보자."는 말이나 "밥 한 번 먹자."보다 "술 한 잔 하자."는 말이 더 많이 오가는 것 같다.
또, 사람을 만나는 전제가 술을 마시느냐 안 마시느냐로 들릴 때가 있기도 하다.
어느 술집에 예쁜 여자들이 오느니 어쩌니 농담을 하고 있길래, "어느 집인데? 그러마 나도 좀 델꼬 가나?" 하며 끼여들었더니, "니는 술도 못 마시는데, 분위기 깰라꼬 뭐할라꼬 댈꼬 가노?"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가 "니는 말을 와 그래 싸가지 없이 하노? 병원에서 술 못 마시게 하는 것도 서러운데 그런 말까지 들어야 되겠나? 가도 되는데, 마 안 가는 기 나을 끼다." 하며 처음 말했던 친구가 안 보이게 얼굴에다가 크게 X를 그었다.
그러니까 처음에 말했던 사람이 "농담이라는 거 알재? 그러마 대신 오늘 술 니가 다 사나?" 했다.
"그러마 나는 마, 그런 여자 보러 안 갈란다."하며 왁자지껄 웃고 말았다.
농담이긴 했지만, 참 묘한 것이, 그 이후부터는 그런 말을 했던 친구에게는 이상하게 연락이 조금 뜸해졌다는 걸 느낀다.
친구기 때문에 만나고, 친구를 만나다 보니 술도 한 잔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술을 마시느냐 못 마시느냐가 친구의 조건이 된다면 아무래도 좀 그렇겠다.
그러면, 몸이 안 좋아서 술을 못 마시는 사람들은 친구가 없어진다는 말 아닌가?
어릴 때 우리 집안 할배나 아재들께 들었던 말씀이 생각난다.
"돈으로 만난 친구, 술 친구, 노름 친구는 친구가 아이다."
친한 사이에 하는 농담이라도, 생각은 좀 하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말이란 것이 사람을 젊잖은 선비로 만들 수도 있고, 시정잡배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이, 지금 만나는 친구가 어떤 친군지 한 번 생각해 보라꼬.
친구라서 한 잔씩 하는지, 술로 만나는 친군지 한 번 생각해 보자.
술을 마시다가 끊은 사람이라면, 술을 마실 때와 지금이 어떻게 다른지도 생각해 보고.
2023년 11월 27일 낮 1시 2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