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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12월10일(화요일) 안동선비순례길 6코스 역동길 탐방일정
회비 37,000원 11월28일 송금필, 17번 좌석 예약
탐방지 : 안동선비순례길 6코스 역동길
[休경북의 힐링길] 수향 안동에서 즐기는 '선비순례길'
김영진 기자 solive@imaeil.com
매일신문 기사 입력 2023-12-22 11:30:00 수정 2023-12-22 18:21:24
안동의 유교적 정서와 독립 정신 등을 느낄 수 있는 91㎞, 9개 코스
코스별 다양한 역사와 문화재를 간직해 볼거리와 재미를 충족
경북 안동은 예부터 수향(水鄕)이라 불린 수변도시다. 실제로 안동댐과 임하댐 등 2개 댐이 있고 도심지 내에도 큰 낙동강 물줄기가 흐르는 등 자연과 도심이 어우러진 고장이다.
이런 안동에는 안동호의 절경과 다양한 유교문화유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9개 코스, 길이 91㎞의 자연친화적인 탐방로 '선비순례길'이 있다. 선비순례길은 코스 내에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선성수상길과 함께 도산서원과 이육사문학관을 비롯해 고택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천천히 걸으며 힐링관광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최근에는 인기 방송프로그램 '나는 SOLO' 등에도 소개되면서 트래킹과 관광을 위해 안동을 찾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는 추세다.
◆1~3코스 : 퇴계 선생과 이육사 선생의 정신 담아
고고한 선비정신을 지키며 살았던 군자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선성현길을 품은 1코스는 도산구곡 중 첫 번째 물굽이인 운암곡 주변을 둘러보는 길이다. 흔히 안동을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고 하는데, 선성현길에는 고고한 선비정신을 지키며 살았던 군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을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 해 군자리(안동 와룡면)라는 이름을 얻은 외내마을부터 선비들이 호연지기로 인의를 기르던 예안향교, 물 위로 늘어진 선성수상길을 지나 한국문화테마파크까지, 선성현길에서는 수많은 선인이 우리 앞을 걸어가며 길을 안내한다.
퇴계 선생의 숨결이 깃든 도산서원길 2코스는 월천서당과 관련이 있다. 월천서당은 월천 조목 선생이 후진을 양성하고자 세운 서당이다.
조목 선생은 퇴계 선생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스승을 가까이 모시면서 학문 연구에만 주력했다. 도산서원길은 스승과 제자가 만나는 사제의 길로 퇴계 선생이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원부터 생을 마감하고 깊은 잠에 든 묘소를 지나, 퇴계 후손이 청빈한 선비의 자세를 지키며 살아온 원촌마을까지. 도산구곡길 어느 구간보다도 퇴계의 숨결이 살아 있는 길이다.
3코스는 '광야', '청포도'를 노래한 시인 이육사 선생의 고향 원촌마을을 지니는 청포도길이라 불린다.
이육사 선생이 태어난 원촌은 남향 터에 마을 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앞으로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기름진 들판과 그 너머로 느리지도 급하지 않은 강물이 흘러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이다. 궁벽한 산촌마을이지만 이런 사색의 땅엔 필연적으로 인물이 나기 마련이어서 수몰 전 원촌에는 참판댁, 대감댁, 진사댁, 상주댁, 아산댁, 너다래댁, 언양댁, 병성댁, 서울댁, 영혜댁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육사 선생의 딸인 이옥비 여사가 사는 목재 고택을 비롯한 네 채만 남아 있고, 마을 입구에는 원촌이 배출한 대표적 인물 이육사를 기념하는 문학관이 세워져 있다.
◆4~6코스 : 청량산을 배경으로 한 최고의 경관
퇴계 선생이 청량산을 향해 걷던 그림 같은 장관의 퇴계예던길은 4코스다.
안동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올미재는 그야말로 안동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을 한번이라도 와 본 사람은 고산정과 농암종택, 월명담을 전국 최고의 정자와 종택, 소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퇴계 선생은 달빛 쏟아지는 월명담을 비가 오게 하는 연못으로 여겼다고 전해진다. 월명담을 지나 청량산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고산정이 나온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가송리 주민들이 매년 정월대보름 때 동제를 지내는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모신 당이 있다.
5코스는 공민왕의 어머니가 이곳으로 피난해 이름 붙여진 왕모산성길이다.
청량산에서 흘러온 물은 산을 넘지 못해 왕모산성을 휘돌아나가고 산은 물을 침범 못 해 내살미와 백운지라는 한 폭의 그림 같은 강 풍경을 만들어냈다. 바로 가까이에 청량산이 있고 산 위로 눈을 돌리면 이육사 선생이 '절정'의 시상을 다듬던 칼선대와 퇴계 선생 시절부터 철쭉 피는 봄날에 열렸던 문학토론장 월란정사가 있는 왕모산성과 마주하며 걸을 수 있다.
안동 최초의 서원 '역동서원'이 있었던 역동길은 6코스다.
6코스에 강물은 적벽가를 부를만큼 융융하게 흘러간다. 한쪽은 퇴계학단의 거목인 조목 선생의 월천서당이 있고 강 건너에는 봉화 금씨의 성재종택과 진성 이씨의 번남고택이 있다. 특히 성재종택이 있는 부포마을에는 우리나라 이학의 조종인 우탁 선생의 역동서원과 기름진 들과 더불어 천년세월을 견딘 부라원루가 볼거리다. 부포 앞 강변에 있는 솔숲 '사평송은 마을의 풍취를 더하고 있어 오가는 이들의 쉼터를 제공한다.
◆7~9코스 : 한국국학진흥원과 마의태자길까지
안동에는 국내 최고의 한국학 전문 연구기관인 경북도 산하 한국국학진흥원이 있다. 7코스는 국학진흥원부터 도산온천으로 이어지는 산림문학길이다.
이 코스에는 송곡고택과 선성아문, 호계서원, 예안향교가 있다. 이 길의 35번 국도를 따라 도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산림박물관이 있다. 도산에 당도해서는 노송정 종가를 중심으로 그 우편에는 퇴계 선생이 최초로 지은 수곡암과 온계 이해 선생의 종택과 송재 이우 선생의 신도비가 줄지어 있고, 반대편에 도산온천이 있다.
신라의 국권회복을 그리던 마의태자의 꿈을 찾아가는 여정은 8코스 마의태자길이라 불린다.
이곳은 신라가 망하자 태자였던 김일이 고려로의 귀부(歸附, 스스로 복종하다)를 거부하는 세력을 이끌고 끝까지 신라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흔적이 용두산과 태자산 일대에 지명유래와 전설로 남아 있다. 마의태자가 매일 올라가 망국의 신라 땅을 바라보았다는 용두산 중턱의 마의대와 마의태자의 한을 담고 있다는 달래재길,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며 군사를 훈련했다는 건지산과 투구봉은 영욕을 역사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마지막 9코스는 퇴계 선생의 문하생들이 수운정과 건지산을 오가며 서도를 익혔던 서도길이다.
퇴계 선생의 문하생들은 수운정과 건지산을 오가며 서도를 익혔는데 일생 문자향을 피우고 글씨를 통해 성학을 이루는 길에 매진했다고 한다. 도산면 서부리의 '선성아문'은 이숙량 선생의 글씨고, 퇴계 선생의 묘비는 금보 선생의 글씨인데 한 스승 아래 벗이 모두 명필인 예는 고금에도 드문 일이어서 칭송이 자자했다.]
탐방코스: [원천교 남단~(3.4km)~번남고택~(2.5km)~계상고택~(3.4km)~부라원루~(0.4km)~성성재종택~(1.0km)~부포리 선착장] (10.7㎞/5시간)
탐방일 : 2024년12월10일(화요일)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3시간30분 소요)
07:10~10:30 양재역 12번 출구 전방 국립외교원 앞에서 “좋은사람들” 버스로 출발하여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639 주변에 있는 원천교 남단으로 이동 [229km] [3시간20분 소요]
10:30~11:30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639 주변에 있는 안동 선비순례길 6코스 역동길의 출발지점인 원천교에서 탐방출발하여 경북 안동시 도산면 의촌길 76-5 번지에 있는 안동 번남고택으로 이동
[안동 선비순례길 6코스 역동길
길이 11.5km, 소요시간 3시간 30분, 난이도 보통, 비순환형
코스 개요
- 안동 최초의 서원 ‘역동서원’이 있었던 역동길
- 낙동강을 바라보며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을 걸으며 오래된 한옥 고택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코스
관광 포인트
- 조선시대의 학자 월천 조목(趙穆)이 학문을 배우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1539년 건립한 '월천서당'
- 자랑스러운 부포를 만든 봉화금씨의 '성성재종택'과 진성이씨의 '번남고택'
- 우리나라 이학의 조종인 우탁의 '역동서원'
- 조선시대 예안현에 설치된 부라원역의 누정 '부라원루'
여행정보(주의사항)
- 교통편이 좋지 않으므로 시내에서 택시 또는 단체버스를 이용하여 이동하는 것을 추천함]
11:30~11:40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에 있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9세손인 번남(樊南) 이동순(李同淳, 1779~1860)의 호를 딴 조선 후기 전통 가옥인 안동 번남고택을 탐방
[안동 번남고택(安東樊南古宅)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108[의촌길 76-5]
시대 : 조선/조선 후기
문화재 지정 일시 : 1973년 8월 31일, 2011년 11월 9일, 2021년 11월 19일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안동 번남고택은 순조 때 지어진 가옥으로 서울의 창덕궁(昌德宮)을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번남(樊南)은 조선 후기 문신인 번엄(樊广) 이동순(李同淳, 1779~1860)의 아호이다. 이동순은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의경(義卿)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9세손이며, 참판(參判) 이귀천(李龜天)의 아들이다. 1807년(순조 7) 문과에 급제하여 1815년 시강원설서(侍講院設書)·병조좌랑·사간원정언에 이어 이듬해 사헌부지평겸선전관을 지냈다.
1841년에는 한성좌윤이 되었고, 1844년 병조참판, 1845년에는 호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858년(철종 9)에는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이듬해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를 역임하였다. 안동 번남고택을 중건한 이만윤(李晩胤, 1834~1906)은 본관이 진성이고, 자는 계조(繼祖), 호는 좌산(左山)이다. 이휘부(李彙溥, 1809~1869)의 아들로 태어나서 1865년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안동 번남고택은 삼호당(三乎堂)이라고도 불렸다.
위치
안동 번남고택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108번지[의촌길 76-5]에 있다. 안동시 예안면 소재지인 정산리에서 지방도 919호선을 타고 북쪽으로 1.5㎞ 정도 가면 태곡교(台谷橋)가 나온다. 태곡교를 건너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접어들어 호반을 따라 형성된 외길로 10㎞ 정도 들어가면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이다. 의촌리는 도산서원 건너편에 있는 마을로 앞에는 안동호가 펼쳐져 있는데, 300m~400m 전방에 도산서원 시사단(試士壇)이 보인다. 마을 노인회관 앞에서 우측 길로 200m 정도 들어가면 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가 서 있고, 바로 옆에 안동 번남고택이 자리 잡고 있다.
변천
안동 번남고택은 순조 때 삼척부사를 지낸 이휘부가 선친 이동순을 위해 건립하였고, 1875년(철종 8) 이휘부의 아들 이만윤이 직접 감리하여 중건하였다. 이만윤이 쓴 편액에 ‘정사추구월상량(丁巳秋九月上樑)’이라 하였는데, 이를 통해서 중건 연대가 1875년임을 알 수 있다. 원래 안동 임청각(臨淸閣)처럼 99칸으로 창건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일부가 소실되어 50여 칸 정도만 남아 있었으나 현재 보수 중에 있다.
형태
안동 번남고택은 본채와 사랑채, 행랑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방에 ‘ㄴ’자형의 바깥행랑채를 두고, 이와 연접하여 ‘ㅡ’자형 안행랑채와 ‘ㄷ’자형의 안채로 이루어진 ‘ㅁ’자형의 본채를 두었으며, 그 좌측에 ‘ㄱ’자형의 사랑채를 두었다. 바깥행랑채는 전면에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왼쪽에 1칸 크기의 광 3개를 나란히 두고 우측에는 문간방으로 통하는 반 칸의 마루를 두었으며, 문간방 옆에는 각 1칸, 2칸, 1칸 크기의 광과 1칸 크기의 외양간을 차례로 두어 정면이 모두 13칸이 된다. 이와 연접하여 우측 외곽에 1칸 크기의 부엌과 문간방과 협문칸을 두고 그 옆에 헛간 2.5칸을 두어 바깥행랑채의 외곽은 5.5칸이 된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나오는데 마당 뒤에는 바깥행랑채에 비해 대지를 1m 정도 높여 사랑채와 본채를 배치하였다. 본채에 딸린 안행랑채는 길이가 7칸으로 맨 좌측에 중문간(中門間) 3칸을 두고 1칸 크기의 문간방과 광, 2칸 크기의 헛간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특히 안동 번남고택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중문간의 운용인데, 3칸 중문간 앞에 안채와 차단하는 2칸 크기의 내외벽을 설치하고 중문의 좌측에 사랑채로 통하는 협문을 설치하여 내외의 공간을 분리하였다.
안채는‘ㅗ’자형의 6칸 대청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 1칸 크기의 방과 고방을 두고 방과 직교하여 안방·헛간·마루·광을 배치하였다. 대청의 우측 모서리 부분에는 반 칸 크기의 건넌방을 두고, 대청을 1칸 건너서 2칸통의 상방과 1칸의 부엌을 두었으며, 부엌과 마주하여 반 칸의 고방을 꾸몄다. 대청 우측면과 상방 우측면에 퇴를 설치하였다.
‘ㄱ’형의 사랑채는 좌측면과 우측면이 5칸으로, 좌측에는 각 3칸의 대청과 온돌방과 반 칸의 부엌을 두었으며 우측에는 부엌과 직교하여 1칸 부엌과 2칸통의 방을 두었다. 사랑채의 좌우 전면에는 반 칸의 퇴를 설치하였는데, 이 툇간은 안방 앞의 마루와 연결된다.
현황
안동 번남고택은 1973년 8월 31일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11월 9일 국가민속문화재 268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소유자 및 관리자는 진성이씨 의인파 번남 문중(주손 이동익)이다. 현재 안동 번남고택에 걸려 있는 「삼호당기(三乎堂記)」는 이만윤이 자찬한 것이며, 글씨는 아들인 도운(陶雲) 이중태(李中泰)가 썼다. ‘삼호(三乎)’란 『논어(論語)』 학이(學而) 편의 ‘남을 위해 일을 계획하되 불충하지 않았는가. 친구와 교제함에 신의를 잃은 바 없었는가. 전수받은 바를 익히지 않은 바 없는가[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에서 그 의미를 취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안동 번남고택은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ㅁ’자형 집과는 달리 3대 이상의 대가족이 거주할 수 있도록 배치와 평면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조선 후기의 가옥으로서 규모가 크고 구조가 특이해 좋은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11:40~12:20 경북 안동시 예안면 부포로 833-212 번지에 있는 계상고택으로 이동
12:20~12:30 퇴계 이황의 11대 자손인 계상(繼尙) 이만응(李晩鷹, 1829-1905) 선생이 건립한 전통한옥인 계상고택을 탐방
[계상고택(繼尙古宅)
분류: 가옥
지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30호(2007.12.31.)
시대: 조선시대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857-1
계상고택(繼尙古宅)은 1975년 완공된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부포리에서 유일하게 남겨진 전통 한옥으로 안동댐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19세기 후반에 지은 정면 7칸, 측면 7칸의 ‘ㅁ’자형 주택으로 전통 민가에서는 보기 어려운 누상고(樓上庫, 다락 위 곳간)와 누당(樓堂, 누마루)을 가진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계상(繼尙) 이만응(李晩鷹, 1829-1905) 선생이 건립하였으며, 선생의 호를 따라 계상고택으로 불린다. 현재 계상고택의 위치는 과거 역동(易東) 우탁(禹倬)을 배향했던 역동서원이 있던 자리다. 역동서원이 안동댐 건설과 함께 국립 안동대학교 내부로 이전되면서 계상고택이 자리 잡게 되었다.
계상고택을 건립한 계상 이만응은 퇴계 이황의 11대 자손으로, 1895년 예안의 유인(孺人) 223명을 대표하여 예안통문(禮安通文)을 작성하였으며, 선성의진(宣城義陣)을 결성하여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맞섰던 인물이다.
계상고택은 안동호를 곁에 두고, 드넓은 청보리 밭이 펼쳐져 전통 건축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한적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안동의 대표적 힐링의 명소로 손꼽히고 있으며, 매년 6월경에는 청보리밭 축제도 열려 많은 사진작가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또한 선비순례길 6코스 역동길(원천교-번남댁-계상고택-성성재종택-부포리선착장)에 속해있어 트레킹 코스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12:30~13:20 경북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산 94-4 번지에 있는 부라원루로 이동
13:20~13:30 조선시대 예안현에 설치된 부라원역의 누정인 부라원루를 사진촬영
[부라원루(浮羅院樓)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산84-1번지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 있는 조선시대 예안현에 설치된 부라원역의 누정. 누각·조경건축물.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누각의 팔작지붕건물. 1973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세조 때부터 조선 말기까지 시행되었던 역원제도(驛院制度)에 따라 예안현(禮安縣)에 설치되었던 부라원역의 누각이다.
홑처마집이며 이층에는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돌려놓았다. 현판은 명필 한석봉(韓石峯)의 글씨이다. 원래 안동 예안현의 벌판에 있었으나 안동댐 공사로 인하여 수몰되게 되어 1975년 현위치로 이전하였다.]
13:30~13:40 경북 안동시 예안면 부포로 668 번지에 있는 성성재종택으로 이동
13:40~13:45 퇴계 이황(李滉)의 제자인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1530~1604)의 종택인 안동 성성재종택을 탐방
[안동 성성재 종택(安東 惺惺齋 宗宅)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156
문화재 지정 일시 : 1992년 11월 26일, 2013년 4월 8일, 2021년 11월 19일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개설
안동 성성재 종택은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안동 수성장(守城將)으로 활약하여 좌승지에 증직된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1530~1604)의 종택이다. 금난수는 퇴계 이황(李滉)의 제자로서 자연과 더불어 학문을 닦는 데 힘썼으며, 1561년(명종 16) 사마시에 합격하여 봉화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형태
정침과 아래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당은 정침의 오른쪽에 별도의 공간을 구획하여 자리 잡고 있으며, 아래채는 정침의 왼쪽에 두었다. 정침은 정면 6칸, 측면 6칸 반 규모의 ‘ㅁ’자형이다. 중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작은사랑과 큰사랑을 배치했는데, 큰사랑은 통간 사랑방과 사랑마루, 그리고 마루 뒤쪽의 책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은사랑은 1칸 반 규모의 작은사랑방과 반 칸 규모의 마루가 연접되어 있으며 앞에는 툇마루를 둘렀다.
안채는 통간의 안방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부엌을 두었고, 오른쪽에는 정면 2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대청을 두었으며, 대청의 오른쪽 앞면에는 상방을 두었다. 상방은 대청을 사이에 두고 안방과 대칭되게 배치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지만 이 집은 대청이 오른쪽으로 치우쳐 안방이 중앙으로 있고, 상방이 대청 앞쪽으로 밀려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18세기에 지은 안동 지역의 주택에서 이따금 발견되는 특이한 형태이다. 안방의 상부에는 다락을 두었는데 다락은 안방과 부엌, 그리고 고방의 상부까지를 통간으로 하여 매우 큰 규모이며, 사면에 모두 창을 달아 채광과 환기를 좋게 하였다.
현황
안동 성성재 종택은 1992년 11월 26일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4호로 지정되었다. 2013년 4월 8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2009년 현재 금창한이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돌보는 이가 있어 비교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상부가 통다락으로 구성된 까닭에 안채가 매우 높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18세기에 지어진 안동 지역 상류 주택으로서 시대성과 지역성이 잘 간직되어 있다.]
13:45~14:00 경북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산146-2 주변에 있는 경북 부포리 선착장으로 이동하여 탐방 완료
안동선비순례길 6코스 역동길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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