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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櫟翁稗說>의 이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하여 한 마디 덧붙인다.
그 서문에, 「櫟之從樂 聲也」, 「稗之從卑 聲也」라고 하였다. 필자는 「聲也」라는 말을 발음한다는 말로 풀이한다. 그래서, 〈낙옹비설〉이라고 읽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또 많은 인사들이 〈역옹패설〉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 또한 우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또 「櫟」과「稗」의 발음이 고려 때에는 어떠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꼭 〈역옹패설〉은 잘못 읽는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좀더 신중을 기해야 될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대가(大家)들의 판정이 있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많은 오역과 견해의 착오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두렵다. 기탄없는 질정(叱正)을 바란다.
一九七○년 十二월 일
무학산장에서 남만성 씀
櫟翁稗說前序(역옹패설전서)-李齊賢(이제현)
역옹패설전서(櫟翁稗說前序)
至正壬午(지정임오) : 正壬午에 이르러,
夏雨連月(하우연월) : 여름비가 달을 이어 내리니,
杜門無跫音(두문무공음) : 두문불출하는데 뚜벅뚜벅 찾아오는 이의 발소리마저도 끊기고
悶不可袪(민불가거) : 무료함을 달랠 길이 없어,
持硯承簷溜(지연승첨류) : 연적을 들고 가서 처마밑으로 떨어지는 물을 받아다가,
聯友朋往還折簡(연우붕왕환절간) : 친구들끼리 주고받은 접는 편지를 엮어서,
遇所記(우소기) : 기록한 것을 만나는 대로
書諸紙背(서제지배) : 편지 뒤에 써고,
題其端曰(제기단왈) : 그 끝에다가 적기를,
櫟翁稗說(력옹패설) : “櫟翁稗說(역옹패설)”이라 하였다.
夫櫟之從樂(부력지종락) : 그 櫟에 樂을 붙인 것은
聲也(성야) : 그 音 때문이다
然以不材遠害(연이부재원해) :
그러나 그 櫟(*상수리 나무)은 재목으로 쓰이지 않아 해를 멀리할 수 있어,
在木爲可樂(재목위가락) : 나무에 있어서는 즐거워할 만한 것이 되니
所以從樂也(소이종락야) : 그래서 樂을 붙인 것이다.
予嘗從大夫之後(여상종대부지후) : 나는 일찍이 大夫의 뒤를 쫓아
自免以養拙(자면이양졸) : 스스로 해를 면하여 졸박함을 길렀으니,
因號櫟翁(인호력옹) : 그래서 역옹(櫟翁)이라 號한 것이며
庶幾其不材而能壽也(서기기불재이능수야) :
그 櫟(*상수리 나무)의 재목이 되지 않아서 장수할 수 있음을 바라는 것이다.
稗之從卑(패지종비) : 稗(패)에 卑(비)를 붙인 것은
亦聲也(역성야) : 그 소리 때문이지만,
以義觀之(이의관지) : 그 뜻으로 본다면,
稗禾之卑者也(패화지비자야) : 곡식 종류로는 가장 비속한 것이다.
余少知讀書(여소지독서) : 나는 어려서 책을 읽을 줄 알았고,
壯而廢其學(장이폐기학) : 커서는 그 학문을 그만두었고,
今老矣(금노의) : 이제는 늙어버렸으나,
顧喜爲駁雜之文(고희위박잡지문) : 도리어 잡박한 문장을 짓기를 좋아하여서
無實而可卑(무실이가비) : 내실이 없고 비속하니,
猶之稗也(유지패야) : 稗(*곡식의 한 종류인 피)와 비슷하다.
故名其所錄(고명기소록) : 그래서 그 기록한 것을 이름하여
爲稗說云(위패설운) : ‘패설(稗說)’이라 하였다.
역옹패설」에는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는 역사적 이야기, 재미있고 이상한 일, 인물, 우리 나라와 중국의 유명한 시, 시에 대한 이제현의 생각 등이 실려 있다. 이제현은 고려 시대 말기의 훌륭한 학자이며 문학가였다. 이제현이 쓴 책으로는 「익제집」이 있는데, 「익재집」 안에 「역옹패설」과 「익재난고」 두 작품이 실려 있다.
「역옹패설」은 이제현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 답답함과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쓴 글로서, 큰 형식 없이 마음대로 자유롭게 붓 가는 대로 쓴 수필집이다. 이제현이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를 이어서 그 편지지 뒷면에 썼으며, 그가 살고 있을 당시에 있었던 일들이 재미있고 익살맞게 쓰여 있어 고려 시대 후기의 생활 모습을 잘 보여 준다. 또한 「역옹패설」에는 많은 교훈도 담겨 있다. |
첫댓글 역옹패설은
수필이란 단어 그대로
손가는대 쓴 글로
기승전결이나 서론 본론 결론없는지라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